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Legendary Ace-

불량감자 2010. 1. 26. 20:38

  Bud Anderson

 

 
무스탕 트리플 에이스(triple ace)

버드 앤더슨은 미공군 357 비행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16기의 적기를 격추시킨 에이스로 격추기록 4위의 에이스다. 그는  브레이크에 발이 닿지도 못하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어린 버디가 자동차를 몰고 차고로 질주해서 박살을 내놓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야단치는 대신 버디를 다시 운전석에 앉히고, 계속 운전을 하게 했다. 또 어린 버디를 격려해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축구와 야구를 즐겼고, 빠르고, 시끄러운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길 좋아했다. 그러던 어떤날, 그는 오클랜드 비행장을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서 아더 루이스 상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루이스는 십대들의 우상이었고, 버디는 그의 영향을 받게 된다.  

버디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당시 세클라멘트 공항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달 그는 미공군에 입대했고 전쟁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그는 린드버그 비행장에서 기본적인 비행 훈련을 받았다. 그후 고급 비행훈련까지 받게 되는데 그것은  아리조나 류크 공군기지에서였다.

1942년 9월, 조종사 훈련을 모두 마친 그는 처음에는 328 비행대에 소속되었다가, 1943년 9월 다시 357 비행대로 옮기게 된다. 이 비행대는 P-39기를 주력기로 삼고 있었는데, 대부분 조종사들은 이 기종을 싫어했다고 한다. 조종사들은 P-39가 느리고, 스핀에도 잘 빠지고, 기동성이 부족하다고 노래를 불렀다. 실제로 P-39는 유럽 전선에 어울리지 않는,  성능이 떨어지는 기종이었다. 그래서 357 비행대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아프리카 전선이나 태평양 전선으로 배치될거라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유럽으로 가는 수송선에 탑승하게 된다. 그것도 미스테리처럼, 자신들의 P-39 전투기들은 그대로 본국에 놔두고....

그들이 이상히 여긴 이 미스테리는 1944년 1월초, 그들의 눈 앞에 P-51 무스탕기들이 나타나서야 풀리게 된다. 하늘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미끈한 무스탕을 본 조종사들은 자신의 애기가 될 그 전투기를 보며 너무들 좋아했다. 그당시로선 최신예기를 모는 자랑스런 파일롯들이 된 것이니까....

버디는 1944년 2월 5일 자신의 첫 출격 임무때 느낀 소감을 이렇게 썼다.

"그날 아침 나는 전투기로 걸어가서는 칵크핏위로 올라갔다.  만약 당신이 전투기에 앉아 벨트를 메고 혼자 오랜시간 비행하게 되면, 시간이 왜이리 더딜까하는 생각을 하게될것이다. 나중에 나는 이런 시간을 이용해서 공중전 상황을 상상하며, 각 상황에 대한 움직임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또 임무만을 생각했다. 나는 그당시까지 893시간 이상의 비행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스탕기로는 단지 30시간 안팍의 비행시간을 가지고 있어서, 무스탕에 대해 더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이 매우 많았다."

1944년 3월 3일, 버디 앤더슨의 첫 격추가 달성된다. 그의 제물은 Bf 109로 독일 조종사는 베를린 공습에 참가한 B-17폭격기를 요격하다가 버디의 일격을 받게 된다.  약 15,000 피트(4500미터) 상공3기의 Bf 109기가 버디의 편대 바로 앞으로 지나갔다. 그들은 곧바로 B-17폭격기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3대중 한대는 상승하며, 그들의 뒷쪽에 있던 버디의 편대를 공격하려 했고, 한대는 하강하면서 공격 태세를 갖췄고, 나머지 한대는 그대로 폭격기를 공격하고 있었다. 버디는 그중 하강하는 독일기의 뒤를 바짝 추격했다. 나선형 비행을 하며, 쩗은 점사를 했지만, 빗나갔다. 두번째 사격을 했을때, Bf 109는 하얀 연기를 피우기 시작했고, 캐노피가 열리더니, 독일 조종사는 5000피트 상공에서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다.  이때 소비한 총탄은 약 50발이었다.

 

버디의 격추 기록
(날짜, 위치, 격추기종 순)

04-11-44 - Hanover, Germany: Bf-109 and
                                 partial He-111 victories
 
04-30-44 - France: Fw-190 victory
05-08-44 - Berlin mission: Fw-190 victory
05-12-44 - Brux, Germany: Bf-109 victory
05-27-44 - Ludwigshafen, Germany:
                                   two Bf-109 victories
 
05-30-44 - Bernberg, Germany: Bf-109 victory
06-29-44 - Leipzig, Germany:
                                 three Fw-190 victories
 
07-07-44 - Leipzig, Germany: Bf-109 victory

 

44년 6월 29일 버디는 처음으로 Fw 190을 격추하게 되는데, 한꺼번에 3대를 잡게된다. Fw 190들은 B-17기를 요격하고 있었고, 버디는 약 400미터 거리에서 독일의 편대장기를 맞춰 격추시키고, 구름속으로 빠져나가는 다른 한대를 추격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될 때까지 사격을 자제하며 접근한 후 2번째 포케볼프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다. 나머지 한대의 포케볼프는 버디를 보지 못했고, 버디와 그의 편대원에게 격추당했다.

다른 많은 에이스들 처럼 버디도 지상 정비요원들을 신임하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버디와 그의 전투기를 지원하고 늘 무스탕기가 최상의 상태로 손질해 주었다. 하루는 버디가 임무를 마치고 저녁에 기지로 돌아와서, 정비장인 오토 하이노 상사에게 말했다. " 언제가는 우리 전투기동체에 페인트칠을 벋겨 내야 할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무게를 줄여야 하니까요."하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이야길 했다. 그 다음날 아침, 버디는 완전히 금속성 재질로 윤기나게 반짝거리는 자신의 전투기를 발견한다. 하이노 상사와 정비병들은 밤을 새서 세정제로 비행기의 페인트칠을 벗겨낸 것이다. 그들의 손은 거의 벗겨지고, 작업 도중 상처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적과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적기와 숨막히는 생명을 건 공중전을 치르는 조종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1944년 가을, 새로운 G-suits(조종사가 급격한 기동을 할 때 받는 G를 줄여주기 위해 고안된 옷)가 357비행대에 보급되었다. 버디는 이렇게 회상했다. " 무스탕은 매우 급격한 선회를 할 수 있었고, 그때 발생하는 G에 의해 조종사가 실신할 수 도 있었어요. 5G정도를 받으면, 조종사는 gray out상태가 되고, 6G를 받으면, 완전히 black outㅇ;되죠. 그런데 G-suit를 입으면, 비행기의 G가 증가할 때, 자동적으로 G-suit내에 공기가 채워지게 되어 있어서. 조종사의 온몸을 압박해서는 조종사의 머리로 가는 혈류를 유지시키죠. 그당시는 두 종류의 G-suit가 있었는데, 하나는 물로 채워지는 것이었는데, 고공으로 올라가면 물이 너무 차가와지기 때문에, 미리 따뜻한 물을 넣어야 했죠. 다른 한 종류는 공기를 집어 넣는 것으로, 엔진의 진공펌프와 연결되어 있었죠. 이런 종류의 옷은 주로 조종사이 배, 허벅지, 다리를 압박하게 되어있었죠. 꽤 유용한 장비였어요."

종전 후에도 버디는 미공군에 남아서 시험비행 조종사로 근무를 한다. 베트남전 당시에는 F-105s기를 몰았고, 대령으로 전역을 하게된다.  

 
자신의 애기 칵크핏에 앉은 버디  
 
 
 자신의 무스탕 old crow호 날개에 앉아 포즈를 취한 버디... 오른쪽편에 전투기 동체에 나치표시는 격추 킬마크로 18기를 그려넣었네요.. 개인 격추 16기에 공동격추 2기...
 
 
 
 
 
   
 
 
 
 
 
 
 
 
 
 
 
 
 
 
 
 
 
 
포스팅구경하고가요.
방갑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