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의 비행대/303,JV44,플라잉타이거즈

불량감자 2010. 1. 20. 05:42

 352 Flight Group

 

 
[1] 푸른 코의 사생아들
 
 
 
 
 
들어가기 전에 홈지기 한마디
 
이차대전 중반 이후, 유럽전선 링에 올라, 지칠대로 지쳐버린 챔프, 루프트바페를 거의 KO시켜 버린 미국의 비행단.... 352 무스탕 전투 비행단..... 이미 루프트바페의 에이스들 대부분이 전사한 후였고, 어린 아이들이 모는 전투기 99대에 1명의 에이스 편대장으로 구성된 루프트바페를 맞아, 엄청난(?) 전과를 일구어낸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
 
그럼 대전 후반부 유럽 상공으로 한번 날아가 볼까요?
 
 
 
"히틀러는 유럽을 둘러싼 요새를 만들었으나, 지붕 덮는 것을 잊었다."
 
- 무너지기 시작하는 독일 공군을 보며, 미 대통령 루즈벨트 1943 -
 
 
◆ 사생아들의 탄생

 
미 8 공군 제 352 전투 비행단은 대부분의 미국 비행단들이 그렇듯, 아주 작은 규모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대전을 거치면서 뛰어난 전투력을 유감 없이 발휘했고, 총 776기의 적기를 격추시켜, 제 8 공군내 비행단 중 4위에 랭크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특히 352 예하 487 비행대는 단일 비행대로서 미공군내 최고의 격추기록을 달성해내기도 한다.
 
처음 결성된 것은 1942년 9월이었고, 10월 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초기 352 비행단(352nd Flight Group)은 2개의 비행대(squadron)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중 제 21 비행대는 나중에 486 비행대로, 또 제 34 비행대는 487 비행대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새로운 한개의 비행대 328 비행대가 더 추가 되어, 총 3개의 비행대로 구성된 비행단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초창기에는 P-47 썬더볼트 전투기를 주력기로 삼았다가 나중에 P-51 무스탕으로 교체했고, 무스탕이 352 비행단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다.
 
 
 무스탕을 지급받기 전까지 352 전투 비행단의 주력기였던 P-47 썬더볼트기..
맷집과 급하강 능력은 당대 최고였으나, 기동이 좀 둔한 기종이었다
 
 
352 비행단은 1943년 7월 1일, 이차대전이 중반을 넘어가던 무렵, 뉴욕항을 떠나 영국의 보드니(Bodney)에 새로운 기지를 세우게 된다. 그들이 "보드니의 푸른코의 사생아(Blue nosed bastard of Bodney)" 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이곳에 기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352 비행단 예하 487 비행대 대장이었던 존 메이어의 모습... 그는 미국 유럽전선 격추 4위의 에이스이기도 하다.... 멋진 나찌 십자가 격추 킬마크가 인상적이네요....
 
 
1943년 9월 9일부터 본격적인 전투 임무에 돌입했는데, 첫 임무는  귀환하는 B-17기들을 영불해 상공에서 호위하는 것이었다. 이 임무에 약 40명의 조종사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처음 몇번의 임무 동안, 352 비행단은 전혀 격추 기록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1943년 11월 26일, 임무에 투입된지 근 3개월만에 비행단 최초의 격추가 달성되는데, 이 격추의 주인공은 352 비행단 소속 487 비행대장 존 메이어(John Meyer ; 26기 격추)였다. 이날 메이어는 P-47 전투기에 탑승해 폭격기 편대를 공격하는 독일의 Bf 109 1기를 격추해 낸 것이다.
 
 
 
◆ 352 비행단의 탑건

 
존 메이어의 전투 조종사로서의 경력은 1940년 7월 비행 훈련소를 막 졸업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43년, 352 전투 비행단 예하 487 비행대의 비행대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352 비행단의 격추행진의 첫 포문을 연 장본인이 된 것이다.  
 
 
 유럽 상공에서 무스탕에 의해 격추되는 독일의 Bf 109의 최후....
건카메라에 찍힌 기막힌 모습
 
 
그는 이차대전 전기간을 걸쳐 총 24기의 격추기록을 달성해, 유럽전선 미군 중 4위에 랭크되는 에이스가 되며, 또 한국전에도 참전해 미그기 2기를 격추시키게 되며, 조종사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4성 장군까지 진급하는 영예를 안게 되는 인물이다.
 
메이어는 뛰어나면서도 매우 이성적인 지휘관이었고, 팀웍을 강조했지만, 대원들에게 절대 무리한 임무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 동료들과 함께 비행하면서, 자신을 믿고 따르게 했던 지휘관이었다. 특히 메이어"나에게 에이스와 장군 중 하나만을 택하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에이스가 될 것이다" 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사진] 352 전투 비행단의 최고의 탑건, 조지 프레디의 모습.... 나중엔 수염을 길렀는데, 이건 초기 사진인것 같군요. 존 메이어도 처음에는 프레디를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조종사로만 여겼다. 그러나 미 8공군에서 제 3위의 격추기록의 대에이스가 된다.... 만약 종전까지만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가브레스키의 기록도 깼을 확률이 높다.
 
 
 영국으로 파견되기 전에, 메이어는 자신의 비행대에 새로 배치된 신참 파일롯 한명을 만나게 된다. 호리호리한 몸에 여자처럼 조용한 말투의 신참....
 
어떻게 이런 놈이 터프한 전투 비행대에 배속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얌전 그자체의....   그 신참은 군에 입대하기 전에 곡예 비행단에서 에어쇼를 선보이던 민간 조종사였는데, 해군 조종사 면접에서 3번이나 낙방했던 인물이었다.
 
이름은 조지 프레디 (George Preddy)...  이런 샌님 같은 신참이 나중에 352 최고의 탑건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었다. 비행대장 존 메이어도 마찬가지였다.
 
 
 
◆ 유럽에 도착한 무스탕

 
1943년... 유럽.. 이당시 연합군 공군의 당면 목표는 독일에 산재해 있는 산업시설들을 무너뜨려, 제 3 제국의 전투력을 아예 말려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미 8공군은 영국에 기지를 두고, 끊임없이 유럽 본토로 폭격기들을 날려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공군 지휘관들은, 폭격기가 대규모 밀집편대를 이룬다면, 전투기 호위 없이도, 자체 방어력만으로도 폭격임무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 드디어 무스탕들이 배치되었다. 썬더볼트를 대신한 이 전투기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러나 P-47 에이스 울프팩로버트 존슨은 이런 성과는 구지 무스탕이 아니었다고 해도 달성되었을 것일고 비아냥거렸다. 왜냐하면, 대전후반기에 유럽에 온 무스탕들이 상대해야하는 독일 조종사들의 태반은 아이들이었으니.....
 
 
게다가 당시의 주력 전투기 P-47은 연료 소비율이 매우 큰, 한마디로 "연료 잡아 먹는 귀신"이어서,  종이팩 보조 연료 탱크를 달아도, 독일 국경지대까지만 폭격기 호위가 가능했다.
 
독일 공군은 이런 썬더볼트의 취약점을 잘 알고 있었고, 본격적인 폭격기 공격 시점을 P-47들이 기지로 돌아가는 때로 정하고 있었다.
 
즉 폭격기 편대를 호위하며 비행하던 P-47의 탑재 연료가 절반만이 남는 시점, 터닝 포인트가 바로 루프트바페 전투기들의 폭격기 공격 개시 시간이었다.
 
1943년 8월과 10월.... 독일 볼베어링과 전투기 공장지대인 슈바인푸르트와 레겐스부르크 공습에서 엄청난 폭격기 손실을 본후, 미공군은 장거리 호위 전투기의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이때 600 여대의 폭격기들이 독일 중심지 깊숙히 비행해 들어가 폭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격추된 폭격기만도 60 여대.... 손상을 받은 폭격기는 몇백대에 이르렀다. 물론 독일 산업시설의 피해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미군 폭격기의 피해도 점점 늘고 있었다.
 
(사실 비행임무에서 5%을 기준으로 성공여부가 판가름난다. 즉 한번의 임무수행에서 아군기 손실이 5% 이내라면 성공, 5%이상이면 실패라 규정짓는다. 이날 600대중 60대 즉 10%가 넘는 피격추율은 미공군 폭격임무가 독일 공군과 대공포에 엄청난 손실을 본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352 비행단의 무스탕, 카울링부분이 파란색으로 도색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것 때문에 352 비행단은 푸른 코의 사생아라는 별명을 얻는다.
 
 
1943년 말....  이런 연합공군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전투기들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하늘의 롤스로이스 P-51 무스탕..... 뛰어난 항속거리와 낮은 연료소비율을 자랑하는 차세대 전투기.....
 
 
 352 전투 비행단 중에서도 제일 먼저 무스탕으로 주력기를 교체한
486 비행대의 비행대장 러더 리치몬드가 자신의 썬더볼트 위에서 포즈를 취한 장면
 
 
그러나 처음 도착한 무스탕기들은 미 8 공군 소속 제 4 전투비행단이 치열한 로비를 거쳐 먼저, 공급받게 되었고, 352 비행단에는 1944년 3월이 되어서야 겨우 7기가 보급되었다. 352 비행단 중에서도 486 비행단에 가장 먼저 배치되었는데, 486 비행대장 러더 리치몬드 (Luther H. Richmond)는 이 기종을 이용해 대원들을 훈련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대원들은 새로운 전투기의 향상된 비행특성에 차차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352 전투 비행단의 마크
 
 
 
 
352 소속 비행대 중 가장 뛰어난 전과를 일구어낸 487 전투 비행대의 부대마크.... 전설의 에이스 존 메이어의 애기에도 이마크가 있죠...

 

[2] 하늘의 롤스로이스 무스탕
 
 
무스탕은 새끼 고양이의 울음 소리 같은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비행은 정말 부드러웠다. 조종성능은 정말 우수했고, 우리는 그것을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붙어 있는 것같이 느꼈다.
- 어떤 미군 조종사 -
 
 
◆ 크림 스프 속으로 뛰어들다

 
1944년 3월 8일,  드디어 신예기 무스탕이 실전에 투입될 기회가 왔다. 즉 베를린 근처의 볼 베어링 공장을 폭격하고 귀환하는 B-24와 B-17 폭격기 편대를 호위하라는 임무가 352 전투 비행단에 떨어졌다. 이때 임무에 나섰던 폭격기들은 약 600 여대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대편대였다.  
 
 
오늘의 임무는 이곳에서 출격하여, 영불해 상공에서 귀환하는 덩치 큰 친구들을 마중나가는 것이다. 아브빌의 아이들 역시 우리를 기다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에게 겨울 바다가 얼마나 차가운지 보여주자.... 무스탕 비행대의 임무전 브리핑....
 
 
352 비행단 예하 328과 487 비행대는 각기 17 기 씩의 P-47기를 발진시켰고, 486 비행대는 23기의 전투기를 임무에 투입시켰는데, 이중 7기는 P-51 무스탕이었다. 이날 하늘은 전형적인 영국의 흐린 날씨답게 잔뜩 먹구름으로 뒤덮혀 있었다. 조종사들이 흔히 스프(soup)라고 부르는 두꺼운 먹구름이 잔뜩 낀 회색 빛 하늘......
 
그럼 이차대전 조종사들은 어떻게 두터운 구름층속에서 편대를 이루어 비행을 했을까?....  먹구름 속으로 들어갔을 때, 조종사들이 시각에만 의존해 비행을 하다보면 낭패를 보기 쉽다. 즉, 위 아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도 구별이 전혀 않되는 것이다. 자신은 똑 바로 날면서 고도를 높인다고 느껴도, 실상은 뒤집혀진 상태로 계속 바다를 향해 하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종사들은 이런 착시 현상을 드물지 않게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전투기가 움직이고 있지만, 실제 일어나는 외부의 변화가 전혀 없으니.....
 
 352 비행단 중 가장 정예라 할 수 있는 487 비행대원들의 모습.....
 
이런 경우, 편대장만이 계기 비행을 하며 선두에 나선다. 즉 편대장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고도계와 방향계만 보며, 구름 속을 비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둘째, 셋째 편대원은 편대장기를 직접 보면서 따라 간다. 이들은 계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시각에만 의존해 편대장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네번째 대원은 세번째 대원의 전투기를 쫓아간다. 역시 시각에만 의지해.... 그러니 기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편대장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를 잘 알 수 있다.  
 
 
 
 B-17 폭격기들의 밀집 대형..... 이들이 뭉치면... 떼를 이루고 둥글 게 원을 짜고 사자에 대항하는 물소떼 처럼 엄청난 방어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한 마리 사자이면, 몰라도 각 상공마다 교대로 덤벼드는 사자떼를 단독으로 막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무스탕이 오기전까지만 해도 이런 위험한 폭격임무가 계속되었다.
 
 
이날 구름속을 비행중이던 352 비행단의 P-47 편대 하나가 비행사고을 내고 만다. 편대원 한명이 앞쪽 동료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바로 코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구름속에서, 겨우 겨우 시각에 의지해 동료기를 쫓아 왔는데 그만 동료기들을 놓쳐 버린것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계기 비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계기판을 보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만 바로 자신의 오른쪽에 동료기가 날고 있다는 것을 알아 채지 못했고, 두 전투기는 날개끼리 부딪히며, 손상을 입은 것이다. 이중 한명은 전투기를 버리고 낙하산으로 탈출해야 했고, 다행이 나머지 한명은 가까운 폭격기 비행기지에 불시착 할 수 있었다.  
 
 
 
◆ 무스탕의 첫격추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날 처음 출격한 무스탕 전투기는 그 진가를 발휘했다. 즉 352 비행대원 에드워드 지그넥(Edward Gignac)이 자신의 P-51 B 전투기로 당당히 적기를 격추해 낸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지그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편대를 이끌고 출격했고, 얼마후 폭격기들과 랑데뷰했다. 그때 고도 약 2000 m 상공이었는데, 얼마후 독일 전투기들이 B-17 편대의 6시 방향에 따라 붙었다. 이때 시각은 오후 3시 30 분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352 비행대원들의 즐거운 한때.... 왼쪽이 352의 탑건 조지 프레디이고, 맨 오른쪽이 352 사상 최초의 무스탕을 이용한 격추를 달성한 에드워드 지그넥이다. 지그넥은 노르망디 상공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조지 프레디 역시 그얼마후, 유럽본토 상공에서 어이없이 전사하고 만다.
 
 
나는 즉시 편대원들에게 접전을 명했다. 내가 독일 전투기의 후방쪽으로 접근하자, 추격을 눈치 챈 Bf 109 는 빠른 롤을 하면서 뒤집어 지더니만, 기수를 다시 들어 올리며,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이제 남은 것은 헤드온 대결 뿐....  우리 둘은 기관포의 불을 뿜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시간의 헤드온 사격후, 우리 둘은 겨우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스쳐지나갔다.
 
 
독일의 전투기 Bf 109기의 마지막 장면.... 연합군 전투기 건카메라에 잡힌 모습인데.... 급선회하면서, 상승을 시도하고 있다. 동체 윗면이 완벽히 노출되면서.... 각도만 맞는다면... 연합군기의 완벽한 사격찬스일 것 같다.
 
 
당시 내 무스탕의 속도가 너무 빨라, 재상승해서 독일기를 따라 잡기가 힘들었다. 할 수 없이 난 그대로 직선 비행을 했다. 나중에 내 뒤에서 이광경을 보고 있던 편대원 헬러(Heller)의 말에 따르면, 헤드온 직후 그 독일기 조종사는 낙하산을 펴고 탈출을 감행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정면 사격을 하면서 독일기의 엔진을 명중시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날 나는 독일기의 최후를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격추 기록을 하나 더 추가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352 비행단의 무스탕을 이용한 첫격추였을 것이다."  
 
 
 
◆  노르망디의 무명용사

 
에드워드 지그넥은 에이스(5기 이상의 격추를 거둔 조종사)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용감무쌍한 파일롯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처음엔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기들과 싸우다가, 1943년부터 352 전투 비행단으로 전입후, 유럽 전선에서 날게 되었다.
 
 
 [사진] 에드워드 지그넥의 모습... 아주 단신이었고, 나이는 많았다... 비행대내에서 그의 별명은 "파파"였다고 한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임무는 그의 마지막 비행이기도 했다.
 
  352 비행대 내에서의 그의 별명은 "Pappy" (비행대 내에서, 성격 좋고, 나이가 좀 많은 대원에게 통상 붙이는 애칭으로 우리말로는 "아빠" 정도라고 보면되겠다. 검은 양 비행대의 그레고리 보잉톤의 별명도 "Pappy" 였고, 독일의 전설적인 에이스 베르너 뮐더스 (Werner Moelders)의 별명도 "Vati"로 "아빠"에 해당한다 ^.^)였다고 한다.
 
지그넥의 첫 격추는 오랜 조종사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느즈막히, 그러니까 1944년 1월 30일 달성되는데, 격추 제물은 독일의 쌍발 전투기 Bf 110 이였다. 또 그는 자신의 애기 P-47과 P-51의 카울링에 "Gig`s Up"이라는 글을 페인팅해 넣었다고 하며, 352 비행단 최초로 무스탕을 이용한 첫격추를 달성해 낸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에 의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352 비행단은 노르망디 해안을 지원하는 임무 비행을 하루 종일 해나가게 되었다. 상륙 이틀째인 6월 7일, 이날 역시, 지그넥은 무스탕기에 탑승해, 해안의 독일 지상군과 요새를 공격하는 임무에 참가했다.
 
무스탕 전투기들은 해안 근처 내륙에서 독일 지상군과 수송트럭들을 발견하고, 지상공격에 돌입했다. 공중에서 아군기끼리 서로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대씩 차례로 하강하면서, 기총사격을 해대기 시작한 것이다.
 
첫 공격이 끝나갈 때, 갑자기, 독일의 대공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고, 하늘은 온통 검은 대공포 파편과 연기로 뒤덮혔다. 2차 공격을 시도하기에 앞서, 편대장은 전 대원들에게 무전으로 공격전 이상여부를 물어 보았다. 이때 지그넥의 대답이 무전기로 들려왔다.
 
"지금 공격 불능.... 전투기에 불이 붙었다..."
 
대공포에 지그넥의 우측 날개 기관총 탑재부가 명중당해, 화염에 휩싸인 것이다. 지그넥의 무스탕은 검은 연기를 길게 끌며, 안간힘을 다해 고도를 높이려고 하고 있었다. 공격한 직후라서 고도가 너무 낮아, 낙하산탈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고도가 약 600 m 까지 회복되었을때, 지그넥의 전투기가 갑자기 스톨에 빠지는가 싶더니만, 이내 공중에서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오른쪽 날개의 연료통에 불이 붙어, 지그넥은 그만 프랑스 해안에서 전사하고 만 것이다.  
 
독일군들은 지그넥의 군번줄을 떼냈고, 시신은 프랑스 해안 근처 마을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얻어진 적의 군번줄은 원래는 적십자에 인도되어야 하는데, 당시 독일군들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고, 지그넥은 오랫동안 "임무 도중 실종(MIA)"으로 분류되었다. 종전 후에 그의 군번줄이 발견되면서, 지그넥의 전사(KIM)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지그넥의 무덤이 있는 프랑스 마을의 주민들은 주인 없는 이 초라한 무덤을, 단지 어떤 이방인이 묻힌 곳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1999년 지그넥의 여동생 마릴린(Marilyn)이 오빠의 무덤을 확인해냈다고 한다, 그후 2000년 6월 7일, 즉 지그넥이 전사한 바로 그날, 프랑스 마을 주민들은 거의 50년전, 나찌 치하에 있던 자신들을 위해 전사한  "이름 모를 영웅" 지그넥을 잊지 않기 위해, 그의 무덤가에 기념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 노란 코와 푸른 코....

 
이날 거둔 또 하나의 격추의 주인공은 352 소속 487 비행대원 버질 메로니(Virgil Meroney)였다. 그는 P-47 전투기에 탑승해 지그넥의 격추기록 직후에 독일기 한대를 더 잡아 내는데, 당시 상황에 대해 메로니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P-51의 추격을 받는 Fw 190기..... 이상황에서 무스탕이 윙오버 한번이면...
포케볼프의 꼬리를 잡겠군요...   포케볼프는 특기인 롤로 빠져나가야 겠구요...
 
 
"편대를 이끌고 폭격기 호위 중이었다. 고도는 약 6000 m 가량.... 그때 갑자기 Bf 109 편대가 고공에서 급강하해 왔다. 그들은  태양을 등지고 고공에 잠복해 있다가, 폭격기들을 발견하고는 일시에 기습을 감행해 온 것이다. 그들은 거의 90도 각도로 수직하강하면서 우리 폭격기 편대 후방을 덮쳤다.
 
난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Bf 109 두대가 폭격기에 일차 공격을 마치고, 나란히 선회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대는 반대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두대가 함께 기동하는 쪽을 택해, 추격을 계속했다. 우리 전투기의 속도는 폭격기에 맞춰 쓰로틀을 내린 상태라, 가깝게 접근하는 데는 약간 시간이 걸렸다.
 
 
Bf 109의 최후.... 선회도중 일격을 당하고... 우측 날개가 화염에 휩싸인 채... 달아나고 있다.... 그러나 조종사는 살았을까?....
 
거리 약 400 m까지 좁혀지자 마자, 난 사격을 개시했다. 계속된 선회로 우리의 고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이제 거리 300 m....  내 기관포는 Bf 109 한대에 몇발의 명중탄을 안겨주었고, 독일 조종사는 급상승으로 위기를 벋어나려 시도했다. 나 역시 속도를 약간 낮추며, 그와 함께 상승했다. 곧 조준경에는 Bf 109가 일시에 가득찼다. 거리 90 m.....
  
내 애기의 기관총들이 일시에 불을 뿜었고, 독일 전투기에서는 무수한 파편이 튕겨져 나왔다. 일순간에 불덩이로 변한 독일 전투기가 비틀거리더니, 캐노피가 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 무스탕의 일격에 격추되는 루프트바페의 전투기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격추되고 있다.
 
이미 고도를 잃기 시작한 적기를 피해, 난 독일기의 오른쪽 날개 바로 옆으로 상승하며,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너무 가까운 거리라 독일 조종사의 얼굴까지 또렷이 보였다. 그는 화염에 휩싸인 전투기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곧 낙하산이 펴졌고, 독일 전투기는 스핀을 그리며, 추락했다."
 
 
이때, 메로니가 격추 시킨 독일 조종사 는 JG 26의 제 3 그루페 비행대장 마이튜쉬(Meitusch)였는데, 독일의 기록을 보면, 이날 352 소속 P-47의 공격에 마이튜쉬의 Bf 109G-6기가 격추되어 낙하산 탈출을 했으나, 부상당하고 몇 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고 한다. 또 이날 지그넥의 무스탕이 격추한 Bf 109G에는 역시 JG 26 소속 에밀 캄펜(Emil Kampen)이 탑승했었는데, 낙하산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B-24의 최후.... 아마도 독일의 강력한 대공포에 당한 모습인 것 같군요.... 동체와 두 앞날개가 접히듯이 부서져 버리는 군요.... 사실, 독일 공군에 의해 격추된 것 보다 많은 수의 연합군 폭격기가 대공포에 격추되었다고 한다.
 
 
 
 
격추되는 B-17의 모습... 자세히 보면... 이 폭격기의 꼬리 날개부분이 아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대공포에 명중당하고 추락하는 모습이다.
 
 
 

 

[3] 유럽 상공에 등극한 새로운 챔프
 
 
"비행이 있는 날은, 식당 뒤로 돌아가서,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식사에 계란을 어떻게 요리해 달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언제나 일종의 "최후의 식사"가 될 수 있었으니....
 
- 어떤 미군 조종사 -
 
 
 
◆ 지상 대기 전투기 킬러

 
1944년 봄, 미 8 공군은 독일의 비행기지들을 공습함으로써, 독일의 날개를 아예 잘라버리는 작전을 수립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D-day를 위한 사전 포석격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대공포가 줄줄이 배치되어 있는 적 비행기지를 전투기로 공습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지상대기 중인 적기 킬러.... 에드윈 헬러의 모습.... 그는 공중전 기량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대공포의 위험을 무릅써야하는 지상대기 적기 파괴 부문에서 최고이기도 했다.
 
 
드디어 4월 24일, 352 전투 비행단의 에드윈 헬러(Edwin Heller)는 편대장과 함께, 단 둘이서 엄청난 대공 방어력을 자랑하는 독일의 비행기지를 기습했다. 헬러는 이때, 지상에 대기 중인 3기의 독일기를 파괴시켰지만, 편대장은 대공포에 명중당하고 바로 격추되었다.
 
헬러는 단기로 귀환하는 도중, 다른 두 곳의 독일 비행장을 거치면서, 지상공격을 감행했고, 4기의 독일기를 지상에서 파괴하고, 5기에 데미지를 주었다. 그의 용감한 전공이 인정되어 무공 십자 훈장을 수여 받게 된다. 이후에도 헬러는 지상에 대기 중인 독일기를 7기 이상 격파해내, "적기 지상 파괴" 부문에서 수위를 달리게 된다.
 
지상에 멈춰 있는 적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던 헬러가 공중전에서도 괄목할 빛을 본것은 1944년 5월 8일의 일이다. 이날 독일 영공에서 폭격기 호위임무 도중, 헬러의 편대는 약 30기 가량의 독일 전투기들과 조우하게 된다.
 
 
[사진]에드워드 헬러의 애기의 모습.... 헬러는 자신의 애기에 ""HELL-ER BUST" (자신의 이름을 Hell과 Er을 띄어 써서, 마치 "지옥의 인간"인것 처럼 보이게 했네요 ^.^) 전투기 킬마크가 나찌 십자로 멋지게 그려져 있다.
 
 
헬러는 편대장의 꼬리에 따라 붙은 독일 Bf 109에게 사격을 가해, 편대장을 구했다.
 
얼마후 또 다른 한대의 Bf 109 를 명중시켜 손상을 입혔는데, 그 Bf 109는 곳바로 급하강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헬러도 역시 뒤를 쫓아 고도를 낮추며 독일기를 맹추격했다.
 
독일 조종사는 지상바로 위까지 하강한 후, 상하 기동을 어지럽게 하며, 자신의 6시에 따라 붙은 헬러을 떼내려 했다. 건물들과, 나무 숲 주위로 회피하면서, 독일 조종사는 좀처럼 사격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얼마나 이렇게 쫓고 쫓기며 날아갔을까? 이제 그들 앞에는 더이상 회피기동에 써먹을 장애물이라고는 전혀 없는 넓은 평야가 펼쳐졌고, 안되겠다고 판단한 독일 조종사는 급선회로 헬러를 따돌리려고 했다.
 
왼쪽으로 급격한 회전반경을 그리며, Bf 109가 달아나자, 헬러도 선회에 들어갔고, 둘은 둘글게 원을 그리며, 서로의 6시를 잡기 위한 접전에 들어갔다. 그런데 독일 전투기가 이미 데미지를 입은 상태여서 그랬는지, 헬러에게 사격기회가 주어졌다.
 
 
 
1945년 3월 2일, 352 예하 486 비행대의 에드윈 헬러 (Edwin Heller) 대위는 B-17 호위 임무 도중, Fw 190w와 조우하게 되었다. 이 독일기들은 JG 301 비행단의 제 2 그루페 소속의 전투기들이었다. 이날 헬러는 자신의 5번째 격추를 달성하여 명실상부한 에이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때, 독일기는 이대로 가다간 당한다고 생각했는지, 선회를 포기하고 급상승에 돌입했다. 메서슈미트는 강변의 교각 위로 코를 쳐들고 솟아 올랐다. 그러나 독일 조종사가 바라던 행운은 끝내 찾아 주지 않았다. 결정적인 사격 순간을 포착한 헬러의 짧은 점사에 Bf 109는 그대로 명중당하고, 강물속으로 격추되어 버렸다.  
 
 
 
 ◆  메이어 3 번의 무공훈장을 받다.

 
1944년 5월, 487 비행대장 존 메이어는 8 대의 P-51 무스탕 전투기를 이끌고 폭격기 호위 임무에 나섰다. 이때 대규모의 독일 전투기 편대가 요격에 나섰고, 곧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혼전 중에 메이어와 그의 윙맨은 나머지 동료기들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메이어는 고도를 재상승시키며, 동료기들을 찾던 중, 약 15기 가량의 또 다른 독일 전투기들이 폭격기를 향해 접근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존 메이어의 무스탕기가 정면으로 접근하는 독일기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사진] 487 비행대장 존 메이어의 모습.... 24기 격추의 무스탕 에이스이며, 한국전에도 참가해 2기 격추를 달성한 조종사였고, 후에는 4성장군까지 되는 지휘관이기도 했다. 
 
 
메이어는 곧바로 공격에 들어갔고, 일시에 2대의 독일기를 격추시켰다. 첫공격을 마친후 선회하며, 다시 두번째 공격에서 한대의 독일기를 더 격추시킨 후,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기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전공으로 메이어는 무공 십자 훈장을 수여 받게 된다.(메이어는 후에 무공십자훈장을 3번이나 수여 받은 영광의 조종사가 된다)
   
 
1944년 11월 무렵은 메이어의 격추 페이스가 최고조에 달하는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즉 11월 어느날, 단 하루만에 3대의 Bf 109와 1대의 Fw 190기, 도합 4기를 격추해 낸 것이다.
 
[사진] 건카메라에 잡힌 메서슈미트 109의 모습... 좌측 날개 부착부위에 데미지를 입고 달아나는 모습.....
 
그리고 며칠후에도, 11기의 무스탕 전투기를 이끌고 발진해, 독일 전투기 약 40 여대와 조우하게 되었는데, 이때도 역시 메이어는 고공에서 급강하 기습을 성공시켜, 단숨에 3대의 Fw 190기를 격추시켰고, 이 공로로 두번째의 무공 십자 훈장이 수여되었다.
 
메이어는 나중에 다시 한번 무공 십자 훈장을 수여받게 되는데, 이로써 총 3회에 걸쳐 영광스런 훈장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런 뛰어난 지휘관이며 에이스인 메이어가 비행대장으로 이끌던 487 비행대는 유럽전선 미국 단일 비행대로서는 최고 기록인 236기의 격추를 달성하게 된다.
 
 
◆ 자신이 격추시킨 적기의 파편에 당한 에이스


 
[사진] 352의 에이스 월터 슈타크....그는 자신이 격추시킨 적기의 파편에 격추된 다.  사실 다 격추시켜 놓은 적기에 충돌하거나, 그 파편에 맞아 격추되는 것 만큼 억울한것도 없다. 파이터 에이스 하면서, 많이 경험한 것이기도... ^.^  어떤 플레이어는 파이터 에이스 하면서 불리하면, 고의로 충돌을 유발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일명 물귀신 작전
 
 
1944년 7월 1일, 월터 슈타크(Walter Starck)대위는 편대를 이끌고 독일기들과 조우했다. 슈타크는 1기의 Bf 109를 격추시킨 후, 두번째 독일 전투기에게 데미지를 입혔다.
 
슈타크의 윙맨, 쉘던 헤이어(Sheldon Heyer)는 슈타크에게 일격을 당하고 추락하던 Bf 109와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고, 겨우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쉘던은 추락하는 Bf 109기에서 독일 조종사가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슈타크가 에이스를 기록하는 1944년 11월 27일은 그의 조종사경력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즉 독일 상공에서 공중전 도중, 슈타크는 Bf 109 3대를 줄줄히 격추하면서 통산 7기 격추의 기록을 달성하면서 생애 첫 에이스 기록을 달성했으나, 바로 이때 그가 격추시킨 마지막 Bf 109가 폭발하면서 떨어져 나온 파편에 무스탕기가 정면으로 맞아, 적진영에 낙하산 탈출을 시도해야 했다.
 
 
 슈타크의 비행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카울링에 "Starck Mad(미친 슈타크)"라는 글이 선명하다..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 신세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공군에 남아 대령까지 진급한 후, 1965년 퇴역했다고 한다.
 
월터 슈타크가 지상요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면...
 
 
 
◆  하루를 날아 6 기를 격추하다

 
1944년 11월 21일, 487 비행대는 독일 메르제부르크(Merseburg)의 공습 목표로 향하는 폭격기 호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비행대의 대장 존 메이어가 직접 비행대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독일 전투기들이 폭격기를 향해 달려들자, 메이어는 윌리암 위스너(William Whisner)에게 선봉을 맡겼다.
 
 
 [사진] 15기 격추로 352 비행단 제 5위에 랭크된 에이스 위스너의 모습.... 단하루만에 6기를 격추시킨 에이스로... 프레디와 함께 이부문 수위에 랭크된다.
 
 
위스너는 연속 공격에 들어갔고, 미군 폭격기의 6시를 쫓는데만 정신이 팔린 Fw 190기 4기를 단숨에 격추시켜 버렸다.
 
(이 당시 독일 전투기들의 목표는 폭격기를 요격하는 것이었다. 될수 있는 한 연합군 전투기들과의 조우를 피하고 폭격기를 먼저 노렸다)
 
곧 다시 선회하면서 또 다른 한대를 격추시켰는데, 이번 Fw 190기는 위스너의 기관총에 아예 공중 폭발해 버렸다. 동료기를 잃고 분노에 찬 3대의 Fw 190기들이 위스너의 꼬리에 따라 붙었으나, 위스너는 그들에게서 회피하며, 다시 1기의 190를 격추시켰다.
 
이날 단 하루만에 위스너는 6기의 Fw 190의 공인 격추와 1기의 비공인격추를 달성해 낸 것이다. 이기록은 유럽 상공 미군중에서 "단 하루만에 격추시킨 최고 기록"이기도 했다. (프레디도 하루만에 6기 격추를 이루어 엄밀히 말해 공동 1위의 전과다) 여하튼 이날의 눈부신 전공으로 위스너는 무공 십자 훈장을 수여 받았다.
 
 
 위스너가 자신의 애기 "엘리자베쓰 공주" 호에 탑승하는 장면.....
 
 
윌리암 위스너(William Whisner)는 나중에 한국전에도 참전해 이차대전과 한국전 모두에서 에이스가 된다. (위스너는 이차대전 기간 중 15기 격추를 달성해 유럽전선 미군 중 20 위에 랭크된 에이스였다)  
 
사실 이렇게 멋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명의 전설적인 에이스들의 조언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즉 위스너는 352 비행단 초기부터, 메이어(Meyer)프레디(Preddy)에게서 많은 공중전 기동술을 배워 나갈 수 있었으니......
 
 
 
  
352 비행대원 밥 파월(Bob powell)이 무스탕의 조종석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재미있는 모습
 
 
 
독일 전투기 조종사가 추락한 후, 연합군 지상군에게 붙잡힌 모습...  유럽 상공의 새로운 챔프의 등극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4] 왠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연합군의 공군력은 독일 패배의 가장 큰 단일 요인이다"
 
- 알베르트 케셀링 독일 공군 장군 -
 
 
◆  격추되는 탑건

 
[사진] 탑건 조지 프레디의 모습..... 그는 초기에 윙맨을 공중충돌로 잃은 후, 다시는 윙맨을 잃지 않겠다고 맹세했었고, 자신의 윙맨을 구하려다 허무하게 전사한고 만다.
 
발지 전투가 1944년 12월 초부터 시작되었다. 352 예하 487 비행대는 기지를 벨기에의 애쉬(Asche)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지난 크리스마스.....
 
352 최고의 격추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조지 프레디 (George Preddy)는 자신의 비행대 P-51기 10대를 이끌고 공중전 임무에 들어갔다. 첫 공격에 독일 Bf 109 2기를 격추시켰다.
 
그때, 그의 윙맨인 제임스 카티(James Cartee)가 독일의 Fw 190기에게 쫓기는 광경을 목격했다. 일전에 자신의 윙맨을 공중충돌 사고로 전사하게 만든 쓰라린 경험이 있던 프레디는 그 이후, 다시는 자신의 윙맨을 잃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이제 윙맨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프레디는 독일 전투기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프레디는 Fw 190의 후방으로 접근했는데, 적기의 고도가 매우 낮아, 바로 나무 숲 윗쪽으로 비행하며 추격한 것이다.
 
이때 갑자기, 추격을 눈치챈 듯, Fw 190은 급상승하며,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아마도 독일 조종사는 Fw 190의 장기인 빠른 롤(roll)을 시도한후, 기체를 뒤집어, 프레디를 향해 반격을 가하려 했나보다.
 
 
편대 비행을 하고 있는 무스탕기..... 공중전의 최소단위는 독일 Rotte... 연합군 Pair다.... 즉 2인 기동이 가장 기본이자... 공중전의 시작이며... 끝이다.... 한 대가 미끼가 되고 나머지 하나가.... 해결사역할을 하는 이런 2인기동은 온라인 비행시뮬레이션에서 더 강력한 면을 보인다... 왜냐면, 온라인 비시에서는 lone wolf를 선호하는 유저가 많으니... ^.^
 
 
이때, 프레디로 독일기를 쫓으며, 상승을 시도했는데, 지상에서 이 추격전을 보며, 프레디를 돕기 위해, 쏟아 올린 미군의 대공포탄이 그대로 프레디의 무스탕 전투기를 명중시키고 말았다. 화염에 휩싸인 P-51은 곧바로 추락했고, 프레디는 허무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  프레디 영광의 날

 
1944년 8월 6일... 이날은 프레디에게 잊혀지지 않을 영광의 날이 된다. 즉, B-17 호위 임무를 수행하며, 편대를 이끌던 프레디는 단 하루만에 6기의 독일기를 격추시킨 것이다. 처음 9000 m 상공에서 비행하며, 30기의 Bf 109들과의 공중전에서 연속 3기를 격추시켰고, 이어 다시 2기의 Bf 109를 격추했다.
 
  
 프레디 영광의 날... 하루에 6기 격추의 기염을 토하는 전설의 조지 프레디의 무스탕.....
 
 
얼마후 치열한 공중전 도중, 고도가 1500 m 까지 내려갔고, 프레디 혼자 만이 독일 전투기들 사이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는 다시 1기를 격추시켜낸 것이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 프레디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말을 남겼다.
  
"나는 계속 사격을 했고, 그들은 계속 격추되었다."
 
 
◆ 프레디의 뒤를 이은 에이스

 
 
[사진] 대에이스 프레디의 뒤를 이어, 직책을 수행해나간 352의 에이스 윌리암 할톤의 모습... 그는 나중에 한국전에도 참가했으나, 격추되어 전사하고 만다.
 
 
그러나 이런 대에이스 프레디가 어이 없이 전사함에 따라, 윌리암 할톤(William Halton)이 프레디의 직책을 이어 받아 487 비행대의 작전 장교직을 수행하게 된다.
 
당시까지 352 예하 487 비행대는 미 8 공군 내에서 가장 높은 격추성적을 거두고 있는 비행대였는데, 2차 대전 기간 동안 236기의 공중전 격추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할톤은 통산 10기의 격추를 달성한 에이스인데, 그의 최고의 날은 바로 1944년 12월 27일이었다. 이날 그는 Bf 109 3기를 단독 격추, 1기를 공동격추하는 기염을 토한다. 은성훈장, 무공십자훈장을 비롯한 많은 훈장을 수여 받았고, 나중에 중령까지 진급하게 된다.
 
또 할톤은 이차대전 후에도 계속 조종사로 남아 있다가, 한국전 당시에도 무스탕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나 1952년 5월 21일, 임무 도중 격추되어 전사하고 만다.
 
 
◆  비행장 기습에 카운터 펀치를

 
1945년 1월 1일을 기해, 독일 공군은 벨기에와 북프랑스에 있는 연합군 공군기지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이것은 루프트바페의 마지막 대반격이라 할 수 있겠다. 예외 없이 352 비행대 비행장에도 독일기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었다. 그 수는 약 50 대 가량으로 독일기들은 가차없이 비행장에 기총사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때 존 메이어는 12기의 P-51을 이끌고 활주로에서 막 이륙을 준비 중이었다. 메이어가 활주로를 질주하며, 속력을 얻어 막 랜딩기어를 들어 올리면서, 전방에 낮게 날고 있던 Fw 190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고, 그대로 명중당한 포케볼프는 추락해 버렸다.
 
 기지에 공습해 오는 독일기와 맞서싸우는 위스너의 전투기.....
이륙직후 메서슈미트 1기를 격추하는 장면의 일러스트....
 
 
하루만에 6기 격추의 신화를 달성한 바 있는 352의 에이스 위스너도 이날 활주로에서 대기하다가, 적기가 내습하자 마자, 적기의 빗발치는 기총 사격을 피해 겨우 이륙할 수 있었고, 이륙직후, Bf 109 1기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반격에 나선 Fw 190들의 20 mm 기관포에 위스너의 무스탕이 명중 당하고 만다. 한쪽 승강타와 카울링 근처에 20 mm 기관포가 명중한 것이다... 위스너의 캐노피는 자신의 전투기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균형을 잡으며 계속 비행을 시도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위스너는 2대의 독일기를 더 격추해 이날만 총 3기를 떨구어 낸 것이다.(Fw 190 1기, Bf 109 2기)  이후 약 45분간의 공중전을 통해, 메이어는 1기의 Bf 109를 더 격추시켰으며, 12기의 무스탕 전투기가 독일 전투기 23기를 격추해 내는 전과를 달성했다. 이 공로로 다시 메이어는 무공십자 훈장을 세번째 수여 받는 영광을 안게 된다.
 
[사진] 352 비행단을 흉내내어 이차대전 분위기를 만들어낸 한 에어쇼의 장면.... 역시 그들은 미국인의 영웅인가 보다..
 
 
사실, 이기록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기들은 숫적으로 50 대 12로 월등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또 고도와 에너지 상태도 미군기들 보다 훨씬 나은 상태였다. 물론 미군 기지이니 대공포들이 한몫했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당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도를 얻지 못하고 막 이륙한 전투기는 에너지 상태가 엉망이기 때문에 기동성이 현저히 떨어져 너무나 쉬운 먹이감인데.... 그런데도 독일 조종사들은 이날 참패하고 만것이다. 여기서 독일 공군의 당시 실정을 잘 알 수 있다.
 
조종사난에 허덕이던 독일 공군이었으니, 아마도 이날 출격한 독일 조종사중 한 두명의 편대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10대의 소년들이었을 것이고 비행시간도 며칠 안되는 신참들이었음에 분명하다. 루프트바페의 전성기에는 꿈도 꾸지 못할 형편없는 패배였다
 
 
그러나 바로 며칠후인 1945년 1월 9일, 메이어는 자신의 200회의 비행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후방에서 휴양하던 중,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이것이 이차대전 조종사로서 경력의 마감이었다.
 
 
 
◆  레마겐의 철교를 지켜내다.

 
종전을 약 두달 앞둔 1945년 3월 초, 독일은 쇄도하는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레마겐의 철교을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독일 제 76 폭격 비행단은 3월 11일, 18기의 아도라 234 폭격기들을 출격시켜 교량파괴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3월 13일에는 19회의 폭격임무를 시도하려 했지만, 기상이 좋지 않았고, 또 연합군의 대공방위망이 너무 완강해, 실패했다.
 
 
 [사진] 레마겐 철교를 폭파하려는 독일의 제트 폭격기 4대를 일시에 보내 버린 352의 에이스 도날드 브라이언
 
 
그러던, 3월 14일,  B-26 폭격기 호위 임무 중이던 352 예하 328 비행대장의 도날드 브라이언(Donald Bryan) 대위는 레마겐의 다리위로 폭격을 시도하는 독일의 AR 234 폭격기들을 발견했다.
 
(브라이언 대위로 말할 것 같으면 1944년 11월 2일, 단하루만에 5기의 Bf 109를 격추시키고, JG 26 소속 다른 두대의 전투기에 손상을 입힌 기록을 보유한 뛰어난 기량의 에이스였다.)
 
브라이언은 곧장 독일 폭격기를 향해 덤벼들었고, 일시에 기관포의 불을 뿜었다. 브라이언의 공격에 4대의 독일 아도라 폭격기들이 줄줄이 격추되었고, 이중에는 독일 제 76 폭격 비행단의 히르쉬베르거(Hirschberger)가 탑승한 폭격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브라이언의 무스탕이 독일의 제트 폭격기 아도라를 맹추격중인 장면을 그린 일러스트....
이날만도 브라이언은 4기를 격추해낸다.
 
 
아도라 폭격기는 제트엔진을 장착한 고속의 폭격기였는데, 속도가 빠르다는 무스탕으로도 잡아내기 어려운 기종이었다. 이것을 미리 간파한 브라이언은 폭격기 보다 높은 고도에서 기다리다가, 폭격기가 접근해 오자마자, 급하강하며 얻은 속도로 제트 폭격기를 추격한 것이다
 
도날드 브라이언이 자신의 전투기 동체에 또 하나 그려지고 있는 격추킬마크를 보며,
미소짓고 있다. 이때가 에이스들의 가장 흐뭇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브라이언의 첫 공격에 히르쉬베르의 오른쪽 엔진이 명중당해, 폭격기의 속도가 뚝 떨어졌고, 이후 연속된 브라이언의 사격에 격추하고 만 것이다. 히르쉬베르그는 추락하는 폭격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캐노피를 열어 제치기는 했지만, 지상에 충돌할 때까지 뛰어내리지는 못하고 전사하고 말았다. 이날의 격추는 브라이언의 13번째 격추기록이었다
 
 
이제 독일은 낭떨어지에 몰린 것이다. 단한발만 물러나면... 천 길 낭떨어지로 떨어지게 되는 운명의.....
 
전성기 같으면.... 은빛 영롱한 깃의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겠지만, 이제 그 날개엔 모든 깃털들이 빠져 버리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것이다. 그 낭떨어지에서 독일이 다시 날아 오르게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마지막 일격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잭 쏘넬(Jack Thornell)은 352 비행단 랭킹 3위에 오른 에이스로 17기의 격추기록과 2기의 지상파괴 기록을 보유한 에이스다.  이중 4기는 P-47기를 이용해 달성했고, 나머지는 무스탕기를 이용해 달성한 성과였다고 한다. 그는 종전 후에도 공군에 남아, 중령까지 진급한다.
 
 
레이 미첼(Ray Mitchel)... 그는 328 비행대의 대원으로 총 69회의 전투 임무 비행을 통해, 1기의 Bf 109 격추를 기록했다.
 

 

[5] 352 비행단의 눈부신 전과
 
 
어느 무스탕 조종사는 조종솜씨가 엉망인 Bf 109 한 대를 격추시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 109는 엔진의 토크로 인해서 방향타 조종을 잘하지 않으면 비행기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 미끄러지고 있을 때는 비행기의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그 비행기를 조종하던 친구는 직선 비행을 위한 방향타 조작법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1944년 여름에는 독일 공군은 어린 아이들을 비행기에 태우고 있었으며, 비행기 자세도 잡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  무스탕 비행대의 기록들

 
이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352 전투 비행단은 420회의 전투 비행임무를 수행했으며, 시간으로는 59,387 시간에 해당하는 비행시간과 776기의 적기 격추를 기록했다. 그리고 352 비행대에서 배출한 에이스는 총 27명에 달했다.
 
 
 
 352 전투 비행단의 대원들....
 
 
352 전투 비행단의 눈부신 전과들

 
▶ 미국 전군의 탑건 7명의 에이스 중 2명을 352 비행단이 배출함
    (조지 프레디, 존 메이어)
 
▶ 조지 프레디와 위스너는 각각 하루만에 적기 6기 격추를 달성함
 
▶ 단 하루만에 지상에 대기 중에 적기 5기 이상씩을 파괴한 에이스 7명 배출
 
▶ 독일의 제트 전투기 12기 이상 격추
 
▶ 총 27명의 에이스 배출
 
 
▶ 352 비행단 조종사 출신 중, 7명은 장군까지 진급함
 
특히 존 메이어는 4성 장군까지 진급
 
또 쌍둥이 형제인 빌 파틸로와 벅 파틸로 (Bill and Buck Pattillo)는 모두 352 비행단 출신으로, 둘 모두 장군 진급을 했다.
 
 
무스탕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비행 중인 B-24 폭격기들
 
 
▶ 미 8 공군의 비행단 중 비행단 단체 표창을 받은 유일한 비행단이다. 이것은 발지 전투 당시, 352  비행단의 12명의 조종사가 적기가 기총사격을 해대는 와중에 비행장을 이륙해, 한대의 손실도 없이, 독일기 23기를 격추한  공로로 수여 받은 것이다.
 
 
▶ 352 비행단 예하 486 비행대는 영국에서 이륙해, 러시아, 이탈리아까지 폭격호위 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영국으로 귀환하는 장대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이때 에드윈 헬러 (Edwin Heller)는 사상최초의 장거리 호위 임무에서 영광의 격추를 달성하는 에이스로 기록된다.
 
▶ 352 비행단 출신 조종사들 중 일부는 한국전에도 참전해, 미군 격추 랭크에 들었다. 존 메이어 (John Meyer)는 2기의 미그기 격추, 빌 위스너 (Bill Whisner)는 격추 기록 5위, 에드윈 헬러 (Edwin Heller)는 격추기록 19위를 기록했다. 이중 위스너는 이차대전과 한국전 모두에서 5기 이상의 격추를 기록한 에이스가 된다.
 
 
 
 
 
Aces of the 352nd Fighter Group

 
George E Preddy, Jr.  26.83  
John C Meyer             23.50  
John F Thornell           17.25  
William T Whisner       15.50  
Donald S Bryan           13.33  
Glennon T Moran        13.00  
Raymond H Littge        10.50  
William T Halton           10.00  
Virgil K Meroney            9.00  
Steven W Andrew          9.00  
Charles J Cesky            8.50  
Carl J Luksic                  8.50  
Sanford S Moats            8.50  
Everett W Stewart           7.83
Henry J Mkilajcyk           7.50  
Frank A Cutler                7.50  
Clarence Johnson         7.00
Willie O Jackson            7.00  
Francis W Horne            5.50  
Edwin L Heller                5.50  
William J Stangel            5.00  
Earl R Lazear                  5.00  
Clayton E Davis               5.00  
Ernest O Bostrom            5.00  
Alexander Sears 5            .00  
Duerr H Schuh 5.00  
Joe L Mason 5.00  
 
 
 
 
 
352의 최고 에이스 조지 프레디....
 
 

덕분에항상많은걸배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