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천재들의 모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잃어버린 우리 땅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25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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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1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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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의 일식관측지는 북경 연경 부근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의 일식관측지는 북경 연경 부근 [위: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 [조선초에 고구려 석각천문도를 바탕으로 다시 제작했다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초에 제작된 돌에 새긴 천문도이다. 그런데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평양성에 석각천문도가 있었는데 전쟁통에 잃어버렸고 사본만이 전해져 이를 바탕으로 조선초에 새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고구려 평양성에 돌에 새긴 천문도가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양부 고적 조를 보면, “첨성대 유지(遺址)가 평양부 남쪽 3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고구려에서 석각천문도를 바로 이 첨성대에 설치해 두고 천문관측에 활용하다가 멸망했고, 그 후 언..

02 201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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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즉, 현재로부터 근세, 고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과 상고로부터 고대, 근세, 현재로 내려오는 방법이다. 우리가 지금 한반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그 바로 앞 왕조인 조선이 한반도에, 또 그 앞 왕조인 고려 역시 한반도에, 후삼국도 한반도에, 삼국과 가야, 삼한과 위만조선, 고조선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존속했다고 인식하는 논리가 역사를 현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찰하는 방법인데, 강단사학은 이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재야사학은 역사란 사건의 발생순서에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아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연구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현..

25 200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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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0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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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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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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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논쟁 - 국궁 쏘는 법이 잘못 전해졌다

논쟁 - 국궁 쏘는 법이 잘못 전해졌다 태초에 인간은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짐승을 때려잡았을 것이고, 올가미로 잡거나 함정에 빠뜨려 잡았을 것이며 또는 긴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찔러 짐승들을 사냥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빠른 짐승이나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를 사냥하기 위해 활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고, 이윽고 전쟁에도 활용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진서 숙신씨 전을 보면, 석자 다섯치의 단궁(檀弓)과 화살촉을 돌로 만든 호시가 있었다고 하고, 주 무왕 때 숙신씨가 호시와 석노를 바쳤다고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궁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후한서 읍루전을 보면 읍루 사람들이 활을 아주 잘 쏘아서 사람의 눈을 맞힐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고, 활의 길이는..

18 200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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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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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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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왕검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윤여동설 -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경에는 무엽산이라 했고, 또는 백악이라고도 하는데 백주에 있었다)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했는데, 고(요임금)와 같은 시대였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단군왕검은) 당고(당요) 즉위 50년 경인(당요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므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아마 사실이 아닐 것이다)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에 도읍하고 조선(朝鮮)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궁홀산(일명 방홀산이라고도 한다) 또는 금미달이라고도 했다. 그 나라는 1,500년 간 존속했다. 주 호왕(무왕..

04 200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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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 장안성의 위치

윤여동설 - 고구려 장안성의 위치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황성으로부터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긴 후 25대인 평원왕 때에 이르러 고구려는 또 다시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삼국사기 평원왕 28년(A.D.586) 조를 보면, "移都長安城(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겼다)"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 이때 도읍을 장안성으로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고구려는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옮긴 427년부터 586년까지 160년간 평양성에 도읍한 후 다시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평양성과 장안성은 바로 이웃해 있었다고 보여지므로 평원왕은 같은 평양시내에 또 하나의 성인 장안성을 쌓고 그곳으로 옮겨 살았을 것이다. 하여튼 이때의 국제정세는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해 가던 시기였으므로 고구려 평원..

15 200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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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0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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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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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의 도읍 황성과 장안성은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고구려의 도읍 황성과 장안성은 어디를 말하는가?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부근의 지형도인데, 이 부근이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 황성, 장안성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심 강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북경 동쪽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었고, 난하가 옛 패수이다. 백제는 대륙인 지금의 중국 하북성 난하 부근에서 13대 근초고왕과 12대 계왕의 아들이었던 무광왕이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패한 무광왕이 서기 365년경 한반도로 건너와 지모밀지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반도백제)를 건국함으로써 한반도에 백제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고, 대륙백제는 근초고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가다가 삼근왕 때 반도백제에 흡수 통합되어 반도백제의 건국시조 무광왕의 후손인 동..

05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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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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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 고려도경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 고려도경 [이글은 윤여동 밝힘 "고려와 조선 역사의 특급비밀" 책에서 발췌한 것임] 송나라 휘종 때 사람인 서긍이 서기 1123년 사신 일행으로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서 쓴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의 위치에 대하여, “고려는 남쪽은 요해, 서쪽은 요수까지이고, 북쪽(사실은 서북쪽)은 거란 옛 땅, 동쪽(사실은 동북쪽)은 금나라와 접했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이빨과 같이 서로 맞물려 있다. 신라와 백제가 자신들의 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병합이 되었으니 현재의 나주와 광주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려는 우리 송나라 수도(당시 송나라의 도읍은 개봉이었다)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에서 육로를 거치고 요수를 건..

13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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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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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고구려의 도읍과 그 위치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고구려의 도읍과 그 위치 [청나라 때의 여름궁전인 하북성 승덕시 열하행궁(피서산장)의 정문인 여정문] 지금 압록강 너머 집안(輯安:集安)에는 호태왕비가 서 있고, 왕릉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고분들과 그 집안 부근에는 돌을 쌓아 만든 적석분들이 즐비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그곳을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성(國內城)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국내성이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대 유리왕 22년(A.D.3) 조에, "겨울 10월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라는 기록과 16대 고국원왕 12년(A.D.342) 조의 "봄 2월 환도성을 보수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라는 기록에 따라 지금의 집안을 국내성이라 추정한 것 뿐이다. 국내성은 서기 3년부터..

06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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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을 찾았다

하가점 선사유적지 내몽골 적봉 홍산 윤여동설 -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을 찾았다 한 민족 마음의 고향이며, 우리 역사의 중심지인 왕검성(왕험성이라고도 한다)은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이 왕검성을 확실하게 찾지 못한 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역사를 착각한 일부 사람들이 북한 평양을 왕검성이라 비정해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왜곡되고 축소된 역사가 사실인 것처럼 전해진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역사 인식도 한반도 안에 머무르게 되었고, 거짓 역사가 오랜 세월 진실이라는 탈을 쓰고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켜 지금은 반도사관이 뿌리 깊이 형성되어 필자같은 사람들이 광활했던 우리의 옛 땅이 대륙 북경 부근에 있었노라고 진실을 말해줘도 오히려 그것을 의심받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