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이탈리아-

불량감자 2010. 1. 15. 05:10

 

◇ Fiat CR.32 / CR.42


 

* 복엽기의 시대

 

1920년대부터 1930년대초까지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영국등의 항공기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의 항공기술을 자랑하면서 항공산업의 항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 당시 이탈리아의 항공산업을 주도하고 있었던 거대기업 피아뜨사는 우수한 전투기들을 계속 생산해내면서 이탈리아 공군이 세계수준의 항공기를 보유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당시는 1차대전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을 때여서 어느나라에서도 전투기하면 역시 안정성이 좋고 공중 기동성이 우수한 복엽기들로 생산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었다. 이러한 복엽기의 황금시대에 이탈리아공군의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손꼽히는 기체들이 CR.32와 그 후신인 CR.42일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이탈리아 공군기 시리즈.... 이번회는 피아뜨사의 걸작 복엽기 CR32와 복엽기시대의 종말을 상징했던 CR.42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1920년대와 30년대초까지 계속 우수한 전투기를 계속 개발하면서 명성을 얻고 있었던 피아뜨사의 수석설계사 첼레스띠노 로사뗄리는 기존의 CR.27, 30등의 그가 개발한 전투기들을 확실하게 능가하는 신형 전투기의 설계를 결심했다. 그는 새로운 전투기가 기존의 복엽기들에 비해서 보다 작으면서도 기동성이 우수한 기체로 설계했는데 설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1933년 4월 원형기가 날아오를 수 있었으며 이 원형기는 최고 속도 시속 374km로 속도도 빨랐고 고도 9000미터 상공까지 날아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피아뜨사의 기체들을 선호하고 있었던 이탈리아공군이 이 기종의 양산을 허가하면서 CR.32라는 제식명칭하에 순조롭게 생산이 진행되었다.

 

[ 1930년대 초에는 세계수준의 전투기로 인정받았던 피아뜨 CR.32 ]

 

하지만 기체의 무장은 비커스 기관총 2정뿐으로 여전히 1차대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CR.32에 장비된 500마력을 낼 수 있었던 피아뜨사의 A.30RA 수냉식 엔진은 이 기체의 공기역학적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이 기체는 기동성면에 있어서는 매우 뛰어나서 공중곡예 수준의 비행이 가능했고 이탈리아공군이 30년대초 세계최초의 곡예비행팀을 편성해서 운영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당시 이탈리아는 제 4 비행단 휘하에 10기의 CR.32로 구성된 곡예비행팀을 운영했는데 이들이 펼치는 화려한 공중쇼는 CR.32의 높은 기동성으로 인해 더욱 빛나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남미와 유럽각국에 이 곡예팀을 파견하여 에어쇼를 벌임으로서 세계각국에 이탈리아 항공기술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항공기의 해외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 1930대를 풍미했던 이탈리아의 곡예비행팀, CR.32의 기동성이 고난이도의 곡예비행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복엽기들은 세계적으로도 평판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당시 이 신형기들은 일본의 침략으로 고전하고 있었던 중국이 구매의사를 밝히면서 최초로 16기가 중국으로 인도될 수 있었다. 중국에 수출된 CR.32는 당시 중국이 사용하던 미국제 복엽기 커티스 호크보다 우수한 성능을 과시했지만 중국공군 조종사들의 낮은 수준과 CR.32가 필요로하는 고옥탄가의 연료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일본기들과의 전투에서는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 수십기씩의 CR.32를 수입했으며 이들은 이 기종을 주력 전투기로 사용하다가 1930년대 말에는 고속 단엽기들의 인수에 대비한 훈련기로 전용해서 사용했다. CR.32는 야전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개량형들이 생산되었는데 이중에서도 주익에 기관총 2정을 추가로 장착한 CR.32bis형이 가장 발전적인 형이었다. 무장이 강화된 CR.32bis는 중량증가로 공중기동성에서는 약간 손해를 봤지만 그 강력한 화력으로 조종사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 스페인 내전 

 

아마도 CR.32가 가장 많이 실전에 사용된 나라는 스페인일 것이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당시 프랑코 총통이 이끌던 국민당군은 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았으며 특히 이탈리아의 지원하에 CR.32를 300대이상 도입하여 운용하고 있었는데, 이타리아공군에서 직접 지원받은 기체와 스페인에서 면허생산한 기체들이 혼용되고 있었다. 이로서 국민당군이 보유했던 세계각국의 다양한 기체들중에서도 단연 CR.32가 국민당군의 공중전력의 중핵을 이루게 되었다.

 

[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이탈리아공군의 CR.32 ]

 

초기에 CR.32는 공화당군의 프랑스제 뉴포트 52 전투기들이나 드와땡 371과 같은 전투기들을 압도하면서 국민당군이 공화당군을 물리치면서 공중우세를 확보하는데 큰 공로를 세우고 있었다. 실제 이 CR.32에는 스페인 국민당군의 조종사들보다는 이탈리아 파견군의 조종사들이 더 많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당시 이탈리아 조종사들의 숙련도가 높아 쉽게 공중우세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독일공군이 파견한 콘돌군단의 He51이나 Ar68과 같은 전투기들도 훌륭한 조종사들과 함께 공화당군을 상대로 크게 활약하고 있어서 스페인 내전의 초기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복엽기들이 단연 돗보였다. 특히 CR.32는 이들 독일전투기들에 비해서도 기동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더 좋았다고 한다.

 

 

[ 스페인 국민당군 도색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공군의 CR.32 ]

 

그러나 소련이 신예전투기인 I-15와 I-16을 급거 투입하면서 전투의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소련 조종사들이 탑승한 복엽전투기 I-15는 기동성에서 CR.32와 대등한 성능을 과시했으며 새로운 단엽전투기인 I-16은 그 특유의 스피드와 일격이탈전술로 이탈리아와 독일의 조종사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되자 독일 콘돌군단은 이들 기체의 등장에 큰 위기를 느끼게되고 결국 아끼고 있던 최신예 전투기인 Bf109를 급거 스페인 상공에 투입하면서 다시 일방적인 공중우세를 얻어낼 수가 있었다. 반면 이탈리아 공군은 독일공군의 Bf109 전투기들이 상공을 장악하면서 다시 공중우세가 국민당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음에도 Bf109와 같은 새로운 단엽전투기의 개발에 별다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기간동안에 이탈리아공군의 CR.32 조종사들은 공화당군 전투기들을 상대로 3:1의 높은 격추교환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룩한 전과에 스스로 만족하고 말았던 것이다. 스페인 내전의 결과 이탈리아공군은 그들이 독일공군에 절대 뒤지지 않는 수준에 올라있다고 믿게 되었다.

 

[ 스페인 내전에서 큰 성과를 올린 이탈리아 조종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엽전투기의 가능성을 놓치고 말았다. ]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탈리아는 스페인내전을 통해서 미래의 전장에서 활약하게될 주역인 최신 단엽전투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들의 개발시점을 충분히 앞당길 수 있었음에도 이를 놓치고마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분명 이탈리아공군의 CR.32는 복엽기의 시대에는 세계최고수준의 훌륭한 전투기였지만, 이미 세계적인 흐름은 고속 단엽전투기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공군은 더 이상 복엽기를 개발하지 말고 단엽기의 개발에 최선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뜨사는 CR.32를 더욱 강화한 최신 복엽전투기 CR.42를 개발하는데 또다시 많은 투자를 하게되는데 이것은 상당히 아쉬운 결정이었다.

 

Fiat CR.32

엔진: 피아트 A.30 RA 수냉식 직렬엔진 (500마력)

전폭: 9.5m

전장: 7.45m

전고: 2.63m

기체중량: 1325kg

최대중량: 1865kg

최대속도: 375km/h (고도 3000m)

최대고도: 8800m

항속거리: 660km

무장: 7.7mm 비커 기관총 2정 (기수)

 

여하간 CR.32는 총 1180기나 생산되었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신예기들이 등장한 이후에도 지상공격기나 관측기, 훈련기등으로 전용되어 이탈리아공군에서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수가 생산되어 사용되었던데다가 이탈리아공군이 주력항공기들의 세대교체 타이밍을 놓치면서 이미 일선에서 물러났어야할 1940년 9월의 북아프리카 침공 직전에 이르러서도 177기나되는 CR.32가 이탈리아공군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최신 전투기로 개발되어 도입된 MC.200 사에따가 겨우 144기였던 것에 비하여볼 때 매우 많은 수였다. 하지만 이탈리아공군은 이를 대체할 신예기의 생산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1941년말에 이르러서야 CR.32를 은퇴시킬 수 있었다.

 

* CR.32 일러스트 *

전형적인 이탈리아공군 도색을 하고 있는 CR.32, 안젤로 블리오쮜 대위의 기체로서

수냉식 엔진 채용에 따른 기수의 날렵한 모양을 잘 보여준다.

 

스페인 내전에 파견되어 활약했던 이탈리아공군의 CR.32

흰동체와 러더에 표기된 X자 마크는 스페인 국민당군의  기체들이 주로 사용하던 도색이다.

 

이 기체 역시 스페인 내전당시의 CR.32로서 이탈리아에서 급히 투입된 상태로

도색을 미처 변경하지 못하고 러더에만 국적표시를 변경한 채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분명 CR.32는 전성기에는 세계최고 수준의 훌륭한 전투기였으며 이탈리아의 항공기술력을 세계에 알렸음에 틀림 없지만 적절한 은퇴시기를 놓치면서 구식 고물딱지 취급을 받으면서도 계속 비행해야 했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던 것이다.

 

* CR.42 -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운의 기체

 

CR.42에게는 항상 최고의 복엽전투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CR.42는 이탈리아공군이 현대적인 공군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예 만들어지지도 말았어야 할 전투기였다. 1937년부터 이탈리아공군은 마끼와 피아뜨, 까프로니, 레지아네등의 쟁쟁한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이탈리아공군의 차세대를 담당할 저익단엽 전투기의 설계를 요구한 상태였다. 그런데 당시 공군내부에 영향력이 컸던 피아뜨사가 공군 수뇌부에 로비를 해서 이런 최신 전투기들이 실제로 전력화 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런 전투기들이 생산되더라도 과연 그 능력이 얼마나 될지를 보장할 수 없으며, 새로운 단엽기들에 조종사들을 적응시키기 위해서 이에 걸맞는 과도기적인 기체가 같이 생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 주장이 이탈리아공군내에서 받아들여지면서 피아뜨사는 CR.32를 더욱 발전시켜 차세대 전투기의 도입에 대비할 과도기의 기체를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 결정이야말로 눈앞의 이익에 급급했던 피아뜨사의 금품로비와 이에 넘어간 썩어빠진 관료들의 무책임함의 합작품이었다.

 

 

[ 성능에서는 최고의 복엽기였으나 결국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CR.42 팔꼬 ]

 

그리고 이 결정으로 인해 하나로 똘똘 뭉쳐야했던 이탈리아 항공업체의 생산력이 분산되 버리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이탈리아공군은 시대에 걸맞는 단엽전투기의 개발 및 생산이라는 최대의 과제를 달성하기위해서 온힘을 쏟아부어 전력투구했어야 하는 상황에서 커다란 실수를 하고만 것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마끼사의 신예 단엽전투기 MC.200의 원형기가 처녀비행을 한 것이 1937년 12월이었는데도 CR.42의 설계는 오히려 더 늦은 1938년 1월에 시작되었을 정도였으며, 이 무렵 독일은 Bf109라는 무서운 전투기를 날리고 있었으며 영국에서도 미래를 담당하게될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가 비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 스웨덴 공군에 수출된 CR.42, 스웨덴은 이 기체를 1950년대까지 운용했다. ]

 

물론 기존의 CR.32를 더욱 개량시키는 방법으로 생산했기 때문에 제작기간이 단축되어 피아뜨사는 불과 4개월만인 1938년 5월 23일에 원형기를 비행시킬 수 있었다. 당시 피아뜨사는 CR.32를 마지막으로 수냉식 엔진의 시대를 마감하기로 했는데, 이것은 공냉식 엔진이 전투손상에 강하고 신뢰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인한 것이었다. 결국 피아뜨사의 A.74 RC.14 공냉식 성형엔진을 장착한 이 원형기는 하늘에 날아오르자마자 고도 15000피트에서 시속 440km를 기록하면서 기존의 CR.32에 비해서 더욱 빠른 속도를 과시했다. 비행특성도 좋아서 CR.32에 익숙했던 조종사들은 쉽게 CR.42를 조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아뜨사는 더 이상의 고성능 엔진 개발에는 계속 실패하고 있어서 결국 MC.200이나 G.50등의 차세대 전투기들이 CR.42와 같은 840마력의 A.74 RC.38 공냉식 성형엔진을 장착하게 되 버렸는데 이 엔진은 CR.42 후기형들에도 사용되었으며 CR.42는 이런 차기 전투기들이 양산되고 있을 때고 계속 생산되었기 때문에 결국 차기 전투기들에게 장착되어야 했던 소중한 엔진을 그나마 CR.42가 거의 1/3가까이 사용해 버리게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자원의 낭비였던 것이다.

 

[ 실전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한 CR.42 ]

 

아직 마끼사의 신예기가 양산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공군은 이 기체의 성능에 그럭저럭 만족한 나머지 이탈리아어로 '매'라는 의미의 '팔꼬'라는 별명을 부여한후 양산을 허가하고 1939년 제 53 비행대대에 최초로 이 기체를 배치시켰으며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300기 이상이 속속 배치되어 수적으로도 이탈리아공군기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배치되어 수적인 주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게다가 기존에 CR.32를 운용하면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헝가리와 스웨덴, 벨기에 등에서 200기 이상을 주문해옴에 따라 피아뜨사는 환호성을 울리며 CR.42의 생산을 계속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피아뜨사에게는 부를 가져다 주었을지는 모르나 신예 단엽전투기 G.50의 개발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게되어, 결국 차세대 전투기 경쟁에서 마끼사의 MC.200에 뒤쳐지게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 전장의 CR.42

 

결국 CR.42는 1940년에 이르러서 이탈리아 공군내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최일선의 전장에 가장 많은수의 일선 전투기로 사용되었다. 1940년 6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이탈리아도 뒤늦게 추축동맹으로 참전했는데 이 당시 CR.42는 프랑스 공군과 전투를 경험했는데, 여기서 프랑스의 MS406, 블로 MB150 과 같은 단엽기들과의 공중전에서 10여기를 격추시키고 10여기를 손실하는 거의 대등한 전과를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히 과장된 기록임에 트림없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독일공군을 지원하기 BR.20폭격기와 CR.42 전투기로 이루어진 부대를 편성해 벨기에로 보냈고 이들이 영국본토 항공전 후반부에 일부 참가해 영국공군과 대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분히 독일과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작은 일에 불과했으며 이탈리아의 참전에 대해서는 독일공군측에서도 별로 달까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foxmouse: 영국본토 항공전 관련 내용은 후에 항공전사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놀랍게도 이탈리아공군은 일부 전투기부대를 영국본토 항공전에 투입하고 있었다. 바로 이부대가

1940년 6월 벨기에에 파견된 이탈리아공군의 CR.42 전투기대로서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전했었다. ]

 

이탈리아가 본격적으로 북아프리카로 진출하기로하면서 이탈리아 육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북아프리카에 파견된 기체들도 CR.42였는데 이 북아프리카에서의 전투는 시대에 뒤떨어진 복엽기가 현대 공중전에서 과연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아프리카의 이탈리아공군은 총 36기의 CR.42를 이용해서 1940년 8월에는 이집트의 영국공군기들과 산발적인 공중전을 벌였으며 이 한달동안의 기간에는 수적인 우위를 이용해 공중우세를 얻었다고 한다.

[ 리비아의 사막에서 작전중인 CR.32 ]

 

이후 1940년 9월부터 본격적인 이집트 침공작전이 시작되면서 총 87기의 CR.42 전투기들이 북아프리카로 파견되었지만 이 전투기들은 영국사막공군이 새롭게 사용하기 시작한 고속 단엽전투기인 허리케인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이탈리아군이 개전후 3달만에 일방적인 패배를 거듭하면서 급속히 무너지자 전투기의 정비와 보급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영국공군기들에게 연일 일방적으로 격추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1941년 1월 27일 이탈리아군의 몰락시점에 이르러서는 총 87기의 CR.42기가 모두 손실되는 재앙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런 결과는 이탈리아공군이 온힘을 쏟아부어며 영국공군과 맞서고 있었던 몰타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 공군은 압도적인 수적우세를 이용해 보잘것없는 영국공군을 괴멸시키려 했지만 초기에 투입된 CR.42와 최신 전투기 MC.200 전투기들이 몰타섬의 글로스터 글라디에이터 전투기를 몰아내고 일방적으로 공중우세를 확보했음에도 몰타는 연일 계속되는 엄청난 폭격을 견디고 살아남았으며 결국 몰타섬에 허리케인 전투기들이 도착하면서 이탈리아 공군의 공중우세는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최초의 1년간 영국공군은 몰타상공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CR.42를 무려 180기 이상이나 격추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영국공군이 전과를 부풀렸다고는해도 이탈리아공군의 CR.42가 현대 공중전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 사막에서 최후를 맞이한 CR.42 ]

 

하지만 이탈리아공군은 다른 신예기들의 생산량이 너무나 부족해서 CR.42를 계속 생산해 전투기, 지상공격기, 관측기등의 다양한 용도로 야전에서 운용해야 했으며 결국 이탈리아가 항복하게되는 1943년 9월까지도 CR.42는 계속 생산되어 그 생산량이 1782기에 이르러 이탈리아가 전쟁중에 생산한 전체 항공기들중 단연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Fiat CR.42 Falco

엔진: 피아트 A.74 R1C (840마력)

전폭: 9.7m

전장: 8.27m

전고: 3.59m

기체중량: 1782kg

최대중량: 2298kg

최대속도: 440km/h (고도 3000m)

최대고도: 10200m

항속거리: 775km

무장: 12.7mm 기관총 2정 (기수) + 동체하부에 320kg 폭탄 장착가능

 

하지만 아무리 CR.42의 수요가 전장에서 필요했다고 해도 마끼사가 MC.202의 생산을 위해서 MC.200의 생산을 1942년에 중단했던 것에 비교해 본다면, CR.42가 이탈리아가 1943년 9월 항복할 때 까지도 계속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이탈리아 항공산업이 처해있었던 총체적인 난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무렵 독일은 제트전투기인 Me262의 시험비행을 이미 마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 CR.42 일러스트 *

검은색으로 도색된 CR.42 공냉식 성형엔진의 채용으로 기수의 형태가 CR.32에 비해서 크게 바뀌었으나 그외의 디자인은 전형적인 복엽전투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스웨덴 왕립공군에 수출된 CR.42 - 2차대전의 전화를 피할 수 있었던 스웨덴은 이 기체를 1950년대 까지도 운용했다.

 

벨기에 공군의 국적마크를 도색한 CR.42 - 전쟁전에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기체로서 벨기에공군 조종사들은 이 기체로 독일공군의 침공에 맞섰으나 Bf109E에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치면서

 

분명 CR.32는 1930년대에는 세계 최고수준의 전투기로서 이탈리아의 자랑거리였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나 이탈리아공군은 여기서 복엽기의 시대를 마감했어야 했다. 만일 그랬다면 피아뜨사는 현재처럼 자동차로 유명한 회사가 아니라 역사에 길이남을 항공기 제작사로서 명성을 더 얻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아뜨사와 이탈리아공군의 잘못된 선택으로 태어난 CR.42라는 애물단지는 이탈리아공군 전체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CR.42는 분명 전장에서 많은 활약을 하면서 전장의 사역마 노릇을 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CR.42로 인해서 복엽기의 시대를 빨리 마감하지 못했던 이탈리아공군은 잘못된 판단에 따른 대가를 톡톡히 치루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