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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 속의 전원마을, 평창동~부암동 나들이 ' ▲ 인왕산에서 바라본 평창동과 부암동 가을이 한참 숙성되던 9월의 끝 무렵, 친한 후배와 서울 도심 속의 전원(田園) 마을인 평 창동과 부암동을 찾았다. 평창동(平倉洞)하면 으리으리한 저택과 빌라가 먼저 떠올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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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거리가 풍성한 서울 도심 속의 전원 마을 ~ 부암동 산책 ' ▲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바라본 부암동 하늘 높이 솟은 북한산(삼각산)과 북악산(백악산), 그리고 인왕산(仁王山) 사이로 움푹하 게 들어간 분지(盆地)가 있다. 그곳에는 수려한 경치를 지닌 부암동(付岩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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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파정(흥선대원군 별서)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별채의 뒷모습 - 별채와 안채는 금지된 구역으로 묶여 있어 이렇게 돌담 너머로 바라보는 수 밖에 없다. (별채 뒤쪽에 산책로가 나있으므로 그 산책로에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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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미술관 옥상정원 석파정 옆구리에 2012년 서울미술관 건물을 다지고 그 위에 이쁘게 옥상정원을 꾸몄다. 여기서는 북악산(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포근히 둥지를 튼 부암동 일대와 북악산(백악산)이 훤히 바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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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시대3층석탑에서 바라본 서울미술관 옥상과 북악산(백악산) 모두가 봄에 잠긴 싱그러운 모습들이다. (4월 말 촬영) 왼쪽 산 뒤쪽에 석파정에 버금갔던 별서 유적, 백석동천 별서터(백사실 계곡, 백사골)가 있으니 석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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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왕산에 베푼 삼계동계곡 - 석파정 밑을 흐르는 삼계동계곡의 최상류이다. 계곡을 둘러싼 바위들의 모습이 꽤 일품 으로 계곡 발원지는 접근이 통제되어 있어 여기까지만 둘러볼 수 있다. 2. 석파정 산책로에서 바라본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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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깊은 산골에 묻힌 석파정 정자 원래 석파정은 이 정자를 일컬었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이 이곳을 먹은 이후, 자연히 별서 일대를 일컫는 명칭이 되었다. (이를 구분하고자 사랑채, 안채, 별채 쪽을 흥선대원군 별서라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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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파정(흥선대원군 별서) 사랑채와 안채 사랑채와 안채는 석파정의 중심이 되는 집으로 사랑채는 툇마루에 걸터앉을 수 있으나 안채는 통제 구역으로 묶여있다. (안채로 인도하는 문이 모두 닫혀져 있음. 관계자와 안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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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계동 바위글씨 사랑채 서쪽 바위에 새겨진 삼계동 바위글씨는 19세기에 새겨진 것이다. 그를 통해 이곳의 예전 이름이 삼계동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김흥근이 지은 별서의 명칭이 삼계동정사, 삼계정, 삼계동 산정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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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파정(흥선대원군 별서) 소나무 사랑채 옆구리에는 좌우로 넓게 퍼진 소나무가 있다. 높이 5m, 그늘의 넓이는 67㎡ 정도로 그의 정확한 나이는 인왕산 산신도 모르나 대략 500~600년 정도 묵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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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암동 석파정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서(별장)로 유명하다. 안동김씨 권력자의 하나였던 김흥근(1796~1870)이 도성 밖 경승지로 유명한 부암동 삼계동에 지금의 별서를 지었는데 그때는 삼계동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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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천 바위에 걸터앉은 세검정 ★ 세검정은 자하문(창의문) 북쪽의 대표적인 명승지이다. 세검정 주변 지역을 통틀어 세검정이라 부를 정도로 이곳에서는 꽤 무거운 존재인데, 'T'자형의 팔작지붕 정자로 건립 시기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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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파정별당 ★ 석파랑 뒤쪽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에서 넘어온 별당이 자리해 있다. 소전 손재형은 석파랑으로 쓰이고 있는 한옥에서 살았는데, 그는 석파정 별당 외에 옥인동의 순정효황후 윤씨 집과 덕수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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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흔적이 깃든 석파정 별당 ★ 석파랑 뒤쪽 높은 곳에는 맞배지붕을 지닌 석파정 별당이 자리해 있다. 원래 서울미술관에 있던 석파정의 일원이었으나 소전 손재형이 별당만 따로 자신의 집으로 가져오면서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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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춘대성 홍지문 ★ 홍지문은 1715년에 탕춘대성 성문으로 조성되었다. 탕춘대성은 청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서울의 방어력을 높이고 행궁이 있는 북한산성까지 신속히 도망칠 수 있는 대피로 확보, 부암동과 평창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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