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채 논 느마지기 손톱만한 청개구리 가족들과 착한 물뱀이 함께 살았지 우렁이 가족들과 백로들이 어울려 살았지 왕거미 거미줄 치는 저녁나절엔 맥곱 모자 구부정한 내 아버지 사셨지 이슬 밭 논두렁에 실핏줄 같은 가늘고 긴 길을 내시고 안개처럼 사셨지 어린 새끼들 양식이라고 ..
진달래 지지배 연분홍 치마꼬린 왜 흔드는 겨 여물대로 여문 탱탱한 젖꼭지 살짝 피워버리면 밤 새워 우는 저 두견이는 워쩌라고 지지배 연분홍 맑은 볼에 눈웃음은 왜 치는 겨 미치도록 타오르는 장미도 아닌 것이 우리 순이 가슴에 꽃불은 왜 지펴 두견이 상사병 니가 책임져 우리 순이..
영인산 영인산 참, 좋다 알을 품은 어미 새 둥지처럼 은밀하고 포근하다. 영인산은 봄나물이고 수다스런 새댁이다. 여름 한 낮 잠시 낮잠을 주무시는 어머니이고 건방진 여자 친구의 미소이다. 가을들녘의 품 넓은 아버지이다. 왁자지껄 팔씨름을 하는 청년들이다. 겨울밤 독서삼매경에 ..
풍경이 된 내 어머니 한 아낙 활처럼 굽어 밭고랑에 업드려있다 굳이 신발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는 듯 맨발이다 만 발도 더 되는 밭두둑을 오리걸음으로 어르고 달래며 엉덩이로 써레질을 하듯 다듬어 나아간다 햇빛에 그을린 주름 깊은 얼굴 밭고랑처럼 쪼글거린다 반질반질 길이 난 ..
불초의 소원 여든 일곱 되시어 설날 떡국 잘 드시고 세배 잘 받으시고 손자 손녀 녀석들에게 세뱃돈까지 잘 챙겨주시고는 병원에 입원해 사경을 헤매시는 우리 아버지 세상기억 다 잊으셨으니 모른다하시면 되실 일이고 말귀 어두우니 남들 웃으면 따라 웃으시면 되실 일이고 드시고 싶..
그 분은 왕(王)이셨다 나뭇짐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시고 마른 물꼬에 앉아 밤을 새워 고레박질로 마냥모를 심던 가난한 농부가 아니시고 일 년이면 남들보다 두 번 세 번 더 논밭을 갈아 두 배 세 배 소출을 내시던, 마차를 끌어 탯가로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가엽은 농군이 아니..
어머니, 1 어머니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이름 이십니다 세월이 세월을 건너 올해로 구십이 되셨습니다 구십이 되도록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었던 것은 잘 아는 일이지요 열여섯에 충청도 연기군 청송면 대자리에서 충청도 아산군 염티면 염성리 “김 광배”에게 시집 오..
어머니!, 2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엄마라고도 부르고 어멈이라고도 부르고 어미라고도 부른다 엄지라는 뜻이며 으뜸이라는 뜻이며 원래라는 뜻이며 뿌리라는 뜻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힘들 수 있으며 얼마든지 슬플 수 있으며 얼마든지 참을 수 있으며 받기보다는 주는 것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 나는 한 남자를 알고 있다 그 남자는 가냘픈 날개를 가진 곤충이다 낯선 것에 겁먹어 파리한 눈빛을 가진 곤충이다 그의 손에는 늘 무엇인가가 들려 있다 산과 들을 벌처럼 날아다니며 무엇인가를 나르고 있다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일을 파고, 일을 묶고,..
장날 그 아낙 어린 것, 하나는 들쳐 업고 하나는 걸리고 보퉁이 보퉁이 머리에 이고 장거리를 드나드시더니 그놈들 커서 동구 밖 미루나무만큼 커서 교장 선생님 어머니 되시고 변호사 할머니 되시고 의사 할머니 되시고 나서도 장날이 되면 나승갱이, 가위씀바귀, 지칭개, 봄 푸성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