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Legendary dogfighter-

불량감자 2010. 3. 1. 12:12

  Bluemax Ace

 

 

블루맥스 에이스 우데트의 공중전 이야기......(3)

 

-붉은 남작과의 만남, 그리고 헤이짐-

 

1917년 여름이 시작될 때까지, 우데트는 매일 같이 정찰 비행을 하고 있었지만, 단 한 대의 격추기록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1917년 6월 19일, 우데트가 열망하던 부대 전속이 이루어졌다. 그는 모든 동류 파일롯들을 잃어 버린 악몽의 제 15비행를 떠나, 제 37 비행대(jasta)로 옮겨지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이 그에게 어떤 자극제가 되었던지, 우데트는 8월 말까지 9기로 격추 성적이 올라갔고, 11월에는 비행대장이던 크라스호프가 제 38 비행대로 옮겨 가면서, 우데트가 제 37 비행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우데트는 뛰어난 지휘역량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신참 조종사들의 공중전술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1917년 말까지 16기로 격추 성적을 올려 놓았다.

1918년 초 어느날, 우데트에게 한 젊은 파일롯이 찿아왔다. 그는 체구가 작고, 호리호리 했으며 날카로운 얼굴에 조용한 말투를 가진 젊은이였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붉은 남작으로 알려지는 만프레드 폰 리흐토펜(Manfred von Richthofen)이었다. 리흐토벤은 늘 뛰어난 기량과 용맹함을 지닌 파일럿들을 찾고 있었고, 우데트에게 자신의 JG1 비행대에 영입할 것을 권유했다. 작은 망설임도 없이 우데트는 이야기 했다. “알겠습니다. 비행장님!” 붉은 남작은 그와 악수를 나누고 그곳을 떠난다.

우데트는 붉은 남작이 전에 이끌었던 Jasta 11[홈지기 주석 : JG 1 소속의 비행대. JG는 jagdgeschwader의 약자로 여러개의 jast(jastaffel,비행폭격대)가 모여서 이루어진 대비행대를 이르는 말)의 비행대장으로 임명되었고, 붉은 남작과 함께 비행하는 일이 많아지게 됐다. 이때 그의 비행대는 최신예 포커기인 포커 Dr.1 삼엽기를 주력기로 삼고 있었는데, 이 기종은 강력한 상승력과 함께, 가벼우면서도 매우 날카로운 선회를 주 장기로 한 전투기였다.

 


 

붉은 남작의 비행기 잔해.. 일차대전 최고의 에이스인 만프레도 폰 리흐토펜도

대전말, 불운하게 희생되어 연합군 진영에 추락된다. 그의 포커 삼엽기에 달려있던

기관총 2자루의 노획된 모습이 쓸쓸함 마저 불러 일으킨다.

 

 

에른스트 우데트가 나중에 영입되는 플라잉 써커스 비행대 즉 JG 1의 Jasta 11의 비행대장이었던

붉은 남작의 모습.. 겨울이라 출격전에 완전히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

 

jasta 11에 부임한 후, 우데트는 매일 여러번의 정찰 비행을 했고 23기까지 격추 성적을 올렸다. 그 즈음, 우데트는 양쪽 귀에 통증이 시작되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우데트는 리흐토벤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게 되었고, 남작은 그에게 요양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요양기간 동안 의사가 더 이상 비행할 수 없다고 진단했지만, 그래도 점차 그의 증상은 호전되어 갔다. 또 그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독일 최고의 영애 훈장 블루맥스(Blue Xax)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이 있은지 얼마후 또 하나의 비보가 그를 침통하게 만든다. 다름아닌, 그의 상관이자 독일 공군의 영웅, 붉은 남작이 1918년 4월 21일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었다. 1918년 5월 20일, 우데트는 붉은 남작이 이끌던 JG 1의 jasta 4의 비행대장으로 복귀했다.

독일군의 마지막 공세로 전선이 프랑스 진영안으로 약 40마일 가량 전진하기는 했지만, 승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우데트는 그때부터 몇 달동안 그가 경험한 적이 없는 엄청난 횟수의 숨막히는 공중전을 치러내야 했다. 그의 비행대는 아직 포커D Vll기가 배치되지 않았으나, 숫적으로 우세한 연합군을 맞아 분전했다.

1918년 봄과 초여름 동안, 우데트의 격추 스코어는 35기로 올랐다. 이때부터 우데트는 자신의 포커기의 동체에 하얀 글씨로 “LO"라고 써 넣었는데, 이것은 그의 애인인 Lola Zine의 이름을 딴것이었다.

 

 

 

 

 

 

또 꼬리 날개에는 크게 “Du doch nicht!”(영어로 “Certainry not you!" 넌 안돼!)라고 썼는데 이것은 연합군을 조롱하는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데트는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는 공중전을 경험하게된다. 연합군의 2인승기를 공격하다가, 적 후방사수의 사격으로 우데트의 전투기 날개가 심하게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는 전투기를 몰고 독일 진형쪽으로 달아났으나, 갑자기 전투기가 스핀에 빠졌다. 우데트는 그때 새로 지급받은 신형 낙하산을 등에 매고 다. 그는 콕핏에서 일어나 공중으로 점프했다.

 

 

낙하산을 착용하는 복엽기 조종사.. 일차대전 초기에는 낙하산이 조종사들에 겐보편화 되지 못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기구 정찰병 뿐만 아니라 일부 조종사들도 낙하산을 착용한다. 우데트도 이 낙하산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된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 그의 낙하산이 추락하고 있는 자신의 전투기 방향타에 꼬여, 우데트와 그의 비행기는 함께 스핀을 돌면서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이 아닌가?.. 절대 절명의 순간, 인간은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 걸까?... 우데트는 가까스로 그의 낙하산을 방향타에서 분리해 낼 수 있었고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는 독일진영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고, 그날 오후에는 다시 비행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우데트는 프랑스 스패드기를 한기 더 격추해 통산 38기 격추를 달성한다.

1918년 7월 2일, JG 1은 처음으로 미공군과 접전을 벌였고, 27비행대 소속 뉴포트 28기 2기를 격추한다. 그중 한명은 미국의 월터 워너메이커(Walter B. Wanamaker)라는 소위였는데, 우데트의 일격에 부상을 입고 추락해 독일 진영에 떨어졌다. 우데트는 이 미공군 소위에게 다가가 담배를 한 대 권했고, 의무팀이 도착할 때 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데트는 추락시킨 미국 전투기의 방향타에 있는 번호를 잘라냈다. 전쟁이 끝난 후 1931년, 우데트와 월터는 미국 클리브랜드 비행기 대회에서 다시 만났고, 그때 우데트는 자신이 떼어냈던 방향타 한 조각을 다시 월터에게 돌려 줬다. 이 기념품은 아직도 오하이오 데이톤에 있는 미국 공군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붉은 남작이 전사한 후 그가 이끌던 JG 1의 새로운 비행대장으로 부임해온 헤르만 괴링이 자신의 알바트로스 콧핏에 앉아 있는 모습

 

1918년 7월 3일, 새로운 전투기의 시험비행에 나선 JG 1의 비행대장 빌헬름 라인하르트(Wilhelm Reinhard)가 비행기 결함으로 사망하자, 새로운 비행대장이 부임해 왔는데, 그는 다름아닌 21기 격추로 블루맥스 훈장을 수여받은 헤르만 괴링(Hermann Goring)이었다.

이때부터 전선은 완전히 연합군의 우세로 돌변해서, 연합군 공군은 독일의 군수품과 전투 인력 수송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독일 공군은 심각한 연료, 전투기, 파일럿 부족의 악순환을 계속하게 된다. 나중에 우데트는 이렇게 회고했다.

“전쟁은 날이 갈수록 안좋아졌고, 우리 전투기 한 대가 뜨면, 연합군 전투기 5대가 몰려왔다. 전투기 부속이 얼마나 모자랐느냐하면, 연합군 전투기가 독일 영내에 추락하면, 독일 기술팀이 몰려가 쓸만한 부속을 떼어내는데 여념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데트는 7월에서 9월까지 26기의 적기를 더 격추해 통산 62기 격추를 달성한다. 마지막 공중전에서 우데트는 연합군 전투기 2기를 격추한 후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고, 후송되었다가, 1918년 11월 11일 부성에서 아직 완치되지도 않은 시기에 패전을 맞게 된다.

우데트는 일차대전 독일 공군의 제 2위 격추 랭크의 에이스이며, 종전까지 생존한 에이스 중에선 최고의 격추 기록을 보유한 대파일럿이었다. 그의 화려한 복무기록은 20세기 항공전사에 기록될 독보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