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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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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12.

윤여동설 - 추모왕(주몽왕) 탄생설화와 고구려 건국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가장 정확할 것으로 여겨지는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鄒牟王)"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당시의 기록인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0년(A,D,670) 조를 보면, 고구려의 안승이 신라로 귀순해 오자 문무왕은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삼게 되는데, 그 책명문을 보면, "공의 태조 중모왕(中牟王)은 덕을 북쪽 땅에 쌓고 공을 남쪽바다에 세워 위풍이 청구에 떨쳤고 어진 교화가 현토를 덮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중모왕이라고도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중모왕이 고구려의 건국시조 추모왕 주몽을 말하는 것인지, 태조대왕 궁을 말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주몽 탄생설화에서는 그 어머니인 유화부인이 햇빛의 감응을 받아 주몽을 잉태한 것으로 적고 있으나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사람이 진짜 햇빛의 감응을 받아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주몽의 아버지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맥의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는,
  "고구려의 선조는 해모수로부터인데 해모수 어머니의 고향 역시 그곳이다.
조대기에 이르기를 해모수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웅심산에서 살다가 부여의 옛 서울에서 군사를 일으켜 무리에게 추대되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니 이를 부여(북부여)의 시조라 한다.
  오우관을 쓰고 용광의 검을 차고, 오룡거를 탔다. 따르는 시종이 5백여 명이었는데 아침에 정사를 처리하고 저녁에는 하늘로 오르니 호령하지 않아도 저절로 관경이 교화되었다.
  산에는 도적이 없고 벼와 곡식이 들에 가득했다.
  나라에 큰 일이 없고 백성 또한 무사했다.
  단군 해모수가 처음 하늘에서 내려온 때는 임술 4월 8일로서 곧 진시황 정의 8년(B.C.239)이다.
  고리군의 왕 해진(필자주 :원본에는 고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해모수의 아들이 고씨일 수는 없는 일이므로 해진으로 고친다)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며 옥저후(필자 주 : 옥저 땅이 북부여의 땅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불리지는 해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함에 있어 공을 세워 봉함을 받았다.
  불리지는 일찍이 압록강 서쪽 강변을 지나다가 하백녀 유화를 취하여 해주몽(주몽의 원래 성씨는 해씨이다)을 낳게 하였다.
  이때가 임인 5월 5일로서 한나라왕 불능(소제)의 원봉 2년(B.C.79)이다.
  불리지가 죽으니 유화는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으로 돌아왔으니 지금의 서란이다.
  주몽이 성장하여 사방을 주유하다가 가섭원(동부여)을 택하여 거기서 살다가 관가의 말지기 일을 하게 되었다.
  얼마 후 관가의 미움을 받아 오이, 마리, 협보와 함께 도망쳐 졸본으로 왔다.
  마침 부여왕(졸본부여왕)에게는 후사가 없었는데 주몽이 마침내 부마(왕의 사위)가 되어 대통을 이으니 이를 고구려의 시조라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주몽의 혈통을 정확히 알 수 있게 기록하고 있고, 주몽이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나 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태백일사의 기록대로라면 주몽의 직계 혈통은,
  북부여 건국시조 해모수 →해진 →?(실명) →해불리지 →해주몽으로 이어졌고, 주몽의 출생년도는 기원전 79년이었다.
  삼국사기에는 주몽의 출생년도를 기원전 58년으로 기록하고 있고 그가 고구려를 건국한 해를 22세 때인 기원전 37년으로 적고 있으나, 태백일사는 주몽이 기원전 79년에 출생했다고 적고 있고, 22세에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부여로 가서 아들이 없던 졸본부여 왕의 부마가 되었다가 나라를 물려받아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으며, 이가 곧 고구려의 시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건국설화의 주에도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더니 왕이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만나보고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고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고, 왕이 죽으니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는 말도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백제본기에도 주몽이 졸본부여왕의 둘째 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죽자 그 왕위를 이었다고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고려 때에도 이러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들은 주몽이 왕위에 오른 해에 22세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를 때인 기원전 37년에 나이가 22세였다고 함으로써 주몽의 출생년도가 기원전 58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셈인데, 이랬을 경우 주몽이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었다는 기록은 설명할 수 없고, 삼국유사 기이 제1 고구려조에는 주몽이 왕위에 오른 때가 12세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22세의 판각시 오각이고, 범장의 북부여기 하(졸본부여기)에는 주몽의 출생년도가 기원전 79년이고, 동부여로부터 졸본부여로 도망쳐 왕의 부마가 되었다가 왕위를 물려받았을 때의 나이가 22세로서 기원전 58년 10월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들을 종합해 판단해 보면 주몽은 원래 북부여 해모수의 혈통을 이어받아 기원전 79년에 태어났고 동부여에서 자랐다. 그런데 동부여에서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그곳에서 급히 도망쳐 졸본부여로 갔고, 그곳에서 아들이 없던 졸본부여 왕의 부마가 되었다가 왕이 죽자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는데 이때 주몽의 나이 22세였고, 기원전 58년이었다.
  그렇게 주몽은 21년 간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라 있다가 기원전 37년에 이르러 다시 고구려의 왕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주몽이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라 21년 간 재위하다가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고 다시 고구려의 왕위에 올랐다고 해석이 가능해 진다.
  이때 주몽은 동명왕이 건국했던 졸본부여를 없애버리고 해모수의 북부여를 잇는 고구려를 새로 건국했던 것이다.

 

  범장의 부여기를 보면 세 부여 즉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의 관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기록하고 있는데, 북부여의 건국시조는 해모수이고, 2대는 해모수리, 3대는 해해사, 4대는 해우루로 나타나고 있고, 해우루 13년인 계유년 즉 기원전 108년에 두막루(부여두막이라고도 한다)가 졸본에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으며 스스로를 동명(동명왕)이라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곧 졸본부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86년에 이르러 북부여가 졸본부여에게 복속되어 멸망하게 되자 북부여 해우루왕의 동생이었던 해부루가 북쪽으로 도망쳐 다시 나라를 세우는데 이가 곧 가섭원부여(동부여)라고 기록하고 있고, 해부루 28년인 기원전 59년에 동부여 사람들이 주몽을 해하려고 하자 주몽이 그곳에서 도망쳐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부여로 간 후 아들없이 딸만 셋이 있던  졸본부여왕의 둘째 부마가 되었다가 왕이 죽자 기원전 58년 10월에 그 왕위를 물려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가 곧 고구려의 시조라는 것이다.          
   앞의 내용들을 모두 종합하여 부여의 왕계(王系)와 주몽의 세계(世系)를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북부여시조
                              천제  해모수
                                   ↓-------------------------------↓
                           북부여왕 2대 해모수리                  고리군왕 해진
                                   ↓                                              ↓
                           북부여왕 3대 해해사                             ? (실명)        
                                   ↓                                              ↓
동부여시조 해부루   ← 북부여왕 4대 해우루               옥저후 해불리지
       ↓                          ↓                                              ↓
동부여 2대 금와        졸본부여시조 동명왕 부여두막          해주몽
       ↓                          ↓                                              · 
동부여 3대 대소        졸본부여왕 2대 부여무서                     ·
       .                            ↓                                             ·
       .                   고구려시조 주몽  ←..............................


  즉 해씨의 족보상 시조는 북부여 건국시조 천제 해모수였고, 해모수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장자는 북부여 2대왕이었던 해모수리였고, 차자는 해진이었다.
  해진의 아들 이름은 지금 실명되어 알 수 없고, 해진의 손자는 해불리지로서 이 사람이 바로 주몽의 아버지였다.
  따라서 해모수는 주몽의 고조 할아버지가 된다.   

 

  주몽은 해모수의 고손자로서 해모수의 둘째 아들의 후손이었다.
  그 아버지 불리지가 압록강 가를 지나다가 유화라는 처녀를 겁탈하여 임신을 시키게 되는데, 유화의 아버지는 시집도 안간 처녀가 임신을 했다하여 유화를 자신의 집에서 쫓아내게 되고 이때 유화는 동부여로 와서 주몽을 낳게 된다.
  그렇게 되어 주몽은 동부여에서 태어나 자라 왕궁의 말지기가 되었는데,  동부여에서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자 급히 졸본부여로 도망쳐 오게 되는 것이다.
  이때 졸본부여 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왕이 주몽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자신의 둘째 공주와 주몽을 혼인시켜 부마로 삼고, 얼마 후 왕이 죽게 되자 그 왕위는 주몽이 물려받게 된다.
  그런데 주몽은 졸본부여와는 원수관계인 북부여 해모수의 고손자였으니.........   

  결국 주몽은 졸본부여의 왕위를 물려받아 21년 간 왕위에 올라 있다가 기원전 37년에 이르러 졸본부여를 없애버리고 새로운 나라인 고구려를 다시 건국하고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 기원전 239년에 해모수가 고조선의 서쪽 땅을 차지하고 북부여를 건국하고 기원전 232년에 천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후손으로 왕위를 이어갔는데, 기원전 108년에 이르러 졸본에서 동명이 다시 졸본부여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게 되고, 기원전 86년에 이르러서는 졸본부여가 북부여를 병합하게 되어 북부여는 멸망하고 만다. 그러자 북부여왕의 동생이었던 해부루가 멸망한 북부여 유민들을 이끌고 동북쪽으로 도망쳐 다시 나라를 세우는데 이가 곧 동부여이다.
 해모수의 고손자인 주몽은 기원전 79년 동부여에서 태어나 22세 때인 기원전 58년에 졸본부여로 도망쳐 와 졸본부여왕의 부마가 되었다가 왕이 죽자 그 왕위를 물려받아 북부여의 후예가 졸본부여의 왕위에 오르게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