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Marder I

 

 

마더 I(Marder I, Sd.Kfz.135)은 75mm 대전차포를 장비한 2차대전 당시 독일의 구축전차(Tank Destroyer)이다. 1940년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은 노획한 프랑스의 장갑 병력 수송차 로레인(Lorraine, Tracteur Blinde 37L) 300대의 활용 방안을 고심하게 된다.
독일 국방군(Wehrmacht)은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 초반부터 기존 견인식 대전차포나 판저야거 I(Panzerjager I)보다 기동성과 화력 면에서 뛰어난 구축 전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특히 1941년 새로운 소련 전차인 T-34나 KV(Kliment Voroshilov)와 전선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아진 이후로는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잠정적인 조치로 구형 2호 전차(Panzerkampfwagen II)나 노획된 로레인과 같은 차량의 샤시를 이용하는 안이 채택되었다.

 

 


[사진] Lorraine


 

마더 I은 로레인 샤시에 독일제 75mm Pak 40 대전차포를 올린 형태로 1942년 5월 처음 개발되었다. 로레인의 상부 구조물을 제거하고, 샤시 위에 바로 대전차포를 설치하였다. 대전차포 주위로는 전투원 보호를 위한 상부 개방형 칸막이가 둘러쳐졌지만, 방어력은 소총탄을 겨우 막는 수준에 불과했다. 1942년 7월과 8월 사이에 로레인 샤시 - 마더 I들이 생산되어 전장으로 배치되었다.
그 외에도 프랑스제 H39 호치키스(Hotchkiss) 전차나 FCM 36 전차의 샤시를 이용한 것들도 극소량 생산되었다. 초기 생산분들은 1942년 동부전선에 배치되었고, 대전차 유닛들이나 보병사단에서 사용되었다.

 

 


[사진] Marder II 마더 II(Marder II, Sd.Kfz.132)

2호 전차(Panzerkampfwagen II)의 샤시를 이용하여 제작되었다.

 

 

[사진] Panzer II Ausf. D/E 차체에 Soviet 76 mm gun을 설치한 Marder II

 

초기형 마더 II는 크리스티(Christie) 현가 장치를 사용한 구형 2호 전차 D/E 형과 2호 화염방사전차(Flammpanzer II)의 샤시를 이용하였다. 상부에는 독소전 초기 소련으로부터 대량 노획한 1936년식 F-22 76.2mm 사단지원포를 장비하였다. 마더 II는 높이가 2.6m에 달하는데 비해 장갑은 전면 30mm에 측면 10~15mm로, 상부나 후방은 장갑이 없었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알케트(Alkett) 사(社)와 베그만(Wegmann) 사는 1942년 초부터 1943년 초까지 201 대의 초기형 마더 II를 생산하였다.

 

 


[사진] 마더 II의 후기형은 퇴역한 2호전차 A~C형을 차대로 하여 생산되었지만, 이후에는 새로 생산되는 2호전차 F형의 샤시를 이용하였다.

 

 

후기형은 전투실이 좌우로 확장되었으며 독일제 75mm PaK 40 대전차포를 장비하였다. 높이는 초기형보다 20cm 낮아진 2.20m로 변경되었지만 장갑 자체는 초기형과 동일하였다. FAMO 사, MAN 사 그리고 다임러 벤츠(Daimler-Benz) 사는 1942년 6월부터 1943년 중반까지 576대의 마더 II를 생산하였다. 2호전차가 완전히 퇴역한 이후 1944년 초반까지 FAMO 사에서 이들 퇴역 전차들의 샤시를 활용하여 75대의 마더 II를 추가 생산하였다. 마더 II는 국방군과 무장친위대(Waffen SS) 기갑사단 내 대전차 부문(Panzerjager Abteilungen)에서 사용되었으며 일부는 독일공군(Luftwaffe)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사진] 가장 잘 알려진 "coal thief" - 배럴에 19킬 마크가 있네요..

 


마더의 약점은 낮은 생존성이었다. 높은 차고와 상부 개방형 전투실 구조는 곡사포화에 특히 취약하였으며, 장갑은 적의 전차는 물론 근접 보병 공격으로부터도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또한 상부 개방형 구조 때문에 시가전 및 기타 근접전에서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도 어려웠다. 마더가 효과를 발휘한 것은 방어선에 배치되었을 때나 감시 임무를 맡았을 때였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마더는 견인포를 점차 대체해갔다.

 

 


[사진] Marder III

마더 III(Marder III)는 체코제 38(t) 전차의 샤시를 이용하여 제작되었다.

 

마더 III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생산되어 전쟁이 끝날때까지 모든 전선에서 사용되었다. 1942년 초 38(t) 전차는 전차로서의 효용을 상실하고 퇴역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전차는 기계적으로 매우 뛰어났고, 대전차 자주포의 샤시로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성능이 기대되었다. 대량 노획된 소련제 76.2mm 사단지원포는 마더 I과 마더 II 제작에 쓰이고도 많은 양이 남았고, 이 대전차포가 38(t)의 차체와 결합되게 되었다.

기존 전차의 포탑과 상부 구조물들이 제거되고, 새로운 상부 구조물이 차대에 볼트로 고정되었다. 대전차포를 감싸는 상부 구조물은 상부와 후방 개방형에 전면 50mm, 측면 10mm의 얇은 장갑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상부 구조물 때문에 전차의 차고는 비교적 높았으며, 이는 적이 조준하기 쉬워진다는 단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대전차포는 독일제 표준 75mm 포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마더 III는 30발의 포탄을 적재하였으며, 차대 전면에 7.92 mm 기관총을 별도로 장비하였다. 이 대전차 자주포는 Panzerjager 38(t) fur 7.62cm PaK36(r) Sd.Kfz.139 이라는 명칭을 부여받고 1942년 4월부터 1943년까지 생산되었다.

 

 


[사진] 38(t)


 

다음 개발된 마더 III는 38(t) H형의 샤시에 표준 독일제 75mm PaK 40 대전차포를 장비한 것이었다. 이 차대는 후미에 엔진이 위치하였고, 전투실은 차체 중앙 상부에 위치하였다. 38발의 포탄을 적재하였고, 주포와 별도로 체코제 7.92mm 기관총을 장비하였다. 이 모델은 7.5cm PaK40/3 auf Panzerkampfwagen 38(t) Ausf. H (Sd Kfz 138)의 명칭을 부여받고 1942년 11월부터 1943년 4월까지 243대가 생산되었고, 이후 퇴역한 38(t)의 차대를 개조하여 1943년 내에 175 대가 추가 생산되었다.



 [사진] Marder III Ausf. H

 

 

 

[사진] III Ausf. M

 

마더 III의 마지막 모델은 같은 독일제 대전차포에, 엔진이 차대 중앙에 위치하는 38(t) M형의 샤시를 이용하여 생산되었다. 전투실은 차체 후방으로 이동되었고, 이전의 마더 III와 다르게 후방 또한 장갑판이 보강되었지만 상부는 여전히 개방된 상태 그대로였다. 이 모델은 27발의 포탄을 적재하였고, 고정 장착된 기관총 없이 승무원들이 MG-34 또는 MG-42 기관총을 따로 가지고 다녔다.

이 모델은 전체 마더 III중 가장 많은 생산이 이루어졌다. 1943년부터 1944년 초까지 975대가 생산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Sd.Kfz.138, Panzerjager 38(t) mit 7.5cm PaK40/3 Ausf. M 이었다.
다양한 마더 III들이 전체 전선에서 활약하였고, Sd.Kfz. 139의 경우 대부분 동부 전선, 일부는 튀니지(Tunisia)에 배치되었다.

1945년 2월까지도 약 350대의 M형이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마더 III는 국방군(Wehrmacht)과 무장친위대(Waffen SS) 소속 전차사단 내 대전차 부문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며, 일부는 헤르만 괴링 사단(Herman Goring division)과 같은 독일공군(Luftwaffe) 사단에도 배치되었다.


마더 III의 샤시는 체코제 걸작 38(t) 전차 샤시를 사용하여 기계적 신뢰성이 매우 높았으며 화력은 장거리에서 대부분의 경전차와 중전차를 격파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마더 I과 II에서 지적된 약점들은 거의 그대로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