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는 행운을 깔고 앉아 - 박종영 동네 변두리 쓰레기처리장 누군가의 손에 팔려 갈, 쓸만한 행운이 모여 주인을 기다린다 해 질 녘이면 언제나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이웃집 할머니, 지루한 하루가 숨겨놓은 달 지난 월간지 낡은 종이상자를 골라내 작은 손수레에 싣고, 줄줄이 종..
미운 4월의 봄 -박종영 교교한 달빛 그늘에서 구겨진 옷고름 푸는 산당화 가쁜 숨소리 사르륵 무너지는 소리에 잠들지 못하는 밤 붉은 꽃잎 바스러지는 소리 들리게 봉창문 열어둔 그윽한 봄밤의 새벽을 누가 훼방을 놓는가 흐르는 세월인들 어찌 저토록 헤픈 마음을 멈추게 할 수 있으랴..
나를 괴롭히는 세월 - 박종영 살아가는 동안 숨 막히는 허송세월의 관찰과 고뇌를 밝혀내는 것은 기억이다 사는 동안 많은 추억이 비약하면 탁월한 시선의 사유와 성찰이 머리에 차곡차곡 쌓이는 일체의 기억이 마음의 창고로 만들어진다 삶은 보이지 않는 마음과 생각이 이질에서 동질..
금이빨 삽니다 -박종영 오늘 아침, 빠진 금이빨 두 돈을 주머니에 담고 금이빨 산다는 복덕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니 눈앞에 청보리 뒤엉킨 고향 보리밭이 봄바람에 물결친다. 궁핍함이 시급한 지금, 살아오며 겪은 희망, 추억, 가난의 분노가 시험하는가? 마음이 두근거린다 가시밭길 ..
영원한 무늬 지문(指紋) - 박종영 거룩한 이름을 달고 태어난 우리, 열 개의 손가락 끝에 그려져 있는 지문은 만인부동 영구불변이라 했다 지문의 무늬도 궁상문, 와상문, 제상문, 쌍기문이 있어 모호하면서도 예술적인 부호로 매력적이다 결국 지문의 세밀한 선의 굴곡은 그 사람의 개성..
보기 좋은 그림 -박종영 날씨 풀리니 두 보살, 나란히 명부석 계단에 앉아 실패처럼 돌아가는 세월 한 어귀 다듬고 있는 봄날, 산수유는 노란 무늬 곱게 풀어내며 흐뭇하게 피어나는데, 천년의 부도(浮屠)가 산의 적막에 물드는 동안 법당 쓸다 빗자루 기대어 졸고 있는 동자승, 적멸보궁 (..
경건한 갯바람으로 오는 봄 -박종영- 꽃샘추위는 꼭 이맘때 찾아오는가? 좁쌀눈 후드둑 오듯 말듯 하다 멈추니 춘풍에 돛을 다는 홍매화, 꽃봉오리 순서를 정하느라 분주하다. 꽃핌의 순서에 수북이 들러리 하는 하얀 색깔의 언어들이 폴폴 날리며 아직은 오슬오슬 추위 타는 홍매화 옷섶..
햇살과 윤슬의 조화 -박종영 풍경에도 성품이 있을까? 삼지원 포구 출렁이는 눈부신 햇살이 푸른 바닷물에 수많은 윤슬을 지어내며 가슴 뜨겁게 반짝이고 있다. 물 위에서 빛나는 윤슬이 어느 달빛 어느 물빛 위에서도 그 여인의 가르마처럼 환하게 아름답지 않으랴만, 쪽빛보다 더 푸른 ..
친구가 되어 주는 외로움 -박종영 외로움도 어느 때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고독과 쓸쓸함을 벗으로 삼기에는 흉이 되는 삶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왕에 혼자라면, 외로움을 친구로 삼아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 들리지 않는 곳에서 혼자의 생각을 줍는 것도 짝없는 시간을 즐기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