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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는 유교 문화권, 특히 중국이나 한국에서 본명이나 자 이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으로, 사람의 별칭이나 필명 또는 별호(別號)나 아호(雅號) 등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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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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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한산이씨 일가 되는 분이 밴드 게시글을 통해 성우 이명직 대감이 1894년 갑오년 진사시에 입격하였는데 과거에도 급제하지 않았고 족보에도 진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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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시대사 6집 > 光武 10年 9月 18日 > 從二品 李命稙을 奎章閣直學士기사제목 從二品 李命稙을 奎章閣直學士연월일 光武 10年, 丙午(1906년, 淸 德宗 光緖 32年, 日本 明治 39年) 9月 18日(火) 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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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1월 11일 태어나신 성우 이명직 선생이 아래 글씨를 쓴 해가 1871년이면 6살이신데 말이 되질 않는 이야기이고 평리원주사를 지낸분은 연배가 높은 동명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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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조부 이명직 대감님이 윤자형(尹滋亨) 장군님에게 전달했던 고종황제의 조칙 문서는 소문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는데 1989년에 후손이 궤짝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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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 한 푼 집에 벌어온 적 없이 국민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월사금 내려고 애호박 팔아모은 돈도 들고 한량 노릇 하러 다니시던 내 아버님을 무척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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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조카와 두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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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왜 조선의 공자, 조선의 석가, 조선의 예수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조선, 석가의 조선, 예수의 조선이 되느냐"고 그 옛날 우리의 사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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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요약 -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기초와 성격 이영훈 서울대 교수 왕실(황실)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明禮宮(명례궁)의 1792-1904년 수입부,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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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박맹수라는 분이 집필한 이명직(李明稙)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참 많은 의문점이 들었다. 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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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맨 왼쪽), 내부대신 임선준, 군부대신 이병무,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정미칠적(丁未七賊: 을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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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5대조부 오산 이.승.태. 할아버님이 안성 성은리 원기 할아버지 5째 아드님으로 동탄 석우리 우리 이사목 할아버지댁으로 양자를 오셨습니다. 항열이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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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왕' 홍사용과 화성 “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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