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 성씨칼럼2

정복규 2008. 1. 26. 18:10

제목: 정복규의 성씨칼럼

전주이씨 완원대군파

 완원대군(完原大君) 이자선(李子宣)은 1331년(고려 충혜왕1)에 이춘(李椿 )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그는 고려조에서 벼슬하여 완산백에 봉해졌으며 1356년(공민왕4)에 사망했다. 묘소는 경기도 삭녕군 마장면 남일원리 간촌에 있다. 부인은 개성왕씨 봉양대군 왕부 의 딸이며 대군 묘에 합장했다. 태조가 등극 후 대광보국에 추증되고, 1872년(고종 9) 대군이 되었다. 제사는 차남인 개령군파에서 올리고 있다.

 이자선은 개흥군 이원, 개령군 이지, 개원군 이매 등 3남을 두었다. 개흥군은 동양군 이춘(春), 개령군은 동선군 이상흥과 동계군 이상항, 개원군은 동하군 이억천을 두었다.

 차남인 개령군은 1348년(고려 충목왕 3)에 태어나 1428년(세종 10)에 별세했다. 8세에 부모를 잃어 외가인 개성왕씨 댁에 가서 있던 중 이성계의 집으로 데려왔다. 성장한 이 후 이성계 휘하에서 장수로서 위화도 회군에 참가했다. 태조 등극 후에는 개국원종공신에 봉해지고 영의정과 영돈녕에 올랐다. 시호는 양안(良安)이다. 묘소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와초리에 있다.

 3남 개원군은 1419년(세종 1)에 충청도 우도수군도만호를 지냈으며, 묘소는 함경남도 함흥 동면 마전동에 있다. 개령군의 장남 동선군은 1422년(세종 4) 경성절제사, 1431년(세종 13) 의주목사, 1432년 중추원부사와 경창부윤을 지냈다. 개령군의 차남 동계군은 1441년(세종 23)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첨지돈녕부사를 지냈다.

 완원대군파는 원래 이북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그 중 일부 후손들이  이남으로 남하하여 서울, 경기 일원에 터전을 잡고 생활해 왔다. 그러던 중  1980년에 정식으로 파종회를 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성씨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