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천재들의 모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잃어버린 우리 땅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31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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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 강역 서쪽변경의 신성(新城)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선화고성(宣化古城)이 확실

윤여동설 - 고구려 강역 서쪽변경의 신성(新城)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선화고성(宣化古城)이 확실 우리 고대역사에서 아직까지 그 위치를 확실하게 비정하지 못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고구려 “신성(新城)”이다. 고구려의 동북쪽이라고도 하고, 북쪽이라고도 하고, 서쪽이라고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성(新城)은 고구려 13대 서천왕(재위 : 270-292) 대에 이미 축성되어 있던 성이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서천왕은 276년 4월에 신성으로 가서 무려 4개월이나 머무르며 사냥을 하기도 했고, 또 288년에는 4월부터 11월까지 무려 7개월간이나 그곳 신성에 머무르다가 평양성으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성은 왕이 수개월을 머무르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로 크고 잘 갖..

24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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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신라 천경림(天鏡林)과 흥륜사(興輪寺)의 진짜위치

윤여동설 – 신라 천경림(天鏡林)과 흥륜사(興輪寺)의 진짜위치 [요녕성 금주시의 금주고탑 현재모습] 흥륜사(興輪寺)는 천경림(天鏡林)에 지어진 신라 최초의 절이었다.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 불교의 씨앗을 뿌린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 흥법 제3 아도기라 조를 보면, “신라의 서울 안에 일곱 곳의 절터가 있으니, 하나는 금교(金橋) 동쪽의 천경림(天鏡林)이요, [지금의 흥륜사(興輪寺)이다. 금교(金橋)는 서천교(西川橋)로서 속명에는 송교(松橋 : 솔다리)이다. 이 절은 아도화상이 처음 그 터를 잡았는데, 중간에 폐지되었다가 법흥왕 정미년(A.D.527)에 이르러 공사를 시작하여 을묘년(A.D.535)에 크게 공사를 일으키고 진흥왕 때에 이루어졌다] (참고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고적 ..

16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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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신라 김유신은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서쪽 북보타산(北普陀山)에 묻혔다

윤여동설 - 신라 김유신은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서쪽 북보타산(北普陀山)에 묻혔다 삼국유사 김유신 조를 보면, “김씨 집안의 재매부인(財買夫人 : 옛날의 복부인이었을까?)이 죽자 청연(靑淵)위 골짜기에 장사지내고 재매곡이라 불렀다. 해마다 봄이 되면 온 집안의 남녀들이 그 골짜기 남쪽 시냇가에 모여서 잔치를 열었다. 이때쯤 백가지 꽃이 화려하게 피고, 송화가 골짜기 안 숲속에 가득했다. 골짜기 어귀에 암자를 짓고 이름을 송화방(松花房)이라 하여 전해오다가 원찰로 삼았다. 경명왕 때에 공을 봉해서 흥호대왕(흥무대왕)이라 했다. (김유신의) 능은 서산(西山) 모지사(毛只寺) 북쪽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뻗은 봉우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능묘 조에는 “김유신묘..

10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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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신라 경애왕(景哀王)이 묻힌 남산 해목령(蟹目嶺)의 진짜위치

윤여동설 - 신라 경애왕(景哀王)이 묻힌 남산 해목령(蟹目嶺)의 진짜위치 삼국사기 신라본기 55대 경애왕 4년(A.D.927) 조를 보면, “강주(康州) 산하 돌산[突山, 필자주 :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부근] 등 4개 고을이 태조(필자주 : 고려태조 왕건)에게로 귀순하였다. 가을9월 견훤이 고울부(高鬱府)의 우리 군사들을 침공하므로 왕이 태조(왕건)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으로서 구원하게 하였다. 이 구원병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견훤이 겨울 11월에 신라의 왕경을 습격하여 왔다. 이때 왕이 비빈종척(妃嬪宗戚)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고 오락을 즐기고 있어 적병이 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창졸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필자주 : 이 기록은 논란이 ..

03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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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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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신라 공작지(孔雀趾) 찾기

윤여동설 - 신라 공작지(孔雀趾) 찾기 삼국사기 신라본기 46대 문성왕(文聖王) 19년(A.D.857) 조를 보면, “왕이 죽으니 시호를 문성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책 47대 헌안왕(憲安王) 5년(A.D.861) 조를 보면, “정월 29일에 왕이 죽으니 시호를 헌안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기록에 나타나는 “공작지(孔雀趾)”의 확실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방향과 거리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한반도의 경주는 후한 광무제에게 쫓겨 대륙에서 한반도 남부로 도망쳐 온 흉노족들이 세웠던 흉노족왕국의 도읍이었는데, 학자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한반도 경주에서 신라 공작지를 찾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