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빈, 길을 나서다 ~

자유로운 여정을 즐기고 싶습니다. 방문주신 님들과 함께할수 있다면 더욱 감사한 일이겠습니다.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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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020. 9. 6.

사계절 경외하며 감동으로 걷는길《설악산의 사계와 야생화》에 이어《아름다운 산행과 여행》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른 봄의 야생화 산지부터 남도의 섬트레킹지, 지리산, 한라산, 북한산 등 이름만으로도

우리 가슴속을 설레게 했던 명산들과 여행지로 알차게 채워보았습니다.

 

 

이젠 야생에서 거의 보기 힘들어진 멸종위기종 1급인 광릉요강꽃을 비롯한 

관악산 남근석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도 담겼습니다.

인터넷 구매가 10% 저렴하구요. 선물용으로도 추천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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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만에 산행기를 올린다.

수도권 확산세가 심각해짐에 따라 행동반경을 줄여야 했고,

산행기 쓰는데 걸리는 시간에 비해 만족도는 떨어지고, 눈의 피로도 때문에도 좀 쉬어야 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서울에는 조망과 암봉은 물론이거니와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느껴볼수 있는 좋은 산이 많다. 오랜만에 서울 인왕산과 백악산(북악산)에 간다.

 

 

독립문역 1번 출구로 나와 인왕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무악재하늘다리가 생긴 뒤로는 안산과 인왕산을 잇는 길이 한결 편리해졌다.

안산에서부터 인왕산 백악산까지 잇는 산행도 괜찮지만 오늘은 체력도 시간도 여의치 않아 인왕산부터 시작하려 한다. 

 

 

아이파크아파트 옆길을 지나 인왕사로 오르는 길, 뒤로 보이는 산이 안산이다.

이른 새벽에 올라 본 적이 있었는데 동네 어르신들과 주민들이 운동 삼아 많이들 오르셨다.

 

 

 

인왕사 일주문을 지나 인왕사에 들어서면 사찰이라는 느낌보다는 골목 골목 이어진 어느 마을길에 들어선 느낌이 들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가 인왕사에서 조생스님을 만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때 

늦어도 1397년에는 태조의 후원으로 무학대사와 조생선사에 의해 이 사찰이 창건되었음을 알수 있다.

세종때는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인왕산이라 칭하고, 사찰을 인왕사라 부르게 되었으나 연산군때 궁궐이 보인다 하여 폐사되었다. 그 후 복원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폐사지로 남게 되고 1910년경 선바위를 중심으로 선암정사를 짓고 다시금 오늘에 이르게 된다.

 

 

독특하게 생긴 인왕사의 선바위다.

기도처 선바위는 이제 비둘기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신라시대 도선국사는 인왕사 위의 이 선바위를 왕기가 서리는 길지라 하였다.

 

아이를 갖기 원하는 부인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많이 하여 기자암이라 불리기도 하고

바위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자를 써서 선바위라 불리게 된다.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설화와 태조 부부의 상이라는 설화도 전한단다.

일제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이 바위 곁으로 옮긴 뒤부터 이 바위와 국사당이 함께

무신(巫神)을 모시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대는 무속신앙적인 기도처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뒤에서 본 선바위는 마치 중세 유럽의 카톨릭 관계자가 입었음직한 모자 달린 의상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선바위는 조선 건국에 얽힌 정도전과 무학대사 일화에도 남아 있다.

이 바위를 성 안으로 할 것인지, 밖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정도전과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신경전을 벌이고 대립하게 된다.

이 선바위를 성 안으로 넣으면 불교가 왕성하여 유신은 물러날 것이고,

밖으로 내 놓으면 불교와 승려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태조는 쉬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선바위 안쪽으로 성을 쌓은 자리만

눈이 녹아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선바위를 밖으로 내놓고 성을 쌓았다 한다.

그러자 무학이 이제 중이 선비의 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게 되었다 탄식하였다 한다.

 

 

 

선바위를 지나 본격적으로 등로에 올라서니

코뿔소 같고, 멧돼지 한마리 같은 커다란 바위들이 늘어서 있다.

곳곳에 유독 낙서가 많은데 이 또한 무속에 관한 영향이 없진 않으리라 본다.

 

 

 

조망처 바위에 올라서니 왼쪽 서울의 상징같은 남산과 

그 우측 뒤로 청계산도 보인다. 맨 우측은 관악산 삼성산이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는 안산이다.

조그마한 산이지만 조망도 좋고 산책 삼아 걷기에도 좋은 곳이다.

좌측으로는 일제의 만행 서대문형무소가 있던 자리로 지금은 역사관과 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독립문역에서 안산쪽으로 가다보면 만날수 있고, 근처에 왔다면 한번쯤 둘러보아도 좋겠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다. 해골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해골바위라 칭하는 다른 바위도 있다. 

미국 공포영화의 괴한 가면을 닮기도 했다.

이정표엔 이곳을 산수유전망대라 칭한다. 역시나 낙서들이 다른 산에 비해 유독 많다.

 

 

 

산수유전망대 위쪽으로 올라와 바라 본 남산과 아래로는 방금 지나온 인왕사와 선바위다.

남산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길도 보인다.

서울성곽길은 2011년 넓은 의미의 서울 한양도성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서울 한양도성은 한양(서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으로 백악,인왕,남산,낙산을 연결해

조선 태조5년 1396년 축조하였고, 총 길이는 약 18.6km다.

 

 

 

선바위와 인왕사.

 

 

 

새롭게 복원된 성곽길과 좌측 뒤로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북악산)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 블루하우스 청와대도 조그맣게 보인다.

 

 

 

백악산과 청와대.

백악산은 북악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백악산이라 불렸다 한다.

지금 정상석은 백악산이라 되어 있고, 지도나 안내문에는 백악산과 북악산을 혼용해 쓰고 있다.

너머로 바위산은 불암산이다.

앞쪽으로 구멍 뚫린 저 바위는 또 다른 해골바위라 부른다.

 

 

 

우측의 바위는 모자바위라 칭한다. 그 아래쪽을 지날때 보면 나폴레옹 모자 같기도 하고, 

여튼 그 아래 계단을 지나 성곽길로 접어들 것이다.

맨 왼쪽 바위는 얼굴바위다. 꼭 원숭이 얼굴상 같다.

 

 

 

모자바위다.

왼쪽 위로 두개가 겹쳐 있는 있는 어두운 바위는 마치

귀여운 유령들이 시시때때 얼굴이 변하고 있는것처럼 느껴졌다.

 

 

 

관악산과 삼성산 그리고 우측으로 63빌딩이다.

해골바위 위쪽 전망바위에 올라 조망 감상하시는 님도 보인다.

인왕산은 조금만 올라도 바위 조망처가 많아 저 수두룩빽빽한 빌딩숲에 한줄기 빛이 되어준다.

아파트들이 산을 치고 올라올것만 같은데 그나마 이런 산길이 없었다면 

이 도심이 얼마나 답답하고 숨이 막혔을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모자바위 아래쪽을 지나면서 보니 나폴레옹 모자 같기도 하지만

조금은 귀엽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문어 한마리를 보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아래쪽으론 괴물 같은 굵직한 다리도 있었네.

 

 

 

군부대 아래로, 아까는 원숭이 같다던 얼굴바위는 이제 아기 부처 옆모습인듯 

만화속의 악동을 보는듯도 했다. 

 

 

 

인왕산은 무신의 기운 때문인지 곳곳엔 이렇게 움막이나 천막을 치고

무속인들과 그 손님들 기도를 하는 곳들이 발견된다. 

 

 

 

본격적으로 성곽길로 오른다.

새로 복원한 성곽이 너무 티가 나서인지 얼른 세월이 지났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거리는 짧은 편이지만 꽤나 가파른 편이다.

벌써 백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이나 선선해졌지만 한 낮엔 여전히 뙤약볕이니

몇발자국 가지 않아 시원한 그늘을 찾아들게 된다.

 

 

 

뜨거운 볕 아래, 외국인 남녀가 씩씩하게 오른다.

남자는 양산을 쓰고 배낭은 여자가 매었다. 뭐 정해진게 따로 있단가요.

능력 되는 사람이, 체력이 되는 사람이 하면 되지 뭐.

 

 

 

범봉에 오른다. 저 다음 봉우리가 인왕산 정상이다.

예전엔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범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고

산 아래 호랑이굴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왕산 일대엔 호랑이 조각상도 많이 세워져 있다.

그러고보면 우리 조상들은 용감도 했다. 언제 나타날지도 모를 호랑이의 위험에도 

성곽을 만들고 유람을 떠나고 자연을 즐길줄 아는 풍류도 있었으니 말이다.

 

 

 

북악산(백악산)과 우측 아래 청와대다.

백악산과 청와대는 기차바위에서 바라봤을때 가장 여유롭고 편안하게 조망할수가 있다.

기차바위에서 바라보는 북한산과 그 아래 마을도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기차바위는 성곽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꼭 들러보면 좋겠다.

백악산 바로 우측 뒤로 희끗거리는 불암산, 가운데서 우측으로는 천마산이다.

 

 

 

좌 인왕산과 우 백악산(북악산). 가운데 뒤로는 북한산 칼바위와 형제봉 능선이다.

 

 

 

서울의 중심부가 모두 모였다. 

왼쪽 블루하우스와 가운데 광화문과 경복궁, 우측으로는 서울시청 방향이다.

가운데 뒤로는 길다란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라인, 우측 뒤로는 우뚝 솟은 잠실타워와

뒤로는 좌 천마산에서 예봉산 검단산 남한산성으로 이어진다.

 

 

 

당겨 본 광화문과 경복궁.

저 빼곡한 빌딩들속에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음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옛날 문무백관들이 경복궁을 드나들고

경복궁 주변으로 모여들어 친분을 나눴을 모습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따 세종마을이나 진경산수화길에 대해서도 더 논해보자.

 

 

범봉은 데크로 잘 정비되어 있고, 역시나 곳곳엔 무인감시카메라가 돌고 있다.

지금은 인왕산이 자유롭게 오갈수 있지만 예전에는 보초 서는 요원들이 많이 있었고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초소가 있고 마치 등산복인듯한 차림의 요원들이

간혹 한두명 보이긴 하지만 백악산에 비하면 완전 자유로운 산행이 가능해졌다.

아니다. 이번에 가보니 백악산도 예전의 백악산(북악산)은 아니었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 인왕산.

뜨거운 한낮 도심의 산에서 여유를 누리는 강아지 한마리도 귀엽고

강아지와 이 풍경을 누리고자 함께 등반한 앳된 남학생도 귀엽다.

 

 

 

지나온 성곽길은 마치 장난감 레일 같다.

저 바위가 범바위란다.

 

 

 

분을 가득 묻히고 탐스럽게 익어가는 댕댕이덩굴.

 

 

 

삼각점이 있는 인왕산 정상에 오른다.

그전엔 정상석이 따로 없었는데 인왕산임을 알리는 소박한 나무 정상석이 하나 생겼다.

인왕산(338m)은 조선 초기엔 서산이라고 하다가 세종때부터 인왕산(仁王山)이라 불렀다는데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산의 이름으로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으로 산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한다.

일제강점기때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인왕산은 나지막하지만 전형적인 바위산으로  짧은 거리를 오르면서도 볼거리 가득하고 청와대와 인접해 있어 일반 산행과는 색다른 기분을 느낄수 있는 산지다.

조선 초에 도성을 세울때 북악산을 주산, 남산을 안산,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았다니 조선조의 기운이 서린 명산이자 이젠 서울의 역사를 얘기할때 빠질수 없는 산이 되었다.

 

 

 

성곽길 따라 가다가 좌측의 기차바위로 빠질 것이다.

기차바위 능선따라 좌측길로 하산해도 되고,

성곽길로 되돌아와 윤동주문학관으로 하산해 창의문으로 가도 된다.

뒤로는 북한산 비봉능선이 쫙 펼친 한폭의 병풍 같다.

 

 

 

기차바위와 뒤로는 북한산 비봉능선이다.

좌측 뒤부터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승가봉, 나한봉, 문수봉, 그리고 우측으로 가장 뾰족한 보현봉까지.

기차바위는 이쪽에선 그리 보이지 않지만 건너가 보면 바위가 길다란 것이

그런 이름이 붙여질만하다 느껴질 것이다.

 

 

 

뒤돌아본 인왕산 정상의 거대한 바위가 치마를 펼친것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치마바위다.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부인인 왕비 신씨가 역적의 자식이라 하여 궁에서 쫒겨나 

사가에서 지낼적에 매일 치마바위에 치마를 걸어 왕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하기야 바로 아래에 경복궁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나온 인왕산과 우측은 안산이다.

문인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1676~1759)이 1751년에 제작한 「인왕제색도」는 이 곳 인왕산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인왕산 아래에서 태어나 평생을 근처에서 살았던 정선은 

비 온 뒤 개고 있는 인왕산의 모습을 화동 언덕(지금의 북촌 정독도서관)에서 그린 진경산수화다.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날 인왕산에 오르면 뭔지 모를 몽롱함도 느껴질것만 같다.

그런 인왕산을 바라보며 느꼈을 그 당시의 정선이 된듯 괜한 아련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산수화는 주로 중국의 것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아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인왕제색도는 국보 제216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차바위로 내려가는 길에 귀여운 해골 같은 바위도 있고

 

 

 

쫑긋 두 귀처럼 생긴 바위도 있었네.  인왕산과 우측은 봉수대가 있는 안산이다.

많이들 안산과 인왕산을 연계산행하기도 한다.

봄날엔 개나리와 벚꽃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운데서 좌측으로 나지막한 백련산이다. 백련산까지 종주코스로 한바퀴를 돌기도 한다.

좌측 뒤로 인천 계양산, 그 우측으로는 강화의 산군들이다.

 

 

 

기차바위다.

기다란 바위가 이어져 기차바위란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북한산과 평창동이 내려다 보이는 이 길을 내려설때가 가장 짜릿하고 희열이 느껴졌다.

좌측 비봉능선의 시작인 족두리봉부터 맨 우측 뾰족봉은 북한산에서 기가 가장 쎄다는 보현봉이다.

 

 

 

북한산에서 내려다 보는 평창동과 홍은동 부암동 일대도 아름답지만

이곳 기차바위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마치 유럽의 고즈넉한 마을 풍경을 보는듯도 했고

지중해의 집들처럼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가운데 뾰족 솟은 보현봉, 그 바로 좌측으로 문수봉, 승가봉, 비봉, 향로봉으로 이어진다.

보현봉 우측으로는 칼바위능선과 형제봉이다.

 

 

 

좌측 족두리봉부터 맨 우측 형제봉까지.

 

 

 

산행을 하면서도 마스크를 쓰는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젠 크게 불편한지 모르겠다.

조금 답답한 것을 감수하니 불안요소가 줄어들어 차라리 마음 편해졌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인증샷을 날리고 마스크를 벗는 순간의 쾌감은

예전에 느끼던 시원함과 짜릿함의 배가 되는 것이다. 

 

 

 

이따 북악산으로 건너갈때쯤엔 날도 흐려진다 하니 이렇게 파란하늘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가을이 느껴지는 하늘에도 마저 취해보고

종로구 평창동과 부암동 홍은동 방향의 주택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기차바위에서 자릴 뜨지 못하고 원없이 샷을 날려야 했다.

내 머리 위로 문수봉과 보현봉, 좌측으로는 비봉능선, 맨 우측 뒤로는 수락산이다.

 

 

 

우측 백악산(북악산)과 아래로는 창의문과

강남의 빌딩숲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른 부암동과 청운효자동 일대다.

아파트숲과도 비교가 되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북악산 바로 좌측 능선은 팔각정이 있는 북악스카이웨이다.

내가 서울 처음 올라와 아무것도 모를때 지인이 데리고 갔던 곳이 저 북악스카이웨이라

더욱이나 감회가 새로운 곳이다. 그 이후론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저기 가운데 창의문과 그 위로 안내소가 보이는가.

이따가 윤동주문학관으로 내려가 길 건너 창의문으로 가서 백악산(북악산)으로 오를 것이다.

 

 

 

백악산 줄기 아래로 파란 지붕 청와대와 유명한 경복고등학교와 청운중학교

그리고 청운효자동과 삼청동 일대다.

효자동 삼청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역사속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온것만 같다.

격동의 시대를 지나 이젠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2020년을 살고 있다는 실감을 하게 된다. 경복고등학교는 겸재정선집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백악산 아래 자리하고 있지만 정작 백악산에서는 볼수가 없으니 이곳이 명당인 것이다.

윤동주문학관으로 내려가 수성동계곡 가는 산책로에서도 백악산과 청와대를 가까이 조망할수 있다.

 

 

 

내 등 뒤로 청와대와 내 앞쪽으로 광화문과 경복궁, 우측으로는 서울시청 일대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는 이색적인 모습이자 또한 조화를 이뤄 잘 이어져 나가야 할 중요 유산들인 것이다.

이 의미있는 곳들이 말 많고 탈 많은 장소들이 된 것 같아 안타까운 요즘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오늘 또한 역사가 될터이니 큰 소용돌이 없이 순탄하게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기차바위 따라 그냥 내려설까 하다가 그래도 성곽길 따라 돌아보는 것이 의미 있을것 같아

기차바위 갈림길로 되돌아가 창의문 방향으로 간다.

좌측이 기차바위, 우측이 인왕산 정상이다.

 

 

 

다시 기차바위를 오르며 바라본 전경에 다시 또 멈추게 된다.

뜨거운 날이지만 오존이 없으니 하늘까지 쾌청하기 이를데 없다.

서울에서 아름다운 동네를 꼽으라 하여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종로구 일대다.

 

 

 

기차바위에서 성곽길로 되돌아와 청운공원 윤동주문학관으로 내려간다.

 

 

 

양지에서 잘 자라는 딱지꽃도 오랜만에 한장 담아보고,

 

 

 

잎줄기에 날개가 있는 붉나무다.

다른 나뭇잎보다도 붉고 이르게 단풍이 물드는 편이다.

 

 

 

어느새 열매도 색이 진해진 작살나무다.

 

 

 

이것은 아래 윤동주문학관이 있는 공원에서 만난 좀작살나무다.

대부분 공원에 식재하는 것은 좀작살나무가 많다.

 

 

 

은근히 향이 좋은 박주가리.

 

 

 

팥배나무도 곧 진하게 익어가겠다.

 

 

 

청운공원으로 하산해 시비가 세워진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보니

역시나 곳곳엔 마스크 착용 안내가 붙어 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 이 사진 한장에 2020년을 단적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뒤돌아 본 인왕산 기차바위다.

이곳에서 산책로 따라 좌측으로 걸어내려가면 수성동계곡에 이르게 된다.

수성동계곡은 경치가 빼어났던 인왕산 기슭 수성동 계곡 골짜기를 그린

정선의 그림  '수성동'의 배경이 되었다.

수성동계곡에는 안평대군(1418~1453)이 살던 비해당 터와 기린교로 추정되는 다리가 있다.

수성동계곡까지는 멀지 않으니 산책 삼아 다녀와도 괜찮다.

 

일대는 진경산수화길로 한국 고유의 화풍을 만든 겸재 정선이 살았던 터를 돌아보며 

그림에 얽힌 역사를 알아가는 서울시 테마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주요 지점은 윤동주문학관에서 백운동(백운동천), 청송당터, 겸재 정선 생가터, 백세청풍,

자수궁터, 송석원터, 수성동계곡 등이 있다.

 

 

 

 

 

윤동주문학관(좌측 흰 건물)은 거리두기로 문을 닫았고, 길 건너 창의문 초입엔

1.21사태때 청와대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와의 교전 중에

순직한 종로경찰서장이었던 최규식 경무관과 젊은 정종수 경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치열했던 순간이 그려지는것만 같다.

 

 

 

백악산과 그 아래 자하문고개를 오가는 버스가 지나고 있다.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7022번이나 7212번 버스를 타면 된다.

이 장면만을 본다면 이 곳이 서울인지 싶을만큼 하나로 맞춰진 지붕들이 이채롭기까지 하다.

이 일대 마을들만이 가진 큰 매력인 것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중간에 북촌이 있다면,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는 세종마을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준수방, 인달방, 순화방, 웃대, 우대, 상대마을이라 불렀는데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장소를 포함한 동네라는데서 유래가 되었고 흔히 서촌이라 불려오다가

2011년 세종대왕 탄신일 614년을 맞아 세종마을이라 명명하게 된다.

 

 

세종마을엔 세종대왕의 생가터와 백사 이항복의 집터가 있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탄생한 마을이기도 하다.

근현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이상, 박노수 등이 거주하며 문화예술의 혼이 이어졌고

현재 600여채의 한옥과 골목, 전통시장, 소규모의 갤러리, 공방 등이 어우러져 문화와 삶이 깃든 마을이다.

그 출발점이 여기 윤동주문학관이 되는 것이다.

 

 

 

윤동주문학관을 뒤로 하고 창의문으로 간다.

인왕산은 여러차례 와봤지만 북악산은 8년만인듯 하다.

혹시나 싶어 아침에 전화를 해서 확인하고 출발한 길이었다.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으로

사소문 중에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 17)에 다시 세운 것으로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문루에 걸어 놓았다.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의 승경지인 자하동과 비슷하다 하여 자하문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려왔다.

현판은 뒤쪽으로 가야 볼수 있다.

 

 

 

창의문 위쪽으로 창의문안내소가 있다. 마스크는 필수다.

예전엔 무조건 신분증을 제출해야 패찰을 받을수 있었는데

이젠 아무런 절차 없이 패찰을 받아 지하철처럼 통과하게 되어 있다.

물론 곳곳 CCTV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또한 가장 안전한 산책로가 될수도 있다.

 

 

 

위쪽으로 올라가며 본 창의문 문루다.

거기 추녀마루의 잡상씨들, 너무 수다만 떨지 말고 사방팔방 돌아보며 성문 잘 지키시라요~

전쟁, 불화, 질병 모두 그대들 탓을 할수도 있으니 오늘도 이상 무 하시라요.

 

 

 

창의문 안내소 앞에는 한양도성 지도와 안내문 등이 배치되어 있다.

예전과는 분위기부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아침 7시부터라니 개방시간도 엄청 빨라졌다.

문화해설사분도 친절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군인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 두명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예전엔 잘못한게 없어도 괜히 주눅이 들고, 중압감이 느껴졌었는데 정말 많이 변했다.

 

 

 

패찰을 받아 목에 걸고 창의문안내소를 나오니 지나온 기차바위가 보인다.

방향이 달라지고 날도 꾸물거리니 아까처럼 파란하늘은 보기 힘들어졌다.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순성길은 서울의 내사산(백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잇고

사대문(숭례문,흥인지문,숙정문,돈의문 터)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유산을 지나는

역사와 문화 체험의 길로 18.6km에 이른다.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 10호)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 1396년에 백악산(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내사산(인왕산)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차례 보수를 하였고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에 가장 오래도록(1396~1910. 514년)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라 한다.

 

 

북악산 일대의 한양도성은 2006년 4월에 1단계로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1.1km)구간을 개방하였고,

2007년 4월에 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4.3km)의 나머지 백악구간을 전면 개방하게 된다.

건너편 좌측 세 봉우리는 지나온 범봉과 인왕산 정상과 기차바위다.

 

 

 

가운데 뒷줄 평평하게 생긴 능선이 백련산이다. 왼쪽 기차바위능선 맨 뒤로 인천 계양산이다.

소나무숲이 좋아 저 기차바위능선을 따라 홍지문(상명대)이나 부암동, 개미마을쪽으로 하산해도 괜찮다.

우측 너럭바위 아래로 흥선대원군의 별서인 석파정(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26호)도 보인다.

서울미술관 바로 뒤편 마당이 있는 곳이다.

 

 

 

분명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는 것이지만 백악산 오름길은 어쩔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어디에 시선을 돌려도 곳곳 감시카메라가 따라 붙으니 사진 속에 CCTV 없는 곳

찾는 것이 더 빠를 것만 같다.

그래도 예전처럼 매의 눈으로 지키고 서 있던 초병들이 없으니 한결 자유로워졌다.

 

 

 

점점 경사가 심해진다.

덥고 습하고 마스크까지 하다보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잠시 계단에 앉아 이고들빼기를 담는다는 핑계 삼아 쉬어간다.

예전엔 이런 데크 대신 쌩 돌계단이었으니 짧은 거리지만 백악산 한번 오르고 나면

무릎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것만 같았다. 이만하면 길도 편해졌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비봉능선 아래로는

부암동과 홍은동, 평창동 일대다. 

산벚꽃이 필 무렵이면 주택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곳이다.

좌측 맨 뒤로는 강화의 산군들이 어렴풋 잡힌다.

 

 

 

백악산 정상 가기전의 백악쉼터다.

얼핏 일반 등산객처럼 보이지만 이곳을 지키는 군요원이다.

오늘은 곳곳에 배치된 총 5명을 본 것이 전부였지만 2012년에 왔을때만 해도

무전기 소리며 짧은 거리 배치한 요원들에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사진 찍는 것에 많이들 예민해했고 심지어 하산하던 도중에 카메라 검사를 당하기도 했다.

그때 지방에서 올라와 동행했던 조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지금도 중요 시설 방향으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방향을 제외하고는 마음 편히 사진 찍기도 가능해졌다.

 

 

백악마루인 백악산(342m) 정상이다.

산정이라는 느낌보다는 특수지역이라 그런지 일반 산행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드는 산, 일명 청와대 뒷산이다.

백악산(북악산)은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 동쪽의 낙산과 더불어 서울의 사산 중 하나로 북쭉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남산에 대칭하여 칭했으며 조선시대까지 백악산, 면약산, 공극산, 북악산 등으로 불렸다 한다.

정상석 옆으로는 아까와 같은 차림의 요원이 서 있다. 

그래도 사람 없는 한산한 날이라 그들도 덜 힘든 날이겠다 싶다. 

 

 

 

청운대로 진행하다 만나게 되는 1.21사태 소나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 김신조 등 31명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실버타운(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일대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현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으니

이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한양도성의 각자성석이다.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을 각자성석이라 한다.

여기 있는 각자성석은 순조 4년(1804년) 10월 오재민이 공사를 이끌었고

공사의 감독은 이동한이 담당했으며 전문 석수 용성휘가 참여하여 성벽을 보수했다는 내용이다.

이 모든게 역사가 되어 이 길을 걸으며 만날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감싸고 있는 청운대다.

조망도 좋으니 백악산 정상보다는 청운대에서 쉬어가면 되겠다.

뒤로는 좌 불암산과 가운데 천마산이다. 우측 뒤로는 두물머리가 있는 팔당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젠 진행 방향으로 북악스카이웨이와 팔각정이 보인다.

높이 올라온 곡장도 보이는데 지금 곳곳엔 군시설 공사중이라 오르지 못하게 해놓은 상태다.

곡장이란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를 둥글게 돌출시켜 쌓은 성을 말한다.

곡장에 올라서 보면 지나온 백악산과 청운대를 모두 볼 수 있는 아주 시원스런 곳이다.

 

 

 

북한산 향로봉과 비봉, 승가봉, 우측으로 솟은 보현봉을 마주하고 

청운대를 내려가 저기 성곽 옆길로 걷게 된다.

아주 간간히 여성산객 한 두명씩 지나고 있다.

어쩌면 평일, 여성 혼자 걷기에는 가장 안전한 길이 될수도 있다.

 

 

 

성벽을 따라 걷는다.

마치 어느 성주의 대저택 산책로를 걷는 기분마저 든다.

 

 

 

설상화(혀꽃)가 보통 1~3개인 도깨비바늘이다.

곧 사람이나 동물 몸에 잘 들러붙는 바늘 모양으로 익어갈 것이다.

그것이 씨앗을 널리 퍼트리는 이 아이들만의 생존방식인 것이다.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이다. 감회가 새로운 곳이다.

20년 전 북악스카이웨이에 올랐을때만 해도 바로 옆에 북악산(백악산)이 있다는 생각조차

해보질 못했으니 세상을 보는 시선도 협소했고, 크게 세상사에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야경이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다.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사소한 것에도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니 삶에 찌들지 않았던지,

걱정거리가 크게 없었던지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마인드들이 풋풋하긴 했다.

 

나이가 먹을수록 매사가 무표정이다. 크게 즐거울 일도, 크게 웃을 일도 점점 사라져 간다.

아니, 똑같은 상황에도 예전처럼 웃음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젠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사람 만나는것도, 어디 나다니는것도 귀찮아졌다.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인지 너무 매말라진 것인지 조금은 슬픈 일이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던가. 아직은 특별한 목적 하나~산에 가는 일이 남았으니 말이다.

 

 

 

백악산 하면 곳곳의 감시망 그리고 성곽으로 둘러쌓인 것만을 떠올릴수 있지만

알고보면 은근 조망도 좋고 역사속의 서울을 짚어볼수 있는 현장학습이 되어주기도 한다.

요즘 집 앞 작은 공원에는 어두운 새벽부터 밤까지 사람들이 많아 늘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오늘처럼 한산한 백악산이라면 더할나위 없는 도심속 산책이 된다.

 

 

 

그리고 이 길의 특징 중 하나는 소나무가 아주 좋다는 것이다.

백악산을 빠르게 질주하시는 분들은 한시간에 끝내기도 하지만

보통은 2시간을 잡으면 넉넉히 돌아볼수 있다. 나는 무릎 상하지 않게끔 더 느긋하게 걸었다.

인왕산에서 백악산까지는 여유있게 4시간~4시간 30분이면 될듯 하다.

 

 

 

촛대바위 역시 공사중 금줄이 쳐져 있고

 

 

 

숙정문으로 내려서면서 성북동 일대에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앞에 저 저택이다. 

보자마자 눈치채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바로 그 유명한 삼청각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요정 정치의 산실이 된 곳으로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한정식집과 문화, 예술, 다양한 행사 등 전통문화복합센터로 운영중이라 한다.

삼청각을 마주하니 라디오에서 드라마에서 봤던 그 시대 그 인물들이 튀어나올것만 같다.

좌측 뒤 아파트 단지들은 남양주 시가지다. 그 뒤가 천마산이다.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인 숙정문으로 내려온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이곳에서 숙정문안내소로 하산할수도 있고, 말바위안내소로 내려서도 된다.

말바위안내소 방향으로 간다.

 

 

 

삼청각과 위로는 북악스카이웨이, 그리고 왼쪽 볼록 솟은 바위 봉우리는 북한산 보현봉이겠다.

 

 

 

그렇게 말바위안내소에서 패찰을 반납하고 나면 바로 산길이 끝날것 같지만

조금 더 내려가야 한다.

 

 

 

길상사와 성북동 일대다.

성북동 하면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떠오르고 부자 동네라는 수식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원래는 산동네였던 성북동에 어느날부터 개발이 시작되었고, 산업화에 따른 폐해를

비유와 상징을 통해 비판적으로 그려낸 시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나 되돌아보면 오히려 다른 지역에 비해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지 않았으니 이런 동네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창동이나 효자동 일대도 그러하듯 언덕 높은 주택들만의 프라이드가 분명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좌 수락산,우 불암산이다.

주택들 사이로 가운데쯤 길상사도 보인다. 뒤로 보이는 숲은 정릉이다.

길상사는 번잡할것 같은 도심속의 사찰이지만 은근 차분한 느낌이 들어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명소다.

서울에서 꽃무릇을 볼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길상사다. 가을에 한번쯤 가봐도 좋을 사찰이다.

길상사에서 삼청각 거쳐 북악산~부암동~백사실계곡으로 걷는 코스도 좋고

일대는 다양한 산책길을 즐겨볼수 있다.

 

 

 

지나온 인왕산과 백악산이다.

 

 

 

맨 성곽길만 보다가 진짜 바위를 보니 새롭고 또한 반갑고

 

 

 

말바위다.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 하여 말(馬)바위라 불리기도 하고, 백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末)바위라는 설도 있단다.

 

 

 

말바위 등산로로 내려와 삼청공원으로 내려간다. 와룡공원으로도 갈 수 있다.

오늘은 안국역까지 걸어내려가려 한다. 일대는 온통 역사속 현장이니

그 시절 건물들과 인물들을 떠올려 보는것도 큰 매력이다.

 

 

 

삼청공원을 나오면 감사원이 있고, 감사원 건물 옆으로 취운정 터가 있다.

취운정은 1870년대 중반, 민태호(1834~1884)가 지은 정자로

유길준(1856~1914)이 이곳에 유폐되어 지내며 '서유견문'을 집필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회합장소로도 이용되었다 한다.

 

이 곳에서 좌측으로는 통일부와 성균관대학교, 그리고 더 진행하면 와룡공원이 나온다. 

삼청공원은 우측 아래 지나온 길, 저 앞 차가 내려가는 곳에 안국역과 북촌 한옥마을과 헌법재판소가 있다.

일대엔 대사관들이 자리하고 창덕궁이 바로 근처에 있다. 

 

 

 

버스를 타도 되지만 요즘 같은떄는 특히나 바람 쐬며 걷는게 더 마음 편하다.

괜히 주눅 드는 담장 높은 건물들이 채워가지만 안쪽으로는 유명한 북촌 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공방들도 자리하고, 돌사진이나 웨딩촬영 장소로 인기인 집들도 있다. 

 

 

 

TV에서도 몇차례 본 기억이 있는 잇방이다. 전통가옥에 첨단기술을 융합한 치과다.

1926년 6월 10일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1874~1926년)의 인산(왕실의 장례)일에 우연히 찍힌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 간판이 이곳이었다. 1907년 순종원년 종로에서 잇방을 개설한

최승용이라는 사람이 '이히박는집'이라는 간판을 사용하였다 한다.

 

 

 

한옥마을로 올라서니 무슨 촬영이 있는 것인지 골목을 가로막고 있다. 

저 안쪽으로도 계속 사람들이 많으니 요즘 같은 때에도 이렇게 모여 촬영이 가능한 것인지

어쨌든 길이 막혀버렸으니 되돌아 내려와야 했다. 어느 중년 여배우의 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럴때 여기 주민들은 오도가도 못하면 어찌하는지 모르겠다.

 

 

 

안국역으로 내려가는 길, 헌법재판소 앞을 지난다.

헌법재판소 별관 증축을 위해 땅을 파자 18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지은

건물 6동의 흔적인 유구가 발견되었다. 이 중 가장 오래 된 건물이 능성위궁이다.

능성위궁은 영조가 시집 가는 화길옹주를 위해 지어준 집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조가 환갑때 낳은 막내딸 화길옹주의 혼사를 위해 삼간택으로 직접 사윗감을 고른 후

능성위 구민화와 결혼시키는데 1남 2녀를 낳았지만 화길옹주는 19세 어린 나이에 사망한다.

 

영조가 이들 부부에게 지어준 또 다른 궁집이 경기도 남양주에 남아 있는데 그 궁집을 통해

영조가 화길옹주에 대한 애정이 어떠하였는지 잘 보여준다.

그 후 이곳에는 구한말 개화파인 민영익의 집, 고종때 외교통상 업무를 관장했던 외아문,

경기여고의 전신인 한성고등여학교, 창덕여고의 부속건물 등이 들어섰다.

옹주의 집에서 정치인의 집, 관청, 학교 등으로 번화하면서 200여 년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땅이 되었다.

 

이 이외에도 안국역으로 걸어내려가는 길은 모든게 과거의 발자취다.

곳곳 북촌에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행여 너무 현대식 건물들로 채워질까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이렇게 멋진 산이 같은 서울땅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살았다. 

통제와 감시, 신분증 지참이라는 막연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인왕산은 다양한 바위들과 암봉, 그리고 기차바위에서 바라 본 주택들의 단아한 멋이 일품이고,

이제 통제나 감시보다는 문화유산에 촛점을 맞춘 북악산 성곽길은

현재가 있기까지를 잘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산길이기도 하다.

서울의 사산을 옆에 끼고 한양도성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는 알찬 걸음이 될 것이다.

 

~방문 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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