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나 - 김 왕노-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가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정강이뼈로 만든 악기 그리워질 때면 그립다고 부는 궤나 그리움보다 더 깊고 길게 부는 궤나 들판의 노을을 붉게 흩어 놓는 궤나 소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짐승들을 울게 하는 소리 오늘은 이 거리를 가..
♡내 인생의 맛은. 석이(石耳) 버섯이라는 게 있더군요. 돌에 피었다고 해서, 귀 만하게 생겼다고 해서, 석이(石耳)버섯이라고 하나 봅니다. 평생(平生) 그 석이버섯을 채취(採取)하며 살아온 사내 이야기를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 버섯은 높은 절벽(絶壁)의 바위에만 자라더군요. 자연 그..
남자에게 여자란 만약에 어떤 사나이가 무슨 아름다움 즉, 계집의 육체에 미쳐 버리게 되면, 그걸 구하기 위해서는 자녀도 그만, 부모도 그만, 나중에는 나라도 그만 인양 다 팔아 먹고 만다네. 정직하면서도 도적질을 하고, 인정이 있으면서도 살인을 하고, 충실하면서도 배반하거든. 여..
그녀의 동백꽃 歎息 記憶하자니 꼭 오늘 같았던 날이었는지 늙은 지네처럼 토막이 난 밤기차의 관절(關節 )사이에 우악스런 네 손을 꽂아버리고 싶었던 그 날 入營列車에 오르기 전 기어코 그랬어야 했던 건지. 하필 그게 그 날 그 곳이어야 했던 건지 생채기 날까 악다구니를 떨다 난 기..
봄의 무도회장으로 이른 새벽. 아파트 현관문 밖에 오늘도 하루가 어김없이 배달되어 있었다. 신문을 집어 든 순간 열 댓 장씩 밀어 넣어진 전단지가 쏟아져 내린다. 알록달록한 빛깔의 전단지. 무슨 슈퍼의 폭탄세일 문구와 어느 전자대리점의 파격세일. 그리고 미장원, 치킨, 피자집의 ..
면역 결핍 몸 속에 병원체가 들어왔는데 그것을 이물질로 판별하지 못하고 자기라고 생각하는 면역 결핍(레트로 바이러스)을 에이즈라 부르며 아직 정복하지 못한 병중 하나다. 그것과 같은 종류이면서 그 만큼 치명적인것이 하나 더 있다. 이 면역 결핍은 자신의 가슴에 파고든 그 이질..
겨울 숲 복효근 새들도 떠나고 그대가 한 그루 헐벗은 나무로 흔들리고 있을 때 나도 헐벗은 한 그루 나무로 그대 곁에 서겠다 아무도 이 눈보라 멈출 수 없고 나 또한 그대가 될 수 없어 대신 앓아줄 수 없는 지금 어쩌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눈보라를 그대와 나누어 맞는 일뿐 그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 한하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이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문둥이 시인 한하운. 그 절제된 간절함 때문에 감상은 오히려 군더더기다. '푸른 울음'이라는 공감각적 이미지가 가슴 저..
♣토막말 ♣ - 정양 -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 물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
가난의 골목에서는 박재삼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 빗 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