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천재들의 모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잃어버린 우리 땅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윤여동설 - 신라 알천(閼川)은 지금 한반도 경주의 알천이 아니다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20. 4. 5.

윤여동설 - 신라 알천(閼川)은 지금 한반도 경주의 알천이 아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혁거세거서간 조를 보면,  

   앞서 조선(고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에 나뉘어 살아 여섯 마을을 이루었는데,

   첫째는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필자주 : 동촌]

   둘째는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필자주 : 남촌]

   셋째는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 [필자주 : 동남촌]

   넷째는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필자주 : 서촌]

다섯째는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필자주 : 북촌]

여섯째는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니, [필자주 : 동북촌]

이것이 진한6(辰韓六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 觜山珍支村(자산진지촌)을 많은 사람들이 취산진지촌이라 하는데 이는 틀린 것이고, 자산진지촌이 옳다. 觜(자)와 嘴(취)를 헷갈린 것이라 생각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모두 觜山珍支村(자산진지촌)으로 기록되어 있다.

 

   2대 남해차차웅 11(A.D.14) 조를 보면,

   낙랑이 우리나라(신라)의 내부가 비어 있다하여 금성으로 급하게 침공해 왔다. 밤에 유성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니 적병들이 놀라 물러가다가 알천(閼川) 가에 머물면서 돌무더기 20개를 쌓아놓고 갔다. 6부의 군사 1천명이 이를 추격하여 토함산 동쪽으로부터 알천에 이르러 돌무더기를 보고는 적병이 많은 것을 알고 추격을 중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알천(閼川)은 과연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 것일까?

   한반도 경주의 알천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신라의 천년 도읍 서라벌, 금성(金城)은 한반도의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말하는 것이다    그곳이 진짜 서라벌이요, 신라의 왕성인 금성, 월성, 만월성 등이 있던 곳이다.

 

☆ 한반도 경주는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인 김성 일파가 왕망의 신나라가 멸망하고 후한이 서자 대륙을 떠나 한반도 남부로 도망쳐 와서 다시 흉노족왕국을 세우고 도읍했던 곳으로서 한반도 경주의 고분들은 신라왕릉이 아니라 흉노족 왕국의 왕릉들이다.

 

   그렇다면 낙랑군사들이 20개의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돌아갔던 알천(閼川)도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경주부 산천 조를 보면,

   동천(東川)은 일운 북천(北川)이라 하기도 하고, 일운 알천(閼川)이라고도 한다. 경주부의 동쪽 5리에 있는데, 추령(+秋嶺)에서 나와 굴연(堀淵)으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굴연천(堀淵川)은 경주부의 북쪽 20리에 있고, 어량이 있다. 서천(西川)하류(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알천(閼川)은 동천, 북천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서라벌의 북쪽 방향에 위치한 추령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서라벌의 동쪽에서 굴연천과 합류하여 서천하류로 흘러들어가는 강이라 할 수 있고, 굴연천 역시 서라벌의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자 그러면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로 가서 기록과 일치하는 강을 찾아보자.

 

 

   지금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지나는 큰 강은 소릉하(小凌河)인데, 이 강은 서쪽으로부터 동쪽 방향으로 흐르는데, 이 강이 바로 신라 서라벌 금성의 서쪽 방향으로부터 남쪽을 통과하는 서천(西川)으로서 신라 월성(月城)은 바로 이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 신라 금성(金城)은 월성의 북쪽에 위치했었다.

 

   그리고 금주시(錦州市)의 북쪽에 굴연천으로 비정할 수 있는 지금의 백고하(百股河)가 흐르고 있고, 그 동쪽으로도 추령에서 발원한다는 알천(閼川)으로 비정되는 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지금 대제촌(大齊村)과 소제촌(小齊村)의 서쪽을 지나 백고하와 합류한 후 소릉하로 들어간다.

   이 하천이 바로 신라 알천으로 비정되는 냇물이다.

 

☆ 이 알천과 양산 사이에 위치했을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은 신라 건국시조 혁거세거서간의 출생지 나정(蘿井)과 능인 사릉(蛇陵 : 오릉)과 관련이 깊은 곳으로 나타난다.

  삼국유사를 보면,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은 그 남쪽에 지금의 담엄사(필자주 : 삼국사기에는 담암사로 기록되어 있다)가 있다. 촌장은 알평(謁平)이니 처음에 하늘에서 표암봉(瓢嵓峰)에 내려왔으니 이가 급량부(及梁部) 이씨(李氏)의 조상이 되었다........파잠, 동산, 피상의 동촌이 여기에 속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양산 남쪽에 나정이 위치했다고 하였고, 담엄사 북쪽에 혁거세거서간의 능인 사릉(오릉)을 조성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