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Legendary Ace-

불량감자 2010. 1. 25. 07:02

Johnnie Johnson

 ver 2.0

 
이차대전 영국 제 1위 격추기록의 에이스
독일 에이스에게 도전한  더글라스 베이더의 제자
 
 
이름 : 제임스 에드가 자니 존슨
         James Edgar Johnnie Johnson
국적 : 영국
격추기록 : 38기 격추
 
 
이차대전 영국 격추 제 1위에 랭크된 에이스 중의 에이스..... 또 서유럽에서 최고의 격추를 자랑했던 전설의 사나이..... 제임스 에드가 자니 존슨에게 붙는 수식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부상 때문에 영국의 본토 항공전에는 참전하지 못했고, 대신 1940년 말부터 영불해와 프랑스 북부 상공에서 본격적인 전투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그가 거둔 격추의 대부분이 손쉬운 홈그라운드에서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적진 상공에서 얻어 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하겠다.
 
게다가 자니 존슨의 격추 제물들 중 약 80 퍼센트가 독일의 단좌 단엽 전투기였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즉 Bf 109와 Fw 190으로 대별되는 독일 단좌 단엽기는 쌍발 엔진 전투기 Bf 110 이나 폭격기에 비해 격추시키기 매우 까다로운 기종들로, 다른 영국의 에이스들 중 많은 수가 주로 손쉬운 폭격기 격추로 에이스의 반열에 들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하겠다.
 
자니 존슨은 적기와의 깨끗한 대결 자체를 즐기는 또 승부 근성이 강한 조종사였고, 일단 공중전에 몰입하면, 냉정함과 정확한 판단력으로 적을 압도했다. 특히 그는 편차사격(deflection shooting)의 명수였는데, 이것에 대해 나중에 자니 존슨은, 어린시절 새총으로 사냥하면서부터 익힌 감각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자니 존슨은 1915년 3월 9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일어나기전, 자니 존슨은 엔지니어였는데, 늘 하늘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영국 공군에 지원했지만, 자신도 모르고 있던 신체적 결함(럭비 도중, 빗장뼈가 부러져, 교정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함) 때문에 낙방하는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러던 1939년......  전 유럽은 전쟁의 폭풍을 예고하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조종사난에 허덕이던 영국 공군은 드디어 자니 존슨의 지원을 받아 들이게 된다. 1939년 8월 드디어 영국 공군 소속으로 비행훈련을 받기에 이르렀고, 얼마후 영광스러운 조종사 윙을 가슴에 달게 된다. 자니 존슨이 처음 발령 받은 곳은 영국 제 19 전투 비행대였고, 얼마후 다시 616 비행대로 옮기게 된다. 그러나 부러진 빗장뼈가 자주 말썽을 일으켰고, 비행시 어깨와 팔의 통증 때문에 조종이 어려울 때가 점점 많아져, 하는 수 없이 부러진 뼈를 교정하기 위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완쾌되어 비행대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영국의 본토 항공전이 끝나 버린 상황이었다.
 
[사진] 자니 존슨이 자신의 스피트화이어 전투기의 칵크핏에 앉아 있다. 위에 자세히 보면, 백미러가 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41년 자니 존슨이 소속되어 있던 616 비행대는 영국의 대에이스 더글라스 베이더의 지휘를 받게 되었는데, 에이스는 에이스를 알아 보는 것일까? 당시 단 한대의 격추도 달성하지 못했고, 또 수술까지 받아 다른 모든 동료들에게 변변치 않은 대원으로 낙인 찍혀 버린 자니 존슨을 비행대장 더글라스 베이더가 자신의 윙맨, 그것도 편대장 후방을 담당하는 제 2 윙맨으로 발탁한 것이다. 그리고 베이더와 함께 임무를 수행해 나가면서, 자니 존슨은 점점 비행의 감각을 터득하게 되었다.
 
자니 존슨의 첫번째 격추기록은 1941년 6월 26일 달성되는데, 격추 제물은 독일의 Bf 109기였다. 그해 9월까지 스코어가 6기(모두 Bf 109)로 껑충뛰었고, 명실상부한 에이스의 반열에 들게 되었으며, 무공훈장까지 수여받게 된다. 이제 자니 존슨을 밥만 축내는 비행대원으로 생각하는 동료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그해 8월, 비행대장 더글라스 베이더가 북프랑스 상공에서 독일 전투기와의 충돌로 추락해 독일의 포로가 된 후, 자니 존슨이 공석의 비행대장직을 맡게 되었다.
 
[사진] 자니 존슨이 파이프를 한 대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이차대전 중 파일롯의 많은 수는 담배를 애용했나보다.. 자니 존슨의 직속상관 더글라스 베이더도 또 독일의 갈란트도....
 
당시 독일은 새로운 Fw 190 전투기를 대거 북프랑스 지역에 배치하면서, 영국의 스피트화이어 Mk V형보다 뛰어난 성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Fw 190은 4정의 20 mm 기관포와 2정의 13 mm 기관총으로 중무장해, 그 화력은 무시무시했으며, 영국 조종사들은 새로이 등장한 적수에 대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자니 존슨이 처음 Fw 190을 만난 것은 1942년 4월로, 그 중 한대를 명중시켜, 손상을 입혔지만, 격추시키지는 못했다고 한다. 역시 190이 109보다 내구성 역시 뛰어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09는 수냉식엔진을 사용해, 엔진냉각 장치에 단 한발만 맞아도, 냉각수가 빠져나가, 기동이 현격히 떨어지는데, 190A형은 공냉식이라 그럴 염려가 없었으니..... 1941년 8월경, 자니 존슨은 영국 제 610 전투 비행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새로운 스피트화이어 Mk IX형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향상된 스피트화이어의 성능 때문일까? 그달 19일, 자니 존슨은 드디어 격추시키기 힘들기로 유명했던 독일의 Fw 190기를 첫격추시켜 내고 만다.
 
1943년 다시 캐나다인으로 구성된 영국 공군 소속 비행대인 제 242 비행대를  맡게 되었는데, 자니 존슨은 곧 부대원들의 강력한 신임을 얻게 되었다. 비행대원들은 그를 돌아온 더글라스 베이더로 여길 정도였다. 즉 1940년, 베이더가 영국 소속 캐나다인 비행대를 맡아 확고한 신념과 전술을 비행대원들에게 심어 주었고 그들의 영웅이 되었었다. 그러나 베이더가 그만 추락하여, 독일의 포로가 되어 버렸고, 캐나다 조종사들은 정신적 지주를 잃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던 중 베이더의 윙맨이었으며, 베이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성향마저 비슷했던 자니 존슨을 새 비행대장으로 맞이 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편지로만 남은 전설의 일대일 결투

 
그럼 여기서 자니 존슨과 한 독일 에이스간의 이루어지지 못한 일대일 대결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얼마전 영국에서 수취인이 자니 존슨으로 되어 있는 편지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 편지는 1945년, 독일 에이스가 직접 친필로 쓴 것이었는데, 자니 존슨에게 전달되지는 못했었다.
 
그러니까.... 이차대전이 종국을 행해 치닫고 있던 1944년 중반..........
 
적이지만, 영국 조종사들에게 존경받던 북프랑스 상공의 독일 에이스가 있었는데, 그는 당시까지 44기 격추를 달성한 발터 마토니(Walter Matoni)라는 독일 전투 비행사였다. 에이스의 반열에 든 영국 공군 조종사들은 모두 그의 화려한 기동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일대일 공중전을 벌여, 서로의 기량을 겨뤄 보고 싶어 했다. 이런 영국 조종사들 중에는 자니 존슨 역시 끼여 있었고, 무전을 통해 발터 마토니에게 일대일 대결 신청의 뜻을 보냈다. 발터 역시 흔쾌히 승낙했고, 그들은 날짜와 장소를 정해 단독으로 만나기로 했다. 이것은 마치 일차대전 에이스들이 중세 기사도를 이어 받아 깨끗한 창공의 일대일 결투를 벌이던 전통이 고스란히 내려온 이차대전 기간 중에는 보기 드문 경우였다.
 
드디어 결투가 약속된 날.....  자니 존슨은 비장한 각오로 약속 장소로 애기를 몰고 단독 출격했다. 그리고 독일 에이스가 말한 고도에서 선회하며, 발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서도 독일 에이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니 존슨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기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사진] 노년의 자니 존슨.....
 
이날 발터 마토니는 부상을 입고 군병원에 입원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니 존슨이 자신이 대결이 두려워 회피한 것으로 여길까봐 걱정했고, 약속을 어긴 것을 사과하고 싶었다.
 
1945년 종전이 된후, 발터 마토니는 포로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한 영국 장교에게 자신의 편지를 건내주며, 자니 존슨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영국 장교는 이런 행위가 불법이라 생각하고, 자니 존슨에게 전달하는 대신, 자신이 보관하게 된다.  몇십년이 지난 후, 그 영국 장교의 아들이 편지를 세상에 공개한 것인데, 그럼 여기서 그 편지 일부 내용을 보도록 하자.
 
"가장 위대한 영국의 전투 조종사인 자니 존슨 보시오.....  1944년 7월 무전을 통해 그대가 신청한 일대일 도전은 잘 전해 들었었소... 그러나 대결을 약속한 날... 나는 병원 침상에 누워 있는 신세였소. 그대와의 대결 약속을 잡은 직후, 부상을 당했던 것이오, 그리고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해 1945년 3월까지 입원해야만 했었소. 나는 그대에게 무전으로 이 사정을 전하길 원했지만, 독일 지휘부는 나의 제안을 거부했었소. 그후 전쟁이 끝난 후,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늘 당신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날 괴롭혔소. 이제 이렇게 글로써 영국 최고의 전사와의 약속을 어길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속사정을 전하오..... "
 
1943년 9월, 자니 존슨의 격추 스코어는 25기에 이르렀고, 이때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지상 작전 장교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전사에겐 지상이 어울리지 않았다. 자니 존슨은 1944년 3월, 다시 제 144 캐나다 전투 비행대의 지휘관으로 부임하게 된다. 1944년 6월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했고, 꾸준히 격추 스코어를 채워나갔다. 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프랑스로 기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자니 존슨이 이끌던 144 비행대는 처음으로 프랑스 땅을 밟은 연합 공군 비행대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다시 칵크핏에 앉아 본 노년의 자니....
 
 
자니 존슨의 마지막 격추기록은 1944년 9월 27일 달성되는데, 이때도 격추제물은 역시 Fw 190 이었다. 그러나 이날 공중전 도중, 그의 전투기도 상당한 손상을 입었는데, 이것이 자니 존슨의 탑승기에 꽂힌 최초이자 마지막 적기의 명중탄이었다고 한다. 종전까지 자니 존슨은 1000 여회의 임무 비행을 통해, 총 38기 격추를 달성해냈는데, 이것은 오랫 동안 영국의 탑에이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돌프 말란의 기록을 갱신한 것으로, 드디어 자니 존슨이 영국 격추 1위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공군에 남아, 한국전에도 참전했지만, 격추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자니 존슨은 2001년 1월 30일, 눈을 감았고, 전설적인 삶을 마쳤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 85세...... 참고로 고공 출격의 방문자 한분이 올해 초, 그의 사망 소식을 게시판에 올려 주셔서, 많은 방문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었다.
 
 
자니 존슨의 격추 리스트

1941.1.15     Do 17기 공동 격추
1941.6.26     Bf 109
1941 7         2대의 Bf109  및 2기 이상의 적기 공동격추
1941.8 - 9    3대의  Bf109  
1942.4.15      Fw190
1942.8.19      Fw190,  Bf109  
1942.8.20      Fw190
1943.2.13      Fw190
1943.4.3        Fw190
1943.4.5        3대의 Fw190
1943.5           미확인 독일기 4기 격추l
1943. 6-7      7기의 독일기 단독 격추, 2기 공동격추,
                    착륙해 있는 2기 격추
 
1943. 8-9      3기의  Fw190 단독격추  2기의 Bf 109 공동격추
1944.3.28       Ju88 공동격추
1944.4-5       3기의 Fw190
1944.6-7       7기의 독일기 격추
1944.8          2기 이상의  Fw190  
   
 
 
자니 존슨..... 럭비 도중 입은 부상으로 초기 임무를 수행못해 결과적으로 영국의 본토 항공전에는 참전 못했지만, 이후 그는 신들린 격추 행진을 계속한다... 다른 많은 전설의 에이스들도 마찬자지겠지만, 자니 존슨 역시 편차 사격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파일럿들의 일대기를 보며 꿈을 키워나가네요.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