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미국-

불량감자 2010. 1. 1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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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umman  F6F  Hellcat ◇


 

 

 

태평양 전쟁 초반부에 고성능의 일본 해군기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면서 전선을 유지하던 미해군의 조종사들의 입장에서 진정한 구원자 같은 존재는 바로 그라만 F6F 헬캣일 것이다. 헬캣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태평양 항공전의 주도권이 미해군에게 넘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장의 필요에 따른 매우 합리적인 설계와 생산방식으로 다급한 미해군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던 가뭄속의 단비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그라만사 F6F 헬캣인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에는 미해군 고양이 가문의 총아 F6F 헬캣 전투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제로를 잡기위해 태어난 태평양의 말괄량이

 

최초의 헬캣의 원형기는 진주만 기습이 있기전인 1941년 봄에 설계가 시작되었다. 이때만해도 주력전투기가 실전 배치될 무렵 차세대 전투기를 설계하는 관행에 따라서 미해군의 주력전투기로 선정된 F4F 와일드캣이 실전 배치되자 차세대 전투기도 미리 개발을 시작하라는 미해군의 요구로 그라만사는 여유있는 상태에서 와일드캣의 기본틀에서 조금더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기체를 설계했다. 그리고 1941년 6월 30일 첫번째 원형기인 XF6F-1과 XF6F-2가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이 원형기들은 플랫휘트니사의 1700마력급 엔진인 R-2600-10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 원형기들의 성능은 와일드캣에 비해서 속도가 약간 빨라질뿐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면서 다급하게 이 원형기들의 설계가 전면 변경되는 사건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 해군의 A6M2 제로 전투기의 등장이었다.

 

[ 헬캣의 저돌적인 모습, 와일드캣에 비해서 약간 상반각이 주어진 저익 (low wing)이 특징이다. ]

 

진주만 기습이 있기 바로전까지만 해도 미군은 일본의 전투기 생산 능력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전초기 몇 개월간 태평양의 하늘을 휩쓸어 버린 A6M2 제로전투기의 놀라운 성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전쟁이 시작된후 동남아에 전개하고 있던 구식 미영 연합군의 전투기들은 대부분 대적해 보지도 못하고 먹이 신세가 되 버렸다. 공중전에서 살아남은 조종사들은 제로 전투기의 놀라운 성능에 놀라 공포에 질려있었으며 제로 전투기에 대한 보고서마다 도대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를정도로 부풀려져 있었다. 결국 제로는 1942년 초까지도 연합군 사이에서도 신화적인 존재가 되고 있었다.

 

한편 미군 정보부는 거액의 상금까지 내걸고 황급하게 제로전투기에 환한 정보를 수집했으나 정보기관마다 가지고온 정보는 온통 믿을 수 없는 내용 투성이었다. 이 위험한 일본 전투기의 최고 속도는 얼마인지, 항속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일본이 몇대나 가지고 있는지 .... 미국측으로서는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제로에 관한 자료였다. 그러나 일본이 전혀 제로에 관한 데이터를 노출한적이 없어 미군 정보부는 전쟁이 시작된지 수개월동안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태평양이 알류션 열도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이 미 정보부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으니...

[ 와일드캣의 후예답게 주익이 접히는 방식이 같다. 따라서 헬캣은 항모에 많은 수가 탑제될 수 있었다. ]

 

1942년 6월 3일, 알류산 열도의 더치하버를 공격하는 임무를 받은 일본 해군 공격기 부대의 일원이었던 해군 조종사 타다요시 코가가 자신의 A6M2를 몰고 항모 류조에서 이륙한 후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길에 자신의 기체에 명중된 두발의 탄에 의해서 연료 보급 계통에 이상이 생겼음을 발견했다. 이 젊은 청년 조종사는 바로 편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한후 그 아래쪽에 보이는 비상착륙을 위해서 지정된 작은 섬에 착륙하겠다고 무선 연락을 했고 편대에서 떨어져 나온후 곧 하강하여 시야로부터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 조종사와 그의 제로전투기는 미드웨이해전에서 일본해군이 엄청난 손실을 입고 대패한후, 미처 전력을 추스를 겨를이 없었던 일본 해군이 황급하게 전투지역에서 도망쳐 본국으로 물러나면서 일본 해군으로부터는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 미해군의 PBY 정찰기가 알류선 열도 지역을 순찰하던중 아쿠탄섬에 추락해 있는 일본 전투기 한 대를 발견했고, 곧장 미군 정찰부대가 이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섬의 늪지대에서 뒤짚혀진채로 방치되어 있는 일본 전투기 한 대를 발견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그토록 미군이 원하던 A6M2 제로 전투기였다. 조종사는 조종석에서 숨져 있었지만 기체는 파손정도가 비교적 양호해서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미군은 즉시 이 보물을 수거하여 미해군의 그라만사의 연구소로 이송되었고 즉시 복원 작업에 들어가 결국 완벽하게 비행이 가능한 상태로 복원을 성공시켰다. 이후 각종 테스트가 실시되었고 정보팀의 철저한 조사로 인해서 제로의 강점과 단점이 속속 밝혀지게 되었으며, 결국 제로의 신화는 점점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미해군은 꺼림찍했다. 예상보다 제로 전투기가 단점이 많았다고 해도, 분명히 이 날렵한 일본 전투기는 미해군의 주력전투기 F4F 와일드 캣을 확실하게 능가하고 있었다는 인정하기 싫은 보고서 때문이었다. 제로가 와일드캣과의 모의공중전에서 드러낸 유일한 단점이라고는 고속성능이 떨어지는 점과 빈약한 장갑이었는데, 사실 실전 속도가 제로보다 오히려 느린 와일드캣의 조준경안에 제로를 넣는 것은 적기가 실수를 하거나 조종사의 기량이 매우 떨어지는 경우 이외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미군이 실시한 모의 공중전의 결과 대등한 실력의 조종사가 탑승하는 경우 제로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와일드캣이나 P-40을 격추시켰던 것이다.

 

 

[ 헬캣의 컬러사진 - 공군의 P-47에 맞먹는 튼튼하고 강인한 강철의 날개였다. ]

 

비록 해군 조종사들이 용감하게 싸워 와일드캣으로 어느정도 일본군에 맞서고는 있었지만, F4F 와일드캣을 대체할 신형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미해군은 보트 사가 개발중인 신형전투기 F4U 콜세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어서 보트사에 빨리 제작해 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를 보조할 전투기의 개발을 그라만사에 의뢰했다. 한편 XF6F-2를 시험비행하던 그라만사도 제로의 성능 보고서를 받아들고는 충격에 휩쌓였다. 이 시제기역시 제로보다 속도가 약간 느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라만사는 보트사와는 달리 새로운 기체에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 기존의 XF6F-2의 설계에 기반을 두고 제로 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꼭 필요한 요소만을 첨가하기로 했다. 그라만사의 목표는 단 하나, 일본해군의 제로를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는 전투기의 개발이었다.

 

그라만사의 설계팀은 기동성이 매우 좋은 제로를 이기기 위해서는 같이 기동성이 좋은 기체로 개발하는 것보다는 고속성능이 떨어지는 제로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야 하고, 강력한 화력은 필수적이었으며 날쌘 제로에게 후미를 물리더라도 전투 손상을 견딜 수 있게해주는 중장갑이라는 공수주의 3박자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우선 가장 강력한 성형엔진을 탑재하기로 했다. 새로운 전투기는 동체와 주익의 형태는 와일드캣과 유사했지만 보다 세련되게 디자인 되었으며 신형 전투기에 필수적인 저익단엽기의 설계를 도입하여 주익이 보다 안정적인 위치로 내려오게 되었으며 고속비행시 안정성을 유지하기 쉽도록 정면에서 보았을 때 약간 위로 꺽이는 역갈매기형의 주익을 가지게 되었다.

 

[ 헬캣의 야전 개량형인 야간 전투기 F6F-5N, 야간 전투기 답게 검은색의 도색으로 칠해졌으며 우측 주익아래에 레이더 유니트가 보인다. ]

 

이러한 조건은 무려 2천마력에 달하는 플랫휘트니사의 R-2800 엔진을 채택하면서 가능해졌다. 와일드캣의 엔진이 1200마력급이었던데에 비하면 헬캣의 파워가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엔진은 와일드캣에게도 장착이 고려되었지만 엔진이 크기가 워낙커서 와일드캣에게는 도저히 무리였다. 물론 이 강력한 엔진은 F6F에게 넘치는 힘을 주어 중장갑과 중무장이 가능하도록 해주게 된다. 함재기를 많이 제작해본 경험이 있던 그라만사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개발속도를 보여 이전의 원형기들과는 크게 달라진 성능을 가진 시제기 XF6F-3의 비행을 1942년 6월말에 실시할 수 있었다. 이무렵 미해군이 큰 기대를 걸고 있던 헬캣의 경쟁기인 F4U 콜세어의 양산기가 첫 비행을 실시하면서 헬캣을 앞서나갈뻔 했으나 이 콜세어는 몇 번의 시험비행에서 항모에서 운용할 때 문제점이 드러났으며 특히 착함시에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 때문에 미해군이 이런점이 수정될 때까지 인수를 거부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1942년 6월 미드웨이해전에서 믿을 수 없는 대승리를 거둔후 미해군은 일본이 다시 전력을 보강하기전에 공세적인 작전을 펴기로 했다. 그리하여 태평양에서 일본해군이 장악하고 있던 섬들에 대한 항공공세를 강화했는데 여전히 문제점은 강력한 제공전투기의 부재였다. 그렇다고 F4U 콜세어가 배치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 도 없었다. 결국 미해군이 내린 해결책은 역시 해군기의 명가 그라만사의 신형기 F6F를 대량으로 생산해달라고 주문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라만사 역시 미해군의 기대에 부응하여 F6F 헬캣은 와일드캣의 후예답게 미해군이 제시한 모든 항모 착함 능력 테스트를 일사천리로 통과해 버렸다.

 

더구나 공중전 테스트에서 속도가 제로전투기의 시속 533km에 비해서 무려 시속 80km 이상이 빠른 수치를 나타냈으며 상승률이 매우 좋았으며 최대 상승고도에서도 제로를 능가했다. 물론 하강성능도 뛰어났으며 캘리버 50 기관총 6정에 무려 2400발을 장탄할 수 있었던 강력한 무장은 제로를 단시간만에 불덩어리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결국 미해군은 이 전투기가 A6M2 제로를 확실하게 잡아낼 수 있다고 믿었고 즉시 대량생산을 요구했다.  급박하게 생산을 시작한 그라만사는 시제기가 비행한지 5주만에 양산체재로 돌입할 수 있었다. 드디어 미해군 조종사들에게 강력한 함재 전투기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 1943년 항모 렉싱턴의 조종사들이 F6F-3 헬캣을 지급받은후 환호하고 있다. 이제는 일본기들을 완전히 끝장내 버리겠다는 자신감이 보인다. ]

 

1943년 초 미항모 에섹스의 VF-9 전투비행대가 완전히 이 신형 F6F-3 헬캣 전투기를 장비한 최초의 비행대로 등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헬캣은 빠르게 와일드캣을 대체해 나갔다. 워낙 다급하게 미해군이 생산을 독려한 덕분에 헬캣은 2년동안 한시간에 1기꼴로 생산이 되어 총 12275기나 생산되는 놀라운 생산성을 보이게 된다. 이후 야간전투기를 필요로 했던 미해병대는 주익에 APS-6 레이더를 장비한 F6F-3N형을 장비하고 야간전투에 사용하기도 했다.

 

* 지옥의 고양이 태평양을 장악하다!

 

foxmouse가 10여년전 미군 전투기들의 이름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Hellcat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본후에 무서운 맹수의 일종일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Hellcat이 고양이류의 동물 이름이 아니라 의외로 '말괄량이'라는 좀 귀여운(?)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은적이 있다. 하지만 일본해군기들에게는 태평양의 하늘에 새로 등장한 새로운 적기 F6F야 말로 '지옥에서온 고양이' 바로 그것이었다.

 

[ 캘리버 50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제로를 격추시키는 헬캣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 주익 아래로 뿌려지는 탄피가 헬캣의 화력을 실감하게 해준다. ]

 

1942년 말 적극적으로 공격해오던 미해군의 공세에 힘겹게 저항하던 일본 해군의 조종사들은 와일드캣과 비슷하지만 약간 더 덩치가 크고 속도가 훨씬 빠른 미해군의 신형전투기들과 맞서게 되었다. 이순간이 개전이후 태평양의 하늘을 장악하면서 영광의 세월을 만끽하고 있던일본해군 조종사들에게는 큰 재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시점이었다.

 

제로 전투기와 헬캣이 최초로 만난 것은 1942년 12월의 어느날이었다. 이날 일본 항공기 100여대가 접근해오고 있는 것이 레이더에 나타나자 미해군 항모들은 즉시 헬캣을 비슷한 수로 날려보냈다. 이 일본 공격기들 속에는 엄호 전투기 제로가 약 반수 가까이 포함되어 있었고, 드디어 대대적인 헬캣과 제로의 대결이 벌어졌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가 끝나자 일본기 50여기가 바다속으로 떨어졌는데 이중에는 일본해군이 그토록 자랑하던 제로 전투기 28기가 포함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항모로 돌아오지 못한 헬캣 전투기들이 겨우 3기였다는 사실이었다. 이로서 신예기 F6F-3 헬캣이 제로의 천적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한 순간이었다.

 

더구나 이무렵부터는 인적자원이 풍부한 미해군은 끊임없이 많은 조종사들을 훈련시켜 전투에 투입할 수 있었던 반면, 일본은 새로운 조종사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국 경험많은 조종사들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하여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 자리를 비행시간이 몇시간되 안되는 미숙한 조종사들이 메꿔나가야 했다. 이것은 헬캣의 우수한 성능과 맞물려서 공중전에서 미해군이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우세한 상황이 되 버리게 했다.

 

 

[ 공중전에서 피탄된후 착함도중 파손된 헬캣 -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갑판요원이 조종사를 구하기위해 뛰어오르고 있다. 헬캣의 방호력은 수많은 조종사들의 생명을 구했다. ]

 

1942년 8월부터 1944년까지 라바울 지역에서 벌어졌던 제공권 쟁탈전에서 일본해군은 전력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결국 후퇴해야 했는데 이 라바울 지역의 공중전은 대부분의 경우 일방적인 미해군의 승리였다. 일본군은 초반에는 제로를 앞세워 미해군/해병대의 항공전력과 거의 대등한 싸움을 했지만 1943년 4월부터는 점차 전세가 미군쪽으로 기울었고 이무렵 신예기 헬캣이 다수 나타나면서 제로 전투기의 신화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 버렸다.

 

태평양 전쟁이 개전하자마자 진주만과 동남아시아 지역의 하늘에서 미처 준비가 안되있던 연합군기 200여기를 격추하는 동안 10기의 손실밖에는 입지 않았을 정도로 일방적인 전과를 올리며 제공권을 장악하고 미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제로의 신화가 비로소 깨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시점부터 제로는 태평양의 사냥꾼에서 쫒기는 먹이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결국 장기간동안 혈전을 벌인 라바울 항공전에서 일본육군과 해군 항공대는 거의 모든 전력을 소진해 버렸다. 항공기의 손실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계속되는 경험많은 조종사들의 손실로 그나마 제로의 기동성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신참 조종사들이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는 전력의 격차가 더욱 커져 버렸다.

전후에 라바울 항공전에서 살아남은 몇안되는 일본의 에이스 고마치 사다무는 헬캣과의 공중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석들은 엄청난 속도로 벼락처럼 달려들면서 마치 소나기처럼 12.7mm 기총탄을 퍼부어 댔다. 날개에서 번쩍이는 기총의 불빛과 함께 수백개의 불꽃이 나를 향해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정말 무서운 경험이었다. 우리의 제로가 헬캣의 후미를 잡아 사격을 하면 그녀석은 마치 귀찮은 파리를 몸을 흔들어 떨구는 소처럼 몇 번 몸을 흔든후에 강하해서 이탈해 버렸다. 마치 맞아도 맞아도 끄떡없는 거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기분이었다. 헬캣은 우리 일본 조종사들에게는 정말 재앙에 가까운 존재였다."

 

더욱이 제로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있어서 절망적인 것은 날렵한 선회로 헬캣의 후미를 잡는다고 해도 이를 단숨에 격추시킬 화력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헬캣의 멧집은 그라만사의 제품답게 제로의 사격을 잠깐 받더라도 비웃듯이 비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와일드캣과 헬캣처럼 야전에서 평가가 좋았던 그라만사의 전투기들은 해군 조종사들 사이에 뛰어난 견고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그라만사의 강철제 명품 (Grumman Iron Works)'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이후 헬캣을 잡기위해 속도와 화력을 강화한 A6M5 형이 나타났지만 최고속도는 여전히 헬캣에 미치지 못했고 무장 강화로 중량이 늘어나자 제로의 상징과도 같은 기동성이 떨어져 버리는 역효과를 내게 된다. 결국 제로는 더 이상 헬캣에 대항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지게 되 버린 것 이다.

 

이처럼 헬캣의 등장은 일본군에게는 큰 위협이되었고, 미군 조종사들에게는 구원과도 같았다. 헬캣을 지급받은 조종사들은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일본기들과의 교전에 서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쳤다. 헬캣이 이룩한 공중전의 몇가지 진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F6F를 최초로 수령한 비행대대의 1개 편대 4명의 조종사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50기의 일본기를 격추시키면서도 단 1기의 헬캣도 손실하지 않았음.

2. 미해병대의 F6F-3N을 장비한 야간 전투비행대는 2달동안 아군기의 손실없이 일본기 22기를 격추시켰음.

3. 총 34기 격추를 기록한 미해군 최고의 에이스 데이빗 맥캠벨은 헬캣을 몰고 라바울 지역에서 80기의 일본기들과 조우한 공중전에서 그중 7기를 격추시킴, 그는 이후에 한번의 전투에서 9기를 격추시키는 진기록을 수립.

4. 헬캣 1개 편대가 괌 상공에서 일본 비행장을 급습하여 착륙중이던 49기의 일본기들을 발견하고 공격하여 이중 30기가 격추되거나 착륙중 대파됨.

5. 1944년 7월 19일 매리아나 지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공중전에서 일본기 373기를 격추시키면서 헬캣은 23기만이 손실됨. 이날의 전투는 '마리아나의 위대한 칠면조사냥 (Great Marianas Turkey Shoot)'이라는 전설적인 전투로 기록됨.

 

이후 미해군의 모든 항모에 탑재되어 전장을 누빈 헬캣은 계속 눈부신 활약을 펼쳐, 2차대전 전기간에 걸쳐서 미해군이 달성한 격추기록중에서 약 75%에 해당하는 5156기의 일본항공기들이 헬캣에 의해서 격추되었다고 하며 격추 비율에서도 19:1이라는 전무후무한 일방적인 격추교환비로 이부문에서는 2차대전 전투기중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 로켓탄으로 무장하고 출격중인 헬캣, 랜딩기어 수납방식을 잘보여주는 일러스트이다. ]

 

그러나 전쟁이 중반을 넘어서자 헬캣에게도 몇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문제점으로 지적받은 것은 느린 속도였다. 오직 제로만을 노리고 황급히 설계된 전투기다보니 제로보다는 빨랐지만 전쟁후반기에 태평양에 나타나는 다른 미해군/육군항공대의 전투기들에 비해서는 속도가 느렸던 것이다. 최고시속 610km 정도였던 헬캣은 최고속도가 시속 700km대를 나타낸 미해군의 신예 F4U 콜세어나 태평양에 나타난 유럽하늘의 왕자 P-51D 머스탱등에 비해서 속도가 매우 떨어지게 되었다. 더구나 일본 육군항공대의 신예 전투기 Ki-61 히엔 같은 경우도 헬캣보다 속도가 빨랐다. 또한 최고 속도를 유지하면 주익에 걸리는 컴프레션이 심하게 나타나 조종불능이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서 에어 브레이크를 사용해서 빠져 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속도를 많이 잃어서 공중전시에 불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Grumman  F6F-3  Hellcat

분 류

단좌 함상 전투기

동 력

플랫 휘트니 R-2800-10W 공냉식 성형엔진

최고속도

시속 612km

상승속도

분당 908m

항속거리

1529km

무 장

주익 - cal 50. 12.7mm 기관총 6정

 

하지만 사실 각 전투기의 등장시기로 볼 때 헬캣과 콜세어의 비교는 무의미 하다고 할 수 있다. 콜세어는 신기술이 많이 적용된 전투기였지만, 막상 미해군이 절실히 필요로 할 때는 항모 착함 능력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내 보급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장에서의 역할로 볼 때는 헬캣처럼 미해군 조종사들에게 힘이 되어준 기체는 없었고, 일본군에게 절망을 안겨준 전투기도 없었던 것이다. 태평양 항공전의 성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가장 필요한 시기에 나타난 가장 합리적인 전투기로 헬캣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헬캣이 미해군에게 준 교훈은 전쟁에서는 최신 기술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설계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콜세어는 분명 2차대전 최강의 함재 전투기였지만 헬캣은 시대의 요구에 가장 잘 따른 최적의 전투기였다.

 

* F6F 헬캣 일러스트레이션 *

 

1943년 8월 태평양전선 미해군 항모 에섹스의 VF-5 소속 F6F-3 헬캣, 본기체의 국적마크 주

 

의 붉은색 테두리는 1943년 7월부터 9월사이에 적용되었던 방식이다.

 

본 일러스트는 thammer님께서 그려주신 미해군 F6F-3 헬캣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수준의 일러스트를 그리시는 분이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맨날 외국 자료만 스캔하다가 thammer님의 작품을 올리게 되니 기분이 좋네요!~

 

1944년 등장한 새로운 F6F-5 헬캣, 2000파운트 폭탄이 장착 가능했고 주익 내측의 기총을 20 mm 기관포로 교체할 수 있느 옵션이 있었다. 본기체는 항모 프린스턴을 모함으로하는 VF 27 소속의 기체이다.

 

영국해군이 채택하여 영국해군 항공대 (FAA) 소속으로 활동했던 F6F-5 헬캣, 영국해군은 이

 

기체를 Hellcat Mk.II로 명명한후 사용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무선 유도 폭탄의 역할을 수행했던 F6F-5K 헬캣, 한때는 태평양의 왕자로 군림하던 헬캣이었지만 이미 제트기들이 창공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니, 어떻게 보면 처량하기 까지한 모습이지만 시대의 변화는 거슬 수 없는 법이 아닐까...

 

 

여하간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전쟁 후반기에 헬캣은 확실히 우수했던 콜세어에게 주력 전투기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하지만 높은 신뢰도와 항모 운용능력으로 수적으로는 종전시까지도 항모 기동부대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일본의 항복으로 태평양 전쟁이 끝난후에 많은 수의 잉여 헬캣이 미국의 우방국에 무상으로 공여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은 헬캣의 처리로 고심하던 미군은 이 전투기를 폭탄을 가득싣고 무선 조종으로 적진으로 돌진하는 무인 폭탄으로 쓰기로 결정해 좀 애처로운 신세가 되기도 했다.

 

갈증에 목이타들어가던 미해군 조종사들에게 생명수와도 같았던 실질적인 구원자, 태평양하늘의 실질적인 지배자, 그리고 그라만사가 자랑하는 고양이 가문의 영원한 총아로서 F6F 헬캣은 항공전사에 큰 이정표를 남긴 항공기로 기억될 것이다.

 


* 여기서부터는 jjh881128님 (jjh881128@hitel.net)께서 보내주신 헬캣에 대한 글입니다. 헬캣 스토리를 알기쉽게 기술하셨고 좋은 사진자료들과 기존의 글에 없는 내용도 있어 추천글로서 추가해 놓습니다. 이런 좋은 글을 보내주신 jjh881128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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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분들의 인식으로는 제로의 천적을 꼽으라면...... 콜세어, 무스탕, P-38등이 나오겠죠. 사실 이 전투기들은 대전 초중반~대전 말 사이의 기간동안 출연한 '조연' 에 불과합니다...... 보통 분들은 제로 잡기의 선구자이자, 엄청난 공헌을 한 주인공을 잊고 계신겁니다.

 

제가 말하는, 'Operation Catching Zero'라는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미 해군의 F6F 헬캣입니다.

 

 

위의 사진은 1945년 8월, 항모 스와니의 VF-40소속 콜맨 중위의 기체이며, 가장 많이 생산된 대전 말의 형식인 F6F-5입니다.

 

헬캣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압니다. 이 '지옥의 고양이'는 그루만사의 고양이(어찌보면 살쾡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시리즈 중에 하나입니다. 이 고양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바로, 톰 크루즈가 탑건에서 타고 다니며, 엄청난 오버 액션을 보여주었던 F-14 톰캣 시리즈 입니다. 이제 얼마 안있어 톰캣이 퇴역하게 되면서 이제 고양이 가문의 대도 끊기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헬캣이 이 고양이 가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전과를 올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과를 이룬 전투기라 할 수 있습니다.

 

* 개발 배경.......

 

미 해군 항공대와 미 해병 항공단은 태평양 전쟁 초기에 F4F 와일드캣(이 것도 고양이 가문에서, F6F의 아버지 뻘이 됩니다.)과 F2A 버팔로를 가지고 힘겹게 제로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가 헬캣의 아버지와 삼촌입니다.

 

위의 그림이 바로 F4F-3 와일드 캣입니다. 미 해군의 유명 에이스 중에 하나이 오 헤어의 기체입니다.

 

 

 

위의 사진이 F2A-3 버팔로입니다. 이 삼촌이 헬캣의 아버지인 와일드캣과 앙숙이었죠. 서로 미 해군의 주력전투기가 되려하지만..... 결국 제로에게 학살을 당하고 미 해군에서 퇴출당하죠. 일부 버팔로는 핀란드에 공여되어 뒤늦게 겨울전쟁에 참가하여, 매우 적은 손실로 엄청난 소련기를 잡습니다. 유틸라이넨 같은 에이스들의 애기가 되어...... 이상하게 핀란드의 동생들은 잘 날아다녔는데, 유독 왜 태평양의 형들은 먹이감이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미군 조종사들의 미숙으로 생각됩니다........

 

위의 기체들로는 제로를 막기 힘들었으며,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특히 버팔로는 필리핀에서 제로에게 엄청난 학살을 당합니다. 이 때, 제로의 손실은 단 10기 뿐이었다는 군요...... 너무 슬퍼라....... 하지만 미 해군은 제로의 실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무성한 추측만이 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해군에게는 제로를 잡을 '제로 킬러'가 절실히 요구되었습니다.

사실, 그루만사는 진주만 기습 이전에, 미 해군의 와일드 캣의 후계기 사업을 목표로 하여, F4F를 모태로한 다음 세대 전투기 설계에 착수합니다. 르로이 그루만과 그의 뛰어난 두 엔지니어인 레온 스워벌과 빌 슈벤들러가 이에 착수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전에 만들었던 F4F를 모태로 하여, 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XF6F-1과 XF6F-2가 나왔습니다.  엔진을 플랫휘트니사의 1700 마력짜리 라디알 R-2600-10 공냉식엔진을 장착했지만, 속도만 약간 빨라졌을 뿐, 더나은 성능은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이 때, 제로가 나타나면서 설계는 급속히 바뀝니다.

 

여기에, 얄류샨 열도의 아쿠탄 섬에 불시착해 있는 '타다요시 코가'의 A6M2 제로를 입수하면서 속속 제로의 허와 실이 드러나게 되었고, 드디어 제로의 실체가 나타나면서 설계는 열을 올리게 됩니다.  

 

미 해군이 상태가 매우 좋았던 타다요시 코가의 불시착한 제로를 수리하여 비행 시켜 본 결과....장점과 약점이 조금씩 파악이 되었습니다. 낮은 속도에서 기동성이 뛰어나며, 엔진의 토크 현상 때문에 우측으로 롤기동이 좌측에 비해 취약하고, 속도가 300 mph 이상이 되면, 에일러론의 작동이 힘들며, 기동이 현격이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엔진 캬부레터의 문제로 하강시, 엔진이 종종 멈춰 버린다는 것도요......

 

드디어, XF6F-2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전투기가 만들어졌습니다. XF6F-3입니다. 와일드캣보다 더 크면서, 더 높은 속도에, 더 많은 연료와 탄약에다, 매우 넓은 날개(헬캣의 날개의 면적은 334 평방 피트입니다. 동시대의 다른 전투기들이 250 평방 피트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넓은 날개입니다.)에, 여기에 뒤로 접을 수 있어 휴대성이 뛰어난 전투기....... 모든 것이 더 뛰어났습니다.

 

위에서, 비행성능이 와일드 캣에 비해 훨씬 좋게된 이유는, 기체의 크기가 큰만큼, 엔진도 그에 맞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후기 생산형 F6F-5에 탑재되었던 라디알 R-2800-10W 공냉식 엔진입니다. 바로 아래의 사진입니다. 콜세어나 선더볼트등에 탑재 된, 대형 전투기들의 엔진이었죠.

 

헬캣말고도 와일드 캣의 후계기 사업에 뛰어든 또 하나의 명전투기가 있었습니다. 보통 다른 분들이 많이 알고 계시는 F4U 콜세어입니다. 성능도 헬캣보다 더 뛰어났다고 하죠.

 

하지만, 여러번의 착함 테스트 결과 콜세어는 항모 착함에서 낙제인 것으로 판정이 났습니다. 제작사인 보우트사에서는 개량을 하고 있었지만, 계속 제로에게 아군의 전투기들이 당하는 것을 못본 미 해군은...... 콜세어가 나올 때까지 헬캣을 쓰기로 합니다. 헬캣은 함재기 생산의 명가인 그루만에서 만든 만큼, 착함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능도 미 해군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했구요. 따라서, 그루만사에 헬캣의 대량생산을 요구합니다. 헬캣의 최초 양산형 F6F-3의 등장입니다.

 

* 실전에서는 어땠을까?

 

아래의 사진은 항모 CV-16 렉싱턴 소속의 파일럿들로, 헬캣으로 타라와 전투에서 20기의 일본기를 격추시킵니다. 위의 조종사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1. Ens. William J. Seyfferle  

2. Ltjg. Alfred L. Frendberg  

3. Lcdr. Paul D. Buie  

4. Ens. John W. Bartol  

5. Ltjg. Dean D. Whitmore  

6. Ltjg. Francis M. Fleming  

7. Ltjg. Eugene R. Hanks  

8. Ens. E.J. Rucinski  

9. Ltjg. R.G. Johnson  

10. Ltjg. Sven Rolfsen.

 

위의 사진은 미 항모 CV-10 요크타운호의 격납고로, 헬캣의 뛰어난 운용성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위의 사진은 미 항모 CVL-26 몬터리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헬캣의 모습입니다.

미 항모 CV-16 렉싱턴의 비행 갑판에서의 모습으로, 출격하기 직전의 헬캣입니다.

 

첫 양산형인 F6F-3 헬캣은 1943년 8월 31일, 첫 전투에 투입 됩니다. 항모 에섹스로 부터 출격한 VF-9와 요크타운으로부터 출격한 VF-5 전투 비행단은 일본에서 남쪽으로 700마일(1,127Km) 떨어진 마르쿠스 섬(일본명으로는 '미나미 토리 섬')을 향한 일본의 공격을 저지하는 전투에 참가합니다.

 

이 전투로부터 몇달 후, 궁극적인 첫 전투가 발생했습니다. 약 100여기의 일본기들이 미 항모를 목표로 하여 공격해 왔고, 미 항모들은 비슷한 수인 약 100여기의 헬캣을 날려 보냈습니다. 이 안에는 호위기로서 제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헬캣과 제로가 맞부딪쳤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본기 50여기가 격추되었고, 이 중 28기는 제로였습니다. 헬캣의 손실은 단지 3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미 해군과 그루만사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별것이 아니였습니다. 가장 큰 전과는 1944년 7월 19일~20일 동안 벌어진 필리핀 해전이었습니다. 일본 해군의 지사부로 오자와 제독과 미 제 5 신속 항모 기동군의 마크 밋처 제독이 지휘하는 함대가 만났습니다. 오자와는 9대의 항모에 총 450대의 각종 함재기를 보유했고, 이에 반해 밋처의 미 해군 함대는 15대의 항모에 900대의 함재기를 운용 가능했습니다.

 

전투는 벌어지고, 결과는 일방적이었습니다. 일방적인 미 해군의 '터키 슈트(칠면조 잡기)'가 발생했습니다. 1944년 7월 19일 마리아나 지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공중전에서 일본기 373기를 격추시키면서 헬캣은 23기만이 손실되었고, 이날의 전투는 '마리아나의 위대한 칠면조사냥'이라는, 후세에 엄청난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태평양 상공에서의 공중전 양상은 초반에는 일본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의 일방적인 승리들이었지만, 헬캣의 등장으로 완전히 구겨졌습니다. 더 빠른 속도에, 더 강력한 화력, 더 높은 상승 고도, 그리고 가장 강점인 엄청난 내구성 등으로 인해 완전히 KO를 당했습니다. 그 중에서, 내구성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헬캣의 강인한 내구성을 알려주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한 헬켓 파일럿이 CAP 임무를 수행할 때, 제로기들에게 휩싸여서 엄청나게 고전을 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항모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기체의 손상 정도를 확인하니 왼쪽 주익의 대부분이 날라가고 없었습니다. 그는 매우 놀랐고, 거울로 보니 승강타는 전투중에 손실로 인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사히 항모 근처로 왔고, 랜딩기어를 내리려고 하는 순간, 옆의 동료가 자신의 랜딩기어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는 결국 동체 착륙을 하였고, 그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조종사가 10일 후, 자신의 헬캣이 완전히 수리가 되자 다시 전투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 일화가 말해주듯이, 헬캣의 내구성은, 제로가 쉽게 헬캣을 격파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화력도 강력해서 안그래도 내구성이 약한 제로기는 단순간의 점사로 금방 폭발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1942년 말에서 1944년 중반까지의 라바울을 둘러싼 항공전에서는 초반 대등하던 일본 해군 항공대는 헬캣의 등장으로 거의 대부분의 승리를 미 해군에게 도둑맞게 됩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 제로는 탈바꿈하여 대전 초중반의 주력 형식이자 '버팔로 학살자'였던 A6M2 21형과 22형에서, A6M5 52형으로 주력을 옮깁니다. 하지만, 내구성과 화력을 강화하다 보니, 대전 초중반을 선회전을 기반으로 한 기동성을 장점으로 태평양을 휩쓸었던 과거의 영광은 영원히 '바이 바이~!' 였습니다. 더구나 속도도 줄어들었죠.

 

 더구나, 전황이 악화될수록, 생산은 점점 줄어들고, 뛰어난 에이스급 조종사들이 전사해가자, 이 자리를 미숙한 실력의 조종사들이 메꿔 나갔고, 또한 조종사 난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1시간에 1대 꼴이라는 엄청난 수의 헬캣이 생산되었으며, 수적으로도 이길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헬캣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 헬캣의 개량.....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록을 올린 형들은 F6F-3였습니다. 하지만, 1944년 6월 부터 F6F-5형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리 눈에 크게 보일 정도로 큰 개량은 없었습니다. 대전 말 전황이 유리해 지고 미 해군이 공세로 전환하면서, 지상의 미 해병대 병력을 지원해야 할 임무가 많아진 이유 때문에 주로 지상 공격 임무를 위한 개량이 주로 가해졌습니다.

 

 주요 개량 부분으로는 엔진을 원래의 라디알 R-2800-10에서 R-2800-10W로 바꾼 것과, M2 캘리버 50 12.7mm 기관총 6정이라는 무장을 20mm 기관포 2정과 M2 캘리버 50 12.7mm 기관총 4정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는 것, 450kg(1000파운드)짜리 폭탄을 최대 2발까지인 2000파운드 까지 폭탄 탑재가 가능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상 공격용 로켓 6발과 외부 장착 연료탱크도요.....

 

 * 헬캣의 다른 별난 동생들.....

 

 ▶ XF6F-4

 엔진을 라디알 R-2800-27로 업그레이드 하고 무장을 M2 12.7mm 기관총 6정에서 4정의 20mm 기관포로 교체했습니다. 1942년 10월에 처음 나왔습니다. 하지만, 미 해군 조종사들이 별 반응이 없어, 양산 되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 야간 전투기형

 기존형인 F6F-5형에 AN/APS-4 레이다를 단 XF6F-5E형과, 1944년 9월에 나온, AN/APS-6 레이다를 단 XF6F-5N형이 있습니다. 무장은 20mm 기관포 2정과 M2 캘리버 50 12.7mm 기관총 4정이었습니다. 총 1,434가 생산되었습니다.

 

 ▶ F6F-5P

 정찰, 그 것도 사진 정찰용으로 개조된 형식입니다.

 ▶ XF6F-6

 엔진을 라디알 R-2800-18W로 업그레이드 하고, 프로펠러이 블레이드 수를 예전의 3엽짜리에서 4엽짜리로 바꾸어 달았습니다. 이 결과 최고 속도가 671Km(417mph)를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고, 더 이상 헬캣이 필요가 없었으므로 양산은 되지 못하고 단 2대만이 시험기로 제작되었습니다.

 

 ▶ 영국 해군형

F6F-5가 영국 해군에도 공여가 되었고, 영국에서는 Gannet Mk.2라 불리었으며, 후에 Hellcat Mk.2로 불리게 됩니다.

 

* 전쟁이 끝날 무렵에.....

 

태평양 전쟁의 후반, 콜세어가 항모 착함에 문제가 많았던 점을 개선한 F4U-1D가 나타나서 헬캣의 지위를 위협하였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무스탕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가 되는 F4U-4가 나타나자, 결국에는 헬캣은 항모 주력 함재기의 자리를 내줍니다.

 

전후에는 각국에 무상으로 공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아돌자, 미 해군은 한국전 때 헬캣을 무인 전투기로 개조하여, 리모콘으로 조정하여 유도하는 '유도 폭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일부는 이에 사용되지 않고 남아 미국 각지의 박물관이나, 개인의 소유로 남아 아직도 비행가능한 기체가 몇몇이 있다 합니다. 아주 안타까운 결말이었지요.

 

* 결론적으로.....

헬캣을 제외한 제로기들의 천적이었던 콜세어, 무스탕, 라이트닝등의 전투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속도전'이었습니다. 이들은 제로가 선회전과 같은 기동성이 매우 뛰어났지만, 속도가 느린편이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속도와 최대 상승 고도 등으로 제로기들을 이겨냈습니다. 사실, 이들 전투기들은 선회력에 있어서 제로보다 매우 낮습니다. 따라서, 이길 수 있던 방법은 이런 속도전이었고, 제로기와 선회전과 같은 기동성으로 맞붙었다면 이기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를 이용해 결과적으로는 효과적으로 이겼습니다.  

 

그러나, 헬캣은 이런 전투기들과는 부류가 약간 다릅니다. 헬캣은 위의 라이트닝과 콜세어 같은 최대 속도가 670Km대의 전투기 보다는 최대 속도가 느렸습니다. 612Km 였지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제로를 충분히 이길 정도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헬캣은 속도전뿐만이 아니라, 선회전에서도 제로를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군 조종사들의 경험으로는, 콜세어와 라이트닝보다 가장 무서운 전투기가 헬캣이라고 합니다.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 그루만 F6F는 제로보다 뛰어난 전투기였습니다! 헬캣은 미 해군 최고의 전투기였죠. 1944년 6월 이오지마 상공에서 처음으로 그들과 전투하게 되었는데 1942년 이후로 향상된 성능에 놀랐습니다!" - 사부로 사카이

 

-" 내가 교전했던 적기들중 가장 뛰어난 전투기는 F6F였습니다. 헬캣은 제로보다 속도가 빨랐고 출력 또한 좋았습니다. 또 격투전 성능도 뛰어났죠. F4U가 그렇지 못했던 것에 비해서 말이죠. "

 

" 꼬리에 붙어있는 헬캣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소나기같은 총알을 퍼부어 댔습니다. 나는 종종 그 때 겪었던 일에 대한 악몽을 꾸곤 합니다. " - 코마치 사다무

-" 내가 생각하기로는 상대하기 가장 어려웠던 적기는 그루만 F6F였습니다.  P-38이나 F4U가 힛 앤 런 전술을 사용했던 것에 비해 헬캣은 뛰어난 기동성을 이용한 전투를 했습니다. F6F는 실제로 우리와 격투전이 가능했습니다. 우리의 제로보다 빨랐고 출력이 좋았습니다. " - 타니미즈 다케오

 

태평양 상공에서 헬캣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 아마 미 해군/해병 항공단은 더 큰 손실을 봐야 했을 것입니다. 콜세어가 문제점을 고치는데 수년이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그 동안 와일드 캣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었을까요? 비록 미국이 수적으로 우세였다고는 하지만, 결정적인 타격을 줄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헬캣은 그 당시의 요구에 잘 부응한 적합한 전투기라고 생각합니다.

 

※ 그루만 F6F 헬캣(F6F-5형 기준)  

@ 크기   

# 날개 전장: 42피트 10인치(13.05 m)  

# 길이: 33피트 10인치(10.31 m)  

# 전고: 14피트 5인치(4.39 m)  

# 날개 면적: 334 평방 피트(102 평방 미터)  

 

@ 무게

# 클린 상태: 9,060 lbs(4,110 kg)  

# 일반 무게: 12,598 lbs(5,714 kg)  

# 최대 무게: 15,413 lbs(6,991 kg)  

 

@ 성능  

# 최대 속도: 23,400 ft(7,132 m) 높이에서 - 380 mph(612 km/h)   

# 순항 속도: 200 mph(322 km/h)  

# 착함 속도: 88 mph(142 km/hr)  

# 최대 상승 고도: 37,300 ft(11,369 m)  

# 전투 행동 반경: 945 mi(1,521 km)  

# 최대 행동 반경: 1,530 mi(2,462 km)  

 

@ 엔진  

# 프렛 앤 휘트니 라디알 R-2800-10W "더블 와스프" 공냉식 엔진

# 출력:  16,900 ft(5,151 m) 높이에서 - 2,000 hp(1,492 Kw), 이륙시 - 1,975 hp(1,473.9 Kw)   

 

@ 무장  

# 브라우닝 M2 캘리버 50(12.7 mm) 기관총 6정(휴대 탄수 최대 2,400발)

# 브라우닝 M2 캘리버 50(12.7 mm) 기관총 4정 + 20mm 기관포 2정

# 폭탄 450kg(1000파운드) 2발 또는 지상 공격용 로켓 6발

 

@ 비고

# F6F-3: 4,646대 생산

# F6F-5: 6,436대 생산


 

    F6 F Hellcat

 

 
지로기에 KO승을 거둔 미해군 전투기
 

F4F 와일드캣을 업그레이드 한 기종인 F6F hellcat은 그루만사가 영국 해군에게 제공한 F4F기들의 실전 경험을 토대로 개선점을 발견하여 다시 디자인된 새로운 기종이었다. 유럽의 공중전에서 영국해군이 와일드 캣을 시험해 보았는데, 독일의 Bf 109에 비해 공중전 기량에서 열세를 벗어 나지 못했다.  

즉 속력이 딸릴 뿐만 아니라, 상승력이 매우 모자라, 메서슈미트 109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고, 공중전에서는 언제나 방어적인 입장을 취해야만 했다.  게다가, Bf 109가 더 빠른 선회를 해냈고, 와일드 캣의 최대 강점인 급강하 실력마저 거의 대등했으니 말이 더 이상 필요없었다.

와일드 캣의 속력을 더 높이는 방법은 좀 더 막강한 엔진을 쓰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작은 기체 프레임을 지닌 F4F는 더 큰 엔진을 탑재할 만한 공간의 여유가 없었다. 또 그 출력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더 큰 프로펠러가 필요했는데, 와일드 캣은 그 정도의 토크 이펙트(torque effect)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루만 팀은 F4F를 완전히 새로운 기종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그루만사는 와일드 캣의 수동 랜딩기어를 수압식 기어로 변형했다.

1941년 11월, 새로운 설계 방침이 만들어졌다. 와일드 캣보다 좀더 크고, 강한 기체 프레임에다가 날개는 와일드 캣이 동체 중앙에 위치했으나, 그 보다 낮은 위치에 날개를 달았다. 이런 새로운 날개의 위치는 와일드캣이 랜딩기어를 동체로 접던 것과는 달리 날개내에 접어 넣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은 동체의 내구성을 좀 더 높일 수 있었고, 랜딩기어사이의 간격을 넓혀 안정성을 극대화했다. 거기에 더 뛰어난 성능의 엔진으로 Pratt & Whitney 2,000 엔진을 채택했는데, 이것은 F4UP-47에서 쓰이는 엔진이었다.

1942년 10월 4일, 드디어 최초의 헬캣 1호가 미항모 essex호에 배치된 미해군 VF-9에 제공 되었다. 1943년 8월 중순에는 미항모 요크타운, 인디펜던스, 엑세스호에 탑제되어 공중전 임무에 실전 투입된다.

핼캣기의 첫 공중전은 1943년 8월 31일에 벌어졌는데, VF-5와 VF-9 비행대가 마르쿠스 섬을 공격함으로서 이루어졌다. 거기서 약 90기의 핼캣기들이 약 50기의 제로기들과 공중전을 벌였는데, 28기의 제로기가 격추되었고 핼캣의 피해는 단 2기 뿐이었다.

 

핼캣의 명성을 올린 가장 큰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위대한 마리아나스의 칠면조 사냥" ("the Great Marianas Turkey Shoot")이라고 기억되는 공중전이었다. 즉 필리핀해 상공에서 벌어진 이 공중전을 통해 렉싱턴, 엑세스, 벙커힐호에서 출격한 핼캣기들은 320에서 345기의 일본 함제기들을 공중에서 격추시킨 것이다. 이때 미해군 전투기의 피해는 단지 30대에 불과했다.

 

이런 전과로 볼때 F6F hellcat기는 분명히 제로기들에 우위에 있었다. 같은 고도에서 약 35mph정도 속도가 높았고, 상승력에서도 제로기를 압도했다. 15,000 피트(4500 미터)이상에서는 더욱 우세해서, 일본 제로기가 급강하해 공격해 오더라도, 그 속도의 한계가 450 mph 정도여서 핼캣은 더 빠른 속도로 탈출이 가능했다. 또 이런 높은 속도가 작용하는 급강하후 공중전에서 핼캣은 제로 보다 더 날카로운 선회를 할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높은 속도를 받은 제로기의 에일러론은 거의 동작하지 않아 롤 속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핼캣의 파일롯들은 공중전 손상을 흡수해 내는 핼캣의 멧집을 믿고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손상을 입고도 항모로 곧잘 돌아왔다.

 

핼캣이 F4U 콜세어보다 몇가지 비행특성에서 떨어졌지만, 많은 미해군 조종사들은 이 기종을 통해 에이스가 되었다. 특히 맥캠벨(34기 격추로 미해군 제 1위 에이스)같은 조종사는 핼캣이 일본 전투기와 공중전에서 한 수 위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미군기 중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기종이며(12,000대), 성능이 가장 뛰어난 전투기로 평가되었다.

                                                                Reference : navy fighter of US navy    번역 : 홈지기
 
 

 
 
 
 
헬 캣의 일러스트, 제가 보기엔 와일드 캣과 거의 유사한데, 조종사들은 와일드캣 보다는 핼캣의 생김새를 더 좋아했다고들하죠. 타면, 폼나는 걸 좋아하는 건 역시 조종사들도 마찬가지였나 보군요.
 
 
 
 
 핼캣기의 위용... 와일드 캣보다 좀더 크고 튼튼하고 더 빠르고 더 높이 날고...헥헥

 

 

 

 

 

 

 

잘보고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