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에이스들과의 인터뷰-

불량감자 2010. 1. 18. 07:21

 Ace Interview  III

 

 
Gunter Rall
 
 
들어가기 전에 홈지기 한마디
 
군터 랄(Gunter Rall)은 2차대전 독일 격추기록 제 3위에 랭크된 슈퍼에이스로 총 275기의 격추를 달성했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보게 되면, 상대방 국가의 조종사를 존경하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에이스들 마저, 이러한데, 온라인 비행시뮬레이션에서 몇 번의 격추로 마치 자신의 비행술이 최고인양  쉽게 생각하게 되는 저를 비롯한 싸이버 파일롯들에게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상대의 기동술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때, 진정 수퍼에이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
 
 
 
기자 : 어린시절에 대해 말해 주시죠
 
랄 : 나는 1918년 3월 10일, 가겐나우라는 곳에서 태어났읍니다. 그곳은 아주 작은 마을로 아버지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내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일차대전에 참전 중이었읍니다.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고, 그때 비로소 처음 어린 나를 볼 수 있었읍니다.
 
 
기자 : 혹시 형제들이 있었나요? 그리고 교육은 어떻게 받았나요?
 
랄 : 우리 가족은 내가 세살될 때, 수투트가르트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이후에 쭉 살았기 때문에, 이곳을 거의 제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읍니다. 이곳에서 여동생이 태어났읍니다. 나는 어린 시절, 9년간 라틴어를, 또 3년간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했읍니다. 그때의 제 관심은 문학에 집중되어 있었고, 과학분야나 수학적인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읍니다. 그후 18세가 되었을 때, 보병 장교 후보생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적 뿐만 아니라, 매서운 추위와도 싸워야 했던 JG 52 비행단의 일러스트
 
 
기자 : 보병에 입대한 후, 그곳에 남아 있지 않고, 공군으로 옮겼는데, 그것은 진흙탕에서 달리는 것이 당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어서 그렇게 결정한 건가요?
 
랄 : 그렇습니다, 난 나중에 공군 장교가 되기로 결심했읍니다. 제가 처음 비행을 경험해 본것은 공군 후보생으로 생활할 때였읍니다. 그후에 장교가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을 보았는데, 그 당시에는 공군은 모든 공군 후보생을 훈련시킬 정도로 규모가 크진 못했읍니다. 정식으로 공군 장교로 생활한 것은 정확히 1938년 부터였죠.
 
 
기자 : 첫 공중전은 어떠했읍니까?
 
랄 : 그때가 1939년, 제가 21세 되던 때였읍니다. 난 드디어 베를린의 동쪽에 있는 비행 훈련 기지에서 전투 조종사 훈련을 마쳤고, JG 52 전투 비행단으로 전속되었읍니다. 이차대전이 시작했을 때, 우리 비행단은 프랑스에서 거의 첫임무를 시작했죠. 그당시까지만 해도 JG 52는 대단한 비행단은 아니었으나, 워낙 적들의 수준이 떨어져, 그렇게 힘든 임무들은 아니었읍니다. 제가 처음으로 적을 만난 것은 1940년 프랑스에서였죠.
 
 
기자 : 프랑스가 함락된후, 랄씨는 영국해협에서 복무했었죠?
 
 
랄 : 그렇습니다. 우리는 칼라이스 근처로 기지를 옮겼읍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영국으로 날아갔고, 영국 왕실 공군의 조종사들과 기량을 겨루게 되었읍니다. 우리는 영국 수송선단을 공격했고, 영국전투기들과 싸워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단지 영국해협과 영국 남부 지역에 국한 되어 있었읍니다. 물론 이유는 우리 전투기들의 연료문제가 가장 컸읍니다. 원하더라도 더이상 날아 갈 수는 없었죠.
 
 
기자 : 당시 영국 조종사들의 실력은 어떠했읍니까?
 
랄 : 탁월했읍니다. 그들은 모두 잘 훈련 받은 전사들이었고, 사기 또한 높았읍니다. 또 좋은 전투기로 무장도 했구요.
 
 
기자 : 그렇다면, 당시 루프트바페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랄 :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복무하던 JG 52는 당시 창단된지 얼마 되지 않은, 거의 전투 경험이 없는 전투 비행단이었고,  우리는 영국해협 상공에서, 처절한 전투 비행 훈련을 경험한 것이죠. 그리고 우린 영국 공군을 상대해, 엄청난 손실을 보았읍니다. 난 영국 조종사들을 아직도 가장 존경하고 있습니다.
 
 
기자 : 당시 독일 공군의 손실의 대부분은 전투기들만의 공중전에서 였나요? 아니면, 폭격기 호위 임무에서였나요?
 
영국의 전투에서 랄이 주로 맡았던 수투카 호위 임무... 수투카 바로 옆에 붙어
메서슈미트 109가 비행한다는 것은 전투기의 장점을 무시한 전술의 오류였다
 
 
랄 : 우리 비행단은 대부분 Ju 87B 수투카 급강하 전폭기 호위임무를 수행했었읍니다. 그들은 매우 속도가 떨어지는 기종이었고, 또 우리 메서슈미트 109 들은 그들과 속도를 맞춰 느리게 비행해야만 했읍니다. 근접 호위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건 사실 좋은 전술이 아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히 잘못된 전술이었읍니다. 즉, 우리 메서슈미트 109가 전투에 꼭 필요한 속도와 에너지의 우위를 포기한 채 수투카들을 호위해야 했으니까요.
 
우리가 영국해협으로 접근하면, 스피트화이어허리케인 전투기들이 우리보다 높은 상공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공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의 우위입니다. 즉 고공에서 곧바로 운동에너지로 바꿔 버릴 수 있는 잠재적인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속도라고 가지고 있어야, 고공에서 우릴 노리는 영국기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술적인 오류로 우린 둘 중 어느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불리한 상태에서 영국 전투기들과 조우해야 했읍니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읍니다. 엄청난 루프트바페의 손실이며, 우수한 독일 조종사들이 희생되었읍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전술의 과오때문에....
단 2주만에, 우리 그루페의 3명의 비행대장들이 전사했고, 난 22세의 어린 나이로 8중대 중대장이 될 수 밖에 없었죠.
 
 
기자 : 제 생각으론 이런 영국 전투에서의 어려움들이 나중에 JG 52가 러시아 전선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 아닐까요?
 
랄 : 그렇습니다. 정확합니다
 
 
기자 : 그후 복무했던 전선은 어디 어디였나요?
 
 
[사진] JG 52의 메서슈미트 109의 사진
 
랄 : 영국의 전투이후 우리 비행단은 프랑스에서 독일로 옮겼고 새로운 신참 파일롯들을 훈련시켰고, 이후 다시 루마니아로 옮겼읍니다. 거기서 우리는 정유시설 및 주요 교량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때가 1940년 12월에서 1941년 3월까지로 매우 짧은 시기였죠. 다시 JG 52는 불가리아, 그리이스로 옮기기도 했지요. 1941년 5월에는 크레타섬 임무에도 참가했습니다.
 
그후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왔는데, 그때 새로운 버전의 메서슈미트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죠. 바로 Bf 109 F (홈지기가 가장 좋아하는 기종  ^.^)였읍니다. 첫 눈에 우리의 애기의 앞날개의 끝이 둥글게 변해있고, 또 새로운 다이믈러 벤쯔 603 엔진이 탑재된 것을 알아봤죠. 성능도 109 E보다 월등했읍니다.
 
1941년 6월,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쟁이 일어났고, 나는 1944년까지 러시아 남부지방에서 복무했고, 그후 코카서스, 스탈린그라드 등지에서 임무를 수행했읍니다. 사실 러시아 북부와 비교할 때, 남부지방의 부대들의 이동이 더 잦았읍니다. 그후 러시아 전선에서, 독일 본토 방어전으로 무대를 옮겼고, 미 제 8 공군과 싸웠읍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최신예 P-51 무스탕 전투기P-38 라이트닝, P-47 썬더볼트 전투기였습니다.
 
 
기자 : 랄씨는 임무 도중 심각한 척추 부상을 당했는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시죠.
 
[그림] 랄이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메서슈미트 109의 조종석.
 
랄 : 1941년 11월 28일, 그날은 매우 추운 날이었읍니다. 영하 40 도씨까지 내려가더군요. 나는 오후에 윙맨과 함께 임무비행을 시작했는데, 그날의 임무는 전투기 소탕임무였죠.  
 
우리가 러시아 상공으로 접어들었을 때,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읍니다. 얼마후, 나는 러시아 전투기 한대를 격추시켰읍니다. 어느새 밤이 되었고, 시야는 매우 안좋았습니다.
 
그때 러시아 전투기 한대가 내 6시 방향으로 접근하는 있었는데, 난 까맣게 모르고 있었죠. 곧 러시아 파일롯은 사격을 개시했고, 내 엔진은 손상을 받았읍니다. 그곳은 적진영 상공이라, 난 회피기동을 하며, 독일진영쪽을 행해 달아나야만 했읍니다. 얼마후 동체 착륙을 시도했는데, 지상에 닿을 때 속도가 너무 높았읍니다. 작은 계곡위로 지나가며, 땅에 충돌했고, 그전에 나는 조종간을 힘껏 뒤로 잡아당겼다는 기억이 나는데, 그후론 정신을 잃어 버렸죠.
 
이후의 이야기는 내 윙맨에게 나중에 전해 들었읍니다. 내가 추락하자, 윙맨은 그 위에서 뱅글뱅글 돌며, 나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신이 도우셨는지 다행히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 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거죠. 마침 그주위에 독일의 탱크가 있었다더군요. 탱크 승무원들이 정신을 잃은 날 칵크핏에서 끌어냈고, 곧 후송되었습니다.
 
 
기자 :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행운이 따라 주었네요
 
랄 : 그래요. 행운이었죠. 이 사고로 척추를 다쳤는데, 8번과 9번 흉추와 5번 요추가 골절되었고, 난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되어, 마비가 풀릴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자 : 전쟁 중에 몇번이나 부상을 당했나요?
 
랄 : 총 3번입니다. 그리고 격추 당한것은 총 8번이구요. 대부분은 전선에 불시착, 동체착륙으로 목숨을 구했었죠. 첫번째 부상은 지금 말한 척추 손상이었고, 그후 오른쪽 얼굴과 손을 다쳤었죠. 마지막 부상은 P-47과의 교전 도중 명중을 당해 탈출했는데, 미국 조종사가 탈출하는 날 쏘더군요. 그래서 왼쪽 엄지 손가락을 다쳤었습니다.
 
 
기자 : 랄씨는 부인인 헤르타(Hertha)양을 병원에서 만났다고 들었는데요.
 
랄 : 그렇습니다. 헤르타는 의사였고, 러시아 전선에서 부상당한 후,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죠. 그녀는 내가 온 몸에 기브스를 한채 다시 날겠다고하자 이렇게 말햇었죠.
"비행이요?  이제 부턴 하늘을 난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세요."
나중에 난 나의 모든 심정을 담아 편지를 썼고, 후에 그녀는 내 아내가 되었읍니다.
 
 
기자 : 랄씨가 탑승해 본 전투기는 어떤 기종들이 있었나요?
 
랄 : 난 거의 모든 기종의 Bf를 탑승해 보았읍니다. E, F, G, K까지..... 그리고 Fw 190 역시 타보았죠. 그러나 난 109를 더 좋아했읍니다. 이유는 물론 내게 더 익숙했기 때문이죠. 내가 타본 190은 D형으로 "긴코의 Fw(long nose Fw 190 D)"로 잘 알려진 기종이 유일했고, 그것도 전쟁 거의 막바지에 몇번의 임무만 Fw를 탑승해 수행했읍니다.
 
 
랄의 메서슈미트
 
 
기자 : 연합군의 전투기와 비교해 보면, 독일의 전투기는 어떻습니까?
 
랄 : 내가 부상당했을 때, 요양을 하면서 약 4개월간, 루프트바페 지휘관 양성 학교의 교장직을 해나간 적이 있읍니다. 그때, 노획된 연합군의 여러 기종을 탑승해 보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것은 P-38, P-47, P-51, 그리고 스피트화이어였죠.
 
[그림] 랄이 연합군 최고의 전투기로 꼽은 무스탕이 포케볼프를 쫓고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전투기는 무스탕이었읍니다. P-51은 우리가 300 시간이상 시험비행을 했는데도 기름 누출등의  조그마한 사소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죠.
 
 또 시동을 거는 것도 전기장치로 스위치 하나만으로 가능하게 되어있었는데, 우리들에게 좀 생소한 것이었죠. 사실, 우리 전투기들은 직접 프로펠러를 인위적으로 돌려줘야 했는데, 이런 점 때문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러시아 전선에서는 전투기 시동거는데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P-51의 칵크핏은 조종사들의 입장을 많이 고려해서 만들어져, 쾌적하기까지 하더군요. 우리의 Bf 109는 조종석이 매우 좁고, 타이트합니다. 그 누구도 메서슈미트 109를 타고 7시간이상은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에 비해 무스탕의 칵크핏은 처음 타본 내게는 커다란 방 같이 느껴질 정도였었죠.
 
P-38는 쌍발 전투기였는데, 역시 멋진 기종이었읍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합군 전투기 중 P-51이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피트화이어도 우수한 전투기이지만, 무스탕보다는 항속거리가 짧았고, 이것이 스핏화이어 보다 무스탕에게 더 점수를 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기자 : 독일 공군 조종사들은 베르너 뮐더스(Werner Molders)를 매우 존경한다고 들었읍니다.
 
랄 : 물론입니다. 그는 굉장한 인물이었고, 또한 훌륭한 지휘관이었읍니다. 게다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죠. 그는 새로운 전술을 고안해냈는데, 직접 그 전술을 활용했고, 공중에서나 지상에서나 항상 편대원들을 아끼고, 관심을 가졌읍니다. 그가 비록 나이가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에게 "아버지"로 불리웠던 것은 그의 경험과, 지도력의 산물이었죠.
 
 
기자 : 랄씨, 개인적으로 르프트바페 사령관 헤르만 괴링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요? 독일 조종사들이 그를 싫어 했던 것이 사실인가요?
 
 
[사진] 헤르만 괴링의 비밀 무기....
 
랄 : 전쟁전에 괴링은 매우 능력있는 뛰어난 인물이었읍니다. 1차대전 당시에는 훌륭한 에이스 조종사였구요. 또 1차대전 이후 무너졌던 독일 공군을 다시 일으키고 재정비하는 엄청난 일을 해낸 인물이었죠.
 
그러나 그는 1923년 부상을 당하게 되고, 그후 고통을 잊고자, 몰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거의 중독될 지경이 되었죠. 아마도 이것이 그의 성격을 바뀌게 한 원인이었나 봅니다. 그는 매우 비대한 거구였고,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군 지휘관들에게서 존경이라고는 받질 못했읍니다. 사실, 그가 공군을 이끌었던 것은 아닙니다. 독일 공군은 다른 실제적인 인물들에 의해 지휘를 받았던 것이죠.
 
가끔 괴링이 히틀러에게 실없는 소리를 할때면,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 당신은 공군의 지도자요!"  영국의 전투에서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도, 그는 공군에 의한 승리를 호언장담했지만, 모두 패배로 돌아갔습니다.  
 
 
기자 : 한스 울리히 루델 Hans-Ulrich Rudel은 이차대전 기간 중 가장 뛰어난 수투카 에이스로 정평이 나있읍니다. 그에 대해 아시는게 있읍니까?
 
 
[사진] 뛰어난 에이스지만, 랄이 개인적으로는 별로 달갑지 않아했던 한스 울리히 루델
 
 
랄 : 당연히 알고 있읍니다. 사실 나는 몇번 그의 전폭기 호위 임무도 수행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타고난 수투카 조종사였읍니다. 그는 519 대의 소련 탱크를 격파해냈죠.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에서 함께 감금 당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볼때 그는 매우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고,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읍니다. 그것이 내게는 좀 거북스러웠습니다.  
 
 
 
기자 : 아돌프 히틀러와의 만남은 어땠읍니까?... 예를 들어 훈장 수여를 받을 때라든지?
 
랄 : 처음 히틀러를 만난 것은 1942년 11월이었읍니다. 그때 나는 "오오크잎 달린 철십자장"을 수여 받았죠. 철십자장에 달게 되는 오오크잎부터는 히틀러가 직접 수여했었읍니다. 그당시 나와 요하네스 스타인호프를 비롯해 총 5명이 수여 받았었죠. 우리가 히틀러의 지휘본부로 들어서자, 바로 거기에 그가 서있었읍니다. 우리는 벽난로 주위에 앉았고, 히틀러는 각기 우리가 어떤 부대 소속인지 또 공중전에 대해 물어 보았읍니다. 그후 히틀러는 곧 연설과 같이 긴 이야기를 시작했읍니다. 그가 건설할 제3 제국의 미래와 러시아 점령후 건설할 도시들의 이야기 등등....
 
그때 나는 당돌하게 그에게 질문을 던졌읍니다. 사실, 그의 말을 끊어 버린 것이죠. 나는 "그렇지만, 총통은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가 처음 러시아에 갔을 땐,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러시아의 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지금 추위와 싸우고 있읍니다." 라고 물었던 것이죠.
 
그러자 히틀러는 내게 말했읍니다.
"글쎄, 지금은 자네에게 말할 순 없네. 우리는 러시아에서 우리의 정착지를 이미 가지고 있네. 적들은 아시아의 깊숙한 곳에서 오게 될 걸세. 우리는 이곳을 지켜야해. 마치 징기스칸에 대항하던 때처럼..."
 
 
기자 : 연합군의 기종중 가장 격추시키기 어려웠던 기종은 어떤 것이죠?
 
랄 : 처음 임무 비행 동안 가장 힘든 상대는 영국의 스피트화이어 전투기였읍니다. 매우 뛰어난 전투기였고, 조작성도 좋았고, 상승력도 괜찮은 편이었읍니다.
그후 러시아 전선으로 옮겼는데, 독소전 개전 3 -4 개월만에 소련은 7000 대의 항공기를 잃게 되죠. 1943년 진보된 야크, 라 5 (la-5) 전투기들이 등장하면서, 승부는 점점 어려워졌읍니다. 특히 가장 뛰어난 소련의 기종은 La5의 후속버전인 La-5FN과 La-7 전투기였습니다.
 
 
기자 : 소련의 에이스 이반 코체더프 (Ivan Kozhedub)는 연합군 최고의 격추를 기록한 에이스로 랄씨가 속해 있던 JG 52와 많은 교전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역시 La-7 전투기가 가장 뛰어난 소련의 전투기라 했읍니다.
 
랄 : 그렇죠. La-7은 정말 뛰어난 전투기였읍니다. 한번은 내가 La 전투기를 추격하고 있었는데, 109로 그 전투기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더군요.
그외 P-47역시 급강하 능력에서는 탁월했는데, 시속 1400 km까지 낼수 있었죠. 메서슈미트 109는 구조상 급강하시 시속 1000 km를 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P-51 무스탕이 가장 뛰어난 연합군 전투기라고 생각니다.

 
 
 군터 랄.... 독일 격추 3위의 에이스이며, 심각한 부상을 딪고 일어선 불굴의 파이터... JG 52의 산증인.....
 
 
 
 

                                                                                                                                       Reference : Combat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