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왕실과 성공회 (17)

하노버 왕조의 시작

열부만세 메리2세 여왕은 여왕에 등극한지 5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자녀가 없었다. 이제 메리2세와 공동으로 통치하던 영국은 남편 오렌지공 윌렴,

가톨릭 + 가톨릭 = 가톨릭

가톨릭 + 가톨릭 = 가톨릭 제임스1세의 두 번째 왕비인 모데나 출신 메리(Mary of Modena)가 아들을 낳았다. 자식 없이 15년을 지내던 끝에 생긴 일이었다.

영국에도 토사구팽

토사구팽 대관식 의상을 입은 찰스2세(1630-1685) 왕위에 오른 찰스2세의 좌우명은 ‘다시는 아버지 및 할아버지와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련다. 귀양까지

남가일몽의 공화제

방탄조끼를 입고 다니는 왕 통치는 폭군적으로 했지만 제임스1세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건이후 제임스1세는 혹시 비가톨릭 분자들이 자기를 암살하

유적함대가 된 무적함대

무적함대의 참패 '스페인 아르마다(무적함대)의 패전' 1588년 8월 8일. Philipp Jakob Loutherbourg 제작(1796). 영국 국립해양박물관 (National Maritime M

여왕의 사망일을 국경일로

여왕의 사망일을 국경일로 여왕이 되기 전의 메리(레이디 메리).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오마니, 조금만 기다려 주셔요. 웬수를 갚겠나이다." 메리의 성

한 풀기식 통치?

한 풀기식 통치? 어디서 많이 들은 소리인데...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메리는 마침 당시 헨리와 그 이후에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의 눈총을 피하여 잠시

노덤벌랜드경의 도박

노덤벌랜드경의 도박 존 더들리. 1세대 노덤벌랜드경. 1558년 에드워드가 죽은 후, 한 많은 메리가 가장 적법한 왕위 계승자로서 왕위에 등극하자 그동안 메

블라디 메리

레이디 메리에서 블라디 메리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헨리가 불쌍한 어머니 캐서린의 웬수라는 독심을 품은 메리는 가톨릭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

유토피아의 수난

유토피아를 주창한 토마스 모어의 수난 헨리는 가톨릭 수도원과 수녀원을 폐쇄하고 수도승과 수녀들을 강제로 추방했다. 추방당한 이들은 시골을 방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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