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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lhs6 2008. 11. 18. 14:30

 

“조선은 망하지 않았다”

 

고종 황제가 살아 돌아왔나? 그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사진으로 봤던 고종 황제의 골격과 외모를 빼다 박았다. 그런 그가 던진 첫마디는 "대한제국은 문을 닫은 적이 없다"다. 일본의 강압으로 잠시 뒤로 물러나 앉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손으로 퇴출당하지 않은 한 황실은 그대로 존속한다고도 말한다. 고종 황제가 지금 살아 있다면 했을 법한 말이다. 고종 황제의 외모에, 고종 황제가 할 만한 주장을 하는 이 사람은 누군가. 고종 황제의 증손자 이초남(61)씨다. 그는 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자라고 할 수 있다.

 

이씨의 아버지는 이우 황손이다. 이우 황손의 아버지는 순종의 동생이자 마지막 황태자(사실은 순종의 동생이기 때문에 황태제가 맞다) 영왕의 형인 의왕이다. 그러니 그는 고종 황제 둘째 아들의 손자인 셈이다. 그를 황실의 적통자라고 하는 이유는 순수 혈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고종 황제의 셋째 아들 영왕은 황태자가 됐지만 일본인 아내(이방자 여사)를 맞아 순수 황실의 적통을 잇지 못했다.

 

“‘이우’ 황손이 조선 황실의 적통”

사실 대한제국 황실의 남자는 대부분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일본의 침략적 혼혈정책 때문이었다. 영왕과 의왕의 첫째 아들 이건 황손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고종 황제의 둘째 아들 의왕은 달랐다. 조선 여인에게서 자손을 얻은 것이다. 의왕의 첫째 아들 이건 황손은 일제의 압력에 의해서지만 일본 여인과 결혼해 일본인에 동화된 삶을 살았다. 둘째 아들 이우 황손은 유일하게 일본 황실의 강압을 뿌리치고 조선 여인과 결혼했다.

 

이우 황손은 대원군의 장손인 계동궁 이준 황손(일반 이름 준용)이 아들이 없어 계동에 양자로 가기도 했으니 고종 황제 집안과 고종 황제의 형 집안을 통틀어 대를 잇는 자손이 된다. 그래서 황실은 둘째 아들인 이우 황손을 적통자로 생각했다.

 

의왕의 열째 아들이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불러 유명한 가수 이석씨다. 이우 황손의 부인은 박영효의 손녀인 박주선 여사. 이우 황손을 일본 야나기자와 백작의 딸과 결혼시키려는 일본 궁내성과 일본 여자를 거부하는 이우 황손의 다툼을 박영효가 중재하면서 자신의 손녀를 내세운 것이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고 친일파로 전락해 있던 박영효는 일본 황실에 50만원이라는 거금을 뇌물로 바치고 자신의 손녀와 결혼하도록 일본 황실의 허락을 받았다. 일본 강압 뿌리치고 조선인과 혼인 하지만 이우 황손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할아버지인 고종 황제와 아버지인 의왕이 이우 황손 7세 때 이미 혼인을 허락한 여자다. 그 주인공이 고종 황제의 오른팔이자 독립운동가인 유동렬 장군의 딸 유정순이다.

 

고종 황제는 가장 아끼던 친손자 이우 황손의 반려자로 유정순 여사를 골라 직접 혼사를 주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우 황손은 일제 압력과 맞서다 결국은 엉뚱한 박주선 여사와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정순 여사는 이우 황손이 박주선 여사를 만나기 전부터 고종 황제와 의왕이 인정한 이우 황손의 배필이다. 이우 황손과 유정순 여사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바로 이초남씨(황실 이름은 용(湧)-의왕이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런 고로 그에게는 황손이라는 칭호를 붙여야 옳다)다.

 

불행한 삶, 한때 황실 후손으로 인정 못받아

하지만 이초남씨의 존재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이씨의 어머니 유정순 여사의 비극적 삶과 관계있다. 고종 황제가 손자며느리로 인정한 존재, 의왕이 며느리로 확실히 인정한 존재이면서도 유 여사는 결코 황실에 나타날 수 없었다.

 

유정순 여사는 어릴 때부터 소녀의 몸으로 독립운동자금 전달책으로 일했다. 주로 의왕과 이우 황손이 주는 독립자금이나 밀서를 아버지인 유동렬 장군 등 무장 독립군에게 전달하는 밀사였다. 서울교대 안천 교수는 "유 여사는 한번에 1,500㎞(서울에서 출발) 혹은 3,000㎞(동경에서 출발)가 넘는 흑룡강성 탕원현으로 독립자금이나 밀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것도 혼자, 때로는 걸어서. 상인-임산부-간호사-승려 등으로 변장하며 밀사 노릇을 했다.

 

어느 때는 이우 황손에게 받아서 이초남씨의 외조부인 유동렬 장군에게 전달한 돈이 말 500마리를 구입해 기마병단을 조직할 만큼 엄청난 돈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돈을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전달했다니 걸출한 독립운동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게 만들었다. 혼기가 됐을 때는 이미 이우 황손이 박주선 여사와 혼인을 했으니 나타날 수가 없었다.

 

이우 황손과 유정순 여사는 서울에서 혹은 동경에서 이우 황손의 근무지를 따라 독립운동 "동지"로서, 연인으로 만나왔다. 이우 황손과 유 여사의 이런 관계가 1943년 이초남씨를 태어나게 한 것이다.

 

이초남씨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비밀을 처음 들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 유정순 여사와 함께 박주선 여사가 머물고 있던 운현궁으로 인사갔다가 쫓겨난 후다. 하지만 유정순 여사의 존재와 이씨의 탄생을 알고 있던 이준 황손의 유일한 딸 이진완씨가 그때까지 비밀로 해오던 이우 황손과 유정선 여사의 관계를 밝히고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까지 증언하면서, 그리고 의왕의 여덟번째 아들인 이현 황손(일반 이름 이경길) 역시 이 사실을 밝히면서 황손임을 인정받고 뿌리를 찾게 됐다.

 

고종 황제를 빼다박은 외모로 관심 받아

이씨 탄생 비밀 황실 가족들 증언 대한제국의 비극만큼이나 이초남씨의 탄생비화도 서글프다. 그 숨겨졌던 황손이 이제 우리 앞에 나타나 고종 황제의 면모로 "대한제국은 죽지 않았다"고 외치고 있다. 감동과 서글픔이 동시에 몰려드는 외침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요즘 세 분의 제사를 모신다. 이우 황손과 유정순 여사, 그리고 황녀 한 분이다. 그가 말하는 황녀는 덕혜옹주의 배다른 언니다. 영왕의 어머니인 엄비(엄상궁)와 같은 상궁이던 임상궁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엄비의 눈을 피해 사가에서 태어나 공식적으로 옹주 칭호를 받지 못한 인물이다. 이름은 이문용. 광복 이후 황녀의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초남씨는 그나마 황손 중에 생활 걱정을 덜한 편이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1975년 고종 황제가 만들고 의왕이 초대 총재를 지낸 대한적십자사 제1회 공채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 주로 헌혈 부문에서 25여년을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총무부장-헌혈원 원장 등을 지내고 한때 대한적십자사에서 진행한 대북지원사업에 관여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자신이 만든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의 사무총장을 지내다가 민족정기를 함양하는 봉사단체 배달문화선양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료 출처 : 경향신문 황인원 기자

 

 

 

출처 : 아스라의 따뜻한 세상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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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lhs6 2006. 10. 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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