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천재들의 모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잃어버린 우리 땅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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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가 백제를 백잔이라 부른 이유는?

윤여동설 - 고구려는 왜 백제(百濟)를 백잔(百殘)이라 불렀을까? 광개토대왕 비문 영락 6년 병신년 조를 보면,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倦)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OO新羅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이라고 새겨져 있다. ☆ 위 기사 중 괄호 속의 글자는 원래 倦(게으를 권)자였으나 지금까지 이 글자가 글자 모양이 비슷한 倭(왜)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신묘년 기사의 해석을 놓고 한·일 간에 논란이 많았는데, 사실 이 조문은 왜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압록강 너머 집안에 있는 호태왕 비는 413년 10월에 광개토대왕이 죽자 아들인 장수왕이 그 다음해인 414년 갑인년 9월 29일에 아버지인 광개토대왕 평생의 훈적을 새겨 능 앞에 세운 훈적비로서 당시 고구려인들이 글을 짓..

12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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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살수(薩水)는 한반도 청천강이 아니다

윤여동설 - 살수(薩水)는 한반도 청천강이 아니다 [강물이 구불구불 흐르는 모양이 마치 스님들의 머리모양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살수(薩水 보살살 물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을지문덕이 우문술의 군사가 굶주린 기색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피로하게 하려고, 싸우고는 도망하고 또 싸우고는 도망하곤 하여, 우문술이 하루 일곱 번 싸워 모두 이겼다. 그들은 계속 이기자 자신감이 생겼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못 이겨 동쪽으로 진군하여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산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을지문덕이 다시 사람을 보내어 거짓 항복하는 체 하고 우문술에게 청하기를 '만약 군대를 돌려세운다면 왕을 모시고 황제가 있는 곳으로 가서 예방하겠다' 하였더니 우문술이 자기 군사들이 피로하여 다시 ..

08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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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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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고구려의 도읍과 그 위치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고구려의 도읍과 그 위치 [청나라 때의 여름궁전인 하북성 승덕시 열하행궁(피서산장)의 정문인 여정문] 지금 압록강 너머 집안(輯安:集安)에는 호태왕비가 서 있고, 왕릉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고분들과 그 집안 부근에는 돌을 쌓아 만든 적석분들이 즐비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그곳을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성(國內城)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국내성이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대 유리왕 22년(A.D.3) 조에, "겨울 10월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라는 기록과 16대 고국원왕 12년(A.D.342) 조의 "봄 2월 환도성을 보수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라는 기록에 따라 지금의 집안을 국내성이라 추정한 것 뿐이다. 국내성은 서기 3년부터..

07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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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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