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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헌덕왕릉 경주시내 북쪽을 흐르는 북천의 북쪽 동천동 벌판 소나무숲에 헌덕왕릉이라 전하는 큰 신라 고분이 누워있다. 무덤의 주인이 라는 헌덕왕은 신라 41대 군주로 809년부터 826년까지 좁아터진 신라의 군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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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경주 나들이 ' ▲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하늘 아래 세상을 평정한 가을이 천하를 곱게 물들이며 한참 전성기를 일구던 10월 막바지 에 신라 서라벌의 향기가 지독하게도 배여있는 경주(慶州)를 찾았다. 찬란한 여명의 재촉을 받으며 아침 일찍 동서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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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신라 왕릉 나들이 ~ 효소왕릉, 성덕왕릉 ♠ ▲ 경주 성덕왕릉 ▲ 성덕왕릉 석사자 ▲ 경주 효소왕릉 여름의 제국이 슬슬 맹위를 드러내던 6월 초, 부산(釜山)에서 포항(浦項)으로 올라가다가 그 길목에 자리한 경주에 잠시 발을 들였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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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괘릉 인근(인근치고는 제법 거리가 있음)에 자리한 숭복사 숭복사는 괘릉 자리에 있던 곡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괘릉 조성으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어 숭복사로 이름을 갈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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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활성리 석불입상 (경북 지방문화재자료 96호) 괘릉 인근(인근치고는 제법 멀다) 연지암이란 조그만 암자에 봉안된 활성리 석불입상 (신라 후기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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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괘릉 인근에 자리한 감산사, 신라 성덕왕 시절에 김지성이 세운 사찰로 1915년 경에 신라 후기 불상 2개가 발견된 바 있다.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음) 지금의 절은 옛 절터 위에 다시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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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원성왕릉인 괘릉 (사적 26호) 숭복사비를 통해 원성왕의 능임이 99% 확실해졌다. 원성왕은 신라 38대 군주로 독서삼품과와 벽골제 수리와 농경 장려 등의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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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성왕릉인 경주 괘릉 (사적 26호) 숭복사비를 통해 괘릉이 원성왕의 능이 99% 확실하다. 괘릉은 신라 묘제 양식의 완결품으로 석인 2쌍과 사자석 2쌍, 화표주(망주석) 1쌍을 갖추고 있으며, 능 주변에는 난간석을 두르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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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두대리 마애석불입상과 두대리를 지나는 중앙선 철로(옛 율동역) 벽도산 북쪽 자락에 자리한 두대리마애불은 신라 후기 석불로 협시불의 일부가 마멸된 것을 빼고는 건강이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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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효현동 소재, 법흥왕릉 - 법흥왕은 가락국(금관가야)을 점령하고, 이차돈을 통해 귀족들을 굴복시켜 불교를 공인하며 왕권강화에 주력했다. 법흥왕릉은 조선 후기에 경주 김씨에서 법흥왕릉이라 정했을 뿐, 정확히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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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효현리3층석탑 (법흥왕릉과 가까움)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신라 후기 석탑으로 법흥왕이 불도를 닦았다고 전하는 애공사터로 전해지나 확실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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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덕왕릉은 신라의 막바지 전성기를 이룬 성덕왕의 왕릉으로 전 신문왕릉보다 한층 발전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왕릉 주변으로 석인 1쌍과 사자상 4기 등을 갖추고 있으며, 난간석과 호석을 두르고 12지신상을 갖추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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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덕왕릉 서쪽에는 그의 형인 효소왕의 능으로 전하는 고분이 있다. 허나 효소왕의 능인지 아닌지는 현재로써는 확인할 길이 없다. (역사기록도 맞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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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률사는 신라 법흥왕이 이차돈의 순교를 기리고자 그의 목이 떨어졌다는 소금강산 서쪽 자락에 세운 절로, 흥륜사와 더불어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 백률사와 굴불사지, 표암, 전 탈해왕릉을 품은 소금강산의 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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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후기에 창건된 굴불사터를 지키고 선 굴불사지4면석불 바위 4면에 석불을 새긴 이채로운 석불로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다. 굴불사터에서 조금 오르면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의 하나인 백률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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