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불량감자 2009. 12. 16. 08:22

 

◇ Nakajima type 97  carrierborne bomber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1. 6. 6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 상공에 몰려온 일본기중 가장 큰 전과를 올린 기종은 바로 97식 함상공격기 (B5N) 일 것이다. 이날 진주만에 정박한 전함들은 저공으로 비행하여 정확하게 어뢰를 명중시키는 가공할 일본기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고도 2500m에서도 정확하게 수평폭격을 실시하여 철갑폭탄을 명중시키는 일본조종사들의 실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99식 급강하 폭격기와 더불어 진주만 기습을 성공시킨 주역이 바로 97식 함상공격기인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회는 일본 함재기 트리오중 마지막회로 97식 함상공격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1935년 일본해군은 이때까지 운용해오던 B4Y1 뇌격기를 대체할 새로운 기체를 원하고 있었다. 이 B4Y1은 영국해군의 페어리 소드피시 뇌격기와 비슷한 수준의 기체였지만, 속도가 느리고 무장탑재력이 빈약해서 미래의 전장에서는 운용하기 힘들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해군은 함재전투기인 A5M이 단엽기지만 함재기로 운용하는데 별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면서 새로운 공격기는 고성능의 단엽기로서 제작할 것을 여러 항공사에 요구했다.

이에 해군항공기의 단골 제작사중 하나였던 나까지마사가 이 새로운 항공기의 제작에 뛰어들었다. 이 신예기는 저익단엽기로서 디자인되었으며 항공모함에서 운용하기 용이하도록 주익이 유압시스템으로 거의 절반이상 접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완전히 접었을 때 조종석 바로위에서 서로 맞닿을 정도였다. 동체는 커다란 주익에 비해서 상당히 가늘어 보이기까지 했으며 동체의 길이는 항공모함의 엘리베이터에 맞추어서 디자인되었다. 특히 가변 피치를 가지는 프로펠러를 사용하여 엔진효율을 더욱 높이는 신기술도 채택되었다.

[ 주익이 완전히 접히는 함재폭격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진, 우측 주익이 좌측 주익과 겹치지 않도록 받침대가 설치되어 있다. ]

1937년 1월, 최초의 원형기인 B5N1이 날아올랐다. 첫 번째 비행에서 일본해군 관계자들은 이 기체가 그들이 요구하고 있던 시속 370km의 속도를 상회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외의 전반적인 비행성능도 만족할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 신예기는 곧 일본해군에게 차기 함상공격기로서 채택될 차례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이 기체가 너무 신기술을 많이 사용하여 항모에서 전술운용시에 잦은 부담이 될 것을 지적했다. 따라서 나까지마사는 야전에서 최대한 정비와 보수가 간편하도록 많은 개수를 했다. 특히 일본의 유압기술이 아직 정교하지 못해서 주익을 접을 때, 우측이 약간 나중에 접혀야하는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기계적인 문제점이 자주 노출되자, 유압계통을 폐지하고 정비원들이 직접 손으로 접도록 하는 방식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주익을 접었다 폈다 할 때마다 10여명의 정비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오히려 훗날에는 전장에서 더 비효율적인 기체가 되버리게 된다. 이외에도 피치를 고정시킨 프로펠러를 사용하는 등, 야전 운용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수가 가해졌다.

[ 주익은 완전히 수동식으로 접도록 되어 있었으며 보통 10여명의 정비사가 필요했다고 한다. ]

결국 1937년 11월 경쟁기였던 미쯔비시사의 B5M1을 따돌린 B5N1은 해군의 주력 함상공격기로서 정식 채용되었으며 해군 97식 함상공격기 11형 이라는 제식명칭을 부여받았고, 후에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B5N의 약칭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 양산체제로 돌입한 B5N1은 항공모함 함재기부대에 장비되기 시작했으며 1938년 봄부터는 중국전선에 모습을 나타냈다.

[ 97식 함상공격기의 조종석]

중국전선에서는 일반폭탄을 장비하고 수평폭격을 실시했는데 해군의 A5M 전투기들이 거의 완벽한 호위를 했으므로 빈약한 방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무난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수평폭격은 급강하 폭격만큼의 정확성은 없지만, 800kg이나 되는 폭탄을 장착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타격력은 강력했다. 97식 함공에는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데 전방석의 조종사와 후방석의 방어기총수겸 무전수 사이에 폭격수가 탑승해서 작전을 수행했다. 폭격수는 동체아래쪽으로 열리는 작은 창을 통해서 하방의 목표물을 조준할 수 있었다. 중국전선에서는 대적할만한 적함이 거의 없었으므로 어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97식 함공은 800kg의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으며, 진주만 기습이후에는 해전에서 수행한 주요 임무가 뇌격이었다. 진주만 기습의 성공이후 일본해군은 적함을 공격하는데는 항공기의 뇌격이 최고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97식 함상공격기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 대형 어뢰를 장착하고 출격준비중인 97식 함상공격기 ]

이후 중국전선의 교훈으로 더욱 신뢰성있고 강력한 나카지마 사카에 11 공냉식 엔진으로 교체되고 기수의 디자인을 변형시켜 조종사의 시계를 향상시킨 97식 함상공격기 12형 (B5N2)이 등장했으며 이형은 1941년까지 기존의 B5N1을 완전히 대체해나갔다. 

99식 함상폭격기와 마찬가지로 97식 함상공격기는 1941년을 기준으로해서는 세계 최고수준의 함상 폭격기겸 뇌격기였다. 더구나 이들을 적기의 위협에서 완벽하게 보호해줄 신형 전투기 A6M2 제로가 등장한 후에 이 함상기 트리오는 일본해군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에서 일본 함재기들은 그 위력을 발하게 된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에 날아든 총 353기의 일본기들 중 144기가 97식함상 공격기였다. 이날 97식 함공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미해군 전함들에 대한 어뢰 공격과 800kg 철갑폭탄을 사용한 수평폭격에 더해서 미군비행장에 대한 폭격까지 다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40기가 참가한 어뢰공격은 저공에서 정확하게 실시되어 진주만의 얕은 수심하에서도 투하된 40발의 어뢰중 36발 명중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고도 2000m 이상에서 실시된 수평폭격에서도 놀라운 정확성을 보였다. 특히 전함 아리조나에게 결정타를 먹여 대폭발을 일으키도록한 것이 바로 97식 함공에서 투하된 800kg 철갑폭탄이었다.

[ 진주만 기습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 800kg 철갑폭탄을 장비한 97식 함공 ]

진주만공습에서의 놀라운 성과는 일본 함재기 트리오의 위력을 미군에게 뼈저리게 실감하게 한 것이었다. 개전초기 사실상 일본 함재기 트리오들은 동급의 미해군 함재기들보다 성능에서 뛰어났으며 조종사들의 실력도 세계최고 수준으로서 기체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기간동안 미해군은 이 일본기에게 Kate라는 식별 코드명을 붙였다.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에 참가했던 항모 아까기 소속의 97식 함상공격기이다. 본기는 어뢰공격을 맡았던 기체로서 동체하부에는 어뢰를 장착하기 위한 래크가 장착되어 있다.

 

1942년 산호해 해전에 참가했던 항모 쇼가꾸 소속의 97식 함상공격기이다. 3인승 기체의 특성상 캐노피가 매우 길 게 설계되어 있다. 이것이 공중전시에 적기의 사격에 승무원이 피탄될 확률을 높이게 되었다.

이후 97식 함공은 항공모함 기동부대와 함께 태평양을 누비면서 일본해군 연합함대의 남방작전과 산호해 해전에서 맹활약하면서 영국해군과 미해군에게 치명타를 주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양측의 항공모함들이 거의 대등한 싸움을 벌인 산호해 해전에서는 이전의 전황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진주만에서는 앉아있는 오리떼 같은 미군 전함이나 항공기들을 공격해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산호해 해전에서는 미항모에서 발진한 호위전투기들과 치열한 대공포화에 직면해 정확한 어뢰공격이 어려웠던 것이다. 어뢰공격임무는 적함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적함의 이동거리를 계산해서 어뢰를 투하해야 했으므로 저공으로 돌입해야 했는데 이 순간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었다. 적의 전투기들은 이때를 기다려 상공에서 덮치기 때문이고 적함의 대공포화도 저공을 직선으로 비행해오는 뇌격기들에게 조준사격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 전투기나 대공포화가 두려워 방향을 전환하면 공격은 실패하기 마련이고 이탈하는 순간에도 고도가 확보되지 못해서 계속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어뢰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조종사들의 담력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특히 제로, 99식 함폭, 97식 함공의 공통적인 특징인 공격력은 강하나 방어력은 빈약한점 때문에 97식 함공들도 많은 손실을 입었다.

[ 힘차게 진주만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97식 함상공격기 ]

1942년 6월에 태평양의 제해권을 완전하게 장악하고자 야심차게 출격했던 일본함대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기들의 질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략상의 실수로 주력항모 4척이 격침당하는 대패를 당했으며 여기에서 개전초기 일본해군 불패의 신화를 창조했던 수백대의 함재기 트리오와 연합함대 최고의 조종사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채 태평양의 심연으로 항모와 함께 수장되버리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후 저물어가는 일본해군의 운명과 함께 97식 함공의 절정기도 급격하게 종말로 향했다. 그해 10월의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필사적으로 싸웠던 일본함대는 어느정도의 성과를 올렸지만 수많은 함재기들이 조종사들과 함께 태평양의 바다속으로 격추되었다. 그리고 일본해군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영광은 미드웨이의 치명타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고 석양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다.

[ 어뢰를 장착하고 출격준비중인 모습,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기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

이후 방어력이 약한 97식 함공은 전장에서의 생존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어 점차로 후임기인 B6N에게 주력 함재기의 자리를 내주고 이후 항공모함서 철수하여 대부분 육상기지에서 운용되었다. 이후 솔로몬, 마리아나, 필리핀의 전장에서 맹공을 펼치는 미해군 항공모함 기동부대에 맞서서 계속 분전했지만 이미 97 함공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기로 전락한 상태여서 출격기의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했다. 시속 600km는 우습게 넘었으며 강력한 화력을 가진 미해군의 신예 전투기들은 최고속도가 고작 370km밖에 안되는 97식 함공을 만나면 마치 병든 오리를 만난 굶주린 독수리처럼 용서없이 달려들어 속절없이 격추시켜버렸다.  특히 탑승원이 3명이 필요했던 점도 실전에서 운용이 어려웠던 이유중 하나였다. 항공기 운용을 위해서 3명의 서로다른 역할을 가진 승무원이 필요했으므로 전투시에 인원 손실이 있는 경우 보충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는 조종사 인력이 부족했던 일본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것이었다.

Nakajima Type 97 carrierborne torpedo bomber

분 류

3인승 함재 폭격기/뇌격기

동 력

나까지마 NK1B 사카에 11 공냉식 엔진 (1000마력)

최고속도

시속 378km

상승속도

분당 410m

항속거리

1990km

무 장

후방석 - 7.7mm 기관총 1 정

동체하부 - 800kg 폭탄  1발 or  800kg 어뢰 1발

1944년이 되면서 이미 전장에 모습을 내밀 수 없을 정도로 구식이된 97식 함공은 그나마 장거리 항속력을 인정받아 본토 연안으로 후퇴하여 해안 정찰이나 대잠수함 임무를 수행하여 명맥을 유지했다. 그나마 이것도 일본의 항공기들이 절망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대부분의 일본기들처럼 가미가제 특공기의 임무를 받고 수평선너머로 사라졌다. 결국 일본의 패망과 함께 97식 함공이 창조했던 영광의 시절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때나마 세계최고의 함상공격기 지위를 가지고 일본해군의 영광을 주도했던 97식 함상공격기는 전쟁이 끝날때까지 총 1149기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 참고 - 영화 '진주만'에 등장하는 Kate의 복제기 *

영화 '진주만'에 등장한 97식 함상공격기 역시 복제기입니다. 옆의 사진의 기체처럼 너무 개조를 잘해서 마치 진짜 97식 함공처럼 보입니다. 본 기체는 영화 도라도라도라를 촬영하기 위해서 개조된 기체의 잉여분으로서 99식 함상폭격기와 마찬가지로 BT-13 밸리언트를 개조한 기체입니다.

이후에 영화 미드웨이에 등장하기도 했었지요. 너무나 진짜와 유사하게 만들어서 복제기의 사진들이 마치 진짜처럼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역시 99식 함공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올라있는 사진중 컬러로 촬영된 대부분의 사진은 복제기의 사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Japan's Nakajima Ki-43, "Oscar" fighter

Japan's Nakajima Ki-43, "Oscar" fighter

Japan's Nakajima Ki-43-Ib, "Oscar" fighter

[일본 최후의 항공대, 겐다 미노루 대령의 플라잉 서커스라 불리는 제343항공대 소속의 채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