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이탈리아-

불량감자 2010. 1. 15. 05:37

 

◇ Macchi MC202 Folgore / 205 Veltro ◇


 

* 독일제 심장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로마의 검투사

 

1940년 독일의 침략으로 서유럽전이 시작되자 유럽의 하늘에서는 단연 독일의 Bf 109E와 영국의 스핏화이어, 허리케인과 같은 고속 전투기들이 창공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 전투기들은 공통적으로 1000마력 이상의 성능을 가진 수냉식 직렬엔진을 장비하고 있었는데, 이 사실은 800마력급의 공냉식 성형엔진을 장비하고 있었던 마끼 MC.200과 피아뜨 G.50을 주력 전투기로 사용하고 있었던 이탈리아공군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만해도 이탈리아의 피아뜨사에서는 1000마력급의 수냉식 엔진 (A38)을 계속 개발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계속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탈리아가 독일의 뒤를이어 연합군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과 영국의 영국본토 항공전이 시작된후에도 이 신형 엔진의 양산은 불투명한 상태였다.

 

무솔리니의 명령에 따라 북아프리카로 출정해 영국공군과 싸우게된 이탈리아공군의 야전지휘관들과 조종사들은 그들의 마끼 MC.200 사에따가 좋은 전투기이는 하나 영국의 허리케인이나 더욱 고성능인 스핏화이어와 싸우려면 더욱 강력한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계속 상신했다. 실제로 프랑스 전투의 말기에 프랑스 전투에 참가했던 이탈리아공군의 사에따는 프랑스의 드와땡 D.520과 같은 신형기와의 공중전에서 열세를 보인적이 있었다.

 

사실 1940년 1월에 이탈리아공군의 신임 사령관으로 임명된 프란체스코 피꼴로 대장은 일선 장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존심이 상하지만 신형 엔진개발은 포기하고 최신 엔진의 수요가 워낙 다급하니 독일의 고성능 엔진기술을 도입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무솔리니에게 올린적이 있었는데 내심 히틀러를 라이벌 (?)로 생각하고 있었던 무솔리니는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느냐며 피꼴로 대장에게 모욕을 주고는 이 의견을 묵살했었다. 하지만 고성능 엔진개발이 계속지지부진한 상태인데다가 독일공군이 서유럽 전토를 석권하고 유럽의 하늘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무솔리니도 점차 다급해졌다.

 

[ 이탈리아의 항공기 제작을 선도했던 마리오 까스똘디 박사, 그가 있었기에 이탈리아 공군이 그나마 2차대전에서 어느정도라도 싸울 수 있었다. ]

 

피꼴로 대장은 계속 무솔리니에게 빨리 독일의 신형엔진을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결국 무솔리니는 그렇게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독일에게 신형엔진의 면허생산을 요청했는데 이 것은 무솔리니가 자존심을 접고 친히 히틀러에게 전화를 걸어 간곡하게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다급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프랑스까지 손아귀에 넣은후 승승장구하던 이무렵 히틀러는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 요청을 쾌히 수락했으며 드디어 Bf 109E 전투기에 사용되던 벤쯔사의 DB601 엔진이 이탈리아로 넘겨지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즉시 4기의 DB601 엔진이 긴급 공수되었으며 이 엔진은 당시 신형기를 개발하면서 강력한 공냉식 엔진을 갈구하고 있었던 마끼사와 레지아네사에 각 2기씩 넘겨졌고 피아뜨사는 이 엔진의 라이센스 생산권을 넘겨받아 양산작업에 착수했다. (이탈리아의 라이센스판 엔진은 성능이 독일제보다는 약간 떨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며 이 엔진의 면허생산관은 후에 알파 로메오사로 넘겨지게됨)

 

마끼사의 마리오 까스똘디 박사는 마침내 그가 계속 꿈꾸던 1000마력급의 고성능 엔진이 도입되자 뛸 듯이 기뻐했으며 즉시 이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새로운 전투기의 개발에 착수했다. 1940년 7월, 이탈리아군이 무솔리니의 지시로 북아프리카로 파견되는 것이 결정되었고 늦어도 9월부터는 파견군 제 1진이 북아프리카로 향한다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북아프리카의 영국공군과 싸우게될 이탈리아공군은 더욱 다급해졌다.

 

 

[ MC.202의 모습, 한눈에 더욱 세련되지고 날렵해진 외모를 보인다. ]

 

결국 가스똘디는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전면적인 기체의 재설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기체의 설계자체가 우수한 MC.200의 기본설계를 변형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설계의 방향을 잡았다. 따라서 기존 공냉식 엔진보다 훨씬 날씬한 신형 DB601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수와 동체는 좀더 가늘어지고 공기역학적인 유선형으로 변형해서 설계했지만 주익과 미익, 수직안정판과 강착장치등은 MC.200 후기형의 것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신형기의 제작은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어 1940년 8월 10일에 이르러 드디어 신형기가 처녀비행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으며 기체는 MC.202라는 제식명칭과 함께 이탈리아어로 벼락이라는 뜻의 '폴고레 (Folgore)'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드디어 1175마력의 독일제 심장 DB601A를 가진 로마의 검투사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MC.202 원형기는 시속 607.5km의 최대 속도를 기록하여 MC.200에 비해서 거의 시속 100km가까이 빨라졌으며 최대고도에서도 사에따에 비해서 2600미터나 높은 11350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공군은 이에 크게 만족하여 MC.202를 즉시 주력 전투기로 결정했으며 양산을 허락했다.

 

[ MC.202 비행대를 시찰중인 무솔리니, 폴고레야말로 그의 야망을 이루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하지만 MC.202는 새롭게 설계되었음에도 MC.200의 설계를 이어받아 다급하게 제작되다보니 무장강화의 측면에서는 밸런스를 맞추기가 어려워 MC.200의 고정무장인 기수의 12.7mm 기관총 2정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화력면에서는 타국의 주력전투기에 비해 턱없이 빈약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전장의 수요가 워낙 다급해서 이 신형기는 즉시 양산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이탈리아의 공업생산능력이 이러한 의욕을 제대로 따라주지 못해서 양산기들은 원형기가 날아오른지 거의 1년이 다되는 1941년 7월에 이르러서야 전선으로 인도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불타는 하늘의 연재에서는 마끼사의 항공기들의 제식 명칭을 MC.200, MC.202 이런식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참고하는 서적에 따라 표기법이 달라서 MC200, MC 200, Macchi C.200 이런식으로 기술한 책들도 있습니다. 아직 어느 표기가 정확한지 파악이 되지 않아 MC.202로 표기하고 있으며 정확한 표기법이 밝혀지게되면 수정하겠습니다.

 

* 전장의 폴고레

 

한편, 1940년 9월 북아프리카로 의기양양하게 진격해 들어갔던 이탈리아군은 얼마뒤 영국군의 반격공세에 휘말려 일방적인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한 이탈리아 지상군은 몇 개월만에 후퇴만을 거듭하는 오합지졸로 변해 있었으며 이들의 상공을 지키기위해 파견된 이탈리아공군도 북아프리카의 영국공군에 비해 수적인 열세와 항공기 성능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큰 손실을 입고 있었다. 당시 주력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MC.200이나 피아뜨 G.50, CR42 팔꼬와 같은 기체들은 영국공군에 의해 사용되고 있었던 허리케인, P-40등의 전투기들에 맞서서 전선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 몰타 방공전에 투입되기 위해서 이륙 준비중인 MC.202 - 몰타 상공에서 폴고레는 맹활약했다. ]

 

하지만 이 판도는 1941년 2월 북아프리카로 이탈리아군을 구원하기위해 쳐들어간 롬멜의 독일 아프리카군단의 눈부신 진격과 북아프리카 작전을 위해 파견된 독일공군 JG27의 Bf 109E/F 전투기들이 영국공군으로부터 제공권을 탈취하면서 역전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아프리카 하늘의 주역이 영국공군에서 독일공군으로 바뀐 것일뿐으로 이탈리아공군은 독일공군에게 제공전투를 맡긴채 독일 수송기들의 호위나, 지상군의 근접엄호, 기지방어등의 2선급의 임무로 돌려진 상태로 그 자존심이 말씀이 아닌 상태였다. 사실상 이탈리아공군은 우군인 독일공군에 의해서도 완전히 2류 공군으로 여겨지며 무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탈리아 조종사들이 꿈꾸어오던 신예기 MC.202는 제 4 전투비행단에 제일먼저 인도되어 조종사들이 약 2개월간의 기종전환 훈련을 받고는 곧장 전선에 투입되었다. MC.202는 이미 1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었던 몰타섬 상공의 공중전에 처음으로 참가했으며 9월 30일 프리제리오 대위가 영국공군의 허리케인을 격추시켜 그 첫 성과를 올렸다. 이후 10월과 11월의 전투에서도 이 비행단 소속 제 9 전투비행대대의 MC.202들은 계속 날아올라 몰타섬 상공에서 영국공군기들을 격추시켰다. MC.202를 최초로 조종해서 허리케인과 전투를 벌였던 조종사들은 이 전투기가 모든면에서 영국공군의 허리케인을 능가한다고 평가하며 MC.202를 격찬했으며 MC.200을 타고 있던 조종사들은 하루빨리 MC.202를 타게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조종사들의 기대와는 달리 전선으로 공급되는 폴고레들의 숫자는 항상 턱없이 모자랐다. 단적인 예로서 북아프리카에서 MC.200 사에따를 주력으로 리비아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영국공군기들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던 제 2 전투비행단은 줄기차게 신형기를 요청하여 드디어1941년 10월 6기의 MC.202를 보급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나마 이 6기조차 사막용의 방진필터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결국 단 한 대도 보급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 방진필터는 이후 2개월여가 지난 11월 말에서야 장비될 수 있었으며 영국군의 공세가 거세지던 1941년 말에서야 다급하게 북아프리카로 파견될 수 있었다.

 

 

[ 막 출고된후 전선에 배치되기 위해 도열한 MC.202, 그러나 생산량은 항상 전선의 수요에 미치지 못했다. ]

 

북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의 반격에 밀렸던 롬멜의 아프리카군단이 1942년 1월말부터 다시 공세로 전환하면서 MC.202를 장비하고 파견된 이탈리아공군의 3개 비행단은 총 60여기의 MC.202가 제공권을 장악하고 MC.200, CR.42등의 기체들이 지상군의 근접엄호를 맡도록 하면서 독일공군과 보조를 맞추었다. 이때부터 약 5개월여간 진행된 공세작전에서 이탈리아공군 MC.202 전투기들은 독일공군의 Bf 109F와 함께 영국공군의 P-40과 허리케인을 몰아내면서 제공권을 장악했으며 특히 이탈리아 조종사들은 P-40이나 허리케인에 비해서 화력을 제외하고는 모든 비행성능에서 MC.202가 월등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 5개월여동안 폴고레는 90여기까지 세력이 증가했으며 1000회 이상의 출격임무에서 17기만이 손실되었다고 한다.

 

[ 북아프리카에서 스핏화이어의 공습으로 비상출격하는 MC.202의 조종사를 담은 항공아트 ]

 

하지만 1942년 7월이 되면서 엘 알라메인을 둘러싸고 영국군과 추축군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자 영국공군은 북아프리카에도 스핏화이어 마크V를 대량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는데 이 스핏화이어는 Bf 109F와 MC.202가 보여온 공중우세를 영국쪽으로 돌려놓게 되었다. 특히 MC.202의 경우 비행성능은 스핏화이어와 거의 대등했지만 화력면에서 너무 격차가 컸던 것이다. 강력한 히스파노 20mm 기관포 2문과 브라우닝 7.7mm 기관총 4정이라는 무시무시한 화력의 스핏화이어 마크V는 몇 발의 명중탄으로도 MC.202를 박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폴고레의 12.7mm 기관총 2문이라는 고정무장은 그야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여하간 1942년 10월말부터 시작된 몽고메리의 대 반격에 작전에서 영국공군이 수적인 우위를 이용한 대규모 공세를 펼치면서 이탈리아공군은 초전에 MC.202 15기가 격추 당하고 46기가 지상에서 큰 손상을 입어 전열에서 이탈하는등 순식간에 극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믿고 있었던 독일 아프리카군단마저 영국군의 물량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해 전선이 일방적으로 붕괴되고 보급이 바닥나게되자 더 이상 싸우지 못하고 본토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Macchi MC.202 Folgore

엔진: 알파 로메오 RA1000 RC41-1 또는 DB601/A-1 (1175마력)

전폭: 10.58m

전장: 8.85m

전고: 3.02m

기체중량: 2357kg

최대중량: 2937kg

최대속도: 607km/h (고도 5,500m)

최대고도: 11350m

항속거리: 765km

무장:12.7mm 기관총 2정 (기수)

 

한편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독소전이 시작되자 몰타섬 공습작전에 투입되던 독일공군기들이 대부분 동부전선으로 이동하면서 이미 1년여가 다되어가고 있었던 몰타 방공전은 이탈리아공군에게 전적으로 떠맡겨졌다. 이무렵에는 몰타섬의 영국공군도 스핏화이어를 보급받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공군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는 MC.202 전투기들도 완벽하게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결국 몰타 방공전에서도 거듭되는 출격행동안 영국공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인해 이탈리아는 몰타를 점령하겠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 몰타 상공의 공중전의 특이한 사진중 하나, 손상입은 허리케인을 추격해 영국조종사를 위협해서

이탈리아로 나포했다고 하는 사진이다. MC.202의 성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

 

이탈리아공군의 자료에 의하면 몰타 방어전 기간동안 MC.202는 총 4000여회의 출격에 나섰으며 손실은 27기에 불과한 반면 100기 이상의 영국공군기들을 격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수치는 영국공군에 의해 당치도 않은 수치라면서 반박되고 있다. 사실이야 어떻든 간에 MC.202는 분명 스핏화이어와 대등한 성능을 가진 우수한 전투기이기는 했지만 전세를 바꾸지는 못했던 것이다. 몰타 방공전의 최후 승자는 이탈리아의 바로 코앞에있는 이 작은 섬을 끝까지 지켜낸 영국공군이었던 것이다.

 

 

[ 동부전선에 파견된 MC.202 옆에는 MC.200 사에따가 주기해 있다.

동부전선에서는 폴고레의 등장시기가 너무 늦어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

 

독소전의 개전에따라 동부전선에 파견된 이탈리아 공군은 더욱 초라했는데 주로 MC.200을 장비하고 비교적 선전하면서 소련공군과 맞서고 있었던 이탈리아공군은 1942년 9월에 이르러서야 20여기의 MC.202를 보급받았지만 이 시기가 너무 늦었고 수량도 턱없이 모자랐다. 뼈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강추위와 함께 시작된 소련군이 돈강지역에서 대반격을 시작하자 이 지역의 이탈리아군이 단시간만에 완전히 붕괴었으며 제공권도 완전히 소련쪽으로 넘어가서 결국 MC.202는 변변한 전과를 올리지도 못한채 절반이 넘는 기체가 손실되고 간신히 9기만이 동부전선을 탈출해서 이탈리아로 생환할 수 있었다. 폴고레는 이탈리아의 항복시까지 총 1100여기 정도가 생산되었다고 하며 전후의 생존기들은 정확한 통계가 없을 정도로 대부분 전선에서 소모되었다.

 

* MC.202 일러스트 *

1942년 이탈리아 시칠리에 주둔하고 있던 제 4 전투비행단

제 378 비행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이 부대는 1차대전의 에이스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사용하던 '날뛰는 말'을 부대의 상징 마크로 그려넣었다.

 

1942년 가을 동부전선에 투입된 제 21 전투비행단 22 전투비행대대 소속의 폴고레,

역시 동부전선을 의미하는 노란색의 기수와 동체의 노란색띠를 도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43년 6월 이탈리아 본토 방어전에 투입되고 있었던 제 53 비행단 제 369 비행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담배피는 바퀴벌래가 부대의 상징 마크이다.

( foxmouse: 이탈리아에서는 바퀴벌래가 그렇게 나쁜 곤충으로 취급되지 않는 모양이죠? )

 

* 벨뜨로의 등장

 

1943년, 본토로 몰린 이탈리아공군은 막강한 연합군의 공군력으로부터 본토를 지켜야 했으나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탈리아 최고의 전투기였던 MC.202조차도 조종사들로부터 연합군의 최신 전투기들과 맞서 싸우기에는 속도가 느리다는 점과 함께 무장의 빈약함이 계속 지적되었으며 이에따라 후기형부터는 주익에 7.7mm 기관총 2정이 추가로 장착되었지만 중장갑의 연합군 폭격기들과 전투기들을 상대해야하는 조종사들의 기대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었다. 일부 조종사들은 이럴바에야 아예 달지 않는 것이 났겠다고 투덜거렸으며, 실제로 쓸데없는 것이 중량만 증가시킨다면서 아예 7.7mm 기관총을 떼어 버리고 출격하는 조종사들도 있었다.

 

 

[ 1943년 연합군의 공습에 맞서 이탈리아 방어전에 나선 MC.202 사진의 기체는 54 비행단 제 16 대대 소속의 기체이다. 멀리 아직도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MC.200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이무렵에는 폴고레조차도 수적열세에 더해서 연합군의 신예 전투기들에 비해서 속도가 느렸으며 무장도 빈약해서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

 

사실 마끼사에서도 1942년 초부터 MC.202의 무장강화를 위해서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독일공군의 Bf 109G가 사용하고 있었던 20mm 기관포드를 주익에 부착해 보았으나 중량증가에 따른 비행성능의 저하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마끼사의 분석에 따르면 아무래도 엔진 출력이 문제였다. 사실 1942년을 기준으로 볼 때는 이탈리아가 면허생산하고 있었던 RA1000 (DB601A의 이탈리아 라이센스 판)은 이미 구식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알파 로메오사는 이 엔진 조차도 고작 한달에 50여기 정도밖에는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것도 마끼사의 MC.202와 레지아네사의 Re.2001이 절반씩 나누어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한심한 지경에 이르게되면서 전선의 조종사들은 탑승할 전투기가 부족해서 애를먹고 있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마끼사의 창고에는 엔진이 없어 출고되지 못하는 MC.202가 쌓여 엔진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MC.202와 205의 비교사진, 기수의 변화에 주목! 기수를 제외한 다른 동체는 두 기체가 거의 같다.

 

이런 총체적인 난관을 한꺼번에 극복하려면 단 하나의 돌파구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새로운 고성능 엔진을 별도로 생산해서 공급받는 것이었다. 이 요구조건에 걸맞는 엔진은 독일공군의 Bf 109G에 사용되고 있었던 1475마력의 DB605엔진뿐이었다. 결국 또다시 독일공군에 부탁하는 수밖에는 없었으며 독일이 이 요구를 수락함에 따라서 피아뜨사가 RA1050이라는 이름으로 이 엔진을 면허생산하게 되었다. 하지만 엔진이 생산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독일로부터 긴급히 공수된 DB605를 장착해서 시제기들을 이륙시켰다. 이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 기체는 1942년 4월 19일에 최초로 날아올랐으며 MC202의 발전형이라는 의미로 MC.202bis라는 제식명칭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MC.202의 동체를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이 새로운 엔진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기수의 재설계가 불가피했고 이에따라서 DB605 엔진을 장착한 기체는 별도로 MC.205V라는 제식명칭이 부여되었고 사냥개라는 뜻의 '벨뜨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몇 차례의 시험비행에서 새로운 벤쯔 엔진을 장착한 MC.205V는 이탈리아 항공기술의 결정판이자 전쟁중에 생산한 최고의 전투기임이 증명되었다. 당시 경쟁관계에 있었던 피아뜨의 G.55와 레지아네의 Re2005에 비해서 벨뜨로는 같은 엔진을 장착했지만 저고도에서는 훨씬 빨랐고 안정성이 높았으며 기체가 더 견고했다. 하지만 고고도에서의 성능과 무장능력에서는 이 두 라이벌기체에 뒤지는 것으로 판명되어 이 3종의 이른 바 '5 시리즈' 전투기들 (MC.205V, Re2005, G.55)이 모두 양산에 돌입하도록 추진되었다. 이것은 상당히 비현실적인 결정으로 이탈리아 공군 수뇌부의 구태의연한 사고를 보여주는 것으로 풍전등화의 상황에서는 한가지 기종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양산을 독려해야 했음에도 가뜩이나 부족한 엔진을 가지고 비슷한 성능의 기체를 모두 생산하라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Macchi MC.205V Veltro

엔진: 알파 로메오 RA1050 RC58 또는 DB605/A (1475마력)

전폭: 10.50m

전장: 8.85m

전고: 3.05m

기체중량: 2524kg

최대중량: 3224kg

최대속도: 650km/h (고도 7400m)

최대고도: 11350m

항속거리: 765km

무장:12.7mm 기관총 2정 (기수) + 7.7mm 기관총 2정 (주익) / 20mm 기관포 2문 (주익)

 

벨뜨로의 최고 속도는 대부분의 연합군 전투기와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시속 650km까지 올라갔으며 중량이 무거운 엔진 탑재에 따라 기동성이 약간 저하되는 것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MC.202를 능가하는 수치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존 MC.202의 에어프래임이 그대로 사용됨에 따라서 고공에서는 엔진출력에 비해서 작은 주익 때문에 성능이 저하되는 단점도 있었다. 사실 이 주익은 MC.200 사에따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거의 그대로 물려 내려온 것이었다. 게다가 초기 분량의 기체 100여기는 MC.202용으로 제작한 동체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무장도 12.7mm 기관총 2정과 7.7mm 기관총 2정으로 여전히 빈약했다.

 

 

[ 1943년 이탈리아 본토 방어전에 투입된 MC.205V 벨뜨로, 강력한 DB605 엔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 ]

 

이후 후기형 기체에서 주익의 7.7mm기관총을 제거하고 20mm 기관포 2문을 장착하면서 최고의 엔진에 걸맞는 무장을 가질 수가 있었다. 이에 이르러서는 연합군 폭격기의 요격에 적합한 중무장의 고속전투기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MC.205V는 생산라인이 연합군 폭격기들의 맹폭으로 계속 파괴되고 연합군이 이탈리아 본토로 빠르게 진격해오면서 평균적인 생산속도가 하루에 1.5기 꼴에 불과해서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항복할 때까지 250여기밖에는 생산되지 못했고 따라서 전세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 1943년 본토 방어전에 투입된 MC.205V 벨트로들... 비운의 기체들이다. ]

 

하지만 본토방어전에 투입된 몇몇 조종사들은 미군의 P-47 썬더볼트와의 공중전에서 MC.205V가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압도하는 성능을 보였으며 후기형 스핏화이어나 P-51D 머스탱과도 대등한 접전을 펼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만일 이 벨뜨로가 대량으로 투입될 기회가 있었다면 물론 이탈리아가 패배를 면하기는 어려웠다고 해도 연합군 폭격기대는 승리이전에 큰 재난을 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마끼사의 후속 기체였던 205N 오리오네의 측면도, 2기축의 기관포 장착을 위해 205V의 기수를 더 연장한 특징이 보인다. 하지만 양산에 이르지 못하고 개발이 중단된다. ]

 

사실 마끼사는 이 기체를 더욱 발전시켜 프로펠러축에 20mm 기관포를 고정 장착하고 주익에 12.7mm 기관총 4정 또는 20mm 기관포 2문을 추가한 MC.205N (오리오네)이라는 기체도 제작했었는데 이 기체는 상당히 우수한 성능을 과시했음에도 종전이 임박한 상태에서 마끼사 단독으로 양산을 추진할 수 없었고 이탈리아 공군내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피아뜨사의 G.56에 대한 평가가 더 높아지면서 개발이 중단되어 불과 2기의 시제기만이 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 항복후의 비극

 

1943년 9월 이탈리아의 항복이후 MC.202와 MC.205V의 운명은 참으로 비극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남쪽의 연합군 점령지역의 이탈리아공군은 대부분 연합군에 항복한 정부의 뜻에 따라 연합군으로 전향하고 과거의 동맹국 독일공군과 싸우게 되었으며, 북부의 미점령 지역의 이탈리아 공군조종사들은 연합군에 항복을 거부하거나 혹은 독일군의 강압에 의해서 독일공군과 연합하여 연합군과 싸웠다고 하며 조종사가 부족한 기체들은 독일공군에 넘겨지기까지 했다. 결국 같은 기체가 서로 다른 이탈리아 국적마크를 달고 이탈리아의 하늘에서 같은 이탈리아 조종사들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되는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foxmouse: 이탈리아공군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훗날 항공전사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MC.205V 일러스트 *

1944년 남부 이탈리아의 51 비행단 제 360 비행중대의 MC.205V, 이탈리아의 항복후 연합군에 가담하게되는 이탈리아 공군 (Co-Belligerent AF)의 도색이다. 기존의 국적마크가 지워지고

3색의 원형으로 바뀌어 동체와 주익에 마킹되어있는 특징을 볼 수 있다.

 

1944년 북부 이탈리아의 제 1 비행단 제 2 비행중대 소속의 MC.205V 벨뜨로 - 항복을 거부하고 독일공군과 같이 활동하면서 끝까지 연합군에 맞서 싸웠던 이탈리아 공군

(ANR - Aeronautica Nazionale Republica)소속으로 주익의 국적마크는 기존의

이탈리아공군의 것 그대로이며 동체의 마크는 네모난 3색국기를 도색했다

 

* 마치면서

 

마끼사의 기체들은 실질적인 이탈리아 공군의 주력전투기로서 무솔리니의 야망에 따라 전쟁에 빠져들게된후 속절없이 몰락의 길로 무너져간 이탈리아의 운명을 상징하는 전투기들이었다. 수적으로  항상 열세인 상황에서도 전쟁초기부터 묵묵히 이탈리아공군의 사역마 노릇을 했던 MC.200 사에따와 실질적인 대전중의 최우수 이탈리아 전투기 MC.202 폴고레 그리고 이탈리아 기술력의 상징이자 수치상으로는 최고의 전투기였던 MC.205V 벨뜨로는 비록 이탈리아가 오합지졸의 불명예를 뒤집어썼음에도 항공기술에서만은 이탈리아가 다른 연합국과 대등한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MC.205는 전후에도 계속 생산되었으며 여러나라에 팔려나가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계속 날았다고 한다.

 

 

[ 1980년대에 복원된 MC.205V 벨뜨로 - 동체와 주익에는 이탈리아의 항복후 이탈리아공군이 연합군에 가담할 당시에 변경된 국적마크가 도색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