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이탈리아-

불량감자 2010. 1. 15. 06:49

 

◇ Savoia Marchetti  S.M.79 ◇


 

2007년에는 너무나 많은 힘이 되어주시는 객원필진 정현재님 덕분에 모처럼 불타는 하늘의 업데이트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의 리뷰는 이탈리아 항공기중 비교적 좋은 평을 받았던 사보이아 마르께띠의 S.M.79 폭격기에대해서 리뷰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초 마이너 아이템의 연재가 쉴새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GWP의 리뷰를 보내주시는 정현재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img2.gif안녕하세요. 정현재입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주력 폭격기였던 S.M.79 3발 폭격기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폭격기 하면 아마 가장 먼저 생각 나는 것이 3발 엔진에 기체 상단에 후방총좌 하나 달랑(?)단 이런 식의 폭격기 기종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S.M.79말고도 3발 엔진을 탑재한 이탈리아 폭격기 종류는 같은 S.M.시리즈나 카프로니사가 제작한 폭격기 등등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이번에도 He 177때 처럼 Aircraft Profile이라는 책을 위주로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Squadron Signal에서도 그림을 몇 개 썼습니다.

 

아무쪼록 잘 봐주시고 오역 지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불타는 하늘에 리뷰를 올려주시는 홈지기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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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폭격기 병단의 주력 사보이아 마르께띠 S.M. 79

 

이제 막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는 1940년 8월의 한 저녁, 수면위를 닿을 듯 말 듯 저공비행을 하는 2개의 폭격기 편대의 엔진소리가 정적을 깨고 알렉산드리아의 항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비행기들은 정박해 있는 영국 전함에 어뢰를 투하하고는 유유히 사라져 갔다. 항구의 얕은물에 쌓여 있었던 진창에 어뢰들이 박혀 버리는 바람에 타격을 주지는 못한 이 공격은, 2차세계대전 이탈리아 폭격기에 의한 첫 공격이었다. 책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2차세계대전중 항모발진 뇌격기를 제외한다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뇌격기의 첫 출전이었다. S.M.79는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영국인에게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같았고, 미국인에게 머스탱 전투기와도 같은 대우를 받는 비행기였다. 이탈리아공군에게 이 뇌격기 전대의 활약은 신화와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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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79는 Alessandro Marchetti에 의해 디자인 되었고, S.M.81의 후속 버전이었다.(S.M.81이 번호 순서상 더 뒤에 나온 것인줄 알았다) 처음에 S.M.79는 1934년에 8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상업적 목적의 비행기로 출발했다. 1934 10월, Cameri 비행장에서 첫 시제기가 날아올랐다. 3발 엔진은 예전 버전때부터 그래왔겠지만, 기체의 안정성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승객들은 가운데 엔진에 의해 기체에 진동이 더 잘 발생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공기역학적으로 3발 엔진을 단 비행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나 보다.

 

첫 번째 시제기, Ⅰ-MAGO는 꽤 세련된 실루엣을 선보였다. 610마력의 Piaggio P.Ⅸ Stella RC2 9기통 성형 엔진 3기를 탑재한 이 시제기는 테스트 초기 수석 테스트 비행사였던 Bacula에 의해서 조종되었다. S.M.79P(P는 passenger를 뜻함)는 이때 해수면에서 최고속도 220mhp, 2515파운드정도의 짐을 실을 수 있었다. 1935년 6월 14일 이 시제기는 밀라노에서 로마까지 1시간 10분만에 254mph정도의 속도로 비행하는데 성공했다. 곧 엔진은 조금더 강력한 750마력 Alfa Romeo 125 RC35 엔진으로 교체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서 카울링이 앞부분이 약간 커지게되었고, 작전 수행 능력은 한층 향상 되었다. 1935년 7월, Biseo 대령에 의해 테스트를 거친 이 시제기는, 1000km 와 2000km의 기록을 깨뜨렸다. (무슨 기록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최대 항속거리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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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fa Romeo로 엔진을 교체한 후의 시제기 ]

 

 

이때, 이 3발 비행기에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오는데, 군부의 요청에 의해, 이때부터 민항기에서 폭격기로 변형,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군부의 판단으로는, 이 빠른 폭격기에 방호 기관총만 두서넛 달아준다면, 거의 무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만들어 진 두 번째 시제기 부터는 방호무장도 추가되었는데, 중앙의 엔진에 의해 폭격시 조준이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하여, 동체 아래에 Ju 88 이나 He 111등에서도 볼 수 있었던 방(영어로는 곤돌라라고 하는 것 같다)을 만들어 그곳에 폭격 조준기와 후방 기관총좌를 두었다. 전방으로 고정식 기관총도 장착했고, He 111처럼 기체 상단에 후방으로 발사가능한 기관총좌도 설치했다. 그 밖에 외형상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무기는 잘알려진 Breada-SAFAT 12.7mm 기관총이었는데, 후방총좌 덮게에 의해 곱사등이, 곱추라는 별명을 별명을 가지게 된 것도 이때 부터였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Sparviero(Sparrow : 참새)라는 애칭이 붙여짐에도 불구하고, 곱추라는 별명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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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커스 유모 엔진을 단 S.M.79JR 루마니아 공군 소속 기체이다. 생산 허가를 받고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수도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되었다고... . 중앙엔진이 사라진 부분은 소련군 중폭격기 Pe-8을 닮기도 한 것 같다. ]

 

양날개 사이 부분에 10개의 연료 탱크에 총 5622파운드의 연료를 채울 수 있었으며, 엔진뒤쪽에 각각 한 개씩 2개의 보조연료 탱크도 가지고 있었다. 전금속제 폭격기는 아니었고, 날개나 이런 일부 부위에 나무로 만든 합판이 쓰여졌다고 한다. 폭탄은 1t(2200파운드)가량 적재가 가능했으며, 불가피하게 중량을 초과해서 폭장을 할 때에는 550파운드 폭탄 5개나 220파운드 폭탄 12개를 싣고서도 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폭탄창에 다 들어가지 못한 폭탄은 기체 하부에 적절히 장착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드디어 이탈리아 공군으로부터 양산 허가를 받고 대량 생산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산형은 전보다 더 강력한 Alfa Romeo 126 RC34 9기통 공냉식 엔진을 탑재하여, 이륙시 엔진 출력이 780마력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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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79B형 중에서 매우 드문 변형을 거친 기종이다. 수직 꼬리날개의 러더가 Bf 110처럼 두 개이다. ]

 

S.M.79의 상업적 목적을 위한 개발도 별개로 계속 진행되었는데, 동체 하부 곤돌라를 달지 않은 S.M.79C, S.M.79T형이 존재했다. 1937년에 11대의 T형과, 5대의 C형이 제작되었는데, T형은 수송을 위해서, C형은 국제 레이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제작되었다. 특히 C형은 프랑스가 주관한 1937년의 이스트르(프랑스남부지역) - 다마스쿠스 - 파리 레이스에서 1,2,3등을 휩쓸어 이탈리아를 빛내는데 일조했다. 이 대회는 원래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등 4개 나라가 참여하여, 파리에서 뉴욕까지 경주를 펼칠 예정이었지만, 미국의 엔트리 선발이 늦어지면서,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일정이 바뀌게 된 것이었다. 다마스쿠스에서 프랑스에서는 레이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Caudron Typhon(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괴물 이름 같다) 4기를, 영국에서는 D.H.88 Comet 한기를 참가시키게 되지만, Comet기가 간신히 4등을 하는 등 영국과 프랑스의 체면이 말이아니었다. 1937년 11월, Luchini 대위와 Tivegna 대위가 조종하는 S.M.79가 또 하나의 세계 기록을 깨뜨렸는데, 그 기록이 1000km를 1100파운드의 짐을 싣고 249mph의 속도로 비행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별 기록이 다 있었나 보다 했지만, 1차 대전 이후 아직 비행기에 대한 연구, 설계가 한창이었던 이 시기에는 이러한 기록도 꽤나 대단한 것이었나보다. S.M.79의 장거리 비행에 있어서의 뛰어난 점이 계속 보여지는데, 1938년 초에는, 제 12 폭격기 전대(녹색 쥐라는 애칭을 가진 부대) 소속의 사보이아 3기가 이번에는 로마에서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까지의 비행에 성공했다. 총 비행시간이 24시간 30분에 달했는데, 중간에 다카르(세네갈 수도)란 곳과 나탈(브라질 북동부 끝에 위치) 두 곳을 거쳐서 가기는 했지만, 대단한 비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식으로 1937년에서 1938년 까지 S.M.79가 갈아치운 세계 기록만도 최소한 26개였다고 하니, 그 당시까지만 해도 S.M.79는 성능이 좋았던 기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의 첫 데뷔

 

S.M.79가 세계 기록을 무더기로 갈아치우며 영광을 맛보고 있을 즈음, 스페인 내전에서도 S.M.79이 투입되어 활약을 하게 되었다. 무솔리니는 1936년 6월에 내전 발발 이후 종전이 되는 1939년 3월까지 730대가 넘는 비행기를 제공했는데, 이중에 S.M.79와 S.M.81, Fiat BR.20등의 폭격기 기종이 끼여있었다. S.M.81이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폭격을 가할 때, S.M.79편대는 호위도 없는 배짱으로 그것도 장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가격하는 등의 대담한 작전을 구사해내었다. 프랑코의 국민당은 1937년 4월 대당 200만 페세타를 들여 몇대의 이 사보이아기들을 구입했고, 연말에 이르러서 S.M.79의 가용기체는 25대로 겨우 4기만을 잃어 이탈리아 공군의 호평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4개의 bomber groupe을 파견 했는데, 아마도 국민당이 구입한 사보이아 기가 이탈리아 공군과 같이 임무를 수행한 것 같다. 몇대를 구입했는지는 자료가 없음)

 

사보이가기들이 야간 폭격을 위한 출격에는 부적절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는데, 참모장이었던 Valle 장군은 1938년 1월 1일 밤 바르셀로나에 야간 폭격을 실행,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 함으로써 이러한 의구심을 차단했다. 그리고 딱 한달이 지난뒤, 이번에는 S.M.79가 단기로 폭격을 감행, Seira에 위치한 중요한 발전소를 폭파 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이 곱사등이 비행기는 외형에 걸맞지 않게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된다.

 

1938년 10월 초 S.M.79이 수행한 작전 중에는 당시 고립되어 항전을 계속 하고 있었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스페인 시민들에게 폭탄세례가 아닌 식량을 공중 보급하는 인도적인 작전도 있었다고 한다. 1939년 마침내 스페인 내전이 막을 내리고, 이탈리아는 80기가 넘는 사보이아 마르께띠를 남겨주고 갔고, 이 기체들은 얼마뒤 스페인공군의 한 부분을 형성하게 된다. (고공출격에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내전 초기의 전폭적인지지와, 전쟁이 끝나고 이렇게 잔여 기체까지 아끼지 않고 남기고 간 이탈리아가 정작 2차대전에는 독일이 스페인에게 받은 도움은 손톱만큼도 받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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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79의 후속 버전인 S.M.84이다. 전 버젼보다는 외양이 세련되고 유연해 보이지만,

79버젼에 비해 조종사들에게 그리 인기는 없었다고 한다. 그림출처 - In The Skies of Europe ]

 

2개의 엔진으로 다시 태어난 S.M.79B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보이아 마르께띠가 애당초 3발엔진을 탑재한 것은 안정성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이탈리아 공군에서도 인정 한 부분인데, 폭격 작전 도중 피탄되어 한 개의 엔진을 잃어도 나머지 2개의 엔진으로 충분히 귀환이 가능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 해준다. 또한, 그 당시 이탈리아 공군은 사보이아가 정면에서 공격받을 일이 없다고 판단하여, 고정식 기관총으로도 충분히 방호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독일 등을 비롯해, 항공기 꽤나 만들줄 아는 국가들에서 유행하는 것은 엔진 2기의 전투기나 폭격기였으며, 결국 이탈리아도 이 유행에 부합하여 중앙의 엔진을 제거하고, 여기에 He 111처럼 폭격수/사수가 직접 조종하는 기관총 한정을 장착했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것이 S.M.79B인데, 캐노피가 전 버전에 비해 확 달라졌고, 폭격수의 위치와 조종석의 위치도 앞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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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공군의 S.M.79B이다. ]

 

S.M.79B의 첫 번째 시제기는 2기의 1030마력 Fiat A.80 RC41 18기통 성형 엔진을 탑재하였고, 1936년에 처음 제작되어 시험 비행을 거쳤다. 15000피트에서 255mph로 비행이 가능했던 이 비행기를 이탈리아 공군은 대외적으로 널리 홍보했는데, 홍보 대상 국가만 해도 아르헨티나, 벨기에, 브라질, 유고슬라비아, 터키, 스페인, 러시아, 중국, 핀란드, 루마니아등등 대부분의 국가가 비록 항공 기술에 있어서는 개발 도상국이거나 후진국이었지만, 어느정도 공군에 관심이 있었을 만한 나라인 것 같다.

 

아르헨티나의 차기 폭격기 선정 경쟁을 위한 일종의 콘테스트에서 S.M.79B의 기동성이 도마에 올랐다. 아르헨티나측의 질문에 조종사가 자신의 사보이아 기에 재빨리 올라타더니, 날아올라서 루프기동을 4번이나 소화해내고, 대회에서 우승을 해 버렸다. 같은해에, 이라크가 4기의 사보이아를 주문하여 1938에 받았는데, 1941년 반영국 폭동이 일어났을 때 모두 부숴져 버렸다고한다.(폭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양해바랍니다;;) 브라질에도 3기가 수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가장 큰 수출 실적을 올린 나라는 루마니아로, 24대의 마르께띠를 도입했다. 비록 1000마력으로 시제기 보다 아주 조금 마력이 떨어지는 Gnôme-Rhône K.14 Mistral-Major 엔진을 탑재 했지만, 루마니아 공군은(사실 위에서 말한 나라들에 수출한 기체들도 엔진 종류가 각양각색이었다-달리 속셈이 있었던 것일까?) 이 '참새'의 성능에 반해 그 뒤 24기를 추가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이때에 들어온 기체들은 1220마력의 융커스 유모 211Da 12 기통 수냉식 직렬 엔진을 탑재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앞에 사진으로 이미 나왔지만, 나중에는 아예 S.M.79JR이란 이름으로 생산 허가까지 따서 루마니아 수도인 부큐레슈티의 공장에서 직접 생산 하기도 했다. JR형은 루마니아 공군 소속하에 독소전에 참여하여 활약하게 되고, 앞서 수입했었던 48기의 S.M.79들은 수송임무를 주로 맞게 된다.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수입국가들과는 예외로 S.M.79의 3발엔진형을 고집하여, 45기의 기체를 매입하게 된다. 하지만 1941년 독일과 이탈리아간의 충돌로, 거의 대부분의 기체를 소실하게 되고, 잔여 기체들은 모두 크로아티아로 옮겨져 크로아티아 공군 도색을 하고 날게 되었다. (1941년 3월 당초의 중립노선을 버리고 3국동맹에 가입하였는데, 이때 D. 시모비치장군 등을 중심으로 하는 친서유럽파의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아마도 이때 독일군의 공격으로 잃은 듯 하다)

 

2차세계대전에서의 S.M.79

 

차세대 폭격기로 관심을 모으던 Cant Z.1007은 아직 개발중에 있었고, Fiat B.R.20은 이제 노후한 기종이었다. 고리치아(이탈리아 동북부의 도시)에서 사보이아의 어뢰 투하 능력을 시험하게 되었고, 동체 하부에 직경 450mm, 탄두 375파운드의 어뢰를 장착 하고 시험에 들어갔다.

 

img1.gif당시 이탈리아의 어뢰에 대한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고 있었는데, 공중에서 투하 가능한 어뢰를 제작하는 기술력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고 한다. 훗날 독일공군에서도 이탈리아 어뢰를 받아들여 쓰게 된다. (IL2을 참고로하자면 He 111의 동체 하부에 왼쪽의 사진 처럼 어뢰 2기를 장착할 수 있었다)

 

1937년 1기의 어뢰를 장착하고 테스트한 것이 성공적이었음이 드러나자, 1938년 3월, 이번에는 2기의 어뢰를 동체 하부에 나란히 장착하고 시험에 들어갔다. 물론, 중량증가로 기체 성능은 저하되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 높은 마력의 엔진을 탑재 시키기로 했는데, 그 결과 1000마력의 Piaggio P.ⅩⅠRC 40 엔진 3기를 탑재하여, 이것이 S.M.79-Ⅱ형이 되어, 1939년 10월 대량생산이 시작 되었다. 일부지만 1350마력의 Alfa Romeo엔진이나 1000마력의 Fiat엔진을 탑재한 것도 있었다.

 

1939년 까지 11개의 Stormi (이탈리아 공군 부대단위 보통 4개의 Squadriglie로 구성되어있다)에 총 389기의 마르께띠가 준비되었다.

 

이탈리아 공군이 사용한 어뢰 - 그들에게도 내세울 것이 있었다!

이탈리아 공군은 S.M.79 제작 당시 두 종류의 어뢰가 있었는데, 이중하나가 앞에서말한 탄두 375파운드 짜리 어뢰(Silurificio Whitehead of Fiume제작) 하나고, 또다른 하나는 탄두 352파운드 짜리 어뢰(Silurificio Italiano of Naples제작)였다. 직경은 모두 450mm였으며, 일반적으로 320피트 상공에서 185mph정도의 속도에서 투하했다고 한다. 1941년 12월에는 탄두 440파운드의 어뢰도 생산되기 시작하여, 표준 어뢰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또한 독일공군에도 공급되었다고한다. 이탈리아 공군의 뇌격 기술과 장비는 그 당시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을 만한 수준이었다.

 

이탈리아가 참전을 한 1940년 6월 10일에는 총 594대의 '참새'가 14개로 늘어난 Stormi(계산해보면 한 개의 Stormi에 40여대의 비행기가 배치된셈이니 독일의 일개 그루페 정도 크기의 부대단위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에 배치되어있었고, 이중 403기가 작전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이리하여, 일선에 배치되어 있었던 975대의 비행기중 3분의 2를 차지하여 명실상부 이탈리아의 주력 폭격기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때 주로 배치된 곳은, 이탈리아 본토와 사르디나, 시실리, 사르디니아, 리비아였다.

 

첫 번째 작전은 1940년 6월에 이루어진다. (이 부분을 번역하다가 적잖이 당황하게 되었는데 이미 이 글 맨 앞부분에 2차세계대전 S.M.79의 첫 출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 작전보다 시기가 뒤인 1940년 8월로 말이다. 아마도 저자의 오류인 듯 하다. 큰 문제는 아니니 넘어가기로 한다.) 9° Stormo 9대, 46° Stormo 소속 10대의 마르께띠가 지중해 연안 리비에라 해안의 프랑스 해군을 위협하러 출격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항복을 선언했고, 이탈리아공군의 '참새'들은 그다지 큰 전공을 세울 수는 없었다.

 

1940년 10월 28일 그리스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에게해 제도에 기지를 두고 있었던 마르께띠들이 알바니아에 주둔중이던 마르께띠 두 개 Gruppi와 합세하여, 전력을 한껏 모았다. 1941년 4월 22일 까지 지속된 작전에서 이 '참새'들은 휴식시간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서 많은 작전에 참가하였다. 그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도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30여대의 S.M.79가 알바니아에서 차출되어 투입되었다고 한다. 앞에서 유고슬라비아의 S.M.79구입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때 유고슬라비아는 40여대의 기체를 동원해서 이탈리아의 공세에 맞섰고, 이시기에 대부분의 기체를 손실한 것 같다.

 

크레타 섬 공수 작전에 독일공군의 역할이 대부분을 차지했었지만, 그 당시 S.M.79들도 대함작전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한다.

 

북아프리카 전쟁이 막 발발 했을 때의 리비아 주둔 이탈리아공군 전력은 4개의 Stormi로, 총 125대의 가용 기체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중 '참새'가 35마리(?)였다. S.M.81도 9기 있었다고 한다.

 

img1.gif[ S.M.79Ⅱ가 맡은 전형적인 임루였던 대함 작전이다. 어뢰는 한기만 보이는데, 사실 2기까지 장착이 가능했으나, 1기 장착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

 

여기에 배치되었던 '참새'들은 주로 솔룸이나, 시디 바라니 같은 지역의 영국군 기지를 폭격하는데 투입되었다. 이탈리아군의 영국군의 대한 첫공격이 시작될 때에는 제 27°Gruppo의 S.M.79들도 참가하였지만, 공격실패와 뒤이은 영국군의 반격으로, 이탈리아군이 퇴각을 거듭한 후에는 북아프라카 이탈리아 공군 잔존기는 끌어모아도 125기에 불과 했다. (북아프리카 항공전과, 그 당시의 작전은 홈지기님의 Airwarfare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북아프리카 항공전 초기의 영국군과 이탈리아군이 보유한 기체들 중에서는 S.M.79가 그나마 가장 현대적인 기종이었다고한다.

1940년 8월, 이탈리아군이 영국령 소말리아를 공격했을 때에는 85기의 총 보유기체중 11기가 마르께띠였다. 이탈리아 본토에서의 S.M.79보충도 마르께띠의 대단한 항속거리에 의해 용이 했다고 한다. 중간에 리비아의 Cupra라는 오아시스에서 한번만 연료를 재급유 해주면, 소말리아까지 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런식의 꾸준한 기체 보충으로, 1941년 1월 영국군의 반격이 시작 되었을 때에는 28기의 마르께띠들이 활약을 할 수 있었다.

 

동아프라카 전선 S.M. 73, S.M.75에 대한 일화들

S.M.79에 대한 일화는 아니지만 3발 비행기로서 79보다 더 앞서 양산이되었던 S.M.73과 S.M.75에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출처 : In the skies of europe)

Savoia Marchetti SM.75 Marsupiale [S.M. 75 Marsupiale의 사진 수송기였던 73 형의 후속버젼 독일공군의 Ju 52수송기와 흡사해 보인다. 그림 출처comandosupremo]

1941년 2월은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에 주둔하고 있었던 이탈리아군에게 불행한 소식의 연속이었다. 2월 25일 이탈리아령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가 영국군의 손에 떨어졌고, 이탈리아 공군내의 촉망 받던 에이스들도 하나둘 전사하고 만다. (훗날 북아프리카에서 활약하게될 JG 27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맛보게 되지만...) 그리고 2월 말에는 이탈리아군의 가용기체가 42기로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3월 27에는 천연자연 요새였던 에리트리아의 케렌요새가 함락되었고, 이탈리아군 4만명이 항복했다. 3월 말경에는 이탈리아공군의 잔여부대원들까지 일반 육군으로 전략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동아프리카 해역에 있던 5대의 이탈리아 구축함도 공중지원하나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탈출을시도, 5척 전원 격침당하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바바도 이제 영국군의 깃발이 꽂힐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Max Peroli라는조종사는 영국군에 의해 포로가 될 운명에 맞서, 뜻있는 조종사들을 모았다. 3대의 S.M.75 수송기를 요청하여 허락을 받은 그는 연료를 꽉꽉 채워도 이탈리아의 세력권까지 비행하기가 약간 어려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뜻을 같이한 42명의 이탈리아 공군 부대원들과 아디스바바가 함락되기 2일전인 4월 3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의 여행은 마치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의 여행과 같아서, 비행하는 동안 엔진 고장과, 모래폭풍, 동체 착륙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억류등 갖은 고생을 다 겪게 된다. 1941년 5월 13일 한밤중에, 장장 6270km의 비행 끝에 이탈리아의 세력이 미치는 땅에 내릴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서북부 곤다르라는 도시에서는 마지막 남은 13기의 이탈리아 공군기들이 집결했다. 이제 곤다르는 동아프라카 이탈리아군의 마지막 남은 거점이된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도 얼마 안있으면 영국군의 깃발이 휘날릴 상황이었다. 이에 앞서도 나왔던 뛰어난 이탈리아군 조종사 Max Peroli는, 적십자 마크를단 S.M.75 한기를 몰고, 로마-벵가지-곤다르-지부티(프랑스령 이탈리아)-벵가지-로마 이런식으로 필수 군수품들을 수송하여, 곤다르의 이탈리아군이 조금이라도 북아프리카에 투입될 영국군 전력을 묶어두는데 일조했다. 1941 6월 20일 첫비행을 시작, 약 12000km나 되는 거리를 4번씩이나 왕복 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5번째 비행을 시도했던 10월 5일, 지부티 비행장에 주기하고 있었던 그의 비행기(I-LUNO)가 한 남아프리카 출신 조종사의 기총소사에 의해 화염에 휩싸여 버렸고, 1941년 11월 27일 저녁, 곤다르지역의 모든 이탈리아군은 결국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지중해위를 나는 S.M.79

 

S.M.79기들은 영국 본토 항공전에 참가한 Corpo Aero Italiano(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쓴 Airwarfare 영국항공전 사이드스토리 참고바랍니다)부대에서 활약하는 대신, 지중해에 투입되었다. 이 지역에서 대전내내 상선 선단이나, 전투함대등 크기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게 된다. 대전중 '참새'들에 의해 격침된 구축함들은 Husky, Jaguar, Kujavik Ⅱ, Legion과 Southwall이 있었고, 전함 Malyaya와 항공모함 빅토리우스, 인도미터블, 이글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1941년 Fliegerkorps Ⅱ가 시실리로 배치되었을 때에는, 14척의 각종 연합국 선박이 격침되었고, 최소한 60척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북아프리카에도 첫 뇌격기 전투부대가 도착하였다. 1942년 3월 25일, 131° Stormo Autonomo가 창설되어, 뇌격과 폭격임무를 겸하여 수행하게 되었다. 엘알라메인의 전투가 시작될 무렵에는, 34기의 마르께띠들이 몇 개의 CR.42이나 M.C.200과 M.C.202 전투기 그룹과 함께 독일군의 작전을 지원했으며, 엘알라메인에서의 전투가 패배로 돌아간 후 거의 모든 이탈리아 기체들이 철수를 하여, 마지막 특수 유닛으로 Sparviero 한부대만이 트리폴리타니아에 남았다고 한다.

 

아마도 S.M.79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의 순간은 지중해에서의 대함작전이 아니었나 싶다. 1942년 8월 10일, 지브롤터항을 출발한 14척의 수송선이 필수품을 가득 싣고 여러대의 구축함, 전함, 순양함, 이것도 모자라 세척의 항공모함의 호위까지 받으며 몰타섬으로 향하고 있었다.(작전명 : Pedestal 이때, 74기나 되는 '참새'떼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간신히 이 대형선단이 몰타섬에 닿았을 때에는, 이미 9척의 상선과 항모 이글호(사실 Uboat.net등 최근의 자료들을 보면, 이글의 격침은 독일 유보트에 의한 것이라고 나온다), 2척의 순양함, 한척의 구축함과 18기의 방어 전투기들을 잃었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부대는 Buscaglia 대위가 이끄는 132° Gruppo로서, 영국 항모 아구스와 전함 말라야등 큰 전함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Savoia Marchetti  SM.79-II

엔진: 3기의 Alfa Romeo 126 RC 34 9기통 750마력

전폭: 169피트 6인치

전장: 54피트 1과 4분의 3인치

기체중량: 15310파운드

최대중량: 23643파운드

최대속도: 23mph (해수면)  

최대고도: 21325피트

 

딱히 S.M.79를 대체할 기종이 없었던 이유로, 이탈리아 공군은 이 기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했다. 에틸액을 분사하여 단시간에 30mph의 속력을 더 얻을 수 있게하는 장치도 고안되었고, 엔진도 교체가 되었다. 하지만 부족한 부품을 공급받지 못해 마르께띠의 가용 전력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1943년 7월 이탈리아가 항복을 선언하게 되자, 대부분의 기체들은 연합군 손아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소수의 기체는 독일의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무솔리니의 ANR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힘겨운 전투를 한다. 이당시 독일군의 세력하에 있었던 북부 이탈리아 공업지대에서는 새로운 S.M.79Ⅲ(S.579라고도 불림)이 나왔으며 동체 하부의 곤돌라를 없애고, 기수 앞부분의 기관총을 20mm 기관포로 교체하는등 개량을 꾀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소수의 기체만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S.M.79는 대전 말까지 다양한 작전을 소화해 내었는데, 이중 한가지 흥미있는 것이 무선조종에 의한 자살 공격이었다. Raffaelli 장군이 이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폭발물을 가득 싣은 S.M.79를 처음에는 경험있는 조종사가 타고 이륙하여 몰다가, 예정된 항로로 비행기를 향하게 한후 조종사는 낙하산 탈출을 하는 것이었다. 그뒤의 조종은 라디오로 Cant Z.1007Ⅱ에서 조종하는데, 이런식으로 실제로 Pedestal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상선에 공격을 감행 하였다. 비록 라디오 이상으로 배에 떨어지는 대신 알제리에 있는 Klenchela산에 들이받기는 했지만, 재미를 붙인 이탈리아 장군은 이 작전에서 영감을 얻어, 값싸게 만들 수 있고 믿을 만한 무선 조종식 폭탄 개발을 시작, A.R.이라는 간단한 목재 단엽기를 만들어 1943년 6월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했다. 물론 이미 늦었지만...

 

2차대전 종전후, 모든 살아남은 S.M.79들은 연합군 선단을 공포에 질리게했던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수송만을 맡게 된다. 이중 3기의 기체는 레바논으로 수출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이 '참새'들을 위한 전투임무는 없었다고 해도 괜찮을 듯 싶다. 1944년까지 총 1330기의 마르께띠가 제작되어 연합군의 기체 생산 댓수보다 작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총 공군기 생산의 20프로를 차지했을정도로 많이 생산되었고, 또한 많이 생산된 만큼 조종사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은 기체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SM.79 일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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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항복한후, 독일공군에서 수송기로 쓰이던 S.M.79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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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공군에 수출된 S.M.7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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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봄 시칠리에 배치되어 있었던 이탈리아 공군의 132° Gruppo 소속 S.M.79Ⅱ

 

 

마치면서...

 

S.M.79에 대한 소개가 드디어 끝이 났다, 사실 이탈리아 공군은 게임에 잘 나오지도 않는 편이고, IL2에 몇종류 기체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 특이하게 생긴 3발 폭격기 S.M.79는 아직 패치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음에는 조금더 불타는 하늘 가족들이 몰랐었을 만한 기체를 소개하고 싶다. 그럼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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