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Propeller)2/-독일 -

불량감자 2010. 3. 6. 11:49

♠ Part 2 - 영광의 날개 ♠

 

 

 

독일의 침략으로 유럽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1939년부터 독일공군은 엄청난 위세를 과시하며 전 유럽에 공포와 충격을 몰고왔다. 하늘에서는 Bf 109를 앞세운 독일공군이 연합군의 전투기들을 일소하며 창공의 전설을 만들고 있었으며 지상에서는 독일공군의 원호를 받고있는 전차군단이 질풍같은 속도로 서유럽을 가로지르며 독일군에 저항하던 영불 연합군을 신속하게 두동강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약 2년의 기간동안 독일공군은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받으며 서유럽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부전선을 휩쓸어 버리면서 그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 절정에 달한 영광의 시절동안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로 활약했던 전투기가 바로 Bf 109E형과 Bf 109F형이었던 것이다. 

 

* 진정한 전투기로

 

[Bf 109V13 시제기의 사진, Bf 109E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는 기체이나.]


Bf 109V1 시제기부터 Bf 109D형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숨가쁘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던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로소 Bf 109E라는 멋진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Bf 109E형은 Bf 109 가문에서 최초의 대량 생산형이었으며 1939년 말까지 최일선의 전투기부대에서 Bf 109 선행형을 포함한 기존의 모든 전투기들을 밀어내고 대체하면서 최일선 주력전투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까지 독일공군의 최정예 13개 전투기 연대가 각 40기씩의 Bf 109E를 배치받았는데 이 전투기들이 전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게 된 것이다. 대개 Bf 109 시리즈를 분류할 때 A형부터 E형까지를 1세대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Bf 109E형은 1세대 Bf 109의 결정판으로서 진정한 Bf 109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조종사들 사이에서 '에밀 (Emil)'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1937년의 국제 항공대회에서 시험적으로 제작된 DB 601엔진을 장착하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Bf 109V13의 놀라운 성능에 고무된 BFW사는 이 엔진을 장비한 신형기를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새로운 벤쯔 엔진은 기존에 사용했던 유모 엔진에 비해서 크기가 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체에 많은 개량이 가해졌다.

 

 

 [Bf 109E의 심장 - 다이믈러 벤쯔 DB 601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기존형에 비해 기수의 형태가 많이 변하게 되엇다.

이 벤쯔 엔진의 탁월한 성능이 Bf 109E에게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선사해주엇다.]

 

 

우선 동체가 유모엔진을 장착했던 C/D형에 비해서 10cm 길어졌으며 냉각계통도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어야 했다. 기수 하면의 커다란 공기흡입구가 축소되어 윤활유 냉각용 공기흡입구로 사용되었으며 냉각수를 위한 공기흡입구는 양쪽의 주익 하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엔진출력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 새롭게 디자인된 3날의 VDM 프로펠러가 사용되었고, 이 프로펠러는 피치조절이 가능했다. 이런 다양한 변화의 결과로 전체 중량은 450kg이나 증가하게 되었지만 엔진 출력이 이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더 강력해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행성능에는 많은 향상이 있었다.

 

1938년 여름에 1100마력급의 DB 601A 엔진을 장비한 시제기 Bf 109V14의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이 형은 기수의 MG 17 기관총 2정에 더해서 주익 장착 문제가 해결된 MG FF 20mm 기관포 2문을 시험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로서 숙원이었던 20mm 기관포를 가지게되자 화력강화의 문제는 해결된 듯 했지만 Bf 109의 기체설계가 근본적으로 무장을 기수에 장착해야 최고의 비행성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메서슈미트 박사는 기축에 20mm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는 설계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기축선 기관포를 탑재하고 주익의 무장을 제거한 Bf 109V15 시제기를 제작하여 시험비행에 참가시켰다.

 

 

[JG 20 소속으로 실전배치된 Bf 109, JG  20 전투비행단 제 1중대장이었던 벌터 외자우 대위의 기체이다.

훗날 이 중대는 JG 51의 7중대로 개편되어 동부전선에 투입되게 된다. 기수의 활 엠블램은 중대의 상징이다.]

 

 

야전부대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선행양산형인 Bf 109E-0형이 급히 생산되었는데 아직 기관포의 탑재가 적용되지 않아 이 형은 Bf 109C형과 같이 기수와 주익에 4정의 MG 17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E-0형의 양산작업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곧 본격 양산형 Bf 109E-1가 생산되었다. 이 Bf 109E-1형은 기관총 4정의 무장은 같았지만 주익의 기관총을 야전에서 MG FF 기관포로 쉽게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야전 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는 즉시 주익의 무장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주익에 장착되도록 개량된 MG FF 기관포는 스위스 오리콘사의 오리지널 모델에 비해서 포구속도가 떨어져 사거리와 파괴력이 덜어졌지만 화력 강화를 위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사용되었는데, 이 기관포를 장착하는 경우 탄약 드럼의 부피로 인해서 주익 하면에 약간 불룩해 보이는 돌출부가 생기게 되었으며 20mm 기관포탄의 최대 탑재가능 탄수는 각 60발이었다

 

 

[ 야전부대에서 정비병들이 Bf 109E-1의 주익에 MG FF기관포를 장작하고 있는 장면]

 


이때까지는 Bf 109도 제공전투 이외에 지상공격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받고 있었으므로 50kg 폭탄 4발 혹은 250kg 폭탄 1발을 장착할 수 있었던 전투폭격기형 Bf 109E-1/B 형도 같이 생산되었다. 이후 독일공군이 Bf 109E의 본격적인 대량 생산을 요구하면서 아욱스부르크의 생산공장이 레겐스부르크로 이전하게 되었고 다른 항공사의 몇몇 공장들에서도 생산에 참여하게 되면서 1939년 말까지 총 1540기의 기체가 생산되게 되었다.

 

이후에 Bf 109E-2형에서는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포 2문을 표준으로 하게 되었으나 기축선에 기관포를 장비하도록 하겠다는 메서슈미트 박사의 집념으로 프로펠러축에 MG FF 기관포를 장비하는 Bf 109E-3가 제작되었으며 이 E-3형이 Bf 109E중에서 가장 많은 수가 생산되어 E형을 대표하는 주요한 생산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1940년 초부터 생산이 시작된 Bf 109E-3는 기축의 20mm 기관포 1문외에 엔진 카울링과 주익에 각 2정씩 총 4정의 기관총을 장착하도록 했다.

 

그러나 기축선 기관포는 여전히 잦은 고장을 일으켰으며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불만이 속출하여 대부분의 야전부대에서는 기체를 수령하면   이 기관포를 아예 떼어 버리고 주익의 기관총을 MG FF 기관포로 교체해서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생산라인에서도 기축선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고 주익에 2문의 기관포만을 장비하도록 변경하게 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Bf 109E-3는 애초의 설계와는 달리 주익의 기관포 2문, 기수의 기관총 2정의 무장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Bf 109E 시리즈의 표준 무장이라고 하면 결국 기수의 기관총 2정과 주익의 기관총 2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JG 2비행단장 헬무트 뷔크의 Bf 109E-3,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작전중이던 무렵의 사진이다. 스피너 가운데에 기축 기관포를 위한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트럭으로 Bf 109E를 견인하고 있는 특이한 장면, 트럭 바퀴위 폭과 비슷한 정도로 폭이 좁은 주 강착장치를 잘 볼수 있는 사진.]

 

 

Bf 109E-3는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가 가동되면서 월평균 150여기가 생산되었으며 1940년 한해동안 1868기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많은 수가 만들어졌는데 이 수치는 이 무렵이 2차대전의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결국 1940년에는 대부분의 실전 전투기부대들이 Bf 109E-3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 E-3형이 1940년에 전유럽의 하늘을 휩쓸어 버리는 영광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며 이후 1940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인류 역사상를 통틀어 최대 규모의 항공전으로 기록되는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맹활약했던 것이다.

 

 

[ 비상축격 명령에 따라 Bf 109E의 시동을 걸고 있는 정비병, 기축 기관포를 위한 스피너의 구멍이 잘 보이는 사진] 

 

 

Bf 109E-3는 대외판매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스위스에 80기가 넘겨진 것을 포함해서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의 외국으로 총 304기가 판매된 것인데, 이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동맹국인 일본에 2기가 넘겨진 것과 훗날 철천지 원수가 되는 소련에도 5기가 판매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본에 넘겨진 2기는 훗날 일본의 가와사끼 항공사가 Ki-61 히엔을 제작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수출형 Bf 109E-3는 독일공군내에서 Bf 109E-3a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독일공군용으로 제작된 Bf 109E-3형에 비해서 많은 첨단 장비가 제거된 채로 한 단계 낮은 성능을 가진 채로 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수출형에는 독일제 고성능 무선 통신 장비가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심지어는 주익의 무장을 없애 버린 것들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소련이나 유고로 수출된 기체들에 이런 조작이 많이 가해져 거의 간신히 비행만 가능한 채로 모든 주요 장비가 제거된 채로 넘겨졌다고 한다. 소련은 이 기체를 넘겨받은 후 이 기만 전술에 속아 이 전투기가 가진 무서운 능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응에 소흘했기 때문에 훗날의 독소전에서 커다란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 3국동맬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일본에 넘겨진 Bf 109E-3

 

 

1940년말부터는 아예 기축의 기관포를 완전히 포기하여 엔진룸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없애 버리고 주익의 기관포 2문과 기수의 기관총 2정만을 표준으로 하는 Bf 109E-4가 생산되었으며 전투폭격기형인 Bf 109E-4/B형도 같이 생산되어 영국본토 항공전의 후반기에 E-3형과 함께 주력 전투기로서 사용되었다. 특히 E-4형에 표준무장으로 채택된 기관포는 보다 개선된 MG FF 'M' 20mm 기관포로서 기존의 HE탄에 비해서 보다 폭발력이 강한 신형 탄의 사용이 가능해 파괴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외에 캐노피를 평면형으로 바꾸고 조종사 보호를 위한 방탄판도 표준 장비로 채택되었다.

 

 

[ JG 26 비행단장 아돌프 갈란트 소령의 Bf 109E-4, 기축 기관포가 완전히 폐지되어 E-3형까지 유지되던 스피너의

기관포용 구멍을 없앤 신형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물론 구형 스피너를 가진 E-4형도 일부 있었다.]

 

 

1941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향상된 연료 분사장치와 자동으로 작동되는 유압식 슈퍼차져를 가진 신형 DB 601N 엔진을 장비한 Bf 109E-4/N형이 개발되었다. 이 1200마력의 신형엔진을 부착하면서 기체의 성능은 더욱 좋아졌으며 주로 북아프리카 전선용 기체로 생산되었다. 특히 북아프리카 전선용의 기체는 슈퍼차져의 공기흡입구에 커다란 방진필터를 장비하고 동체에 조종사 구난용 생존키트를 내장하도록 개량되었는데, 이 형은 사막과 열대 (tropical) 지역의 작전용인 Bf 109E-4/Trop 형으로 알려지게 된다.

 

 

[ JG 27소속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2위의 에이스로 명성을 날렸던 베르너 슈뢰어의 Bf 109 E-4/Trop, 기수 좌측의 특징적인 방진필터가 Trop형의 특징이다.]

 

 

이외에는 전선정찰용으로 2정의 기관총만을 가진 경무장의 Bf 109E-5, E-6형이 소량생산되었으며 기내의 연료탑재 용량이 적어 영국 본토항공전에서 고전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투하식의 300리터들이 외부연료 탱크를 장착해 항속거리를 대폭 늘린 Bf 109E-7형도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이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이 E-7형은 장거리 항속력이 필요했던 몰타섬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작전에 다량 투입되어 맹활약했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의 근접 지상지원을 위해서 연료탱크대신 폭탄을 장비하도록 하고 조종석 주위에 장갑판을 강화한 Bf 109E-7/U2형이 생산되기도 했다.

 

 

[ 몰타섬 공략을 위해 시칠리아에서 작전중이던 JG 109E-7, 약간 디자인이 바뀐 뽀족한 스피너가 특징적이다.

스핏화이어의 킬러로 유명한 요하임 뮌히버그가 지휘하던 JG 26 제 7중대 소속의 기체이다.]


 

Bf 109E 시리즈의 마지막 기체로는 DB 601E 엔진을 장착한 E-8형과 장거리 정찰용으로 제작된 E-9형이 있으나 모두 소량생산에 그쳤다.  특이한 변종으로는 항모 그라프 쩨펠린에 탑재될 예정으로 Bf 109E-3를 개조한 Bf 109T 형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kwessa님이 자세히 올려주신 자료를 참고하시길...


* Bf 109E의 함재기형 - Bf 109T

 

이 부분은 109E의 변형인 함재기형의 Bf 109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편집해서 추가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_^

 

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

 

독일군 함재기에 대한 질문이 나왔었는데.. -_-; 순전히 글쓰기 귀찮다는 이유로 "다른 분들께서 답변을 잘 하시겠지.."하고 놀려두고 있다가 결국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라기 보다는, 제버릇 개 못주니..) 몇자 끄적여봅니다.

 

기본적으로 Bf 109 기종이 대전 초중반까지는 독일군의 거의 유일한 전투기였으므로, 이 기종을 함재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죠.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진전됨에 따라 독일군은 Bf 109E형을 함재기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도하게 되는데요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함선보다 함재기들이 먼저 준비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1939년에는 양산전 시험생산으로 10기의 Bf 109T-0이 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DB601Aa엔진에 두 정의 MG-FF 20밀리 기관포, 두 정의 MG17 7.92 밀리 기관총을 장착한 Bf 109E-3형에서 출발했는데, 완성단계에서는 기존의 E형보다 면적이 더 넓은 날개에 꼬리 부분의 착륙용 후크, 동체에 두개의 캐터펄트(네! 캐터펄트입니다!) 후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시험생산을 마친 후, 1940년에는 본격적인 양산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총 60대의 양산형 Bf109T-1이 생산되었습니다. 양산형 T-1기종에는 기존의 E형에 사용되던 DB601Aa 보다 더욱 강력한 DB601N 엔진이 사용되었고 함재기로써의 기능을 완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1940년에 그라프 제펠린호 프로젝트가 백지화되면서 아쉽게도 T형의 개발계획도 멈추게 됩니다. 현재까지 생산된 T형은 메서슈미트사의 전투기들을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던 피이슬러사에 넘겨져서 함재기용 장치를 모두 제거한 후 지상이착륙 전투기로 사용됩니다. 이륙용 사출후크와 착륙용 꼬리후크를 제거하고, 보조연료탱크나 250kg짜리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범용 동체 랙을 설치하게 되는 이 기종은 Bf109T-2로 지정되었습니다.

 

원래 함재기로 사용하기 위한 전투기였던 만큼, 완비된 활주로의 비행장이 드물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작전에 쓸만한 활용가치가 있다는 판단아래에 Bf 109T-2형은 모조리 노르웨이로 보내졌습니다.

 

 

[ Bf 109T형 - 동체 아래의 사출후크, 꼬리의 착륙후크, 넓어진 날개]

 

 

 [ Bf 109T-2]

 

 

[ Bf 109T-2] 

 

 

[ 함선상 이륙 중인 Bf 109T-1, 사출후크와 꼬리후크가 날 드러나 있음.] 

 

 

* 에밀의 비행성능


비행특성의 측면에서 볼 때 Bf 109E는 매우 우수한 기체였다. 특히 시속 480km 이내의 속도에서 이 전투기는 매우 우수한 조종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른 바 '감'이 좋아서 일선 조종사들로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기존에 지적받았던 실속시의 비행특성도 많이 개선되어 갑자기 실속이나 스핀에 빠지는 일이 없어졌으며 실속경고 장치가 있어서 조종사들이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20도가 숙여지는 삽입식 플랩덕분에 활주거리도 괄목할만큼 짧아졌다. 물론 기존형부터 지적되어오던 주강착장치의 폭이 좁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무게중심보다 조금 앞쪽으로 위치하도록 설계되어 착륙시에 접근 각도가 너무 급격하더라도 안착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며 착륙 활주거리도 짧은 편이었고 지상활주도 용이한 편이었다.

 

 

[ 착륙후 주기중인 Bf 109E, 기체의 볼륨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기체의 최고 속도는 12300 피트의 고도에서 수평비행시에 시속 573km를 기록했으며 65% 출력의 경제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항속거리는 최대 668km 정도였다. 초기 상승률은 분당 3100피트에 이르렀으며 작전가능 고도는 36000피트로서 고공성능이 매우 좋았고 최대 375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급강하 폭격을 위해 테스트 받았던 Bf 109E-1/B의 경우 평균 급강하 속도가 시속 604km였으며 속도가 붙는 경우 시속 722km까지도 기록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 날렵한 외형을 자랑하는 Bf 109E-3]

 

 

하지만 시속 600km를 넘어가게 되면 보조익 (aileron)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단점이 있어서 급강하에 접어든후의 고속비행에서 롤 (roll)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었으며 고속 급강하시에는 러더 (rudder)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트림조작이 어려워 조종사들이 애먹기도 했다. 게다가 원형기에서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오던 이착륙시에 좌측으로 쏠리는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어 이런 현상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미숙한 조종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이착륙시에 잦은 사고를 유발했다. 후에 통계를 내보니 Bf 109B가 최초로 실전배치된 1937년부터 1941년 가을까지의 4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무려 1500여기의 Bf 109 전투기들이 이착륙시에 발생한 사고로 전열에서 이탈했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작전중 착륙 과정에서의 사고로 파손된 Bf 109E-1] 

 

 

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메서슈미트 박사와 설계팀은 이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에 나섰는데 고정되지 않은 뒷바퀴가 이착륙시에 좌우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어 이 뒷바퀴를 엔진이 풀쓰로틀에 달했을 때만 좌우로 가동되도록 개선작업에 들어갔는데 이후 이착륙시의 사고는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교정되지는 않고 더 이상 해결책이 없어 Bf 109의 최종생산형에서까지도 조종사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1A (1100마력)

전폭: 10.34m

전장: 9.05m

전고: 3.58m

최대중량: 3017kg

최대속도: 573km/h (고도 4,120m)

최대고도: 36091피트 (12150m)

항속거리: 794km

무장: MG17 7.92mm 기관총 2정 (기수) + MG FF 20mm 기관포 2문 (주익)

 


* 전장의 에밀

 

대전이 발발하자 엄청난 기세로 진격을 하는 독일군에게 하늘에서 든든한 지원을 해주는 독일공군의 슈투카와 Bf 109E야말로 실로 멋진 존재였으며, 전격전 기간동안 유럽 상공에서 독일공군에 대적했던 모든 연합군 전투기들은 Bf 109E의 사냥감 신세가 되었다. 개전 초기에는 연합군의 어떠한 전투기도 따르지 못하는 엄청난 속도와 상승력, 그리고 고속 급강하의 엄청난 압력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벤쯔엔진의 뛰어난 성능이 이 작은 전투기에게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명성을 얻게 했다.

 

 

[콘돌 군단에 파견되어 실전 테스트를 받고 있는 Bf 109E. 이 때의 소중한 전투 경험이야말로 독일공군 조종사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정도 독일공군에 맞설 수 있으리라는 예측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기들은 이 Bf 109E의 위력에 압도되어 대패를 당했다. 프랑스로 파견된 영국공군 소속으로 허리케인을 조종하여 Bf 109E와 전투를 경험했던 영국공군의 한 장교는 허리케인이 Bf 109E에 대해서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점을 인정하고 '비록 적의 전투기지만 Bf 109야 말로 세계최고의 전투기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전격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프랑스 공군과 대결했던 Bf 109E 전투기들은 프랑스 공군의 주력이었던 호크 75, MB 151, 모랑솔니에 MS.406등의 전투기들과 대결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프랑스의 신예기 드와땡 D.520 같은 경우는 Bf 109E와 거의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나 전투에 투입된 숫자가 너무 적어 실전에서의 평가를 내리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뭐니뭐니해도 Bf 109E에게 있어서 적수다운 적수는 숙적 영국공군의 신예전투기 스핏화이어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 Bf 109E의 조종석,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시야가 좋은 편은아니었으며 특히 함몰된 형태로 제작되어 후방시야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 ]

 

 

프랑스 전투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끝나 버린후 독일공군은 잠시의 휴식후에 항복을 거부한 영국 본토를 공략하는 임무에 나서게 되는데 이때까지 유럽전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본토 방위에만 전념하고 있었던 영국의 최신예 스핏화이어 전투기들이 허리케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출격함에 따라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두 전투기끼리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것이다.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한 BF 109E는 E-3형이 약 70% 정도의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중반을 넘기면서는 E-4형이 같이 전투에 참가했다.

 

1940년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군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에게는 마치 하늘이 정해준 것처럼 느껴지는 숙명의 라이벌인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가 제일 껄끄러운 상대였다. 성능면에서 비교해볼 때 수평비행시에 최고 속도에서는 스핏화이어 Mk I, II쪽이 약간 더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수평선회 능력에서도 Bf 109E가 영국의 스핏화이어보다 약간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으며 스핏화이어의 보조전투기겪인 허리케인에 비해서도 선회반경이 약간 더 컸기 때문에 이 두 영국제 전투기와 저속과 중간 속도에서 급격한 수평선회전을 벌일 때는 불리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상승속도와 최대상승고도에서는 Bf 109E가 이 두 영국전투기보다 명백히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200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는 훨씬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더해서 연료 직접분사기를 부착한 벤쯔엔진 덕분에 전투비행시 기수를 급격하게 숙이는 경우나 고속 급강하시에 발생하는 마이너스 G의 거친 환경에서도 엔진에 연료공급이 지속될 수 있어서 공중전에서 큰 이점이 되었다. 스핏화이어는 순각적으로 기수를 숙이는 등의 마이너스 G를 유발하는 기동을 구사하거나 급강하를 오래지속하는 경우 연료공급이 순간적으로 끊겨 엔진이 정지하는 현상이 생기므로 고속으로 급강하하는 Bf 109E를 오래 따라붙을 수 없었다.

 

 

 [ Bf 109E와 스핏화이어 Mk 1의 수평선회 능력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두 기체가 똑같은 속도에서 선회를 시작하는 경우 스핏화이어쪽이 더 날카로운

선회를 할 수 있어 수평 선회전에서는 유리했다. 이 데이터만을 놓고 스핏화이어의 성능을 극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전투에서 두 기체가 같은

속도로 근접 선회전을 벌이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두 기체중에서 속도와 고도가 우월한 쪽이 전투의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영국공군과 독일공군의 조종사들은 서로 적기들의 성능에 대해서 경외감을 표시했는데 이로인해 스핏화이어와 Bf 109E는 오히려 적군에 의해 더 과대평가를 받게 되었다. 독일공군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의 급격한 선회능력에 놀라 감히 선회전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스핏화이어 조종사들은 Bf 109E의 상승성능과 급강하 공격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 기간중에 본토에 추락한 Bf 109E를 수리하여 비행성능을 시험해본 영국공군측은 Bf 109E의 비행성능이 예상외로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전투기는 예상과 달리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공중전 테스트에서도 그다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Bf 109E가 스핏화이어에 비해서 수평 선회능력이 약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공중전이라는 것은 3차원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이었으므로 수직기동을 절묘하게 섞어서 비행할 수 있었던 수준높은 엘리트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와의 근접 격투전에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두 기체의 공중전 성능은 서로간에 분명한 장점들이 있었으므로 어느 한쪽이 우세했다기 보다는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호각의 상태였다.

 

 [ 영국 전투기들에 비해 열세였던 화력을 만회하고자 설치한 회심의 카드 MG FF 20mm 기관포, 주익에 고정 장착된 모습을 잘 보여준다.]

 

 

화력면의 비교에서도 Bf 109E형이 가진 20mm 기관포 2문과 2정의 7.92mm 기관총이 스핏화이어와 허리케인 같은 영국 전투기들이 장착한 8정의 7.79mm 기관총에 대해서 우세한 편이었다. 물론 양측의 장탄수와 발사속도등의 차이가 있었고 영국 전투기들이 장비한 기관총이 8정이나 되었기 때문에 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는 양측의 전투기들의 화력이 거의 대등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Bf 109E의 MG FF 20mm 기관포탄은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거나 스핏화이어와 같은 전금속제 전투기에게 명중되는 경우에는 명중되자마자 폭발하면서 매우 높은 파괴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목재골조에 캔버스 (천)를 대는 방식으로 제작된 허리케인의 경우에는 기관포탄이 캔버스를 그냥 관통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실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드러난 Bf 109E의 최대약점은 스핏화이어에 뒤지는 성능이 아니라 짧은 항속거리였다. 체공시간 80분에 항속거리 700km정도라는 것은 전투반경이 짧았던 서유럽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영국본토까지 날아가는데 30분,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되는 장거리 비행은 Bf 109E에게 겨우 10-15분 정도의 너무나 짧은 교전시간밖에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영국 전투기들과 교전중에도 연료가 바닥날 우려로 인해 교전을 중단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우군 폭격기들이 영국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도와주지 못하는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했다. 분을 못이긴 일부 조종사들은 이런 순간에 자제력을 잃고 영국 전투기들을 공격하다가 결국 귀환도중에 연료가 바닥나 프랑스의 해안이나 도버해협의 바닷물속으로 쳐밖히는 경우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영국공군은 Bf 109E들이 연료문제로 귀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독일 폭격기들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하여 독일공군을 괴롭히기도 했다.

 

여기서 한가지 의구심이 생기게 되는데 도대체 왜 독일공군은 영국본토 항공전기간에 Bf 109E에게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것일까? Bf 109E가 외부 연료탱크만 장착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스핏화이어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고 전쟁은 단기간에 독일공군의 승리로 끝났을텐데...

 

 

[1930년대 중반 독일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He 51, 이 사진에서 처럼 이미 낙하산 연료탱크는 이미 실용화가 이뤄진 상태였다.] 

 

 

사실 독일의 기술력으로 볼 때 Bf 109E에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만일 프랑스전의 대승리이후 즉각적으로 철저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면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Bf 109E는 더욱 맹위를 떨쳤을 것이다. 독일공군이 Bf 109E에 낙하식 외부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았던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프랑스라는 대어를 낚으면서 전격적인 승리에 도취된 독일공군측에서 자만심에 사로잡혀 영국본토 공략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소흘했다는데 있다. 서유럽을 정복하는 동안 Bf 109E의 항속거리가 문제된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전쟁이 시작될 당시 폭격기 호위용으로 개발된 Bf 110 쌍발 전투기가 있었으므로 Bf 109E는 폭격기 호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이 적의 전투기만 찾아 공격하고 돌아오는 식의 '자유전투'의 방식으로 전술운영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혀 외부연료 탱크 부착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 독일공군이 조금만 더 철저한 준비를 했었다면 아마도 영국본토 항공전의 양상은 전혀 다른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진의 기체는 외부 연료탱크를 장비한 Bf 109E-7으로 영국본토 항공전이 거의 끝날 무렵에서야 등장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후 영국본토 항공전이 최절정을 향해 치닫게 되는동안 Bf 110 전투기들이 영국 전투기에 맞서 폭격기의 호위를 맡기에는 역부족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자 Bf 109E가 폭격기 호위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서 짧은 항속거리가 커다란 약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폭격기 호위를 위해서 Bf 109E가 중고도에서 호위를 하는 경우 Bf 109E의 장기인 고속 급강하 공격이 발휘되기 어려웠으며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에게 오히려 고도의 이점을 빼았기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낙하식 외부 연료탱크의 필요성을 절감한 독일공군측이 뒤늦게 땅을 치면서 이 작업을 추진하도록 메서슈미트 박사에게  의뢰했지만 이것은 시기적으로 너무나 뒤늦은 결정이었다.  이미 영국본토 항공전의 최대고비인 1940년 9월 15일까지의 치열한 전투에서 독일공군이 너무나 큰 손실을 입어 결국 독일은 영국에 대한 침공계획을 결국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게 개발되었던 Bf 109E-7형은 비록 영국본토 항공전에서는 거의 활약을 못했지만 이후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장거리 항속능력을 이용하여 맹위를 떨치면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했으며, 영국 사막공군의 무서운 적수로 떠올랐다.


 

◆ Bf 109E 일러스트 Collection ◆

 

 

1939년초 JG 132에 배치된 Bf 109E-1, 본기의 기수에 그려진 '끈이 풀린 구두'는

JG 132 전투비행단 제 4연대의 것으로 훗날 JG 77 제 1연대로 개편되게 된다.

 

1940년 5월 10일 서유럽전에 참가중이던 디터 로비쯔쉬 대위의 Bf 109E-1, 디터 중위는

네덜란드 상공에서 포커 XXI 전투기와 교전중 격추되어 포로가 되었다.

 

1940년 5월, 서유럽전에서 활약하던 JG 27 소속의 Bf 109E-1이다. 조종사는 프리치 켈러 중위로 본기의 기수에는 훗날 북아프리카에서 더 유명해지는 JG 27 1연대의 부대마크가 그려져 있다.

 

1940년 5월, 프랑스 침공작전 당시 JG 26 소속으로 작전중이던 Bf 109E-3의 상면도,

쭉쭉 뻗은 통통한 주익과 전체적으로 직선형으로 디자인된 기체의 특징을 잘 볼수있다.

 

1940년 8월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하고 있던 JG 26 제 9중대소속의 Bf 109E-3, 조종석 아래 그려진

중대마킹은 유명한 것으로 '헬 훈트 (지옥의 개)'라 불린다.

 

1941년,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장이자 유명 에이스인 아돌프 갈란트의 기체이다. 영국본토

항공전에 참가중일 당시의 도색으로 그의 개인마크인 미키 마우스가 조종석 아래에 그려져 있다.

 

1940년 10월, JG 2 리히토펜 비행단의 지휘관 헬무트 뷔크의 Bf 109E-4형의 일러스트, 전통적인

노란색으로 칠해진 기수에서 카울링에 장비된 2문의 MG17기관총이 뚜렷하게 보인다. 카울링에 그려진 칼은 뷔크의 개인 도색이며 수직 안정판의 받침대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접히게 되어있는 강착

장치등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초기의 E-4형은 E-3형에 사용되던 구형 캐노피를 같이 사용했다.

  

1942년 겨울, JG 26 슐라게터 전투비행단 1중대 소속의 Bf 109E-7B으로 동부전선의 스탈린 그라드

지역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던 당시의 도색이다. 이무렵에는 이미 E형이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을 시기이나 전황이 워낙 다급하여 훈련용으로 전용된 기체가 동부전선으로 보내졌다.

 

1942년 8월, 북아프리카 상공을 누비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Bf 109F형의 도입이 늦어 이무렵까지도 E형이 수적인 주력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 새롭게 탄생한 하늘의 마왕

 

 

 

 

Bf 109E가 유럽하늘의 왕자로 군림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동안 메서슈미트 박사는 1세대 Bf 109의 결정판겪인 Bf 109E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후계기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기체가 바로 후세에 Bf 109의 모든 시리즈를 통털어 가장 우수한 비행성능을 가졌던 최고의 기체로 평가받는 Bf 109F형이다. Bf 109E가 독일공군의 대도약을 선도했다면 Bf 109F는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리던 시기에 창공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f 109F형은 Bf 109V1에서 Bf 109E까지 이어진 1세대 Bf 109와는 어떻게 보면 외형과 성능에서 전혀 다른 기체로 평가되어 제 2세대 Bf 109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전투기는 전선의 독일공군 조종사들로부터 프레드릭 (Frederick) 혹은 프란쯔 (Franz), 프리쯔 (Fritz)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 Bf 109F형의 탄생은 다이믈러 벤쯔사가 제작하고 있던 신형 DB 601E-1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서 기체의 설계가 대폭 수정되는 과정이 그 출발점이었다. 메서슈미트 박사는 1940년초부터 이 새로운 고성능 엔진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하기위해서 기존의 Bf 109E형의 개조작업을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 새롭게 등장한 Bf 109F, 기존의 E형에 비해서 많은 개량이 있는 것을 보여준다.]

 


엔진의 효과적인 공간확보를 위해 기수의 형태가 새롭게 디자인되었으며 기수하면의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도 뒤로 이동되었고 프로펠러 스피너가 둥근 반구형태로 약간 커졌으며 프로펠러의 직경은 6인치 작게 설계되었다. 주익하면의 공기흡입구도 얇아졌으며 수평꼬리날개를지지하고 있었던 지지대를 폐지하여 훨씬 세련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제기의 첫 비행은 1940년 7월 10일에 실시되었었는데 여러차례의 시험비행에서 Bf 109E형에 비해 괄목할 만한 비행성능의 향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 독일공군 수뇌부에서 영국의 스핏화이어를 완전히 능가하는 신형기를 개발하라는 주문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제기를 바탕으로 Bf 109E의 후계형인 F형을 개발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되었다.


새로운 기체로의 개발이 결정되자 메서슈미트 박사는 비행성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 주익의 전면적인 재설계 작업에 들어갔는데 주익의 폭이 약간 넓어졌으며 끝단이 둥글 게 처리되었다. 플랩과 보조익 (aileron)의 설계도 크게 변경되었는데 특히 1세대 Bf 109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삽입형 플랩 (slotted flap)이 단순형 플랩 (plain flap)으로 변경되었고 보조익도 삽입형 (slotted type)에서 프라이제 (Frise type)으로 변경되었다. 이외에도 기존형까지 동체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던 뒷바퀴도 이륙직후에 동체안으로 인입되는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Bf 109F형은 기존형에 비해 일신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 E형과  F형의 상면도, 기체의 외형에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체의 무장면에서도 설계팀이 그토록 바라던 숙원이 이루어졌다. 원형기에서부터 무던히 시도되었으나 빈번한 오작동과 진동유발로 인해 번번이 탑재가 좌절되었던 프로펠러축 방식의 기관포 탑재가 드디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어 F형에서는 기축에 MG FF 20mm 기관포를 탑재하고 엔진 상부에 2정의 MG 17 기관총을 탑재하는 것으로 기본무장 방식이 결정 되었다. E형의 특징어었던 주익의 기관포는 비행성능의 향상을 위해 주익의 부담을 최소화하기로 결정되면서 폐지되었고 주익이 얇게 설계되어 야전에서 주익에 기관포를 탑재할 여지를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Bf 109E형의 화력에 만족하고 있었던 많은 조종사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하는데 이중에는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유명 에이스 아돌프 갈란트도 있었다. 심지어는 부대 지휘관들이 F형의 수령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 초원의 야전 비행장에 주기된 Bf 109F, 동부전전의 JG 소속 기체이다.]

 

 

하지만 메서슈미트 박사는 Bf 109 전투기는 그 탄생시기부터 기수집중식의 무장을 추구했던 기체였으며 Bf 109E는 어쩔 수 없이 주익에 무장을 장착했던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 기관포를 탑재하기 위해서 주익을 두껍게 제작해야 했고 기관포와 탄약의 무게로 인해 주익의 부하가 증가해서 최고의 비행성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면서 조종사들의 설득작업에 나섰다. 이무렵 아돌프 갈란트 못지 않은 명성을 날리던 유명 에이스 베르너 묄더즈가 화력보다는 우수한 비행성능과 정교한 사격술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기수에 집중된 무장은 주익 장착방식에 비해서 화력과 산탄총 효과는 줄어들지만 조종사의 조준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정확한 사격에 도움이 되고 파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탄착점을 조절하기 위해 기체를 수평으로 세우는 장면 ]

 

 

여하간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끝에 Bf 109F형은 화력보다는 비행성능에 더 무게를 두고 개발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어 주익에는 무장을 장비하지 않고 오로지 기수에 집중된 1문의 기관포와 2정의 기관총을 고정무장으로 가지게 되었다.

 

초기 생산형인 Bf 109F-0형은 DB 601N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으며 1941년 1월 실전부대에 최초로 인도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어서 실전배치가 추진된후 3기의 Bf 109F-0가 원인모를 사고로 추락했으며 본격적으로 양산형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Bf 109F-1 형중 1기가 훈련비행도중 동체가 파열되면서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로 또다시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기체의 안정성에 대해서 전면적인 검토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 까지는 Bf 109E형의 생산도 계속 추진되도록 해놓은 상태였다.

 

 

 

[ Bf 109E형에서  F형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

 

 

수많은 연구끝에 F형에서 수평꼬리날개의지지대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수평미익의 안정성 보완이 100% 이루어지지 않아 꼬리부분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계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체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이부분의 볼트와 리벳이 느슨해지다가 결국 비행중에 파열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수평미익 부위의 강도와 안정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다시 추진되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자 더 이상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빈약함이 지적된 Bf 109F형의 화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MG FF 20mm기관포를 새로운 MG 151 15mm로 교체하는 방안이 추진되었으며 이 MG 151 기관포를 고정장비하고 양산되는 형은  Bf 109F-2형으로 명명되었다. MG 151 기관포는 벨트식으로 급탄되는 15mm 기관포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록 MG FF 기관포에 비해 구경이 작지만 같은 시간에 더 많은 탄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포구속도가 매우 빨라 기관포탄의 탄도가 직선으로 쭉쭉뻗는 것으로 느껴질만큼 안정적이어서 조종사들로부터 호평을 받게 된다. (200발의 기관포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Bf 109F-2형은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하기 위해서 북아프리카 전선용으로 제작된 Bf 109F-2/trop 형과 GM-1 부스터를 장비한 Bf 109F/Z형의 변형으로도 생산되었다. 하지만 Bf 109F-1과 F-2는 1300마력급의 신형 DB 601E 엔진을 장착하려했던 애초의 의도와 달리 모두 Bf 109E에 사용되던 DB 601N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엔진의 양산이 사소한 문제점들로 인해 지연되었기 때문이었다.

 

 

 

[ 엔진이 제거된 상태에서 정비중인 Bf 109F, 기축에 배치된 MG 151 기관포와 카울링 상부의 MG 17 기관총의 배치를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 - 콘골트 ]

 

 

결국 DB 601E 엔진이 양산되기 시작하자 Bf 109F형도 새로운 엔진의 탑재와 더욱 뛰어난 비행성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Bf 109F-3형이다. 이 엔진의 장착으로 Bf 109F-3는 고도 22000피트에서 최고속도가 시속 630km에 이르게 되었으며 작전 가능 고도는 37000피트까지 높아졌고 순항속도로 비행하는 경우 712km의 항속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Bf 109F-3의 비행성능은 당대 최고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으며 E형까지 약간 열세에 있었던 기동성의 측면에서도 발군의 향상을 보여 동시대의 라이벌 스핏화이어 Mk.V에 비교해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Bf 109F형을 몰고 스핏화이어와 근접 선회전을 펼쳐 승리하는 조종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E-3형은 과도기적인 기체로서 소량생산에 그치게되며 곧 최고의 전투기인 Bf 109F-4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 비행중인 Bf 109F 2기 편대(로터), 매끈한 유선형의 외형을 잘 보여주는 사진 ]

 

 

아마도 모든 Bf 109F시리즈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것은 F-4형일 것이다. 이 형은 폭이 넓은 신형 프로펠러로 교체하여 DB 601E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슈퍼차져용 공기흡입구의 모양이 바뀌게되어 외형으로 기존형과 구분이 가능하다. 무장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기축의 15mm MG 151 기관포를 새롭게 개발된 20mm MG 151 기관포로 바꾸어 장착하게 되었다. 이 신형기관포는 구경 증가에 따라 파괴력이 훨씬 증가한 반면 탄도학적으로도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우수한 무기였으며 총 200발의 20mm 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Bf 109F-4형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열대형인 Bf 109F-4/Trop형과 전폭기형인 F-4/B형의 아형이 있으며 야전에서 필요에 따라 2문의 MG151 20mm기관포를 주익에 부착할 수 있었던 R1 야전키트 (탑재탄수 120발)의 장착이 가능하도록 개선되기도 했다. 이 야전키트를 장비하는 경우 Bf 109F-4/R1으로 불렸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 야전키트를 장착하는 경우 파괴력은 엄청나게 증가하지만 주익의 부하가 증가되어 F형 특유의 우수한 기동성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주로 적의 폭격기 요격과 같은 임무에 사용되었다.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은 500kg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다. 이중에서도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별명과 함께 놀라운 활약상을 펼치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의 애기로서 전설적인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F형의 개량형으로는 기관포를 제거하고 외부연료탱크를 부착한 장거리 정찰기형으로 개조된 Bf 109F-5형과 F-6형의 개량형이 있으며, 특이한 것으로 Bf 109F-1형의 동체 두 개를 나란히 연결하여 쌍발기로 개조한 Bf 109Z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 Z는 독일어로 쌍동이 (Zwilli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거리 전폭기인 Me 609의 개발을 위한 시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1기만 제작된 원형기는 지상에서 날아올라 보지도 못하고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Messerschmitt Bf 109F-4/R6 Frederick

엔진: 다이믈러 벤쯔 DB 601E (1300마력)

전폭: 10.94m

전장: 9.25m

전고: 3.58m

기체중량: 1964kg

최대속도: 628km/h (고도 7,260m)

최대고도: 39370피트 (13120m)

항속거리: 794km

무장: MG 12.7mm 기관총 2정 (기수), MG 151 20mm 기관포 (기축)

          - 옵션으로 R6 주익 기관포 야전 키트 장착 가능

 

 

 

* Bf 109 기종의 축기관포 문제 해결 과정

 

 

이 부분은 Bf 109의 기관포 무장의 변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투기 분야의 권위자이신 kweassa님께서 다른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게시판에 올려주신 내용이 매우 좋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의 사용을 허락해 주신 kweassa님께 감사 드립니다.     ^_^

 

Question(램프의 바바님)

 

궁금한게 있는데요..총을쏘다보면 총신이 과열되지않습니까? 그런데 엔진축에 총신이 있었다면..과열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Answer(Kweassa님)

 

안녕하세요, kweassa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초기 109 기종의 생산이 시작되었을 때 끝까지 골치를 썩인 부분이 바로 기대되었던 축기관포의 설치문제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공군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1940년의 영국항공전 시점까지도 해결되지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본격적인 해결은 잠시 뒤로 미루고 대안적인 무장을 한 Bf109E-3/E-4 기종이 영국항공전에서는 사용되었죠.

 

주로 발생한 문제는 과열, 재밍현상, 그리고 지나친 진동.. 이 세가지 문제였는데요, 결국은 기본적으로는 기관포 자체의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V-4, V-5, 그리고 V-6 기종을 시험하는 동안 축에 설치된 기관총에서 과열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양산형 Bf109B 기종에서는 축 무장을 제거하고 단지 두정의 기관총만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양산형 B형에서부터 E 기종에 이르기까지는 기나긴 시험단계였는데요, 프로펠러 축의 사이사이에 흡기와 배기 구멍을 두고 소소한 방열판을 설치하는 등의 쿨링 기법을 사용하여 발열문제는 어느정도 해결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Bf109C-2형에서는 두정의 카울 기관총과 한정의 축 기관총, 도합 세정의 기관총이 장착된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Bf109D 기종에서는 축에 기관총 대신, 원래 구상한 대로  외를리콘 MG-FF 20mm 기관포를 설치하려고 했었는데요, 여전히 기계식 블로백 타입인  MG-FF 기관포의 진동 및 장전장치의 고장이 큰 골치덩어리였다고 하네요.

 

결국, 영국항공전에 들어가기 직전, 양산형 Bf109E-1형에서는 축 무장을 다시 제거하고, 두정의 카울링 기관총에 두정의 날개 기관총, 도합 네정의 기관총을 무장한 형태로 생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기에 생산된 E-1 기종은 주익의 기관총을 MG-FF 20mm 기관포로 업그레이드 하여 E-4와 비슷한 무장을 갖추게 되었구요.

 

보다 자세한 정보는 Bf109.com 사이트의 http://www.bf109.com/frameset.html  링크를 참조하시길..(영어이긴 하지만요 -_-;).

 

Question(SV-001/R님)

 

BF-109의 엔진은 크랭크축과 프로펠러축이 따로따로였나요?  그래야만 기관포를 프로펠러축에 장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TA-152는 어떻게 성형 엔진을 사용했는데도 프로펠러 회전축 기관포를 장착할 수 있었나요?

 

Answer(Kweassa님)

 

*DB601/605 엔진에 대해

 

음.. 질문하신 내용을 보니 -_-; 아무래도 엔진구조를 잘 아시는 분인 것 같아서.. 대충 답변하면 안될 것 같아, 내연기관이나 기계공학에는 문외한인 주제에 자료 뒤지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일단, 조사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비행기에 사용되는 프로펠러 엔진에는 두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더군요. 비행기의 프로펠러는 프로펠러 섕크(blade shank)라는 장치를 통해 엔진과 연동이 되는데요, 크랭크 축에 프롭섕크가 직접 부착된 직접프롭회전 방식과, 질문하신 내용 그대로 크랭크축과 별도인 프로펠러축을 통해 부착된 간접회전 방식이 있습니다.

 

 

< 그림 1 > 프로펠러와 프로펠러 섕크

 

 

 

< 그림 2 > 직접프롭회전방식

 

 

2차대전 전투기들의 대부분은 엔진은 크랭크축에 곧장 프로펠러가 연결된 식이 아니라, 크랭크축의 회전력을 다시 프로펠러 축으로 연결하는 간접회전 방식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Bf109에 사용된 DB계열 엔진의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제가 아는 한 DB60X계열 엔진의 생산 자체가 각종 신개발 전투기들의 설계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 중반에 들어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들을 설계하면서 특히 새로운 시대의 전투기에 걸맞는 무장형태에 대한 많은 논쟁과 연구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주력 무장을 어느 위치에 장착할 것인가가 큰 관심사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크게 두계열로 나뉘는데요, 전투기의 중심선을 따라 무장 을 집중시키는 기수집중방식과, 다량의 무기를 날개 위치에 장착하는 날개무장방식이었죠. 결론적으로 말해서, Bf109는 처음에 설계될 때 부터 기수집중무장 방식을 염두해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BoB기간에 등장한 Bf109E형의 경우에는, 아직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날개에 기관포를 장착했다고 하는군요).

 

따라서, DB엔진의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Inverted-Vee 방식의 설계라고 하는데, 바로 프로펠러 기관포 장착을 염두해둔 설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림 3 > DB 605

 

 

그림3을 보면 아시겠지만, 엔진 구조 자체가 거꾸로 선 "V"자 형태이죠. 두개의 실린더 블럭이 "V"자 형태로 접합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구경이 꽤 큰 프로펠러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V"형 엔진이었지만, DB엔진의 영원한 라이벌로 인식되는 롤스-로이스사의 멀린계열 엔진들은 바로 선 "V"형입니다.

 

이것이 왜 축기관포 설치에 관건이 되는가하면, 전쟁 중반에 들어서 총신이 짧은 신형 기관포들이 등장했지만,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각국에서 전투기를 설계할 때 까지만 해도 20mm기관포는 굉장히 거대한 신무기였습니다. 총신이 엄청나게 긴 신무기였기 때문이죠. 따라서, 전투기에 엔진을 설치한 후, 프롭축 가운데에 20mm기관포를 두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봐서 DB엔진과 같은 거꾸로선 V형이 필수조건이었던 셈입니다.

 

 

 

< 그림 3 > MG 151/20 20mm 기관포

 

 

왜냐하면, 머리 속으로 전투기의 구조를 그려보면 아시겠지만, 제일 앞에 프로펠러 헙과 카울링이 위치하고, 그 뒤에 엔진이 위치하고, 엔진 내부에는 20mm기관포의 총신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엔진 뒤에는 20mm 기관포 본구조 및 탄창이 위치하는데요,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같은 식의 바로선 \"V\"형 엔진의 경우 프로펠러-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일자로 연결하면, 기관포 본체가 놓이는 위치와 콕핏의 계기판 기계구조를 설치하는 위치가 겹치게 됩니다.

 

굳이 해결하자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수집중방식 보다는 날개무장을 선택하고 있던 판에,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축기관포를 위한 설계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었던거죠.

 

반면, Bf109의 구조를 보면, 프로펠러 헙-프롭축/총신/엔진-기관포 본체를 잇는 일직선을 그어보면, 기관포 본체는 콕핏 기계부속 아래에 위치하게 됩니다. (실제로 Bf109 콕핏을 보면, 조종레버 뿌리의 앞쪽에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이 있는데, 그것이 MG151/20 기관포 본체의 일부분을 감싸고 있습니다) 딱 들어맞는 구조입니다. 원래부터 전투기 설계자가 엔진 형태를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염두해두고 있지 않은 한 그런 식으로 딱 들어맞는 형태는 나오기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Bf109 기종도 시제기를 만들면서 여러 형태의 엔진을 시험해봤지만, 설계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가 최종적인 엔진 종류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죠)

 

그 밖에 혹시 관심이 있으실까 하여,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Bf109.com에서 설명하고 있는 DB605엔진 구조에 대한 내용을 조금 번역해보겠습니다. 엔진 구조물에 대한 전문용어가 많아서 -_-; 그냥 일부 단어는 원어로 냅뒀으니 양해해주시길..   (http://www.bf109.com/engine.html).

 

"...크랭크축은 six-throw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의 stell forging 주조 기법으로 만들어져있고 여섯개의 평형추를 지니고 있다. 납-청동 합금으로 만들어져 강철로 보강된 여섯개의 베어링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데, 하나의 throw 내에서 동작하는 커넥팅 로드는 한 쪽은 롤러 베어링을 통해 plain rod 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쪽은 plain bearing을 통해 forked rod가 plain rod에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띄고 있다. 피스톤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되어 있으며 floating-type 핀들로 고정되어 있다..."

 

"...프로펠러 축은 내부에 기관포를 위치시킬 수 있도록 비어있으며, 1.55 대 1, 혹은 1.88 대 1의 reduction ratio를 지닌 스퍼 기어를 통해 회전한다. 축 기관포는 엔진 뒷면의 테두리에 네 개의 지주와 나사로 고정된다. 프로펠러 축의 테두리는 8개의 구멍과 96개의 톱니가 달려 있는데, 이것이 당시 독일의 표준 생산형태였다..."

 

Ta152H의 Jumo213E 엔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DB엔진 보다 자료가 적기 때문에 별로 쓸만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문외한인지라, 정확히 무얼 질문하신지도 잘 이해를...


 

어쨌건, 혹시 참고가 될까 하여, Jumo213E 엔진의 그림이 있는 사이트 주소는 아래에 적어 놓습니다.

(http://www.geocities.com/ta152uk/Engine_1.html)

 

 

* 영광의 정점에서

 

Bf 109F형은 독일공군이 누린 영광의 시절을 상징하는 기체일 것이다. 형님겪인 E형과 함께 1941년초에 영국본토 항공전의 말미에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Bf 109F형은 당시 영국공군의 스핏화이어 Mk I, II를 훨씬 상회하는 비행성능으로 영국공군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에 놀란 영국공군이 성능개량형인 스핏화이어 Mk V형을 서둘러 제작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무렵 영국본토 항공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영국본토 항공전에서의 전과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 동부전선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우아한 자태를 보이는 Bf 109F, 독소전 초기 소련공군에는 이 기체에 맞설 만한 기체가 없었다.]

 

 

Bf 109F형이 명성을 떨친 곳은 바로 독일공군의 주 전장으로 새롭게 떠오른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의 사막이었다. 물론 이 양대 전선에는 Bf 109E도 참가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Bf 109F의 생산량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며 이미 독일공군 전투기 부대의 실질적인 주역은 Bf 109F형이었다. Bf 109E는 Bf 109F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서 점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히틀러의 원대한 꿈이었던 소련 정복을 위해 동부전선으로 대거 집결한 독일공군은 세계 최강의 전투기인 Bf 109F를 앞세워 한수아래의 소련공군을 일방적으로 격파했다. 1941년 6월, 독일의 완벽한 기습으로 시작된 독소전에서 전쟁을 치룰 준비가 제대로 되있지 않았던 소련공군기들은 하늘과 땅에서 일방적으로 무참하게 격추되거나 파괴되었다. 전투의 양상은 너무나 일방적인 것으로 독일공군은 거의 매일 2차대전이 시작된이래 최고의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독일공군에는 최고 조종사로 추앙받던 베르너 묄더즈를 선두로하여 격추 스코어 100기를 넘는 슈퍼에이스들을 즐비하게 배출되었다. 당시 소련공군이 보유한 I-15, I-153, I-16과 같은 구식 전투기들은 Bf 109F에게는 그야말로 공중 표적에 불과한 것이엇으며 비교적 신형이던 야크-1이나 LaGG-3 같은 경우도 Bf 109F에 맞서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전쟁이 시작되기전 스탈린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인해 고급 공군 장교들이 많이 처형되어 소련공군 조종사들이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이렇다보니 실전에 대비한 훈련수준이 매우 낮았었으므로 영국과 미국에서 급히 공여된 허리케인, P-39, P-40등의 전투기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

 

 

 

[ 눈으로 뒤덮인 동부전선의 차가운 겨울에서 작전중인 Bf 109F ]


 

 

한편, 또하나의 전장이던 북아프리카에서는 1941년 말부터 1942년 중반까지 독일공군이 영국공군을 몰아붙이면서 롬멜의 지상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이 무렵의 독일공군의 주력전투기는 Bf 109E, F형이었으며 이중에서도 비행성능이 뛰어난 F형은 P-40 계열기와 허리케인을 주로 사용하던 영국 사막공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무럽까지는 영국공군이 북아프리카에 스핏화이어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의 질적인 격차가 너무나 컸다.

 

특히 영국공군 전투기부대를 상대로 158기의 엄청난 격추기록을 달성하며 북아프리카 하늘의 전설이 된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대위가 주로 사용하던 Bf 109F-4/Trop형은 북아프리카 하늘의 왕자로서 독일공군 조종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 열사의 북아프리카에 투입된 Bf 109F-2/Trop, 허리케인과 P-40계열기들을 제물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Bf 109F형은 그 등장시기가 독일공군이 모든 전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으며 독일에 대항하는 모든 적기들을 공격하여 단숨에 섬멸하는 최강의 전투기로서 명성을 떨쳤다. F형은 전투기끼리의 제공권 다툼에서 가장 큰 위력을 선보였으며, 1941년과 1942년의 1년여의 기간동안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평가받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당대의 라이벌인 스핏화이어 Mk V와의 비교 평가에서도 전반적으로 대등하거나 우세한 성능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모든 전선에서 오로지 공격에 공격을 거듭하던 독일공군의 창끝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 Bf 109F 일러스트 Colloection ◆

 

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로 진출한 Bf 109F-2/Trop형이다. JG 27 전투비행단 3연대의 기체로서

기수에는 '제자우 크로이츠'라고 불리는 튜튼 기사단의 방패가 연대마킹으로 사용되었다.

 

1942년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헝가리 사단 소속의 Bf 109F-4, 당시 헝가리와의 동맹을 상징하기 위해서 꼬리날개에 헝가리 국기를 그려넣은 기체이며 실제는 독일 조종사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1942년 가을,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떤 JG 27 전투비행단 2연대 소속의 Bf 109F-4/Trop형이다.

기체는 걸출한 비행성능으로 영국 사막공군을 하늘에서 초토화 시켰다. 동체에는 기체 번호가 

다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으며 기수에는 2연대의 상징인 '베를린의 곰'이 그려져 있다.

 

1942년 8월, 기종을 Bf 109F-4/Trop형으로 교체한 직후의 JG 27 전투비행단의 2중대장이었던

한스 아놀트 슈탈슈미트 대위의 기체이다.

 

1942년, 지중해 지역에서 영국 함선들의 공격에 사용된 전폭기형인 Bf 109F-4/B형이다.

러더에 그려진 마킹은 격추마크가 아니라 격침시키거나 대파시킨 함선들을 의미한다.

 

 

* 영광은 끝나가고...

 

 

1941년 독일공군이 최절정의 영광을 누렸던 한해동안 총 2628기의 Bf 109E와 Bf 109F형이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1942년 여름이 지나면서부터는 독일군의 전성기가 끝나면서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 지면서 독일군이 일방적인 공세를 펼치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 서로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후에는 점점 독일이 수세로 몰리게 되면서 절정의 영광을 누렸던 Bf 109F형도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점점 후계기인 Bf 109G형에게 주력의 위치를 내주고 전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Bf 109F형의 종말은 공격의 선봉에서 적의 전투기를 제압하던 순수한 제공전투기로서의 Bf 109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이는 후계기인 Bf 109G형이 비록 수적으로는 모든 Bf 109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생산되기는 했지만 적기를 제압하는 순수한 제공전투기라기 보다는 점점 요격기에 가까운 수비형 전투기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이제 Bf 109는 창에서 방패로 역할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모든글정말잘보고있습니다.
정말 알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