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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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 왕릉 조성지에 대한 새로운 가설

윤여동설 – 고구려 왕릉 조성지에 대한 새로운 가설 고대 왕조시대에 왕릉은 당시의 도읍 부근에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필자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고, 따라서 고구려의 왕릉들도 당시의 도읍 부근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여 시대에 따라 변화된 당시 고구려의 도읍 부근에서 해당 왕릉들을 찾으려고 하였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홀본)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이고, 국내성은 지금의 북경시 연경구 영녕진(永寧鎭)이며, 고구려의 환도성(丸都城), 안시성(安市城)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渤海鎭)이고,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고구려 건국시조인 추모왕(주몽왕)의 능은 당연히 건국지인 지금의..

22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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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궁예의 도읍지 철원(鐵原)과 피살지 부양(斧壤)의 위치

윤여동설 - 궁예의 도읍지 철원(鐵原)과 피살지 부양(斧壤)의 위치 삼국사기 궁예열전을 보면, 궁예는 철원(鐵原)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하였고, 강역도 상당히 넓었었으나 폭정을 일삼다가 왕건과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반정을 일으키자, 미복으로 갈아입고 산 속으로 들어갔으나, 얼마 안 되어 부양(斧壤, 필자주 : 부양(斧壤)이란 그곳의 지형이 도끼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생각된다) 백성들에게 잡혀 살해당하였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철원도호부 고적 조를 보면, “풍천원(楓川原)은 궁예가 도읍했던 곳으로서 철원도호부의 북쪽 27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책 평강현(平康縣)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고구려의 부양현(斧壤縣)이다”라고 기록되어..

15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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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전연 모용황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로 “북도평활(北道平闊) 남도험협(南道險狹)”은 남과 북이 바뀌어 잘못 기록되었다

윤여동설 - 전연 모용황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로 “북도평활(北道平闊) 남도험협(南道險狹)”은 남과 북이 바뀌어 잘못 기록되었다 [고구려 목저성(木底城)으로 추정되는 지금 관청수고 서쪽의 진변성(鎭邊城)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6대 고국원왕 12년(A.D.342) 조를 보면, “봄2월 환도성(丸都城)을 보수하고 또 국내성(國內城)을 쌓았다. 가을8월 왕이 환도성으로 옮겨왔다. 겨울10월 연나라(전연) 임금 황(모용황)이 용성(龍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입위장군 한(모용한)이 황(모용황)에게 청하기를, “고구려를 먼저 빼앗은 다음 우문을 쳐부수어야만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고구려로 가는 길에는 두 길이 있는데, 북쪽 길은 평탄하고 넓으며(北道平闊), 남쪽 길은 험하고 좁았다(南道險狹)...

07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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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가 점점 동쪽의 패수 옆으로 옮겼다는 삼국사기 기록의 진실여부

윤여동설 - 고구려가 점점 동쪽의 패수 옆으로 옮겼다는 삼국사기 기록의 진실여부 삼국사기 권제37 잡지제6 지리4 고구려편을 보면, “고구려가 처음에는 중국 북쪽 땅에서 살았으나 점점 동쪽의 패수 옆으로 옮겼다(高句麗始居中國北地 則漸東遷于浿水之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역사연구자들 사이에는 이 기록의 진실여부를 놓고 논란들이 많다. 반도사관론자들은 고구려의 도읍이전이 한반도 북쪽의 환인으로부터 집안을 거쳐 남쪽의 북한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으므로 점점 남쪽으로 옮겼다고 기록했어야 옳았는데, 점남천우(漸南遷于)를 점동천우(漸東遷于)로 잘못 기록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삼국사기 기록이 매우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北京)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현토군은 지금의 ..

02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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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시사 – 윤미향 사태를 보며 병자호란 때의 환향녀를 떠올린다

시사 – 윤미향 사태를 보며 병자호란 때의 환향녀를 떠올린다 일본군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가 윤미향을 비판하며 벌어진 정의기억연대 사태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데, 필자는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가 생각났다. 나라가 힘이 약하여 청나라에 짓밟혀 왕은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해야 했고, 여인들은 포로로 잡혀가야 했다. 만리타향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고생고생 하다가 모진 목숨 끊지 못하고, 고국이라고 돌아왔더니 환향녀라고 멸시하며 손가락질 해대고, 가족들마저도 집에 들이지도 않았고, 양반들은 자결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오갈 데가 없어진 환향녀들은 강물에 몸을 던지거나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또한 힘이 약하여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