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 남한산성 동문(좌익문)과 주변 성곽 광주 방면으로 입을 벌린 동문은 조선 선조 때와 1624년에 수축된 것으로 1799년에 성곽을 보수한 이후부터 '좌익문'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m, 폭 3.1m이
|
|
|
1. 장경사의 오랜 보물, 강희21년명 동종 대웅전 안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동종이 있다. 그의 피부에 '강희21년명~~'이란 명문이 있어 1682년 3월에 조성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는데 중량은 300근으로 장경사에서 가장 오래
|
|
|
1. 남한산성 동장대터 봉암성암문 동쪽 높은 곳에는 동장대터가 누워있다. 이곳은 봉암성과 한봉성 등 지성을 제외한 본성에서 가장 동북쪽으로 남한산 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청 소속 5영 중 좌
|
|
|
1. 봉암성 벌봉 암문 봉암성(벌봉성)은 남한산성의 지성으로 산성 동북쪽 구석에 자리해 있다. 벌봉과 봉암성암문 사이에 들어앉은 성으로 북쪽 끝에 벌봉 암문이 있으며, 남쪽은 한봉성과 이어진다. (한봉성은 막다른 곳이라
|
|
|
1. 남한산성 봉암성암문 (2월 풍경) 남한산성에 있는 암문 중 가장 큰 규모로 남한산성 본성에서 본성을 보조하는 지성인 봉암성, 한봉성을 이어준다. 본성에서 그곳 으로 가려면 꼭 이 문을 거쳐야 되며, 다른 암문과 달리 구
|
|
|
1. 제2군포터 주변 남한산성 성곽 (북문과 동장대터 중간) 2. 현절사에서 동장대터로 인도하는 눈덮힌 산길 3. 봉암성암문(제3암문) 문 윗부분에 동그란 홍예가 걸쳐진 홍예문으로 규모는 폭 2.36m, 높이 2.65m로 남한산성의
|
|
|
1. 남한산성 현절사 현절사는 병자호란 시절, 청나라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항복을 쌍수들고 반대한 홍익한과 윤집, 오달제 등 이른바 3학사 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1637년 삼전도 화의(굴욕)를 강제로 이끌어낸
|
|
|
1. 하남시 상사창동 연자방아 (연자마) 남한산성 북문을 벗어나 북쪽 하남시로 내려가면 고골(법화골)이다. 고골은 동과 서,남이 산으로 막혀있고 오로지 북쪽만 뚫려있는 막다른 산골로 이곳에는 상사창동 지역의 오랜 유물
|
|
|
1. 남한산성 북문 (전승문) 남한산성 산성리마을에서 북쪽으로 가면 하남시를 향해 입을 벌린 북문이 있다. 1624년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했다고 전한다. 1779년 성곽과 성문을 수리하면서 전승
|
|
|
1. 남한산성 북문~서문 구간 성곽길 남한산성 성곽길에서 가장 편하고, 가장 느긋하고, 가장 거닐기 좋은 구간은 북문~서문(국청사입구) 구간이다. 남문 주변은 경사가 좀 있으며, 동문에서 북문 구간은 각박한 구간이 많은데
|
|
|
1. 남한산성의 서문인 우익문 (수어장대 입구~북문 사이)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일행들을 이끌고 삼전도로 내려갈 때 이 문으로 나섰다. 1799년 개축하여 우익문이라 했는대 성돌이 만땅으로 들어찬 성곽에 비해 성문이 다
|
|
|
1. 남한산성 수어장대 1624년 남한산성을 다졌을 때 지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대이다. 청량산(일장산) 정상에 자리해 있어 산성 내부와 주변 지역까지 훤히 바라보인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서장
|
|
|
1.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수어장대 1624년 남한산성을 다졌을 때 지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대이다. 청량산(일장산) 정상에 자리해 있어 산성 내부와 주변 지역까지 훤히 바라보인다.
|
|
|
1. 율동을 부리며 흘러가는 남한산성 성곽길을 거닐어보자. 이번 남한산성 나들이는 남문 부근 비석군에서 시작하여 남문, 남문~서문 성곽길, 서암문, 청량당, 수어장대, 국청사, 북문을 거쳐 하남시 고골(상사창동)로 내려갔
|
|
|
1. 남한산성 비석군 남한산성에는 18~20세기에 세워진 39기 정도의 비석이 있다. 남문 안쪽에는 19기에 비석이 모여있었는데 남한산성 행궁 복원 으로 그 구역에 있던 11기를 이곳에 보태어 총 30기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