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의 비행대/태평양의 영웅들

불량감자 2010. 1. 20. 18:54

  Black sheep squadron

 

 
 미해병 제 214 비행대 (VMF-214 Squadron)
 
- 일명 검은 양 비행대 -
 
 
 [1] 길 잃은 검은 양들, 다시 모이다
 
 
들어가기 전에 홈지기 한마디
 
비행시뮬레이션 매니아 중에는 어릴때 TV로 주말마다 방영한 씨리즈물 "제 8 비행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콜세어 비행기들과 제로기의 전투를 그린 그 연속극의 몇몇 장면들이 떠오르네요....아마도 이 미니씨리즈가 이제 소개하려는 "검은 양 비행대"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럼 남태평양의 태양 아래, 번뜩이며 다가오는 커다란 붉은 미트볼이 그려진 일본 전투기들을 격추시키던 그들의 비행대로 날아가 볼까요?  
 
 
 검은 양 비행대원들이 콜세어기 앞에 모두 모여 찍은 사진
 
 
 ◆  사생아의 탄생 전야

 
미해병 제 214 비행대는 태평양전쟁 기간을 거쳐 두 번의 탈바꿈을 거듭해, 크게 굵직한 3개의 기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3개의 기간들은 서로 연계성이 거의 없었고, 비행대 이름만 같았을 뿐, 완전히 다른 비행대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겠다.
 
이중 첫 기간에 해당하는 시기가 1943년 중반부로, 조지 브리트 (George Britt) 소령을 비행대장으로 솔로몬 작전 (Solomons campaign)에서 활약했는데, 주력기는 와일드 캣이었다. 이시기에 2명의 에이스가 탄생했고, 비행대 통산 20기 적기를 격추했다.
 
 
[사진] 그레고리 보잉톤의 모습.... 검은 양 비행대를 이끌기 전에는 중국에서 플라잉 타이거의 대원으로도 활동했었다.
 
그후 두번째 기간이 바로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일명 "검은 양 비행대" 시기였다. 전설적인 에이스 그레고리 보잉톤 (Pappy Boyington)을 비행대장으로 1943년 8월 부터 1944년 1월까지, 극히 짧은 기간 동안 활약했는데, 이들이 거둔 전과는 실로 대단했다.
 
비행대장 보잉톤이 격추되어 일본군 포로가 된후, 검은 양 비행대는 사실상 해체되고, 214 비행대는 새로이 항모 프랭크린호에 선승하여, 대전 말까지 활약을 계속하게 된다.  
 
 
 
◆  검은 양 비행대의 탄생

 
1943년 남태평양....  미군의 비행기지들은 남태평양 일대 섬들 마다 산개해 있었는데, 전쟁이 진행될수록 각 비행대 마다, 부상 등으로 임무에서 열외되는 조종사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요양을 위해, 이곳 저곳 의료시설이 있는 섬들에 흩어져 있었다.
 
전쟁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미군은 좀 더 많은 수의 전투비행대가 필요했다. 전투기는 공장에서 단 기간내에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조종사를 양성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때 미군이 생각해 낸 것이, 이곳 저곳 흩어져 있는 이들 낙오 조종사들을 결집해, 전혀  새로운 비행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임무를 맡게 된 사람이 바로 파피 보잉톤이었다.
 
 
 
야자 숲 상이에 펼쳐진 비행기지와 이륙 준비 중인 콜세어기들....
검은 양 비행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전형적인 사진이네요.
 
 
보잉톤은 자신이 전에 속해 있던 제 122 전투 비행대에서 동료 조종사 8명을 차출했고, 그외 흩어져 있던 불운한 조종사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해병 제 214 비행대는 "검은 양 비행대"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사실 검은 양 비행대의 초기 별명은 "보잉톤과 그의 사생아들"이었으나, 그들이 전과를 거두면서, 기자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기사화하려 했다. 그런데 언론에 올리기에는 사생아라는 별명이 너무 진솔해, 보잉톤과 상의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검은 양 비행대"로 별명을 바꾸게 되었다.)  
 
 
 
위에는 보잉톤의 콜세어기이고, 아래사진은 칵크핏 아래, 킬마크를 크로즈업한 사진이다.
 
 
보잉톤이 검은 양의 비행대장을 맡았고, 스탄 베일리(Stan Bailey) 소령이 부비행대장이 되었다. 이들의 지휘아래, 낙오 조종사들은 미해병의 기치 아래 다시 모인 것이다. 새로 지급된 전투기는 콜세어 전투기였는데, 이들에겐 한번도 탑승해 보지 못한 기종이기도 했다.
 
초기에 보잉톤과 베일리 이외에 주목할 만한 검은 양의 장교로는 프랭크 월톤(Frank Walton)짐 리므스(Jim Reames)를 들수 있겠다. 월톤은 로스앤젤리스 경찰관 출신으로 비행대 정보 장교직을 수행했고, 리므스는 비행대 군의관이었다.
 
 
 
 
◆  보잉톤 세치 혀로 12기의 일본기를 잡다

 
검은 양 비행대가 임무를 수행한 날을 보면 단 84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총 94기의 적기 격추와 103기의 적기에 데미지를 주었고, 다수의 일본 수송선과 보급선을 격침시켰다.
 
 어벤저기들을 호위하는 콜세어 편대
 
1943년 9월 초, 훈련을 어느 정도 마친 제 214 비행대는 기지를 옮겼고, 드디어 9월 14일 부터 본격적인 임무 비행에 들어갔다. 부겐빌섬의 서쪽에 있는 섬들에는 아직 일본군의 요새가 있었고, 검은 양 비행대에게 처음 떨어진 임무는 이곳을 폭격하는 미군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Dauntless dive bombers) 호위임무였다.
 
첫날은 별다른 성과 없이 임무를 마친데 반해, 작전 3일째, 출격한 검은 양들은 비행대 최초의 격추를 달성하게 된다. 주인공은 다름아닌 비행대장 보잉톤이었다. 그것도 단 한번의 임무비행에서 5기의 일본기를 보잉톤 혼자서 격추해낸 것이다. 이것은 보잉톤 개인에게도 일생 최고의 격추의 날이었다.
 
 
부겐빌섬과 검은 양의 주 공격대상이었던 라바울 지역을 그린 남태평양 지도
 
 
이후 검은 양 비행대는 기지를 최전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어느날, 보잉톤은 자신의 검은 양떼을 이끌고, 부겐빌 상공에서 임무 비행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무전기로 일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군 조종사들... 당신들의 현재 위치와 고도를 말해주시오..." 어수룩한 영어였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공중전에서 누가 더 높은 고도에서 시작하느냐하는 것은 매우 결정적인 승패의 원인을 제공한다. 파이터 에이스 2 같은, 온라인 비행시뮬레이션을 할때, 상대방 플레이어가 가끔 채팅으로 이렇게 내 고도를 물어오는 일은 종종 있는데, 실전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니.....^.^)
 
그것은 당신들의 고도까지 올라갈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한번 정정당당히 붙어보자라는 식의 결투를 요청하는 도전인 것이었다. 보잉톤은 일본 조종사에게 자신의 고도와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얼마후 일본 전투기들이 보잉톤이 말한 고도를 유지하며, 날아 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보잉톤은 편대의 실제 고도 보다, 1500 m나 낮은 고도를 말해준것이었고, 일본기들은 자신들 바로 상공에서 편대를 이루고 있는 콜세어기들을 발견했으니....
 
 
 일본기의 6시를 잡고, 일격에 격추시키고 있는 콜세어 편대...
아래 보이는 항은 아마도 라바울항을 묘사한 듯 하다.
 
 
사실, 두개의 큰 편대가 다른 고도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승리의 확률은 고공을 점유하고 있는 편이 훨씬 높다. 게다가  제로기는 턴 파이터(Turn fighter)이지, 상승력에 있어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기종이기도 했다. 일본조종사들은 속았다고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린 것이다.
 
일차대전 당시, 타락하기 전의 기사들의 결투와도 같았던 공중전이 실제로 있었고, 홈지기도 개인적으로 이런 결투같은 1대1 대결에 향수 혹은 낭만(죽음을 담보로 한 싸움에 이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네요) 같은 것을 느끼기는 한다. 이것은 비단 홈지기 뿐 아니라, 밀리터리 비행, 혹은 시뮬레이션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의 공통된 성향일지도 모른다.
 
 
적기다..... 출격명령을 받고, 자신들의 전투기로 달려가는 검은 양 대원들
 
 
마케도니아의 지배자였고, 드넓은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동서양 문명이 한데 어울어지는 헬레니즘 문화의 초석을 열었던 알렉산더 대왕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전쟁에서 정정당당하게 지는 것이 비겁하게 이기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이말은 그가 승리자였을 때, 한 말이다.. 만약 그가 연전연패의 쓰라린 경험과 짖밟히는 치욕과 고통을 몸소 격었다면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전쟁이란 누가 이기느냐, 누가 죽는냐의 문제이지, 이미 기사도의 싸움은 아닌 것이다.
 
 
 [그림]  Shot down one enemy fighter..... 화염으로 변해 격추되는 일본 전투기와 희생제물을 뒤로 한채 선회하는 콜세어...
 
전쟁과 전투의 승리를 위해서는 또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뿐 아니라, 같은 편도 속일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전장에서의 속임수는 허물이 되지 않는다.....(삼국지에 자주 나오는 말 ^.^)
 
이렇게 볼때 보잉톤의 재치에 속은 일본 조종사들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자신들이 늘 말하는 사무라이 정신을 지켜 보려고 한 것이라 봐야하나, 아니면, 좋게 말해 순진무구한... 정확히 말해, 바보스럽다고 해야하나....
 
아마도 그들은 죽어가면서, 이 비겁한 놈들.... 사무라이 정신도 모르는 양놈들... 하고 마지막 외마디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벌한 전장에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날의 공중전에서 검은 양은 고도의 유리함을 십분 활용해 일본전투기 12기를 단숨에 격추시켰다. 일본 편대장은 줄행랑을 치고 기지로 돌아가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지도 모른다....
 
"비겁한 미국놈들 때문에 제 부하 열 두명이나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휘관중에 용감히 싸웠으니, 잘했다하고 말해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검은 양 비행대의 마크... 위에 간단하게 그린 전투기는 콜세어를 의미하는 군요...
 
 
 
검은 양 비행대장 그레고리 보잉톤의 자서전표지
 
 
 
 
 
 
 
 
 
 
 
 
 
 
 
 
 
 
 
 
 

 

[2] 볼트, 화공을 준비하다
 
 
- 공중전에서 조종사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격적 성향이다. 또 방어적인 성향의 적을 만난다면, 이미 승리는 당신쪽으로 기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당신을 격추시키는 것 보다 회피하려는데 더 신경을 쓸 것이니...... -
 
미국 태평양전선 에이스 토마스 맥기어(Thomas McGuire)
 
◆  존 볼트 (John Bolt)의 외로운 늑대 전법


 
[사진] 소이탄으로 적기를 불덩이로 만들어 버리는 검은 양 비행대의 에이스 존 볼트의 모습
 
미해병 조종사 중 유일하게 이차대전과 한국전 모두에서 에이스를 기록한 검은 양의 비행대원 존 볼트.... 그는 솔로몬 군도에서 일본기 6기를 격추해냈고, 또 한국에서 미그기를 6기 격추시킨 에이스였다.
 
1941년 말, 전투 조종사 뺏지(wing)를 달았고, 얼마간 비행교관 생활을 하다가, 검은 양 비행대 멤버가 되었다.
 
볼트가 처음 공중전을 경험한 것은 1943년 9월 16일로, 이날 그는 첫공중전의 긴장으로 완전히 몸이 굳어 버렸다. 특히 바로 코 앞에 커다란 붉은 미트볼이 그려진 일본 전투기를 보자, 완전히 쇼크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볼트는 이런 살벌한 공중전의 분위기에 곧 익숙해졌고, 단시간만에 대담한 조종사로 거듭나게 된다. 즉 첫 공중전 바로 1 주일 후, 볼트는 구름 속에서 비행하다가, 그속에서 벗어나자 마자, 6기의 제로기를 발견하게 된다. 일본 조종사들이 볼트의 출현을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고, 선제 공격권은 볼트의 몫이었다.
 
그의 콜세어기의 빗발치는 총탄에 일시에 두대의 제로기가 불타는 미트볼이 되어 남태평양 바다 속으로 떨어져 나갔다. 볼트가 세번째 희생 제물을 노리며, 치달았는데, 기관총이 2개를 제외하고는 잼(jammed)상태가 되고 만다. 할 수 없이 볼트는 공중전에서 이탈해, 기지로 기수를 돌렸다.
 
남태평양의 섬들 위로 편대를 이루고 비행 중인 콜세어기들...
 
 
1943년 10월, 16일....  검은 양 비행대의 콜세어 20기가 임무 비행을 위해 활주로를 박차고 솟아 올랐다. 이날의 임무는 일본 비행장을 목표로 삼은 미해군 급강하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임무였다. 비행대장 보잉톤이 직접 편대를 이끌고 출격했는데, 볼트도 이 대열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들이 토노레이 항 상공을 지나가면서, 일본군들의 상륙선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격적이기로 유명한 비행대장 보잉톤도 이날은 임무를 위해, 상륙선을 공격하지 말라고 무전으로 알려왔다. 검은 양이 이날 상대해야하는 대상은 적지상군이 아니라, 일본 전투기들이었으니.....
 
일본의 소형 선박을 공격하는 콜세어..... 파이터 에이스에서도 콜세어는 지상공격력도 대단한 것으로 나와 있죠.... 콜세어를 몰 때의 기분은 육중한 놈을 움직이는 느낌....
 
 
얼마후, 호위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던 중, 볼트는 슬그머니 편대에서 이탈했다. 아까 그냥 지나친 일본군 상륙정들이 생각난 것이었다. 볼트는 단기로 토노레이 항으로 곧장 날아가, 이내 일본 상륙정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볼트의 기총사격에 일본군들로 가득 채워진 상륙정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다른 보급선 한척을 더 격침시키고는 다시 기지로 돌아왔다. 비행대장 보잉톤이 명령을 무시했다고 펄펄 뛴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나중에 볼트는 이렇게 회상했다.
 
"보잉톤은 그일이 있은 후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  밥 맥클루그 (Bob McClurg)의 격추 순간

 
[사진] 밥 맥클루그의 모습.... 일장기로 표현한 격추 킬마크가 너무도 멋지군요....
 
맥클루그는 7기의 일본기를 격추시킴으로써 검은 양 비행대의 에이스 중 4위에 랭크된 조종사였다.
 
그의 첫 격추는 1943년 9월 18일 달성되는데, 이날 일본기와 헤드온 대결에서 적기를 잡아낸 것이었다.
 
맥클리그는 이날 격추되는 일본기 조종사의 최후를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했다고 한다. 불타는 조종석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12월 23일 라바울 공습에서, 맥클리그는 2기의 격추를 달성한다. 먼저 제로기 1기의 6시를 잡아, 바다로 격추시켜 버렸고, 이어 다른 2대의 제로기의 추격을 받았지만, 구름속으로 달아났다.
 
구름속에서 높은 G를 무릅쓰고, 급격한 우측 선회를 성공시켜, 구름 밖으로 나왔을 때는, 제로기의 6시를 잡게 되었고, 200 m까지 접근해, 그대로 불덩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기는 커다란 검은 연기만을 남기고, 무수한 작은 파편이 되어 떨어졌다."
 
◆  남태평양 상공의 화공

 
볼트는 이날 지상공격 경험을 통해, 소이탄이 적을 제압하는데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자수와 텐트와 조종사...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전투기
 
당시 콜세어기의 탄창에는 예광탄, 소이탄, 일반탄이 각각 차례대로 1:1:1 비율로 채워졌었다. 볼트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일반탄을 소이탄으로 모두 교체해 보면 어떨까하는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볼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항공기들이 장갑이 약하고 대부분 쉽게 불이 붙는 특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일본기들이 화염에 휩싸여 격추되는 장면을 여러번 목격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 존 볼트의 한국전 당시의 모습... F-86 쎄이버 전투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그는 한국전에서도 6기의 미그기를 잡아낸다.
 
볼트는 자신의 생각을 시험해 보기 위해, 데미지를 입고, 폐기처분되어 버린 전투기, 또 기름통등을 대상으로 소이탄과 일반탄의 위력을 비교해 보게 되었다.
 
결과는 볼트의 예상대로 소이탄의 위력이 더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그후 검은 양 비행대는 볼트가 고안해낸 이 탄약비율을 받아들여, 탄창을 예광탄과 소이탄만으로 채우게 되었다.
 
그후, 일본기를 상대로 하던 태평양전선의 거의 모든 비행대가 이것을 채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몇달만에 태평양 전선의 모든 소이탄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였다고 하니.... 볼트의 예리한 눈이 진면목을 발휘하고 만것이다.
 
(일본기들은 연료탱크에 자동봉입장치가 거의 전무했고, 특히 일본 폭격기 베티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날개전체가 연료탱크였고, 한방만 잘 맞으면, 그대로 불덩이가 되어 격추되었다. 그래서 베티를 미군조종사들은 "one shot lighter" (윈샷 라이타)라고 불렀다는 재밌는 이야기도 있죠)
 
 
1943년 12월 23일, 볼트는 라바울 공습 임무에서 2대의 제로기를 격추하게 된다. 이날, 볼트의 편대는 자신들 보다 저고도에서 날고 있는 8기의 일본 제로 전투기를 발견해 낸 것이다. 볼트는 단숨에 급강하하면서, 기관총의 불을 뿜었고, 짧은 시간안에 2기의 제로기를 격추해낸 것이다. 
 
 
 
 
 
노년의 존 ..... 아직도 그를 잊지 않고 있는 젊은 항공팬들에게 싸인을 직접해주고 있네요.... 기라성 같던 에이스들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는 듯.... ^.^
 
 
 
 검은 양 비행대를
기록한 도서의 겉포지
 
 
 
   
 
 
 
 
 
 
 
 
 
 
 
 
 
 
 
 
 
 

 

[3] 검은 양의 에이스들
 
 
-신참 전투 조종사는 공중전이 주는 심각한 정신적 쇼크를 받기 전에, 첫격추를 달성해내야 뛰어난 조종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
 
독일 공군의 에이스 베르너 뮐더스(Werner Molders)
 
◆  크리스토퍼 메기 (Christopher Magee)의 수류탄

 
[사진] 검은 양 비행대의 터프 가이 크리스토퍼 메기의 모습... 그가 수류탄을 가지고 한 장난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메기는 매우 다혈질의 조종사였다.... 턱수염을 기르고,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또 지상에선 수류탄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는.... 약간은 광적인...
 
그러나 조종사로서의 그의 재능은 매우 뛰어났고, 검은 양 비행대 에이스 중 2위에 랭크되는 조종사였다. 총 9기의 일본기를 격추해 냈고, 해군 십자장을 수여 받는 영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메기가 수류탄을 가지고 일련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는 1943년 9월 어느날 벌어졌다고 한다. 그날 검은 양 비행대는 일본 바지선(barge)들을 공격하는 임무를 부여 받고 출격했다.
 
얼마후 그들은 일본의 소형 선박들을 발견했고, 차례 차례 하강하며, 기총사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몇대가 하강 공격을 마치고 재상승을 계속했고, 이제  메기의 차례가 되었다.
 
 
[사진] 검은 양들의 임무 브리핑.... 왼쪽에서 설명을 하는 사람이 비행대장, 파피 보잉톤
 
메기는 일단 급하강으로 일본 선박에 가깝게 접근했다. 그런데 갑자기 메기가 자신의 전투기 캐노피를 열어 제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한손은 조종간을 잡고, 다른 한손은 수류탄을 부여 잡고 있었다. 메기는 불법으로 꽁쳐 두었던 수류탄을 가지고 온것이었다.
 
그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입으로 물어 뜯어 낸후, 거의 코 앞까지 다가온 일본 선박을 향해 힘껏 던져 버렸다.
 
거의 동시에 다른 한손으로는 기관총 방아쇠를 당겼다. 메기의 수류탄은 정확히 일본배의 갑판에 떨어졌고, 폭발을 일으켰다. 연이어 빗발치는 메기의 사격이 명중했고, 일본 선박은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황당한 격침을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칵크핏에서 직접 폭탄을 투척하는 것은 일차대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데, 메기는 선배들의 황당함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낸 것일까?  ^.^)
 
 
 
 Scratched one enemy ship..... 1척을 격침시키고 빠져나가는 콜세어...
 
 
그러나,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던 메기는 비행장에서 어처구니 없는 착륙으로 자신의 랜딩기어 바퀴가 날아가 버리고 만다. 다행히 이 사고에서 무사할 수 있었고, 그날 오후에도 또 다른 임무 비행을 하기 위해 출격했다고 한다. 이후 메기는 "와일드한 놈"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43년 9월 18일.... 메기는 비행 도중 저공으로 날고 있는 30기 가량의 일본 급강하 폭격기 Val기를 발견했다. 고도의 잇점을 안고 있던 메기는 급강하 사격으로 일본 폭격기 1기를 격추한후, 다른 한대를 추격했다.
 
연속된 그의 사격에 Val기는 폭발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폭격기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메기는 고공에서 일본 제로 전투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일본의 뇌격기 Kate로 생각되는 적기를 맹렬히 쫓고 있는 콜세어....
 
 
제로기의 정확한 사격에 메기의 콜세어는 수십발의 명중탄을 얻어 맞게 되었다. 메기는 대공포가 줄줄이 배치된 아군 함선 쪽으로 피해 달아났다. 제로기는 메기를 격추시키기 전에 수많은 대공포화에 먼저 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메기를 더 이상 쫓지 못했다.
 
메기가 기지에 돌아와서, 자신의 전투기를 살펴 보자, 약 30 여발의 총탄자국이 뚜렷히 남아있었다. 이날 2기 격추로 메기는 해군 십자장을 수여받게 된다. 이날 메기의 기록이 검은 양 비행대의 마지막 폭격기 격추였다고 한다. 이후 검은 양들의 모든 격추는 일본 전투기들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에드윈 올랜더(Ed Olander)의 아픈 경험

 
[사진] 검은 양 대원으로 뼈아픈 패배의 경험 후 비행대장 보잉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는 에이스 올랜더의 모습
 
올랜더는 5기의 격추기록을 보유한 검은 양 비행대의 격추 9위의 에이스로, 비행대장 보잉톤의 열성팬이었으며, 보잉톤의 리더쉽을 항상 존경했다고 한다.
 
10월 17일, 올란더는 1기의 제로기의 꼬리를 잡았고 사격을 시작했다. 그때, 다른 한대의 콜세어기가 올란더가 쫓고 있는 제로기의 바로 오른쪽 후방으로 접근했다. 올랜더는 더 사격을 가하다가는 동료 콜세어기에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격을 멈췄다.
 
그날 기지로 돌아와서, 이일을 보고하자, 비행대장 보잉톤은 호되게 질책을 했다고 한다.  올랜더의 앞에 나타났던 콜세어기는 다름아닌 보잉톤의 전투기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동료를 맞출까봐 걱정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적기에게 계속 사격을 가해 격추했어야 옳다는 질책이었다. 이일로 올랜더는 다시한번 자극을 받게 되었고, 바로 그 다음날, 1기의 제로기를 격추시킴으로써, 명예회복을 했다고 한다.    
 
 
올랜더가 보잉톤의 리더쉽을 존경했던 이유 중 하나는, 멍청한 편대장의 판단 하나가 얼마나 불행한 사태를 불러오는지 경험한 사실..... 즉 12월 28일, 편대장 더스틴 (Dustin)의 지휘를 받으며, 출격한 4대의 콜세어기에 올랜더의 전투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얼마후 제로 전투기들과 조우하게 되었는데, 일본기들은 높은 고도를 점유하고 있었고, 숫적으로도 올랜더의 편대보다 유리했으며, 또 태양까지 등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불리한.....  이런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편대장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교전을 피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보통이다.
 
 
 
격추당한 콜세어기의 최후
 
그러나 더스틴은 편대원들에게 적기가 있는 상공까지 상승할 것을 명했다. 육중한 콜세어기를 몰고, 속도를 희생하면서, 바로 앞에 날고 있는 날렵한 적기를 향해 꾸역 꾸역 올라간다는 것은 한마디로 넨센스 그 자체였다. 상승하면서, 떨어질 때로 떨어진 콜세어들의 속도와 기동력 때문에, 콜세어들은 제로기들의 손쉬운 표적에 지나지 않았다.
 
맨앞에서 날던 편대장 더스틴과 그의 윙맨 바틀(Bartl)이 순식간에 격추되어 버렸고, 나머지 편대원 올랜더브루스 매드슨(Bruce Matheson)는 적기의 공격에 거의 벌집이된 전투기를 끌고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쫓아오던 제로기 하나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올란더의 앞으로 오버슛(overshoot)되었고 올랜더는 정확한 사격으로 일본기를 격추시켰다. 1기 격추를 달성하긴 했지만, 이날 무분별한 편대장의 실책으로 대원을 둘씩이나 잃었고, 전투기들은 만신창이되었다. 
 
검은 양비행대는 북 솔로몬 군도와 라바울 (Rabaul) 지역에서 활약하면서, 단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검은 양들은 통산 94기의 일본기를 격추해냈고, 무수한 일본 선박들을 격침시켰다. 이들의 전과는 미군이 라바울등 남태평양의 군도들을 제압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검은양 비행대는 총 9명의 에이스를 배출해냈는데, 다음은 그들의 이름과 격추기록이다.
 
 
 
 
 검은 양들의 모습
 
 
검은 양 비행대의 에이스들과 격추기록

 
Pappy Boyington   22
Jack Bolt                6  
Bill Case                8  
Don Fisher             6  
Chris Magee          9  
Hank McCartney    5  
Bob McClurg         7
Paul Mullen           6  
Ed Olander            5  

 
 
 
 
아마 제 8 비행대의 한 장면으로 생각되는데... 한때 미국에서 검은 양 비행대를 소재로 만든 드라마에서 파피 보잉톤으로 분한 배우의 모습
 
 
 
 
 
 
 
   
 
 
 
 
 
 
 
 
 
 
 
 
 
 
 
 
 
 

 

[4] 늑대떼에 격추되는 양들의 두목
 
 
- 공중전에서 흥분한다는 것은 이미 패배를 의미한다 -
 
일차대전 최고의 에이스 만프레드 폰 리흐토펜 (Manfred von Richtofen)
 
 
승승장구하던 검은 양 비행대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데, 그것은 검은 양들의 두목, 파피 보잉톤의 격추되면서 끝을 보게 된 것이다. 보잉톤이 일본군 포로가 된 후에도, 214 비행대의 명칭은 계속 사용되었지만, 대부분의 멤버들의 교체가 이루어져, 이후 214 비행대는 "검은 양 비행대"와는 전혀 다른 비행대였다고 말하는 게 더 옳겠다.
 
그럼 검은 양 비행대장 파피 보잉톤이 자신의 최후 임무에 대해 자서전에서 언급한 내용과 일본 조종사의 증언을 들어 보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끝내려 한다.
 
 
◆   자신의 격추에 대한 보잉톤의 회상

 
[사진] 보잉톤이 출격준비를 하는 모습... 콜세어기의 조종석 후방은 시야가 엄청 안좋겠네요...
 
"1944년 1월 3일 새벽, 나는 콩이 들어간 빵으로 아침을 떼우고 있었다. 그날 아침 출격 준비는 다른 때와는 달리, 꼬이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내 전투기가 준비가 되지 않아서, 난 할수 없이 다른 전투기를 타야만 했고, 얼마후 지상요원들이 내 비행기를 고쳐내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야했다.
 
그날 임무는 라바울 상공에서 적전투기 소탕 임무였는데, 그곳은 적진 상공으로 약 200 마일 이상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조지 애쉬먼 대위가 나를 바짝 따라 비행하고 있었다. 그는 무전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 편대장님 먼저 앞장서세요, 전 뒤에서 커버 플레이를 하죠...제가 대장님의 6시를 말끔하게 만들어 드리죠..."
 
조지는 내가 에디의 격추기록을 깨길 열망하는 대원 중 하나였다.
얼마후 나는 점점이 떠있는 구름사이로 몇대의 적기를 발견했다. 나는 내 뒤의 편대원들에게 공격 신호를 보냈다.
 
" 자 하강하자... 그리고 한판해보자구...!" 우리 편대에서 나와 조지가 가장 먼저 강하를 시작했다. 나는 하강하며, 앞쪽에서 접근하는 첫번째 일본기에 맹렬히 기총사격을 해댔다. 몇초후... 그 일본기는 파편을 튀겨며, 화염에 휩싸였다... 조지는 소리쳤다  " 우와... 멋진 불장난이었어요!!"
 
 공격.... 공격... 공격.... 콜세어들의 매몰찬 공격
 
 
그리고 나와 조지는 나머지 적기와 공중전에 돌입하기 위해 다시 하강을 했다. 우리는 편대의 나머지 전투기들이 곧 따라 내려올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구름이 그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예전에도 이런 상황에서, 편대원들은 얼마후에 우리를 따라 내려오곤 했으니까...... 10대 가량의 적기가 나타났고, 우리는 기총 사격을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곧 내려 올 줄 알았던 다른 편대원들의 모습이 시간이 가도 보이질 않았다... 조지와 나는 완전히 20여대의 적기에 포위된 것이었다.
 
 
[사진] 전쟁이 끝난 후, 보잉톤의 모습.. 무언가를 초탈한 표정.... 포로생활중 모진 고문과 억압을 받고 살아난 에이스 중의 에이스
 
조지와 나는 서로 가위 비행을 엇갈리게 해 나갔다. 하나가 공격하면, 하나는 뒤에서 커버하고, 다시 차례를 바꿔 이번엔 커버하던 전투기가 공격하고, 공격기가 커버에 들어가는... 그러다가 갑자기 조지의 전투기가 연기에 휩싸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곤 거의 글라이더 비행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소리쳤다 " 조지.... 급하강해! "
 
우리의 전투기 콜세어는 일본의 어떤 전투기 보다도 급하강 능력이 좋았다.(단 일본의 tony기종은 우리와 맞먹는 급하강이 가능했다)  그래서 고공에서 공격을 받으면, 급하강으로 그들을 따돌리 수 있었다.
 
그러나 조지는 분명히 나의 외침을 못들었던것 같다. 그는 지속적으로 글라이딩하며 하강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의 전투기가 말을 듣지 않는 조종불능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지를 추격하는 적기들의 시선을 끌어 조지가 낙하산 탈출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 적기들 속으로 뛰어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쏴대길 한참.....
 
 
갑자기... 내 전투기에서 금속성 굉음이 일어났다. 조지와 똑같은 일이 내게도 벌어진 것이었다. 일본기의 기총사격이 전투기 조종석 뒷쪽 장갑판에 명중되더니...날개를 따라 주욱 꼳히기 시작했다.
 
조지의 전투기는 수면 바로 위에서 폭발을 일으켰고, 물속으로 격추되었다. 그 상황에서 이제 내가 해야 할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난 일본기들을 따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사진] 보잉톤이 포로생활을 했던 일본 요코하마의 포로수용소 모습
 
그러나 연료통이 하염에 싸이기 시작했고, 이젠 수면에서 약 30 미터 정도 위까지 고도가 떨어져서, 고도를 회복할 길이 없었다. "
 
보잉톤은 부상을 입고 바다에 격추되었다. 일본기들이 격추된 그의 전투기를 향해 기총소사를 했고, 보잉톤은 몇시간 동안 바다위에 떠있었다.... 그후 일본해군 잠수함이 그를 발견했고, 포로가 되었다.
 
그는 요코하마 외각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만다. 그의 자서전에선 고문과 구타가 만연했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소량의 식량배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도 18개월동안이나...
 
 
◆  보잉톤을 격추한 일본 에이스의 증언

 
[사진] 고공에서 기습공격 한번으로 보잉톤을 격추시켜 버리는 일본의 에이스 마사지로 카와토의 모습
 
마사지로 카와토는 19기의 격추를 기록한 일본 제로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는 임무도중 다섯 번 격추되었으며, 17번의 부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1944년 1월 3일, 마시지로는 검은 양 비행대의 대장 보잉톤을 격추하게 되는데, 그 당시의 상황을 그의 입을 통해 들어 보자.
 
"그날, 나는 라바울 일본 기지 근처,  요크섬 상공에서 콜세어 1기를 격추시켰다. 당시 2대의 콜세어 전투기가 우리 편대와 접전 중이었는데, 첫번째 콜세어기는 제로기의 추격을 받고 있었고, 바로 그 뒤에 다른 콜세어기는 한대의 제로기를 맹추격 중이었다.
 
얼마후, 두번째 콜세어기(보잉톤의 전투기)의 사격으로 제로기 한대가 화염에 휩싸여 격추되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앞에서 날고 있던 첫번째 콜세어기가 연기와 화염을 뿜으며, 기수가 떨어지더니만 바닷속으로 격추되었다. 당시 나는 상당히 고공에서 날고 있다가, 이제 홀로 남은 두번째 콜세어기를 향해 급하강을 감행했다.
 
곧 그의 6시에 따라 붙었고, 20 mm 기관포를 발사했다. 약 2 - 3발이 그의 카울링에 명중했다. 콜세어기는 연기를 뿜기 시작했고, 지그재그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그러더니, 미군기는 갑자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아마도 엔진이 멎어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콜세어는 아니고.... 핼켓의 모습인데... 일본기 격추 장면을 구하다가 이사진을 올리게 되었어요.....
 
고도 800 m... 콜세어 조종사가 조종석에서 튕겨져 나왔고, 이내 낙하산이 펴졌다. 조종사 없는 콜세어기는 바다속으로 격추되었다. 나중에 내가 이날 격추시킨 조종사가 미국 검은 양 비행대장이며 미해병의 에이스 그레고리 보잉톤이란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77년 전쟁이 끝나고도 약 30 년후, 나는 보잉톤을 로스엔젤리스에서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난 그에게 오래된 증오심이 아직도 남아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때 보잉톤은 이렇게 말해 주었다.
 
"증오심이란 결코 없읍니다. 조종사에게는 원래 그런 것이 없으니까요."
 
(오 놀라워라~~~  마치 붉은 돼지를 보는 듯.... ^.^)
 
 
검은 양 비행대를 일러스트한 그림.....
중간에 보이는 사람이 아마도 보잉톤인듯...
 
그가 종전후 포로수용소를 나오자 그에겐 이미 명예훈장과 해군십자훈장이 수여되어 있었고, 포로생활을 마칠 때 까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메달을 수여 받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 자신은 사회적 명성도 얻고, 메달도 받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이름없이 사라진 나의 동료들은 아직까지도 그곳에 있습니다."
 
 
 
홈지기 한마디 더
 
이상으로 검은 양 비행대의 이야기를 끝냈네요.... 검은 양도 그렇고, 졸리 로저스도 그렇고, 미군 콜세어 조종사들 중에는 괴짜들이 참 많았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정리가 2차대전 비행대 씨리즈 중 9편이었고, 다음 10편째는 두자리수로 넘어가는 기념으로 멋진 비행대를 골라 올리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럼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 
 
 
어디서 많이 본 그림같죠?
영화 태양의 제국의 한 장면에서 뽑아 왔죠.
 
 
 
 
 
 
 
   
 
 
 
 
 
 
 
 
 
 
 
 
 
 
 
 
 
 

[최순옥과이영준의 헌법비방행각과 체제전복행위구성]

※관련근거와 발생증거 : ①(문서번호:민다기2015-02-04-35)②(문서번호:민다기2014-09-26-49)

○이영준과최순옥의 프로필
이영준*최순옥(1965년생) : 청일초등학교졸 청일중학교졸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유동1리 송모태*함배란동네에서 출생
경기도 시흥시 거주 광전연마 근무
마누라 최순옥 (자녀,은경 등)
가족사항: 이영목 이미자 이영석 등

★내용 : 이영준*최순옥은 "우리나라는 구심점이없다"고 헌법조항을씹는者들이며,동시에 왕권정치를해야된다고 주장하며 헌법前文과헌법全文을씹는者들입니다.(공범 : 김지권 이석종 정응범 봉종태일당과 최부림 이선구 송하식일당이공범입니다)

발생기간 : 1970년대부터~ 수십년간 발생(최순옥과 이영준은 1972년경부터 내무경찰공무원의 프락치였음)
발생건수 : 수십만건
피해자 : 불특정다수의 국민

문의처 : 문의사항이 있으신분은 경기도 시흥시청 수원시청 안산시청 성남시청 여주시청 이천시청,강원도 횡성군청 원주시청 춘천시청, 전라북도 익산시청 전주시청, 국가보훈처, 새누리당, 기무사령부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