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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 천경림(天鏡林)과 흥륜사(興輪寺)의 진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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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4.

윤여동설 – 신라 천경림(天鏡林)과 흥륜사(興輪寺)의 진짜위치

 

                                                 [요녕성 금주시의 금주고탑 현재모습]

 

 

   흥륜사(興輪寺)는 천경림(天鏡林)에 지어진 신라 최초의 절이었다.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 불교의 씨앗을 뿌린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 흥법 제3 아도기라 조를 보면,

   신라의 서울 안에 일곱 곳의 절터가 있으니,

   하나는 금교(金橋) 동쪽의 천경림(天鏡林)이요,

[지금의 흥륜사(興輪寺)이다. 금교(金橋)는 서천교(西川橋)로서 속명에는 송교(松橋 : 솔다리)이다. 이 절은 아도화상이 처음 그 터를 잡았는데, 중간에 폐지되었다가 법흥왕 정미년(A.D.527)에 이르러 공사를 시작하여 을묘년(A.D.535)에 크게 공사를 일으키고 진흥왕 때에 이루어졌다]

(참고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고적 흥륜사는 경주부 남쪽 2리에 있다)

   둘은 삼천기(三川岐, 세 하천의 갈림길)요,

[지금의 영흥사(永興寺)로 흥륜사와 같은 시기에 세워졌다]

(참고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고적 영흥사는 경주부성의 남쪽에 있다)

   셋은 용궁(龍宮)의 남쪽이요,

[지금의 황룡사(皇龍寺)이다. 진흥왕 계유년(A.D.553)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참고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고적 황룡사는 월성의 동쪽에 있는데 지금은 폐지되었다)

   넷은 용궁(龍宮)의 북쪽이요,

[지금의 분황사(芬皇寺)이다. 선덕여왕 갑오년(A.D.634)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참고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불우 분황사는 경주부의 동쪽 5리에 있다)

   다섯은 사천미(沙川尾, 사천의 끝)요,

[지금의 영묘사(靈妙寺)이다. 선덕여왕 을미년(A.D.635)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참고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불우 영묘사는 경주부 서쪽 5리에 있다)

   여섯은 신유림(神遊林)이요,

[지금의 천왕사(天王寺)이다. 문무왕 기묘년(A.D.679)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참고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고적 사천왕사는 낭산 남쪽산록에 있다)

    일곱은 서청전(婿請田)이다.

[지금의 담엄사(曇嚴寺)이다]

(참고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고적 담엄사의 옛 터가 사릉 남쪽에 있다)

이것은 모두 전불(前佛) 때의 절터이다. 불법이 앞으로 길이 전해질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전불시7가람지처(前佛時七伽藍之處)]

 

                                                                                             담엄사

                                                                                            (사릉남)

 

                                                                                                             천왕사(사천왕사)

                  영묘사                  경주부                    분황사                              (낭산남록)

                 (5)                   영흥사                 (5,용궁북)

                                              (부남)

 

                                             흥륜사                    황룡사

                                             (2)                (용궁남,월성동)

 

   삼국유사 흥법 제3 원종흥법과 염촉멸신 조를 보면,

   진흥대왕 즉위 5년 갑자(A.D.544)에 대흥륜사(大興輪寺)가 세워졌다.[국사와 향전을 상고하면, 실은 법흥왕(재위 514-540) 14년 정미년(A.D.527)에 처음으로 터를 닦고 22년 을묘년(A.D.535)에 천경림(天鏡林)의 나무를 크게 베어 비로소 역사를 시작했는데, 기둥과 들보에 쓸 재목은 모두 이 숲에서 충분히 베어 썼으며 주춧돌과 석감도 모두 갖추었다.

  진흥왕(재위 540-576) 5년 갑자년(A.D.544)에 이르러 절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갑자(甲子)라고 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15(A.D.528) 조를 보면, “불법이 퍼지기 시작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차돈 설화가 함께 소개되어 있으며,

   같은 책 진흥왕 5(A.D544) 조를 보면, “2월에 흥륜사(興輪寺)가 준공되었다. 3월 사람들이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었음을 알 수 있고, 진흥왕 37(A.D.576) 조를 보면, 진흥왕은 어려서 왕위에 올라 불교를 독실하게 신봉하다가 말년에 와서는 머리를 깎고 스님 복색을 하고 스스로 법운이라는 법명을 지어 쓰면서 생애를 마쳤다고 하고, 왕이 죽자 시호를 진흥이라 하고 애공사 북봉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유사 흥법 제3 동경흥륜사 금당십성 조를 보면, “동쪽벽에 서쪽을 향한 소상은 아도, 염촉, 혜숙, 안함, 의상이고, 서쪽벽에 동쪽을 향한 소상은 표훈, 사파, 원효, 혜공, 자장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천경림(天鏡林)과 흥륜사(興輪寺)에 대한 대강의 내막과 연혁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천경림과 흥륜사의 위치를 찾는 일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고적 조를 보면, 흥륜사(興輪寺)는 경주부의 남쪽 2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자 우리 역사학자들은 지금 한반도 경주 시내의 남쪽 방향에 천경림과 흥륭사지(興輪寺址)를 비정해 놓고 있는데, 사실 한반도 경주는 신라의 천년도읍이 아니라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인 흉노족들이 한반도 남부로 도망쳐 와서 세운 흉노족왕국의 도읍이었다는데 있고, 진짜 신라의 서라벌은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라는데 있다.

   따라서 진짜 신라의 천경림(天鏡林)과 흥륜사(興輪寺)는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의 금주고탑공원(錦州古塔公園)”이 바로 신라의 천경림, 흥륜사로 비정되는 곳이고, 그곳의 금주고탑이 옛날 흥륭사에 세워졌던 흥륜사탑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유사 감통 제7 김현감호 조를 보면,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파일에서 15일까지 서울의 남녀가 다투어 흥륜사(興輪寺)의 전탑을 도는 복회(福會)를 행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옛 신라의 청춘남녀들은 바로 이 지금의 금주고탑을 돌며 짝을 찾고 복을 빌었을 것인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 경주에서 천경림을 찾고 있고, 흥륜사를 찾고 있으니 어찌 진짜 천경림과 진짜 흥륜사가 찾아질 수 있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