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2/정치경제

이명욱 2016. 9. 25. 14:53

독립운동가 50인의 초상화

고종황제(1852-1919)
조선 제26대왕


(?)
(명성황후의 초상화를 그린것 같음)


구연영(1864-1907)
항일애국지사, 이천수창의소 결성

구정서(1882-1907)
항일애국지사


김 구(1876-1949)
독립운동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석


김 혁(1875-1939)
독립운동가, 성동사관학교 설립


김학규(1900-1967)
독립운동가

박준채(1914-2001)
광주학생독립운동


김좌진(1889-1930)
독립운동가, 북로군정서 총사령



 


김지섭(1884-1928)
독립운동가, 의열단



 


김창숙(1879-1962)
독립운동가, 교육가



김상옥(1890-1923)
독립운동가, 종로경찰서 폭파


남자현(1872-1933)
여성독립운동가, 여자교육회 설립

노백린(1873-1926)
독립운동가, 임시정부 군무총장

김동삼(1878-1937)
독립운동가

박은식(1859-1925)
독립운동가, 민족사학자

민영환(1861-1905)
독립운동가, 순국지사


박재혁(1895-1921)
독립운동가, 의열단


백정기(1896-1934)
독립운동가, 흑색공포단조직

서재필(1866-1951)
독립운동가, 독립협회 창립

손병희(1861-1922)
독립운동가, 천도교지도자(제3대 교주)


송학선(1893-1927)
독립운동가

(?)

(?)


안중근(1878-1910)
독립운동가, 이등방문 저격

한용운(1879-1944)
독립운동가, 승려, 시인

편강렬(1892-1928)
독립운동가, 의성단 조직

한 징(1886-1944)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전명운(?-?)
독립운동가, 공립협회 활동

장인환(1876-1930)
독립운동가, 시티븐스 주살


신채호(1880-1936)
독립운동가, 민족사학자

이종일(1858-1925)
독립운동가

이재명(1890-1910)
독립운동가, 공립협회 활동

이윤재(1888-1943)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이시영(1869-1953)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정부 초대 부통령

이시영(1882-1919)
독립운동가, 조선국권회복단 활동

이승만(1875-1965)
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통령

이명하(1878-1920)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독립운동가, 권업회 활동

이봉창(1900-1932)
독립운동가, 한인애국단 활동

이범진(1852-1911)
항일애국지사, 초대 러시아 공사


이범석(1900-1972)
독립운동가

이동녕(1869-1940)
독립운동가, 신흥무관학교 설립

이 준(1858-1907)
항일애국지사, 비밀결사 개혁당

윤봉길(1908-1932)
독립운동가

유관순(1902-1920)
독립운동가

양기탁(1871-1938)
독립운동가, 언론인


안희제(1885-1943)
독립운동가, 대동청년단 조직

안창호(1878-1938)
독립운동가, 임시정부 내무총장

이회영(1867-1932)
독립운동가

 

출처 : 대한민국 박사모 (박사모)
글쓴이 : 지풍골 원글보기
메모 :

 
 
 

그룹명2/정치경제

이명욱 2016. 7. 6. 22:34


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


 
 
 

그룹명2/정치경제

이명욱 2016. 6. 21. 20:56


'박 정희에게 길 을 묻다' (中) 혁명가인가 정치가인가


5000년 가난을 이겨낸 '현실주의 혁명가 박정희'

"산업화, 공산주의 막아내 민주주의 토대 구축…

인권과 민주, 가난에서 해방돼야 가능

 

 

1962년 6월 3일, 경기도 김포 지역 모내기에 나선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 선글라스 착용) 사진. ⓒ연합뉴스

▲ 1962년 6월 3일, 경기도 김포 지역 모내기에 나선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 선글라스 착용) 사진. 


"우리는 정권이 탐나서 궐기하려는 게 아니야. 

우리의 목표는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고  


  썩어빠진 병폐를 뜯어고치려고 일어서는 건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두 가지 평가는

 '산업화를 이끈 리더' 혹은 '독재자'로 나뉜다.  

박정희 정권 시절 18년을 보내고도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배우고자 하는 다수는

 왜 박정희의 무덤에 침을 뱉지 않을까.

비난하는 사람은 왜 그가 "나랏님도 못구한다는

가난"을 이겼다는 점을 애써 외면할까.  

지난 15일 오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 가진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 제1차 학술심포지엄'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논의했다.  

'박정희: 혁명가인가?

정치가인가?'

를 주제로 진행된 심포지엄 2부에서는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이철순 부산대 교수가

 나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제1회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은 2부 토론회 시작 전 축사를 맡아 박정희 대통령이 역사 속에서 그 공을 제대로 인정받길 바란다고 전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제1회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은 2부 토론회 시작 전 축사를 맡아 "박정희 대통령이 역사 속에서 그 공을 제대로 인정받길 바란다"고 전했다.

 


2부는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의 축사로 시작됐다.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대한민국의 기적은 막연한 행운이 아니라

철저한 경제논리에 따른 국정운영이자 스스로 돕는

 국민 의식을 불러 일으킨 결과였다"며 "

스스로 국가 위기의 진앙지로 전락한 정치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살렸던 경제 기적의 불씨가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희경 의원은 "정치권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본질을

 바로 보아야 한다"며 "한시 바삐 박정희 대통령이

역사 속에서 그 공을 제대로 인정받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부 토론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혁명가'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제1회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은 2부 '집권 18년의 박정희: 혁명가인가? 정치가인가?'를 놓고 토론하기 위해 나온 패널 모습.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제1회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은 2부 '집권 18년의 박정희: 혁명가인가? 정치가인가?'를 놓고 토론하기 위해 나온 패널 모습. 

 


2부 발제를 맡은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은 "박정희는

정치가가 아니라 혁명가였다"고

평가하면서 한국 사회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4가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삼 편집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빈곤퇴치와 사회개조,

조국 근대화,

즉 전 국민에게 '밥'을 먹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을 들고 쿠데타를 일으켰다"며 "혁명적 발상이 아니

면 절대로 불가능했던 국가 근대화를 정치적인 '통치'가 아닌

혁명가적인 '건설'로 쟁취했다"고 밝혔다.

김용삼 편집장은 "초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경제를 부흥시켜 국민들을 절대 빈곤에서 해방시키고,

당시 남한보다 월등한 국력을 가졌던 북한을 추월해

근대화에 성공했다면 그것은 쿠데타가 아닌 국가 근대화를 위한

 혁명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박정희의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에게 세 끼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지도자는

 참다운 지도자가 아니오.
여러분들은 어떤 정책이나 법률을 입안할 때 반드시

국민에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론과 연관을 시켜서

 발상을 해야 합니다."  

"인권 ,민주 모두 다 좋은 말이요.

그러나 참다운 인권과 민주는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나옵니다."


김용삼 편집장은 "혁명가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 사회 체제를

 거부하고 법이나 제도,

경제 조직 등의 기초를 급격하게 바꾸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이라며 "사농공상의 계급이념 및 지배구조로 일관하고

유교를 신봉하며 글만 읽는 선비들이 무인들을 찍어 누르고 통치했던,

 지구 상에 예외적인 문민 통치를 극복한 것이 박정희"라고 평가했다.

김용삼 편집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5.16쿠데타' '10월 유신'을 두고

 민주주의를 역행한 '독재자'라고 평가하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반박하며,

 "박정희 시대야말로 민주주의 성장의 토대를

만든 시간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용삼 편집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민주주의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는 근거로

산업화 성공과 반공주의를 들었다.

김용삼 편집장은 "美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민주화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이라고

 설파했다"며 "(박정희가) 쿠데타를 통해

한국의 산업화를 성공시켜 역설적으로 민주화가

 가능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용삼 편집장의 발제문에 따르면,

세계개발은행(IRBD)통계로 볼때 '5.16쿠데타'가 발생한

 1961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로

세계 125개국 중 101번째였다. 이집트, 필리핀, 터키, 북한 보다

 국민소득이 낮았다.

김용삼 편집장은 "당시 미국,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가

 '한국에서 경제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며

 "결국 세상의 예측을 뒤집은 사람이 박정희"라고 역설했다.

김용삼 편집장은 "쿠데타 이후 1972년까지 한국 수출총액은 40배,

제조업 수출은 170배, 연 평균 수출증가율은 60%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김용삼 편집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대일 청구권 자금의 70%를 경부고속도로,

 국토종합개발사업 등에 투입한 점을 거론하며

"이 또한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가였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박정희 저서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 中-

                                                                               [받은 글]

 

출처 : 대한민국 박사모 (박사모)
글쓴이 : 쏘라[낙산바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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