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시들지 않는 국화 양재역에서 성남 가는 길 헌능로를 따라가다 오른쪽 언덕에 헌인 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 가로등에는 국화꽃다발이 매달려있다 하얀 국화가 세 송이 노란 국화가 두 송이 십년세월에도 시들지 않은 모습으로 잿빛먼지를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훑어보는데 ..
60.애기단풍(시인은 시를 쓴다 3) 아파트 정원에 애기단풍나무 단풍이 들었다 앙증맞게 작은 것들이 여름 내내 어린 손을 저어 황사를 쓸어내고 미세먼지를 닦아내느라 멍이 들었다 빨갛게 피멍이 들었다 마디마디 핏발선 가여운 손으로 자식을 앞세운 길고양이 눈물을 닦아주고 시커멓게..
55.소나무 소나무는 죽지 않았다 바위위에 소나무는 살아있다 도봉산 바위위에 소나무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 힘을 내자 움츠리고 있는 아이야 힘을 내보자 저 소나무를 보고 한 번 더 힘을 내자 흙 한 줌 없는 바위위에서 바람과 맞서며 꿋꿋하게 서있는 소나무를 보고 힘을 내어보자 소나..
50.억새 꺾이지 않으려고 누웠다 칼을 품고 일어섰다 꼿꼿하게 2018.08.22. 49.까딱이(흔들이 인형) 창가에 앉아있는 아기인형 햇빛이 들면 고개를 까딱거린다 아니라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쉬지 않고 도리질을 한다 무더운 날씨에 힘들어 보여 그늘에 옮겨주었다 고개를 반듯하게 세우고 웃..
40.동굴로 가자 여름 무더운 날 병점역에서 서울로 가는 길 수원 역에서 전철에 오른 젊은 여자 내 앞에 서서 핸드폰만 들여다본다 얼굴을 보다가 눈 마주칠까봐 아래로 가슴을 보다가 들킬까봐 아래로 배꼽을 보다가 민망해 아래로 거시기해 아래로 별이 열 개 반짝인다 같은 방향을 보..
35.향기를 훔친 도둑 사람이라면 애도 늙은이도 좋아하는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하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천명이 다하여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충신들이 목숨 바치기를 서슴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귀하신 왕 중의 왕 당신은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향기를 훔치었습니다 졸부들에게서 빳빳하..
30.바보나무(월간SEE 2018 앤솔로지) 나무는 바보다 울 엄마는 날씨가 추우면 오리잠바하고 패딩바지하고 입는데 나무는 입고 있던 옷도 홀라당 벗고 달달달 떨고 있다 울 엄마는 날씨가 더우면 종일 에어콘을 틀어놓고 있는데 나무는 덥지도 않은지 하늘도 안보이게 옷을 껴입고 있다 나무..
25.터널(월간 SEE 2018 앤솔로지) 도심으로 들고나는 길 남산터널 아침부터 아침까지 자동차들은 거친 숨소리와 배설물을 내질러놓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빠져나간다 무시로 태어나는 어둠의 새끼들은 꼬물꼬물 벽을 타고 올라 박쥐처럼 매달려 검은 혓바닥을 늘이고 야금야금 빛을 갉아..
20.우리 사이 내가 뱉어버린 것을 당신은 그냥 들이마시고 당신이 게워내면 나는 거리낌 없이 삼킨다 서로의 몸 속을 샅샅이 훑고 나온 것들을 당신과 나 우리는 그런 사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는 2018.03.07 19.강 건너 등불(시50호 2018.03) 밤이 깊으면 별은 더 반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