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이탈리아-

불량감자 2010. 1. 15. 05:29

 

◇ Macchi MC200 Saetta ◇


 

foxmouse: 어느덧 불타는 하늘이 개장한지 4주년이 다가오고 있네요. 그동안 계속 미루어온 이탈리아 항공기들의 리뷰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2차대전에서의 이탈리아군 하면 누구나 무능한 독재자 무솔리니와 제대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전쟁에 뛰어들어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한채 패주를 거듭한 오합지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런 이탈리아에도 뛰어난 항공기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었으며 비록 이 항공기들은 그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의 항공기술이 타 유럽제국에 비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탈리아 항공기 리뷰의 첫 번째로는 이탈리아 공군 최초의 근대적 전투기이자 전쟁초기에 조종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마끼사의 기체들로 시작하겠습니다.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쥬피터의 번개 이탈리아 하늘에 빛나다

 

영국에 레지널드 미첼이 있고 독일에 빌리 메서슈미트가 있었다면 이탈리아에는 천재 항공기 제작자 마리오 까스똘디 박사가 있었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se...이번에는 마리오 까스똘디의 첫 번째 전투기이자 이탈리아공군 최초의 주력 단엽 전투기 MC.200에 대해서 알아도록 하자.

 

영국의 명전투기 스핏화이어를 소개할 때 그 근원으로서 유명한 슈나이더컵 스피드 레이싱대회를 휩쓸었던 슈퍼마린사의 SB6 수상기가 언급되는데, 이 대회는 사실 이탈리아와도 큰 인연이 있는 대회였다. 이탈리아의 마끼항공사 (Aeronautica Macchi; 아에로노띠카 마끼)는 2회대회였던 1926년에 자사가 제작한 MC39 수상기를 파견해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슈퍼마린사보다 먼저 이 트로피를 거머쥔 적이 있을 정도로 1930년대까지는 유럽에서도 일류급의 항공기술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영국의 슈퍼마린사의 SB 수상기가 1927년부터 31년까지 3회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규정에 따라서 이 트로피를 영구히 차지하게되는데 이동안 마키사도 계속 새로운 수상기를 개발해서 참가시켰지만 1929년 MC59 수상기가 분전했음에도 아쉽게 간발의 차이로 2위에 머무르는 등 속도경쟁에서는 어느정도 좋은 성과를 계속 올리고 있었다.

 

[ 1933, 34년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항공기였던 MC72 수상기, 마리오 카스똘디의 걸작중 하나로 슈나이더컵 경속대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 기체의 개발기술이 마끼사의 전투기들로 이어지게 된다. ]

 

하지만 슈나이더 트로피는 3연속 우승을한 영국의 슈퍼마린사에 넘겨줬음에도 1934년의 마지막 슈나이더컵 경속대회에서는 마끼사의 항공기 설계사 마리오 카스똘디가 디자인한 MC79 수상기를 조종했던 프란체스코 아젤로가 시속 709km라는 놀라운 속도를 기록함으로써 SB6 수상기가 이전 대회에서 수립했던 속도 신기록 시속 654km를 50km이상이나 넘어서는 새로운 수상기 속도 신기록을 수립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기록은 수상기가 수립한 최고 속도로서 이후 50년간이나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열강들이 군비강화에 힘을 쓰게 되면서 속도경쟁을 통한 수상기의 황금시대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으며 1930년대부터 유럽 각국은 장차 미래전장에서 활약하게 될 고성능의 단좌 단엽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경쟁적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마끼사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 스핏화이어의 탄생에 SB 시리즈의 제작에서 쌓인 노하우가 많이 들어갔던 것처럼 마리오 까스똘디가 이끌고 있던 마끼사의 설계팀들도 그동안 수상기 속도경쟁에서 쌓아온 기술력을 이용해서 이탈리아 공군의 차세대를 담당할 새로운 전투기의 제작에 순조롭게 뛰어들 수 있었다. 그는 미래의 전장에서는 빠른속도를 가진 전금속제 단좌전투기가 주역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으며 그의 설계팀을 독려하여 즉시 새로운 전투기의 설계작업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모습을 드러낸 것이 MC.200으로서 1937년 12월 24일 최초로 원형기가 공개되었다.

 

이 신형기는 저익단엽기로서 조종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금속으로 제작되었으며 당시로서는 혁명적으로 주강착장치와 뒷바퀴가 모두 인입되도록 되어 있었다. (전쟁에 시작된 후에는 뒷바퀴의 경우 인입에 사용할 부품과 제작 시간의 부족으로 고정식으로 변경되게 된다.)

 

[ 공장에서 막 출고된 MC200 초기분량이다. 조종사의 시계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

 

또한 일선 조종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조종석도 동체선보다 높은 위치로 설계되어 전투시야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영국이나 독일의 신예기들이 완전 폐쇄식 조종석을 채택한 것과는 달리 MC.200의 조종석은 몇가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서 폐쇄식으로 제작되지 못하고 조종사의 머리위쪽 창이 개방되어 있었는데 이로인해 고공비행시는 조종사가 추위에 노출될 우려가 있었으며, 기체의 성능을 최고로 발휘하는데 꼭 필요한 1000마력급의 고성능 엔진이 없어 이 기체의 동력은 피아트사가 제작한 840마력의 A.74 RC.38공냉식 성형엔진을 장착하고 있었다. 신형기답게 플랩은 유압으로 작동되며 이착륙시에는 보조익과 연동되도록 설계되었다. 이 원형기는 공군조종사들이 직접 참가한 시험비행에서 최고속도 시속 507km를 기록했으며 고도 292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이무렵 이탈리아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매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끼사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까프로니, 레지아네, 피아뜨사등의 유력 항공업체들도 사운을 걸고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뛰어든 상태였는데 마끼사의 MC.200은 이탈리아공군에 의해 엄격하게 실시된 성능비교 테스트에서 경쟁기인 까프로니의 F.5, 레지아네의 Re.2000, 피아뜨의 G.50을 모두 제치고 당당히 최우수 항공기로 선정됨으로서 번개 (고대신화에서 쥬피터가 사용했던 무기)라는 뜻의 '사에따'라는 별칭이 부여되고, 1938년부터는 양산이 허가되어 마끼사가 먼저 주력전투기의 발주를 따내게 되었다.

 

 

[ 주력전투기 선정과정에서 경쟁기중 하나였던 피아뜨 G.50과의 비교사진,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마끼사와 피아뜨사 둘중 한쪽이 지나친 경쟁에 치중한 나머지 다른 쪽의 설계를 모방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이런 유사성은 두 회사의 차기 전투기들에서도 계속 나타나게 된다. ]

 

전장의 사에따

 

그러나 마리오 까스똘디를 가장 괴롭혔던 문제는 전투기 설계 초기부터 이 차세대 전투기에 걸맞는 이탈리아제 고성능 엔진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MC.200가 장착하고 있었던 피아트사의 840마력급 성형엔진은 이탈리아제로는 가장 우수한 것이었지만, 경쟁사인 피아뜨의 엔진을 쓴다는 찜찜함이 있었던 데다가 비슷한 시기에 주력전투기로 선정되어 생산되기 시작한 영국의 허리케인, 독일의 Bf 109에 장착어있는 1000마력 이상의 머린 엔진이나 벤쯔엔진의 성능에는 훨씬 못미치고 있었는데, 이것이 MC.200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엔진출력이 모자라 기체의 고정무장도 기수에 장착된 12.7mm 기관총 2정에 국한되어 펀치력에서도 차세대 전투기로는 충분치 못한 상태였다.

 

 

[ 세련된 디자인의 동체에 비해 공냉식 성형엔진을 장착한 기수가 영 어색해 보인다. ]

 

Mc.200의 성능은 비슷한 시기에 설계와 양산이 시작된 영국의 허리케인과 주로 비교하게 되는데 양산기의 속도와 기동성에서는 허리케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었지만 화력면에서 큰 차이가 나서 허리케인이 장착한 8정의 7.7mm 기관총은 비록 기관총의 구경은 작지만 발사속도가 빠르고 기총의 수가 4배나 많아 같은 시간동안 사격하더라도 MC.200보다 4배이상이나 많은 탄환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해보면 영국의 허리케인이 빠른 실전배치를 위해서 철제 프레임에 캔버스를 사용한 구식 기술을 사용했던데 반해서 MC.200은 조종면만이 캔버스를 사용했을뿐 전금속제 외판으로 제작되어 오히려 허리케인보다 앞선 기체 제작기술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도있다. 그러나 이런 기체 설계기술 자체보다는 비슷한 설계로 제작된 경우에 전투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의 성능이 전투기의 성능에 더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MC.200은 부족한 출력의 엔진으로 인해 허리케인에 비해서 성능이 약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 몰타 방공전에 투입된 MC.200이 기수에 집중된 2정의 12.7mm 기관총에 재무장을 받고 있다. ]

 

하지만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가 2차대전에 빠져들 무렵에는 당시 일선부대에 공급된 144기의 MC.200 사에따가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이탈리아 공군의 주력을 이루고 있었으며 전체적인 이탈리아 공군기들의 숫자가 전장의 수요에 비해서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에 생산되는 족족 전선에 투입되어 활약했다.

 

Macchi MC.200 Saetta

엔진: 피아뜨 A.74 RC.38 (840마력)

전폭: 10.68m

전장: 8.19m

전고: 3.51m

기체중량: 1.178kg

최대중량: 2,208kg

최대속도: 512km/h (고도 5,000m)

최대고도: 8750m

항속거리: 870km

무장:12.7mm 기관총 2정 (기수)

 

MC.200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대규모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탈리아공군이 가장 많이 출격했다고 하는 1940년초의 몰타 방공전이었으며 여기에서 이탈리아의 S.79 폭격기를 호위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하면서 부터였다. 이에따라 몰타를 방어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영국공군과 충돌이 시작되어 글로스터 글라디에이터, 허리케인등과 같은 영국공군기들과 대결했다. 이후 1941년에는 북아프리카에 파견된 이탈리아군의 엄호를 위해 374 전투비행대대가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로 파견되었으며 이후에는 153 비행단이 MC.200을 장비하고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연합군에 맞섰다. 그러나 몰타 방공전이후에는 모든 전장에서 이탈리아공군이 수적으로 연합군에 항상 열세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MC.200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채 계속 소모되었다.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공군의 Bf 110과 함께 주기하고 있는 MC.200 ]

 

이무렵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서 사에따와 교전해본 영국 조종사들은 이 전투기가 P-40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연합군 주력전투기에 비해서는 대등하거나 약간 떨어지는 성능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기동성은 좋은편이나 속도가 느리고 화력이 빈약해서 대부분의 경우 P-40이나 허리케인이 더 우세했으며 스핏화이어과 같은 고성능 전투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 동부전선의 초원에 주기된 MC.200, 개방식 조종석을 보호하기 위해서 커버가 덮여있다. ]

 

하지만 독소전의 개전에 따라 동부전선에 파견되어 소련군에 맞서 싸웠던 제 21 전투비행단 22 전투비행대대의 조종사들은 동부전선의 가혹한 상황과 나쁜 기상에도 불구하고 총 6361회의 출격횟수를 기록하며 선전하여 소련공군기 88기를 격추했으며 손실은 단지 15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큰 전과를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러시아의 겨울이 찾아오자 MC.200의 개방된 조종석은 동부전선을 얼어붙게 만든 혹한의 날씨에서는 큰 약점이되어 조종사들을 뼈속에 사무치는 추위에 노출시켜 많은 조종사들이 동상을 입고 전열에서 이탈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강추위에 엔진오일이 얼어붙어 시동이 아예 걸리지 않거나 유압 펌프가 굳어 버려 접혀들어간 강착장치가 펴지지 않아 동체착륙을 해야하는 사고도 빈발해 조종사들이 큰 고초를 겪었고 결국 전투 손실에 비해서 비전투손실이 엄청나게 증가했으며, 소련군의 반격으로 전황이 급속도로 불리해지게되자 동부전선의 이탈리아공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943년 1월 17일의 출격을 마지막으로 생존기들을 모두 이탈리아 본토로 후퇴시켰다.

 

 

[ 동부전선의 이탈리아공군 병사들이 연료를 운반하는 장면, 이탈리아공군은 독일공군에 비해 준비가 부족해 초기부터 연료부족과 정비불량에 시달렸다. MC.200의 카울링 형태를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전쟁이 수세로 몰리기 시작한 1943년부터는 MC.200은 주로 이탈리아 방어전에 투입되어 연합군의 남부 이탈리아 상륙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출격했으나 터무니없는 수적 열세속에 많은 MC.200이 다른 이탈리아 전투기들과 함께 희생되었고 일부 생존기들의 조종사들은 이탈리아가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후 연합군으로 전향하여 과거의 동맹국이던 독일공군과 싸웠다고 한다.

 

 

MC.200은 전장의 필요에 따라 7.7mm 기관총 2정을 주익에 장착하는등 여러 가지 개량형이 제작되었지만 대부분은 소량생산에 그쳐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크게 2종의 개량형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이것은 300kg 폭탄 장착이 가능한 전폭기형인 CB형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사막의 모래먼지로부터 엔진을 보호하기 위한 방진필터를 장착한 열대형인 AS형이 있었다. 그리고 MC.200의 마지막 개량형으로 MC.200의 숙원이던 고성능 엔진인 980마력의 피아트 A.76 엔진을 장비한 MC.201이 개발되고 있었으나 이 기종은 몇 기만이 생산되어 테스를 받다가 벤쯔 엔진을 장착한 차기 전투기 MC.202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개발이 중지되었다.

 

 

 

 

[ 전후 리비아의 뱅가지에서 미군에 노획되어 현재 미공군 박물관에 전시중인 MC.200 ]

 

 

* MC.200 일러스트 *

 

1942년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던 제 21 전투비행단 22 전투비행대대 소속의 기체이다.

동부전선을 의미하는 노란색 기수와 동체의 노란색띠가 특징이다.

 

1941년 3월 알바니아에 주둔중이던 제 22 전투비행단 371 전투비행대대 소속의 MC.200,

이 비행대는 바퀴벌래를 대대마크로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본 기는 MC.200의 변형중 하나로

조종석이 완전히 밀폐식으로 개량되었으며 후방시야확보를 위해 방탄판이 철거되고 조종석 후방도

유리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항공기 생산능력의 한계로 인해서 생산기수는 소수에 불과했다.

 

1942년 이탈리아 본토 팔레르모에 주둔하고 있던 제 7 전투비행단 54 비행대대소속의

MC.200, 조종석 아래의 호랑이마크가 부대의 상징이다.

 

* 마치면서

 

MC.200 사에따는 1943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총 1153기가 생산되었으며 이중 1000기 이상이 전장에서 손실될 정도로 전쟁초기부터 중반이후까지 이탈리아군이 싸웠던 모든 전선에서 큰 역할을 했던 전투기였다. 비록 엔진 성능의 부족으로 그 잠재력을 100%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이 전투기로 인해서 이탈리아 공군은 하늘에 날아올라 연합군과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남들의 평가가 어떠했든간에 이탈리아인들에게 사에따는 분명 길이 기억될 명전투기임에 틀림없다.


 

 

 

 Macchi

 

 
이탈리아의 종마.... 마키 전투기 씨리즈
 
성능에 비해 빛을 못본 전투기
 
 
 
마키 C 200(macchi C. 200)의 별명은 이탈리아어로 "Saetta"로 "깃털달린 화살"을 뜻하는 말이다. 마키 200기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37년말이었는데, 이시기는 복엽기시대에서 단엽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로, 이전의 복엽기들이 보통, 목재 프레임에 캔버스천을 덮어 씌워 만들었던 것에 반해, 이 기종은 이탈리아 항공기중 현대적인 감각의 첫발을 내딛는 금속제 단엽 전투기였다.
 
 
 
마키 200.... 카울링 부분이 특이하게 큰 것을 볼 수 있다
 
 
동시대 이탈리아의 다른 기종들에 비해, 생산해 내는데, 고도의 기술집약을 요하는 기종이었으며, 민첩성과 조작성이 매우 우수했다. 즉 마키 200은 한마디로 이탈리아의 어떤기종 보다도 재빨랐고, 날렵한 기동을 선보였다. 마키 200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너무 약한 무장과 화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마키 200 전투기의 이륙 모습
 
또 당시로서는 강력한 피아트 엔진을 장착하기는 했으나, 카울링(엔진덮개)부분의 부피가 너무 커서, 결과적으로 최고속도를 저하시키는 결정적인 결함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종을 이용해, 이탈리아의 전투조종사들은 복엽기 보다 한단계 향상된 비행감각에 익숙해 지기 시작했고, 이탈리아가 2차대전에 참전하던 1940년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주된 전투기종이었다. 이차대전 기간중, 마키 200 전투기는 총 1151기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마키 200은 이탈리아가 이차대전에 참전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주된 전투기였다.
 
마키 200 전투기는  그리이스, 북아프리카, 러시아 전선을 비롯해, 이탈리아가 참전한 수많은 전선에서 사용되었지만, 당시 상대국가들이 생산해낸 단엽 전투기와의 대결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처리님 주석 : 200형은 여러가지 버전이 있는데 북아프리카용 버전 as형. 전폭기형인 cb형등이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200형의 최종단계양산기들은 202와 같은 주익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키 200 전투기가 허리케인이나, P-40 심지어는 스피트화이어 보다도 기동성이 탁월했지만, 무장이 너무 약해, 적기를 격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즉 기수 부위에 장착된 두 정의 12.7 mm 기관총만으로는 복엽기들은 몰라도, 적들의 금속제 단엽기를 격추시키기에는 힘들었다. 게다가 속도가 떨어져, 적들에게 선제공격권을 대부분 뺏기는 불리한 상황을 많이 격게 되었다.
 
 

MC 200 사엣타
엔진:A74RC38 공냉 14기통 870HP
치수:전폭 10.6 m, 전장 8.2m
중량:자중 1770 kg, 총중량 2200kg
최대 속도:502km/4500m
상승 시간:3000m/3분 24초
무장:12.7mm×2 (후기형은 7.7m기관총*2 추가)
 
MC 201
엔진:A74RC38 공냉 14기통 870HP (원래 a76사용예정이었음)
치수:전폭 10.6 m, 전장 8.2m
중량:자중 1950 kg, 총중량 2385kg
최대 속도:512km/-m (a76사용시 550km/h)
상승 시간:불명
무장:12.7mm×2

 
 
 
마키 200의 후속버전인 마키 202 (macchi C 202) 전투기는 분명, 이차대전 기간중 쓰인 이탈리아 전투기중 굉장한 성능의기종이었다. 특징적인 외형의 변화로는, 마키 200의 커다란 카울링을 날렵하게 다듬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전투기의 별명은 "Folgore"로 이탈리아어로 "번개"(Lightning)을 뜻하는 말이었다. 사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항공기의 공기 역학적인 디자인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 수준급이었다.
 
 
 
마키 202의 모습... 카울링부분이 개선되었고,
무장과 엔진 성능이 향상되었다.
 
 
(홈지기 주석 : 사실, 이탈리아인들과 우리나라 사람과는 반도인들이라 그런지,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사하고, 국민성이나, 심지어 식생활도 비슷한 점이 많다. 역시 손재주 많은 것도 다르지 않았나 보다. 붉은 돼지의 피코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이탈리아의 엔진생산 능력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소르니는 히틀러에게 부탁해, 독일의 기술적인 자문을 부탁했고, 드디어 독일 다이믈러 벤쯔 엔진이 마키 전투기에 장착되기에 이르렀다. DB 601 엔진이 장착되면서, 마키의 새로운 버전인 마키 202 전투기가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마키 202 비행단의 모습.... 이차대전 기간중 기동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정평을 듣는 스피트화이어에 뒤지지 않는 기동을 가진 뛰어난 전투기였다.
 
처리님 주석 : 참고로 마키시리즈의 계보는 201계와 202계로 나뉘어지지만 201계는 피아트a76엔진의 개발중지와(참고로 200의 엔진은 a74) 202의 고성능으로 말미암아 (당시 201과 202는 200에서 발전한 동시기, 202가 201의 발전형이 아닙니다.) 개발중지됩니다.
 
그리하여 202시리즈가 마키200의 주기종이 되는데 초기에는 독일의 db601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이후 db601을 라이센스 한 RA1000RC41 을 사용하게 됩니다.)
 
202와 200의 사이의 버전 201
 
 
 
참고로 201은 마키사 뿐만이 아니라 브레다,안브로시니에서도 양산이 됩니다. 약 1500기 정도 양산되었습니다
마키기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훌륭한 디자인에, 파워있는 엔진까지 탑재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무장을 얼마나 강화하냐는 것이다. 사실, 하나의 전투기를 두고 볼때, 그 전투기의 무장과 기동성은 저울의 양쪽에 달린 추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즉, 무장을 너무 높여버리면, 기동이 떨어지게 되고, 기동성을 강조하다보면, 자연히 화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후반에 나온 마키 202 전투기부터는 7.7 mm 기관총을 양 날개에 한정씩 장착시켜, 화력면에서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보강되었다. 이제 창공에서 마키 202는 연합군들의 전투기들, 심지어 스피트화이어를 상대해서도 확실한 우위의 공중전을 벌여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게는 불행하게도, 충분한 양의 전투기를 생산해 낼 수 없었고, 뛰어난 이전투기는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잠겨버리게 된다.
 
 
마키 205의 모습... 국적이 ... ^.^
 
 
 
(처리님 주석 : 202의 발전형인 205는 두가지 버전이 있는데 205v벨트로와 205n오리오네입니다.
먼저 벨트로는 202의 기체에 db605의 이탈리아 라이센스판인 RA1050RC58 을 달았습니다. 205v야 말로 200시리즈의 최고봉이라는 이름을 날렸으나 총생산기수가 92기밖에 안되어 별로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후 205v는 이탈리아 공군도 사용하였고 그일부를 1949년 이집트에 매각했습니다.(so 마키200시리즈가 중동전에도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200의 마지막 버전인 205n오리오네는 205v를 중전투기화 한 기종입니다. 205v의 기수연장과 중무장화를 실현, 이탈리아 전투기의 고질적인 문제인 무장문제를 극복하였지만 대형화에 따른 총중량증가로 인해 같은엔진을 사용하는 v형에 비해 성능저하문제가 일어나 원형기 2기로 끝이 납니다.)
 
 
 

MC 202 폴고레
엔진:RA1000RC41 액랭 12 기통 1175HP
치수:전폭 10.6 m, 전장 8.9m
중량:자중 2350 kg, 총중량 3480kg
최대 속도:595km/5000m
상승 시간:4030m/3분 32초
무장:12.7mm×2, 7.7mm×2

 
 
 
 
202의 후속 버속인, 마키 205 (macchi C. 205) 전투기는 이차대전 기간중 만들어진 이탈리아 전투기중 단연 최고라 말 할 수 있는 기종이었다. DB 600 보다 1475마력로 업그레이드된 파워의 DB 605 A 엔진을 탑재했으며, 무장도 이전버전의 12.7 mm 기관총 2정에 MG 151/20  20 mm 기관포 2정 혹은 7.7 mm 기관총 2정을 양 날개에 동체쪽으로 가깝게 장착했다.
 
그러나 늘어난 중량에 비해 마키 205의 기본틀, 특히 날개구조는 이전 버전들과 큰 차이가 없어, 마키 202가 보여주던 특유의 기동성은 떨어졌고, 속도는 빨랐지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전투기로 변했다. 특히 고공에서의 기동이 많이 떨어졌다. 또 무장을 강화했지만, 당시에 가장 시급했던 연합군 폭격기 격추에는 화력이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진] 마키 205 비행단의 모습....
 
게다가 너무 늦게 생산되어,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뒤업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마키 205가 처음 일선 부대에 지급된 것은 연합군이 시실리섬에 상륙하기 바로 3개월전으로, 이런 수세의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전투기라도, 그만큼의 전과를 올리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또 이 당시 이탈리아의 생산력은 지속적인 연합군의 폭격과 원료 부족등으로, 하루에 단 1.5기의 전투기를 생산해 내는데 그쳐, 전선에서 필요한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사진] 마키 205 비행단의 파일롯들의 모습
 
홈지기 한마디......
 
이제 몇마디로 마키기에 대해 평을 하자면, 마키 전투기 씨리즈는 당대 어떤 항공기에 뒤지지 않는 엄청난 성능의 항공기임에는 틀림없으나, 뛰어난 전투기는 아니었다. 전투기가 명성을 얻는냐 그렇지 못하느냐하는 것은 그 성능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활약이 문제가 된다. 즉, 마키 전투기는 성능은 뛰어났으나, 그만큼의 활약을 못해 역사속에 묻히고 마는 기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MC 205 V 벨트로
엔진:RA1050RC58 액랭 V 12 기통 1465HP
치수:전폭 10.6 m, 전장 8.9m
중량:자중 2581 kg, 총중량 3408kg
최대 속도:642km/7200m
상승 시간:3000m/2분 40초
무장:12.7mm×2, 7.7mm×2(후기형은 20mm2문으로 개장)
비고:원형기완성 1942년
 
MC 205 N 오리오네
엔진:RA1050RC58 액랭 V 12 기통 1465HP
치수:전폭 11.2 m, 전장 9.55m
중량:자중 2965 kg, 총중량 3621kg
최대 속도:628km/7200m
상승 시간:3000m/2분 24초
무장:12.7mm×4, 20mm×1
비고:원형기완성 1942년

 
 
 
 
마키 202.... 사실 마키 씨리즈 중... 화력만 뺀다면, 최고의 전투기였다고 말할 수 있는 버전이다.
 
 
마키 202의 칵크핏
 
 
마키 205
 
 
 
 

 

Reggiane

 

 
역사속에 묻힌 항공기 씨리즈 (1)..... 이탈리아의 레지아네
 
 
이번글은 프롭기 특히, 이차대전 항공기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프랑스, 핀란드, 일본 등의 마이너 항공기에 대해 관심이 깊으신 처리님께서 직접 기고해주신 내용입니다. 그림과 사진도 처리님이 보내주신 것과 홈지기가 개인적으로 구한 사진을 같이 올립니다. 다시 한번 마이너기의 열풍을 몰고 오신 처리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그럼 이차대전 이탈리아의 항공기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양해 말씀 : 사진 및 그림이 많지 않은데, 곧 추가하도록 하겠읍니다.
 
 
Re 2000   파르코1
 
 
역시 이탈리아 전투기입니다. mc200의 동시대기 입니다
 
'R'계획에 의해 개발된 공냉 단좌 전투기로, 원형기는 1938년에 처녀비행을 했습니다. 완성 당시는 카울링 표면의 공기 흡입구가 짧고, 스피너도 없었지만, 후에 공기 흡입구가 카울링전단까지 연장되었고 스피너도 개량되어 있습니다
 
공군의 테스트로는 MC200보다 우수하게 평가되었지만, 기체 구조에 문제가 있어, 양산성이 뒤떨어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공군에 실전 채용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Re2000 시리즈 1은 요격기로 헝가리, 스웨덴에 수출되기도 했읍니다.
 
파르코1은 총 170기가 만들어졌지만, 위에 언급한 바롸 같이 시리즈 1은 이탈리아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끝났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사용한 것은 비행기 사출기 사출용으로 했던 시리즈 2와 장거리 전투기형태의 시리즈 3으로, 모두 이탈리아 해군에서 사용되었읍니다. 전자는 12기, 후자는 24기 생산되어있지만, 엔진은 모두 P11bisRC40(1000 마력)으로 바꾸어 장착 되었습니다
 
 
Re 2000
 

엔진:P11RC40 공냉 14 기통 986HP
치수: 전폭 11m, 전장 8m
중량:자중 2075 kg, 총중량 2545kg
최대 속도:530km/-m
상승 시간:6000m/6분 10초
무장:12.7mm×2

 
 
 
Re 2001 파르코2
 
 
파르코1의 엔진을 다이믈로 벤쯔 DB601로 교체한 것이 Re2001 파르코 2로, 운동성과 조작성도 용이했는데, 속도는 R2000과 비교해 그다지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양산은 1942년부터 취역을 개시했습니다. 2001은 12.7 mm 소총 2정의 시리즈 1, 전익내에. 7 mm 소총 2정를 추가한 시리즈 2 및 3, 동체 아래쪽 면에 640 kg 폭탄이나 연료증가탱크를 장착한 시리즈 4까지 총 4종이 있습니다. 이 외 야전형태의 Re2001CN이 150기 만들어졌고, 시험기로서 만들어진 것에는 bis, G(뇌격형), H(대전차공격형) 등도 있습니다.
 

엔진: DB601 액랭 12 기통 1175HP
치수:전폭 11 m, 전장 8.2m
중량:자중 2495 kg, 총중량 3280kg
최대 속도:542km/5000m
상승 시간:8000m/12분 10초
무장:12.7mm×2, 7.7mm×2

 
 
 
 
Re 2002 아리에테 
 
 
2002는 Re2000 시리즈 3의 발달형으로, 전투 폭격기로서 사용하기 위해 엔진을 저공에서의 성능이 좋은 피아지오 P19RC45 타르비네B(1175 마력)로 교체했읍니다. Re2001과 같이 주익내에 7.7 mm기관총 2정이 추가된 점이, 이 전투기의 원형이 된 2000 시리즈 3과 다른점입니다. 1942년말부터 약 50기생산되었지만, 이탈리아 휴전시에는 34기가 운용되고 있었고, 그 중 16기가 연합군측에 노획되었읍니다.
 

엔진:P19RC45 공냉 14 기통 1175HP
치수:전폭 11 m, 전장 8.2m
중량:자중 2371 kg, 총중량 3120kg
최대 속도:529km/5500m
상승 시간:4000m/5분 52초
무장:12.7mm×2, 7.7mm×2

 
 
 
Re 2005 사지타리오
 
 
- 이글을 쓰신 처리님이 개인적으로
   이탈리아기중 피아트G56다음으로 좋아하는 기종-
 
본기는 2001의 기체에 다이믈러 벤쯔 DB605A의 이탈리아 라이센스판인 RA1050RC58을 장착한것이지만, 기체 구조는 대폭 개량되었습니다 양산은 1943년 7월부터 행해지고 이탈리아 휴전 후도 생산되어, 루마니아나, 독일의 방공용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Re 2005
 

엔진:RA1005RC58 액랭 12 기통 1475HP
치수:전폭 11m×전장 8.7m
중량:자중 2600 kg, 총중량 3560kg
최대 속도:628km/6950m
상승 시간:4000m/4분 4초
무장:20mm×3, 12.7mm×2

 
 
 
 
Re 2007의 모습
 
 
역시 Re 2007의 상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