야촌 이재훈

시대별 역사인물, 서적, 문학, 보학. 전통문화. 금석문. 일상 이야기 수록.

06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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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경주 수봉정(秀峯亭)

경주 수봉정(秀峯亭) 경상북도 기념물 제102호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487 ↑수봉정(秀峯亭) 수봉 이규인(圭寅) 선생은 지금의 경주 외동읍 괘리(慶州 外東邑 掛里) 487번지에서 7남매의 막내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자(字)는 우서(瑀瑞)이고 호는 수봉(秀峯)이다. 1919年 오늘의 수봉학원(秀峯學園-현 경주중고등학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수봉정을 건립하고 또 "이수봉정(李秀峯亭)"의 이름으로 이제까지 주민들의 구휼사업을 위해 쓰던 재산을 등기하여 체계를 세워 본격적으로 교육, 의료, 구휼의 사회사업을 펼친다. 1930년대 초에 김성수, 안재홍, 송진우 등 민족지도자의 성원을 얻어 사립 경주보통학교를 설립, 구국의 인재를 양성하려 하였다. 이 학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주공립중학교로 ..

2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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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고마운 형수님 추억 - 정약용(丁若鏞)

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2020. 06. 02(화) 15 : 10 [위클리서울=박석무] 아무리 냉철하고 이지적인 학자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따뜻한 인정이 서려 있기 마련입니다. 다산처럼 비판적이고 굳은 이성(理性)의 소유자였으나, 그의 많은 글을 보면 인간미가 철철 흐르는 대목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그가 귀양 살던 오랜 기간에 고향의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엄한 스승의 모습도 많이 보이지만, 편지의 내면에 흐르는 다산의 인정미와 자식에 대한 따뜻한 애정은 숨길 수 없이 많이 드러나 있습니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잃고 젊은 큰 형수의 돌봄으로 유년시절을 보낸 다산은 큰형수의 무덤에 넣은 ‘묘지명(墓誌銘)’이라는 글을 통해, 형수의 인품과 행실을 찬양하는 글을 남겨, 형수의 은혜에 보답하는 정성..

25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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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낙상지(駱尙志)-명나라의 장수

■ 낙상지(駱尙志)-명나라의 장수 낙상지(駱尙志)는 절강성 여요「余姚/오늘날 위요시余姚市)」출신으로 당나라 때 초당 4걸로 유명한 낙빈왕(駱賓王)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 이여송의 좌참장(左參將이)으로 조선에 왔다. 그는 이성량(李成梁, 1526년~1615년, 명나라 후기의 무관/고려 전객부령 이천년의 6대손)의 집안을 섬겼고 어려서부터 용력이 대단했고 성실했으며 완력이 대단하여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천근이나 되는 바위를 집어 올려 군대 내에서도 낙상지 대신 낙천근(駱千斤)이라고 불렀다. 뛰어난 검술은 혼자서도 7~8명은 거뜬히 상대했다. 군관이 되었지만 그는 무과 출신도 아니고 군벌가문도 아니며 연납(捐納: 돈을 내고 벼슬을 삼)으로 군관이 된 사람도 아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졸병부터 차츰..

16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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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학/고사성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란?

■사문난적(斯文亂賊) 사문난적(斯文亂賊)이란? 글(文)을 어지럽히는 적이란 뜻으로, 사문(斯文)은 유교(儒敎)를 의미하므로, 이단적인 언사로 유교를 어지럽히거나 유학의 본류에 어긋나는 글을 쓰는 사람을 비유한다. 주자학에서는 이단(異端)을 공격할 때 종종 사용하였던 말이다. 이 성어는 ‘논어(論語)’의 자한(子罕)편에서 유래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광(匡)땅을 지날 때 광땅 사람들은 공자를 무뢰한인 양호(陽虎)로 오인하고 포위하여 해치려 한 적이 있었다. 이 위기를 당하여 공자는 이렇게 말 하였다. “주나라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문화(文)가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만일 하늘이 장차 이 문화(斯文)를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은 사람이 사문에 참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사문을 없애려 ..

08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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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조선사(朝鮮史) 중국 사신을 깨우친 이진택

작성일 : 2019. 02. 24 ■중국 사신을 깨우친 이진택 ↑덕봉정사[德峯精舍/경주시 정자3길 11-6(마동 538)]는 이진택이 만년에 유식하던 장소로 원래는 경주 관광호 텔 뒤 송림가에 있었으나 1905년 그의 묘소 옆 연못가로 옮겼다. 경주시 마동소재 경북문화재자료 제313호 이진택[李鎭宅, 1738(영조 14)∼1805(순조 5)]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하며 막힘이 없었는데, 8세 때 닭싸움을 보고 “상앙의 법률로 논죄할 것 같으면, 이 닭은 당장 삶아 먹을 것을(若論商法 此.當烹食)…”이라는 글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780년(정조 4)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성균전적·예조정랑·사헌부감찰·병조좌랑·사헌부지평·장령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노비혁파를 주장한 상소를..

22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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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중국사(中國史) 죽림칠현(竹林七賢)

■ 죽림칠현(竹林七賢)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 위(魏) , 진(晉) 왕조 시절의 완적(阮籍), 혜강(嵆康), 산도(山濤), 상수(向秀), 유령(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을 가리킨다.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을 주고받고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들이다.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이 그들의 근본 사상이었다. “언제나 죽림 아래 모여 거칠 것 없이 술을 마셔, 죽림 7현이라고 불렀다”라고, 6조(오, 동진, 제. 양, 진, 송) 송의 유의경(劉義慶)이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7인을 한 그룹으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일찍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 사상적 중심은 완적(阮籍)과 혜강(嵆康)의 두 사람이며, 다..

20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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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중국사(中國史) 4500만 굶어죽게 한 폭정에도 어떻게 권력 유지했나 – 송재윤의 슬픈 중국

[조선일보] 2020. 06. 20 4500만 굶어죽게 한 폭정에도 어떻게 권력 유지했나 – 송재윤의 슬픈 중국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리더십이 국가 운명 가른다…마오의 총체적 실패 리더십이 국가의 명운을 가른다. 리더십은 종합적 국가경영의 능력이다. 국가의 리더는 정부의 중장기 목적을 설정하고, 발전전략을 창안한다. 행정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액션플랜을 설계한다. 복잡다단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크고 작은 위기를 관리한다. 의사소통의 능력과 행정상의 추진력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리더십은 경제를 살리고 사회를 안정시킨다. 나쁜 리더십은 경제를 후퇴시키고 사회를 해체한다. 리더십에 따라 국가의 근본가치와 사회·경제적 기본제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교의 전통에서 리더십의 총체적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