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紀26 睿宗 開元 元年》 (癸丑,713) 8.진릉현위 양상여가 상소하여 당시의 정치를 말하였는데 그 대략이다. "수양제는 스스로 그가 강한 것을 믿고, 그 당시의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서 비록 제서와 칙서가 엇갈려 보내졌으나 겉으로 나타나는 소리와 실속이 어긋나니 말하는 것은 요..
《唐紀26 睿宗 景雲 2年》 (戊申,708) 23.시어사 양부가 탄핵하고 조사하면서 권세가 있는 귀족을 피하지 않아 권세있는 귀족들이 그를 비난하자, 예종이 말하였다. 23.十二月,侍御史楊孚,彈糾不避權貴,權貴毀之。上曰: "매가 교활한 토끼를 잡으면서 모름지기 급히 그것을 구원해..
《唐紀23 中宗 景龍 元年》 (丁未,707) 23.이 해에 중종이 사자를 파견하여 강과 회에서 속생하게 하였다. 중서사인 이예가 상소하였다. "강남 시골사람들은 캐거나 잡는 것을 생업으로 하니, 물고기와 자라를 잡아 얻은 이득은 많은 백성들이 밑천으로 삼는 바입니다. 23.十二月,是歲..
《唐紀23 中宗 神龍 元年》 (乙巳,705) 2. 애초에 장창의가 새로 집을 지어 매우 아름다웠는데 왕이나 공주의 집보다도 한층 더하였으므로 어떤 사람이 밤에 몰래 그 집 문에 글을 써 놓았다. "하루의 명주실로 며칠이나 이어가겠는가!" 2.春,正月,初,昌儀新作第,甚美,逾於王主。..
《唐紀22則天聖后聖歷2年》 (己亥,699) 26. 봉각사인 위사립이 상소하였다. "요즈음 풍속이 점차 유학을 가볍게 여기니, 선황의 도는 해이되고 쇠퇴하여 강론하지를 않습니다. 마땅히 왕공 이하의 자제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모두 국학에 들어가도록 하고, 다른 길로 벼슬을 나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