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이탈리아-

불량감자 2010. 1. 15. 05:54

 

◇ Fiat G.55 Centauro ◇


 

오늘로서 불타는 하늘이 문을 연지도 4주년째가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취미생활의 연장으로 가볍게 출발했었는데 그동안 너무나 많은 분들의 성원과 격려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카운터가 20개 정도만 올라가기만 해도 놀라고 기쁘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어느덧 하루에 평균 1000여카운터가 올라갈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있네요. 항상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불타는 하늘의 식구들과 이 의미있는 날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불타는 하늘은 영원히 타오르겠습니다. 다시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 피아뜨의 최고 전투기

 

지금까지 연재되었던 이탈리아 항공기 리뷰를 관심있게 보신 분들이라면 마끼사의 전투기가 새로운 엔진의 도입에 따라 MC.200 사에따에서 MC.202 폴고레 그리고 MC.205V 벨뜨로로 발전한 과정을 알고 계실 것이다. 물론 경쟁사였던 피아뜨도 마끼사와 마찬가지로 엔진이 도입될 때마다 새로운 기체를 개발하고 있었다. 불타는 하늘의 이탈리아 전투기 리뷰 시리즈...이번회에는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2차대전중 최고의 전투기로 거론되기도 하는 피아뜨 G.55 첸타우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독일의 DB601 벤쯔 엔진이 도입되면서 마끼사가 MC.200의 뒤를 있는 MC.202 폴고레라는 성공적인 전투기를 내놓게 되자 피아뜨사 역시 같은 엔진을 장착하기위해서 G.50V라는 기체를 서둘러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 기체에 치명적인 오류가 자주 발생해 결국 기체개발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피아뜨사의 기술책임자였던 쥬세페 가브리엘리에게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마끼사의 MC.202 폴고레가 비행성능에 있어서는 동시대에 전투기의 최고봉으로 꼽히던 Bf 109F나 스핏화이어 Mk.V와도 대등할 정도로 우수한 기체인 것으로 증명되고 이탈리아공군의 주력전투기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되자 피아뜨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 DB605엔진의 도입에 따라 새롭게 디자인된 G.55의 기수형태를 잘 보여주는 사진 - Bf 109G형과 매우 유사하다. ]

 

그러나 1942년 초부터는 MC.202조차 연합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요격하는 임무에서 무장이 빈약하여 점점 수세에 몰리게 되면서, 이탈리아는 독일에게 또다시 더욱 강력한 엔진을 공급해달라는 요청을 할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도입되게 된 것이 Bf 109G에 사용되고 있었던 1475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는 다이뮬러 벤쯔사의 DB605엔진이었다.

 

이 고성능 엔진이 도입되면서 또다시 마끼사와 피아뜨사 그리고 레지아네사는 이 엔진을 사용할 전투기의 개발에서 또다시 경쟁하게 되는데 이 전투기들은 DB605엔진의 마지막 숫자인 5를 따서 '시리에 5  (serie 5)'라고 불리게 되며 기체들의 제식넘버도 MC.205V, G.55, Re.2005등으로 모두 마지막에 5를 달게된다. (사실 이탈리아의 운명이 바람앞의 촛불과도 같은 현실앞에서도 턱없이 모자라는 엔진을 가지고 여러 항공사가 다른 기체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 효율적이지 못한 것으로 이탈리아공군내부의 혼란이 어느정도였는지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MC.205V의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이탈리아가 패배하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공업생산기반이 허약했던 이탈리아의 사정을 고려해볼 때 가장 먼저 양산이 시작된 MC.205V의 생산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DB605 엔진의 도입에서도 선두주자는 마끼사였으며 MC.202의 기수에 신형엔진을 장착하는 개수를 통해서 1942년 4월 17일 MC.205V 벨뜨로의 원형기를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피아뜨사도 이번에는 야심찬 설계의 새로운 전투기 G.55를 비슷한 시기인 1942년 4월 30일에 날려보냄으로써 또다시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쥬세페 가브리엘리는 이번에는 반드시 마끼사를 꺽고야 말겠다는 신념하에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이 새로운 전투기에 G.50V의 실패의 교훈을 바탕으로 많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반면 마끼사의 마리오 가스똘디는 성능개량보다는 가능한 설계시간을 단축하고 생산이 용이하도록 MC.200, MC.202, MC.205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수부분에 약간의 개량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 G.55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사진, 유려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

 

우선 전금속제의 동체는 더욱 공기역학적으로 디자인되었으며 기체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공정을 가능한 단순화 했다. 그리고 조종석을 가능한 위쪽에 돌출시켜 조종사의 시야를 좋게 배려했으며 G.50에서 기술적인 문제로 포기했던 폐쇄식의 조종석을 도입했다. 무장면에서도 엔진축에 장착된 MG151 20mm 기관포 1문에 더해서 주익에 4정의 12.7mm 기관총을 장착해서 연합군 폭격기들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화했다. 이 새로운 전투기는 실전 부대에 원형기들이 배치되어 전투 상황에서 평가를 받았으며 결국 조종사들로부터는 MC.205V에 비해서 고공성능이 더 좋고 기동성에서도 만족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게되어 양산이 결정되었으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첸타우로 (Centauro)'가 별명으로 부여되었는데, 이는 마치 이탈리아제 동체와 독일제 엔진의 결합을 상징하는 별명 처럼 느껴진다.

 

[ 이탈리아의 항복후에 북부의 공장에서 계속 생산된 G.55을 몰고 연합군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출격 준비중인 ANR의 조종사,  ANR의 국적마크를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

 

성능면에서 이 기체는 속도에서는 MC.205V에 비해서 시속 20km정도 느린 시속 630km였지만 무장면에서 더욱 강력하고 최대 고도가 12700m로서 MC.205V에 비해서 1300미터 이상 높이 날 수 있다는 점이 연합군 폭격기 요격전에서는 더 좋은 점수를 받아 같이 양산이 추진된 것이다. 양산이 시작되자 초기형인 G.55 O형이 총 16기가 생산되었고 이후 무장을 20mm 기관포 3문과 12.7mm 기관총 2정으로 더욱 강력하게 개량한 G.55 I형이 생산되었다.

 

Fiat G.50 Centauro

엔진: 피아뜨 RA1050 RC58 또는 DB605/A (1475마력)

전폭: 11.85m

전장: 9.37m

전고: 3.13m

기체중량: 2630kg

최대중량: 3718kg

최대속도: 630km/h (고도 6400m)

최대고도: 12700m

항속거리: 1200km

무장: 20mm 기관포 3문 (기수 1+주익 2), 12.7mm 기관총 2정 (주익)

 

* 너무 늦게 태어난 괴물

 

그러나 마끼사의 MC.205V 벨뜨로가 MC.202의 생산라인을 거의 이어받아 그나마 빨리 생산이 시작되어 본토 방어전에 어느정도 투입될 수 있었던 반면에 G.55의 경우에는 새로운 생산라인이 도입되어야 했으므로 양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 1943년 3월로서 너무 늦은 데다가 연합군 폭격기들이 공장지대를 맹폭하면서 생산이 크게 지연되어 이탈리아의 항복시기까지 결국 총 32기의 G.55만이 이탈리아공군에 인도될 수 있었으며 이 기체들은 353 전투비행대대에 배치되어 연합군 폭격기 요격전에 투입되었다. 마끼사의 MC.205의 경우 신속한 배치에 초점을 맞추어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양산이 시작되어 총 250여기가 항복전에 실전배치되어 본토장어전에 투입되어 어느정도 활약을 했던 것에 비하면 G.55는 성능면에서는 MC.205V를 앞섰을지는 모르나 최신 기술의 적용에 너무 얽매여 그 등장시기가 너무나 늦었다고 할 수 있다.

 

 

[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었던 독일공군도 G.55를 일부 사용했었다. ]

 

이후 이탈리아의 항복이후에 연합군에 항복을 거부한 이탈리아공군 (ANR)을 위해서 북부의 피아뜨 공장에서는 G.55의 생산을 계속했으며 결국 연합군이 완전히 이탈리아 전토를 장악할 때까지 총 274기의 G.55가 더 생산되어 ANR과 독일공군에 공급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이탈리아 상공을 연합군의 항공전력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G.55는 변변한 활약을 해볼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생산되는 족족 대부분 지상에서 격파되었다고 한다.

 

 

[ 독일공군의 요구에 따라 개발되던 G.56의 사진으로 이 것이 거의 유일한 사진이라고 한다. ]

 

놀라운 것은 피아뜨사가 독일공군의 요청으로 이런 어려운 와중에도 G.55를 개량한 G.56이라는 기체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이 기체는 더욱 강력한 DB603A 엔진을 장착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항복후 6개월여가 지난 1944년 봄에서야 2기의 원형기가 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맹렬한 진격으로 더 이상의 기체 개발은 불가능해져 2기의 원형기를 끝으로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이 2기의 원형기중 1기는 전쟁이 끝난후에도 살아 남아 시험비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후에도 피아뜨사는 G.55 시리즈의 생산은 계속 되었는데, 이중 상당수의 기체들이 남미의 아르헨티나, 중동의 이집트 등지로 팔려나갔으며 이집트에 팔린 기체들은 마지막 실전이 되는 1차 중동전에 소수 참가하게 된다.

 

 * 피아뜨 G.55 일러스트

1943년 이탈리아의 항복후에도 연합군과 끝까지 싸우던 ANR 소속의 G.55 - ANR의

비행대대중 가장 용감하게 싸웠다고 하는 '몬테푸스꼬 (montefusco)' 대대 소속이다.

 

1944년 영국공군 비행장에 귀순한 ANR 소속의 Fiat G.55 - 기체의 측면도 만으로는

얼핏볼때 MC.202, 205V와 매우 유사해서 구별이 어렵다.

 

1944년 밀라노에 주둔하고 있던 ANR 소속의 기체이다. 야간 전투를 위한 어두운 도색이 특징

 

* 마치면서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분명 수치상으로는 이탈리아가 제작한 최고의 전투기라고 불리울지는 모르지만 G.55는 그 등장시기가 너무나 늦어서 이탈리아공군에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물론 라이벌 기체인 MC.205V의 경우도 항복이전에 단지 250여기만이 생산되었지만 이 기체들이 그나마 본토 방어전에서 어느정도 활약을 했던 것에 비하면, 단지 32기만이 배치될 수 있었던 G.55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비운의 전투기 첸타우로는 서류상으로는 이탈리아 최고의 전투기였을지 모르지만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잊혀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