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항공전사 유럽편의 참고문헌/스페인내전의 항공전

불량감자 2011. 5. 14. 23:02

스페인 내전의 항공전을 시작하며...

 
 
[사진]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마드리드를 강타한 국민당의 폭격으로 사망한 가족의 시신 앞에서 절규하는 여인....
 
제 2 차 세계대전 직전과 직후에 지구의 정반대 두 곳에서 각기 다른 커다란 내전이 발발했었다. 이차대전 직후인 1950년에는 아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또 이차대전 직전인 1936년에는 유럽의 서쪽 끝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페인 내전이.....
 
이 두 전쟁은 공히 햇수로 4년간 지속되었고, 또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의 열강들이 자국의 유리함을 쫓아, 발벗고 직접 개입하는 축소판 세계대전의 양상을 보였었다. 그리고 그 배경 역시 하나 같이, 이데올로기의 대결이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두 전쟁은 공히 새로운 신무기, 그중에서도 최첨단 항공무기의 시험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1950 년대는 프롭기에서 제트 항공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한국전쟁은 자연히 제트 전투기의 실전 데뷰 무대화 했다. 또 복엽기에서 단엽기 시대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인 1930 년대 중반의 스페인내전은 열강들의 단엽 저익기의 시험장으로 전락했었다.
 
스페인 내전은 넓게 보면, 제 2차 세계대전의 첫 시발이라 볼 수 있다. 왜냐면 분쟁의 발생 지역이 스페인일 뿐이지,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군사적인 지원에 나섰으며, 내전이 끝나고 단 몇달 후, 스페인 내전에서 보여준 대결 구도대로 똑같이 패가 나뉘어 2차 대전이라는 결전을 치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신생 루프트바페는 스페인 항공전을 통해 지금껏 구상해온 항공 전술 이론들을 실전에 직접 적용해 볼 수 있었고, 여기서 검증된 이론들은 이차대전 전기간을 걸쳐 독일 공군을 지배한 항공 교리로 발전해 나갔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 1936년부터 1939년 초까지 스페인을 뒤흔든 내전의 현장으로 달려가 보자.
 
 
 
 
 
스페인에 떨어진 전쟁의 불씨

 
스페인은 유럽대륙의 서쪽 끝에 해당하는 이베리아 반도의 동쪽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로 서쪽에는 포르투칼을 접경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좁은 지브로올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에 거의 맞닿아 있으며, 북쪽으로는 프랑스와 국경을 나누고 있다. 이곳은 지리상 아프리카의 세력과 유럽의 세력이 서로간에 대륙을 넘는 기점이 되어 왔고, 역사적으로 봐도 로마에 대한 한니발의 반격의 첫 시발 상륙지점이었으며, 이슬람 문명이 유럽에 진출한 첫 지역이기도 해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이 융합한 독특한 문화가 싹튼 곳이기도 하다.
 
대모험의 시대와 대양의 시대에는 스페인 왕국은 최고의 번영를 누렸고, 네덜란드 지역과 이탈리아 근해를 완벽히 장악하기도 했고, 식민지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해군 제국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참패를 당한 이후 스페인은 추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기나긴 왕정이 끝을 본 후, 공화국이 들어 섰지만, 국내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기 시작했다.
 
 
[사진] 스페인 국민당의 우두머리 프란시스 프랑코 장군.... 스페인 내전에서 끝내 승리한 후, 수 십 년에 걸친 장기 집권체제의 장본인
 
1936년, 스페인에서는 선거를 통해 새로운 좌파 계열의 공화당(Reupblics)이 집권하게 되었다. 당시 스페인 우파의 우두머리였던 프란시스 프랑코 (Francis Franco, 1892 ∼1975) 장군은 반란을 계획하다가, 좌파세력에 좌천당해, 카나리아 섬에 위치해 있다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로 옮겨가, 이곳에서 수비대를 이끌고 있었는데, 그수가 4만7천에 달했다. 그는 스페인 본토에 진격해 정권탈취의 꿈을 꾸고 있었다.
 
한편 스페인 본국에서도 지방 이곳 저곳에서, 공화당에 반기를 들고 국민당을 지지하는 군부 일부가 일어났는데, 스페인 북부에 그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공화당 정부는 이들을 막기 위해 전력을 북부에 치중해,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이틈을 타, 프랑코 장군은 모로코에서 스페인 남부로 진출하려 했는데, 문제는 무엇보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해군 전력 상 공화당이 우세였기 때문에, 5만에 육박하는 대병력을 상륙시키기 위해서는 항공기가 필요했으며, 프랑코 장군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수송기 원조를 부탁하게 된다.
 
 

공화당

국민당

좌파 (집권세력)

소련, 영국, 프랑스가 원조

우파 (프랑코 장군 중심의 반란군)

독일, 이탈리아가 원조

 
[사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독일 콘돌 군단의 초대 군단장 휴고 슈페를 장군의 모습...
 
이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스페인에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북아프리카 진출의 걸림돌이 되어온, 영국과 프랑스 지중해 함대의 온상 지브롤터의 견제가 가능해지고,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의 입지를 일신할 수 있게 된다.
 
독일의 경우는 향후 프랑스를 양면에서 위협할수 있을 뿐 아니라, 약체 독일 해군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된다. 또 엄밀히 말해 스페인 내전 개전 전만해도 독일과 이탈리아가 완벽한 동맹관계가 아니어서,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스페인 내전에 대해 독일 보다도 훨씬 적극적인 이탈리아가 지지하는 국민당을 독일이 옹호하며 군사적 지원을 한다면,  이탈리아가 서방과 적대관계를 더욱 뚜렷히 하게 될 것이고, 자연히 독일과 혈맹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탈리아의 세력을 서부 유럽과 아프리카로 분산시켜, 중유럽에서 독일의 입지를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즉 독일과 이탈리아는 좌파인 공화당 정권을 밀어내고, 프랑코 세력을 권좌에 앉히기만 하면, 유럽 석권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얼마후 독일과 이탈리아는 추축동맹을 맺게 되고 이를 과시라도 하듯, 한마음 한뜻이 되어 발벗고 프랑코 장군에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먼저, 프랑코 장군 휘하의 병력을 스페인 본토로 수송키 위한 수송기들을 대거 파견했는데, 독일의 Ju 52 삼발 엔진 수송기가 그 선두에 섰다.  
 
한편 영국프랑스는 독일과 이탈리아를 견제하고 있었는데, 일차대전 종전을 맞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이들과 대립하는 것 자체를 꺼려했고, 비록 스페인의 프랑코 세력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지만, 불간섭 입장을 택함으로써, 한발 물러섰다. 이렇게 되자 궁지에 몰린 스페인 공화당 정권은 소련에게 원조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소련 역시, 좌파 계열인 공화당을 지지했고, 대거 지원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이제 스페인 내전의 양상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소련과 국민당을 지지하는 독일과 이탈리아간의 싸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까지 개발된 자국의 항공기를 투입시켜, 실전을 통한 첫 데뷰의 장으로 삼기에 이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스페인 내전 당시 극우 나치와 파씨스트의 후광을 입어 승승장구하던 스페인 국민당에 맞서기 위해 공화당을 지지하며 스페인으로 달려온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명 국제 연대라 불리던 민간 자원병들이었는데, 조지 오웰,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대문장가들도 이들 중 하나였다. 훗날 프랑스의 문화공보부에 해당하는 장관직까지 오르게 되는 앙드레 말로의 경우, 자신의 모국 프랑스에서 항공기 원조를 요청했고, 구식이지만 몇대의 폭격기를 지원받아, 스페인 공화군 공군에서 직접 폭격기 조종을 하기도 했다.
 
또 헤밍웨이는 자원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몇몇 소설을 성공시켰는데, 그중 영화로도 제작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까?..... 주연 배우 게리쿠퍼가 분한 역, 역시 국제 연대 출신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공화군 레지스탕스를 돕는 미국 교수 출신의 조던이었다. 또 상대역으로 나오는 잉글릿드 버그만은 공화군 레지스탕스 일원인 스페인 시골 처녀역이었다. 마지막 교량 폭파 임무를 완수하고, 동료들을 모두 철수시키며 단기로 기관총의 불을 뿜으며 전사하는 조던의 모습도 명장면이었지만, 뭐니뭐니 해도 잉글릿드 버그만과 첫 키쓰신에서 순진한 버그만이 했던 대사.... "코가 크고, 얼굴 중간에 있는데, 키쓰는 어떻게 하나요? "하고 묻던 장면은 영화팬들 사이에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콘돌 군단 (Legion Condor) 과 약진하는 붉은 날개   - 마드리드 공방전 -

 
[그림] 아프리카에서 스페인 남부 세르빌로 대규모 병력을 옮기려면?.... 바다는 적에게 가로 막혀있다면?... 당연히 공중수송!!.. 그러나 1930년대만 해도 이런 대규모 항공 수송은 꿈도 못꾸었고 상상조차 못했었다. 그러나 콘돌군단은 해냈다. (붉은 지역은 국민당 세력권... 파란색 지역은 공화당 세력권)
 
 
1936년, 독일은 휴고 슈페를(Hugo Sperrle) 장군을 군단장으로 임명하면서, 120 여대에 달하는 항공기와 5000 명에 이르는 병력으로 구성된 일명 "콘돌 군단"을 스페인에 파병했다. 지원자로 구성된 이 군단은 이차대전 독일공군의 맹활약을 암시하는 강군이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독일의 수송기 Ju-52기  20 대와 이탈리아의 SM-81(Savoia-Marchetti)기 11 대로, 이들은 하루에 3 - 4회씩 지브롤터 해협을 왕복하며, 14000 명의 병력과 500 톤의 군수품을 스페인 본토 남부의 세르빌(Serville)로 옮겨 놓았다. 이 같이 대규모의 병력이 항공기를 이용해 해협을 건너, 이송된 것은 최초였고, 일대 사건이라 말할 수 있겠다. 1920년대와 30년대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소규모로 수송 비행대가 운용되기는 했지만, 이 같이 거대한 항공 수송 작전은 인류 역사상 최초였던 것이다. 1937년 미국 육군 항공단의 아놀드 장군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스페인에서 독일공군이 보여 준 수송력은 금세기 군항공사에서 최대의 사건이었다."
 
 
 
 
 
 
 
   
   
File:Fiat CR32.png
 
  
(첫 번째 그림) 독일의 He 51기... 초기 스페인내전에서 전투기로 쓰이다가 소련의 I-16기에 한방을 크게 맞고는 지상공격기로 탈바꿈했다. 이후 Bf 109가 나타나 I-16기들을 혼내주기를 기다리며....
 
(두 번째 그림) 독일의 Ju 52 삼발 수송기.. 세르빌의 대규모 수송의 성공의 요체... 바로 아래 사진이 바로 Ju 52의 실제 모습
 
(세 번째 사진) 이탈리아의 Fiat CR 32 복엽 전투기의 이륙준비 모습....
 
 
 
 
File:Bundesarchiv Bild 101I-026-0122-32A, Griechenland, Kreta, Ju 52.jpg
[사진] 콘돌군단의 Ju 52 수송기.... 성공적인 수송작전 후에는 폭격기로도 사용되었다.
 
본토 공군 수송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가던 1936년 8월, 드디어 프랑코의 반란군은 공화당에대한 전면 공격에 나섰다. 당시 전력을 북쪽에 치중하고 있던 공화당 정부는 항공기의 수송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며, 항공기의 가능성을 예견치 못한 것이었고,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수송임무를 훌륭히 성공시킨 Ju-52와 SM-81기들은 이후, 폭격기 임무까지 수행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독일 복엽 전투기 He-51 24기와 경폭격기 He 46 29기가 스페인에 도착하면서, 이들은 이탈리아 전투기 Fiat CR. 32와 함께 실전에 투입되어, 폭격기 호위에 들어가, 공화군의 낡은 항공기 뉴포트 (Nieuport) , 브리지트 (Breguet)를 상대로 뛰어난 전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격 목표 제 1순위는 공화당 지상군의 밀집 대형이었고, 콘돌군단의 전술 폭격과 전투기 기총 소사는 공화군을 궁지로 쳐넣기 충분했다. 당시 항공기라는 것을 처음 보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던 시절이었으니, 하늘로 날아와 그들 머리 위에 폭탄과 총탄을 쏟아 붓는 콘돌 군단의 항공기들은 공화군 지상군에게는 악마와 공포의 화신 그대로였던 것이다.
 
콘돌 군단과 이탈리아 공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프랑코 장군의 진격은 계속되어, 그 휘하의 국민당 세력은 북진을 계속해 단 한 달만에 스페인 전국토의 절반을 점령하는 대성과를 거두게 된다. 국민당군은 드디어 수도 마드리드 앞까지 당도했고, 공화군은 마드리드에 주력을 배치해 일전을 각오하며 더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게 된다.
 
 
File:Polikarpov I-15bis.jpg
 
 
File:I-16 Moscow.jpg
 
  
 
(상) 소련의 I-15 복엽 전투기
 
(중)소련의 I-16 단엽 저익 전투기.
Bf 109가 등장하기 전까지 스페인 상공의 왕자로 군림하며 전형적인 에너지 파이팅을 보여주었던 기종
 
(하) 스페인의 I-16기.... 전투기 앞에서 면도를 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소련 조종사들... 이때까지가 I-16의 최고 전성기였다.
 
 
그러나 콘돌 군단의 무패 행진은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걸림돌을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 즉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공화군과 국민당 주력 간의 접전이 치열해 지던 1936년 10월, 드디어 최신예 소련기들이 스페인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불간섭 입장을 천명했던 프랑스도 소수의 Potez 542 폭격기와 Dewotine 372 전투기를 스페인 공화당에 지원하기 시작했고, 소련도 300 명의 조종사와 더불어 I-15 복엽 전투기와 I-16 단엽 전투기, 그리고 투폴레프 SB-2 폭격기를 대거 공화군에게 보내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련은 300 여대의 수송차량, 60 여대의 T-26 전차 등 지상군 지원까지 아끼지 않음으로써, 마드리드를 사이에 둔 공방전은 대규모 전투 양상으로 바뀌었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전세로 흐르고 있었다.
 
전선 상공에 소련의 항공기들이 나타나자,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들이 미국 항공기의 소련산 라이센스 기종으로 여겼고, I-15는 커티스(Curtiss), I-16은 보잉(Boeing), SB-2 폭격기는 마틴(Martin)이란 지칭해 볼렀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물론 서방 항공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기는 하나 소련 자체 모델이었으며, 스페인 하늘에서 명성을 얻어 나가게 된다.  
 
당시만해도 복엽기가 주력을 이루던 시절이었으니, 혁신적인 저익 단엽기이며 수납형 랜딩기어를 장착함으로써 빠른 속도를 갖춘 I-16의 등장은 이탈리아 공군과 콘돌 군단에게는 충격이었다. 또 I-15기는 I-16에 한단계 아래의 전투기였지만, 복엽기 특유의 기동성과 내구성을 갖춘 뛰어난 전투기였다. 그럼 여기서 잠시 I-15기에 대한 소련 조종사의 평가를 들어보자. 에브제니 스테파노프(Evgeny Nikolayevitch Stepanov)는 스페인 내전에 I-15 복엽 전투기 조종사로 참가한 소련의 에이스로 스페인에서 2기의 Bf 109와 4기의 Fiat CR 32기를 비롯해 총 10기 격추를 달성했다. " I-15는 매우 뛰어난 전투기였다. 7.62 mm 기관총 4정을 장착했고, 360 도 선회를 해내는데 불과 8 - 9초면 가능해, 스페인에서 활약한 모든 전투기를 비교해봐도 수평기동면에서 단연 최고였다. 이착륙 거리도 짧았을 뿐 아니라, I-16에 비해 조종하기도 쉬웠다. 상승한계 고도가 9000 미터 정도고, 수직기동에서 I-16에 떨어지는 것을 제외한다면, 굉장히 안정적인 전투기였다. "
 
 
[그림] 스페인 상공의 Fiat CR 32기 편대를 향해 날아 꽂히는 붐 앤 줌 공격을 시도하는 소련의 I-16기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차대전 이후 붐앤줌을 첫 시도한 파일롯들은 소련 조종사들이었다.
 
마드리드 상공에서 두 세력이 조우하면서, 소련기들의 혁신적인 성능은 이탈리아와 독일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두 추축국 공군이 받아들인 해석은 달랐고, 이것이 이차대전 항공전력의 차이를 낳는 시발이기도 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주력 전투기 피아트 CR. 32 복엽기는 속도면에서는 I-16에 비해 떨어졌지만, 뛰어난 내구성과 눈부신 선회력으로 소련 전투기들과 대등한 공중전이 가능했고,  I-16 과도 한판대결을 벌일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Fiat CR.32의 선회력과 강력한 화력, 좋은 급강하 능력을 바탕으로 요격기 임무를 지속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이탈리아가 기동 중시의 복엽기에 집착케 만들었고, 기존의 전투기의 성능에 안주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20세기초 슈나이더컵 항공기 대회를 휩쓸 정도로 항공 선진국이던 이탈리아가 이차대전 다른 유럽강국에 비해 공군력의 열세를 면치 못하는 첫 시발점이 바로 스페인 항공전에서의 성과를 스스로 과대평가한 이후였다.
 
반면 독일의 경우는 정반대의 전화위복을 격게된다. 당시 콘돌 군단의 주력 전투기인 He-51 복엽기는 성능면에서 소련의 I-16 단엽기에 열세를 면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의 고속 폭격기 SB-2기를 따라 잡기에도 벅찰 정도였다. 독일은 재빠르게 He-51기를 지상공격기로 전환하였고, 당분간 적기의 요격은 이탈리아 공군에게 일임하는 수세로 돌아섰던 것이다. 독일은 단엽기의 시대의 도래를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고,  신예 Bf 109 개발에 더 주력케 된 것이다. 물론 당시 Bf 109가 이미 양산단계에 있었지만, 스페인 내전은 좀 더 정제된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그림] 국민당의 폭격기들을 향해 고공 급강하 공격에 나서는 소련의 I-16기들의 모습... 복엽기가 가지지 못하던 내구성과 속도로 소련 조종사들은 초기 스페인 상공에서 연속적인 승리를 쟁취해 냈다.
 
 소련은 스페인의 첫 조우에서 이탈리아와 콘돌군단의 공세를 저지하고 제공권을 획득했다. 그럼 이 당시 소련공군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나?  그 열쇠는 매우 재밌는 사실 하나를 내포하고 있다.
 
즉 우리들은 흔히 붐 앤 줌(boom & zoom; 고도차를 이용해 고고도에서 저고도의 적기에 일시에 급강하해, 공격직후 재 상승하면서 에너지 우위의 전투를 해나가는 공중전 전술) 전법이 이차대전 독일 공군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훗날 연합공군 사이에서 "태양에 숨어 있는 독일기를 조심하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로 붐 앤 줌이 독일 전투 조종사들의 주 공격법으로 자리 잡게 되지만, 사실 이 전법은 일차대전 당시부터 존재했던 공격 개념이었다. 다만, 내구성이 취약한 복엽기가 급강하 기동시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자신의 주익이 부러지는 등 하강속도를 이겨내는데 무리가 있어 널리 통용되지 못했을 뿐이다. 자연히 일차대전의 공중전 양상은 기본적으로 선회전이 그 주류를 이루었고, 이런 전통은 이차대전 직전인 스페인 내전 초반까지만 해도 당연한 공중전법의 큰 흐름이었다.
그러나 I-16 전투기가 전선에 모습을 드러 내면서 소련 조종사들은 단엽기 고유의 특성을 잘 갖춘 I-16의 뛰어난 속력, 상승력, 그리고 강력한 내구성을 바탕으로 붐 앤 줌 공격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즉 일차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붐앤줌을 실전 사용한 것은 독일이 아니라 소련이었던 것이다. He-51 복엽기의 성능으로는 고공에서 강하하며 에너지 우위의 전투를 이끌어 나가는 소련기들을 막아내기 역부족이었다.
 
 
[사진] 마드리드시를 방어하는 시민군과 공화군의 모습..  국민당의 끈질기고 매서운 공격도 이들의 의지를 꺽진 못했다. 도시 외곽의 민가에서 담에 의지해 몸을 가리고 사격을 하는 시민군의 모습
  
 
그런데 소련이 이렇게 현대적인 항공전술에 눈뜨게 된 원인은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의 덕분이었다. 즉 소련 공군은 1920년대 소련땅 리페트스크 훈련소에서 행해진 루프트바페의 비밀 전술 훈련을 근 10년 이상 지켜볼 수 있었고, 이때부터 현대적인 공중전 전술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며, 스페인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마드리드 코 앞까지 쇄도해 들어갔던 국민당군의 행진은 소련 공군의 초기 분전으로 완벽히 멈춰 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후 제공권을 획득한 소련 항공기들은 방어자 입장에서 탈피해 적극 공세로 돌아 서기 시작했다. 일예로 이시기 소련공군은 이탈리아 지상군 행렬을 공습해, 이탈리아군 500 여명을 전사시키고, 1000 여대의 차량과 30 대 이상의 대구경포를 파괴하는가 하면, 콘돌군단의 비행기지를 맹폭하는 과감함까지 보였다. 한때 벼랑 끝까지 몰렸었던 마드리드시는 제공권을 확보하면서 위기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싸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필사의 항전에 참여한 마드리드시는 시민들의 손에 의해 끝내 지켜졌다.
 
 
 
 
 
 
킬링 머신의 등장

 
1936년 말에 접어 들면서 국민당의 프랑코는 마드리드 함락 계획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전력을 다른 전선으로 선회해야 했고, 히틀러에게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1937년 초, 히틀러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신무기를 프랑코에게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앞으로 스페인 상공의 전세를 180도 뒤바꿔 놓기에 충분한 신무기였다. Bf 109와 Ju 87 스투카가 스페인에 도착한 것이다. 이때가 바로 1937년 2월....
 
 
 
 
File:Bf109B 3Seiten neu.jpg

 
 
File:Bundesarchiv Bild 146-1981-064-16A, Nordafrika, Demontage einer Junkers Ju 87.jpg
 
 
 
 File:Bundesarchiv Bild 101I-379-0015-18, Flugzeuge Messerschmitt Me 109 auf Flugplatz.jpg
 
 
(상) Bf 109 B형의 모습..... 소련의 저익 단엽기에 당하던 독일 콘돌 군단이 드디어 역전의 기회를 잡게된 바로 그 배경이 된 전투기.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중) 스페인에 나타난 Ju 87 스투카의 초기 모습(아마도 Ju-87 B로 여겨진다).... 또 다른 충격이었다.
 
(하) 콘돌군단의 Bf 109 편대가 이륙준비중인 모습..
 
 
 
군터 뤼초브(Gunter Lutzow)가 스페인에 파견중인 콘돌군단 야그드그루페 88 (Jagdgruppe 88)의 제 2 비행중대(Jagdstaffel, Jasta)를 맡으면서, 한 세대를 앞선 새로운 Bf 109 B기들이 실전 배치되기 시작한 것이다. Bf 109 B는 융커스 유모 210 D/E 엔진을 장착했고, 3정의 MG 17 7.9 mm 기관총으로 무장했으며, 소련의 I-16보다도 성능면에서 훨씬 앞선 전투기였다. 처음에는 단 6기의 Bf 109B만이 스페인에 도착했지만, 후에 조금씩 수가 늘어났고, 공중전 양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으며, Bf 109기는 스페인 상공의 왕자로 자리메김하기에 이른다. 이제 더 빠른 속도과 상승력으로 고공을 선점했고, 독일 공군의 주특기인 고공 급강하 기동에 의한 일격필살의 붐앤줌이 그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이다. Bf 109의 등장으로 He 51기들은 요격기에서 지상 공격기로 바뀌어 새로운 임무에서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최신예 폭격기이며, 성능면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던 Do-17과 He 111기들이 스페인에 투입되면서, 수송기임에도 불구하고 폭격 임무까지 수행하던 Ju 52기들 역시 본연의 수송 임무로 돌아갈 수 있어, 추가 손실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또 일차대전 독일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장성 볼프람 폰 리흐토펜이 1936년 말 콘돌 군단에 전속되면서 "항공기 근접 지상 지원 전술"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항공 장비의 질적 양적 우세 뿐 아니라, 전술 개념에서도 콘돌군단의 완벽한 우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