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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린아이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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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린아이 형상

 

 

 

 

[고려의 도읍 개경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관성현과 그 북쪽의 송악]

 

 

 

[개경 북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른(엄마?)과 무릎에 앉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 형상]

 

 

  신증동국여지승람 개성부 상 산천 조를 보면,

  “송악(松嶽: 송악산)”이 개성부의 북쪽 5리에 있는데, 처음 이름은 부소(扶蘇: 부소산) 또는 곡령(鵠嶺)이라 하였다.

신라의 감간 팔원이 풍수에 능하였는데, 부소군에 이르러 살펴보니 산의 형승에서 어린아이()가 나타나므로(新羅監干八元善風水到扶蘇郡見山形勝而童) 강충(필자주 :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에게 말하기를 만약 군()을 산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암석이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을 통합할 인물이 출현할 것이다하니 강충이 사람들과 함께 산 남쪽으로 이사해 살면서 소나무를 온 산에 심고 송악(松嶽)이라 불렀는데 또 숭산(崧山)이라 하기도 하고 신숭(神嵩)이라고도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풍수가였던 팔원의 눈에 부소산(곡령)의 지형에서 어린아이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고, 또 후대에도 개경의 송악(松嶽)에서 어린아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듯 사서에 기록되어 전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필자는 고려의 개경이 한반도 황해도의 개성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에 위치한 난하 반가구수고 동북쪽 관성현(寬城縣)으로 비정하고 있고, 신라의 금성(金城)을 요녕성 금주(錦州), 고구려 평양성(平壤城)을 하북성 승덕시(承德市), 요동(遼東)을 북경(北京) 부근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곳들이 수많은 사서의 기록들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장소이기 때문이고, 고려의 도읍 개경(開京)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북쪽 산에는 지금도 어린아이 형상이 나타나므로 지금의 하북성 관성현이 곧 고려시대의 개경인 것이 확인되는 것이고, 그 북쪽 산이 개경의 송악산(松嶽山)인 것이다.

  그곳이 진짜 고려의 도읍 개경(開京)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전해진 어린 아이 형상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 있을까?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이 필자의 주장대로 정말로 고려의 도읍 개경이라면, 우리의 고려로부터 그 이전 우리의 고대 역사는 반도역사가 아니라 대륙역사가 되는 것이고, 반도역사는 조선시대부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 역사가 새롭게 해석될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기존대로 우리 역사를 엉터리로 해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 이제 여러분들의 생각이 중요하다.

  대륙의 잃어버린 우리 옛 땅을 찾느냐 못 찾느냐는 결국 대한민국 국민들이 인식의 전환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