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여행... (22)

전북답사6> 8. 조선후기 - 동학농민운동과 민간신앙...090321 | 전라도 여행...
姜武材 2009.03.22 16:08
기울어가는... 아니 썩어가는 모습이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았던 조선 후기
한 사람의 평생의 한계점을 긋는 신분제도도 그랬고,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당파싸움의 지긋지긋함도 그랬고,
아마도,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모였을 법한 많은 민란들..
그 중에서도 동학농민운동은 왜 실패했을까

실패라는 말은 동학농민운동의 결말을 감히 평가하는 것 같은 건방진 표현인 것 같기도 하고..

인내천이라는 사상이 꼭 나라를 뒤집어 엎는 개혁을 위한 봉기는 아니었을 것도 같고,

깊은 상처의 시작점이었던 그 시기에
어떻게 했어야 일제 침략기를 피해갈 수 있었냐를 생각을 하면
더 분하기만 하겠죠 ^^

자러가야지 -_- ;
일반적으로 물은 고이면 썩지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
왜 그렇게 뛰어난 철학적 사유 체계를 갖춘,
그 어느 민족이나 나라보다도 가장 철학적 통치체제를 완성한,
교육과 경제와 외교까지도 철학적 시스템으로 접근한 조선은 그렇게 무기력했는가랍니다.

분명한 것은 ;
외세문물에 개방적이고,
사회개력에 적극적이고,
자기수양에 인간미를 갈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패했지요.

그들은 안으로만 깊어졌고
밖으로 나아가질 않았어요.
그게 철학의 한계든, 조건의 한계든 그 여파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남아있을 거고,
또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극복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거지요.

실패와 상처...
역사를 되돌릴 수 없겠지만, 실패까지도 자양분으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이 아닐지...^^
많이 늦은 시간이었네요...^^*
깊이 있는건 다 말씀 하셨으니 저는 사견 으로
민간 신앙....
인간의 가장 연약한 면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必需 不可缺 하다고 생각 되는 부분 이네요

어린날 에는 뒷마당 장독대 위에 물 한그릇 떠 놓고
경건 하게 두손을 비비던 어머니 모습 에서
그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보기도 했고

시험 기간 에는 손톱을 깍지 않는다 든지 하면서
저마다의 어떤 다짐 같은 것이 자기 신앙의 시작 인거 같기도 하고..

요즈음 처럼 달나라를 가는 과학 시대 임에도 불구 하고
사이비 종교의 피해가 심심치 않을걸 보면 신앙의 존재는
약간의 방법만 시대에 따라서 바뀌일뿐...계속 이어져 오고 있네요

조선 시대는 그 때의 적절한 행동이
전북 지역 주민 들은 그 지역의   입맛에 맞는 신앙이 사물 이나 사람을 통해서
삶의 원천에 자리 잡고 있었나 봅니다

지역에 따라서 사람의 성질 까지도 비슷 하게 닮는다고 하는 말이 생각 나서
이번 글들이 더 호기심 있게 보아 졌네요....ㅎㅎ
유교에서 불교, 동학과 민간신앙...
실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까지 나갈뻔 했는데
그나마 수습은 됐는지 모르겠네요...^^

실은 이부분이 늦어지면서 글을 완결하지 못했답니다.
중간에 접을까 하다가,
또 이번이 아니면 언제 정리할 것 같지도 않고 해서, 그냥 갔는데...^^

종교학이나 종교론을 거론하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이시기, 한반도나 중국이나 종교적 형태의 신앙이 반봉건 반외세 투쟁의 주체였음은 공통된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산둥성에서 시작한 의화단의 난이나, 전북지역에서 시작한 동학농민이나
모두가 종교의 깃발로 시작했지만, 실제 내용은 국왕의 호의를 기다리며 사회개혁을 내걸었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그 실패는 비슷한 결말로 귀결되었고...

아무튼, 사상과 신앙의 형태로 그 당시 민중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
그것은 결코 하루 아침에 성냥불에 불붙듯 타올랐다가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축적과 민중들의 생활습성으로 남은 것들이 사회적 타이밍에 적절해야만 가능하다는 거...
결국 그 지역 사람들에게 잠재된 의식들이 어떤 형태와 방법으로 발현되는가 하는 것이 <지역성>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걸 - 사상을 돌에서부터 시작하려 했으니 버거울 수밖에...ㅎㅎ
그래서 오래 걸렸네요...^^*
아직 정독을 못해 긴 댓글은 못달고,
금산사 미륵전을 극락전으로 표기하셨네요
어느 절집 극락전을 생각하셨을지...ㅎ

천천히(찬찬히) 읽어볼게요
ㅎㅎㅎ
얼른 고쳐야겠네요...^^

얼른 읽으시고 많이 지적해주시길...
원불교 성지를 비롯해 지역 자료들이 아쉬웠지만,
연이님 사진도 많이 참고했다는...^^*
울산에도 최제우 거처가
작은 성지로 꾸며져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그런 꿈은 이시대에도 여전히 상존하는 개념

분명 유학은 정치적 이데올레기적인 요소가 강하고
민간 신앙은 자발적 표현이란 생각으로 정리를 해 봅니다.
경주 갈때마다 주변은 서성이는데,
정작 들어가보지는 않았네요.

제가
한사람, 한사람을 담을만한 그릇이 못됨을 아는지라,
한사람을 하나의 생각과 한때의 생각으로 가둬두고 싶지는 않네요...

수백, 수천의 얼굴을 가진 한사람을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하기에
우리들의 삶은 너무 다이나믹하지 않을런지...

어차피, 전부를 알 수는 없다는 생각이
늘 그런 유적들은 비켜가게 한다는...^^

dada님은 여전히 봄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놓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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