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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11/ 한국불교역사> 8. 원효 9. 신라와 한국불교의 특성...1105 | 건축 - 風,造,關...
姜武材 2011.05.21 14:04
신라불교를 모르면서 우리 불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라불교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어 잘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불교를 무속적 성격의 기복신앙으로 보았는데, 그 의견에 저 역시 동감합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과제는 우리 불교가 기복신앙으로서보다는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본래의 모습을 어떻게 다시 회복하는가 하는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늦었지요? ^^

불교, 그리고 신라불교와 우리의 불교...
가람배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불교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시작했답니다.

불교의 첫 출발은 구원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를 의지하라인데,
세월에 무뎌지고, 시류에 편승하고, 좁아진 마음을 담지 못하면 늘 돌아가는게 인간의 본래 모습 중 하나...
즉 의지하려는 마음이 아닌가 싶어요.

의지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또 그런 마음이 있어서 공동체도 만들어지고, 인간의 문명도 만들어지겠지만,
종교나 사상의 형태가 구복(기복)에만 치중하는 건 왠지 퇴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답니다.

완전히 정리된 상태에서 올린 글이 아니라
자꾸 추가도 생기고, 부족한 것도 많이 눈에 띕니다.
그래도 이렇게 역사에 정리해보고나면 놓쳤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져 다행스럽기도 하구요...

항상 지켜봐주셔서 감사...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속 사랑이 원효지요.
학자원효...

요석공주가 샘 할려나요.ㅎㅎㅎ

잘 지내고 계시지요.
ㅎㅎㅎ
원효 정도되면 요석공주가 있어도,
바다님 사랑도??? ㅎㅎㅎ

자주 뵙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바다님의 열정만큼은 변하지 않으신듯...
늘 건강하시구요...^^*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원효대사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www.uec2018.com
원효와 깨달음...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언듯 생각에 ;
헤겔 논리학의 존재론 - 본질론 - 개념론을 살짝 뒤집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맑스처럼 완전한 뒤집기가 아닌 개념을 존재로 대체한...

자유와 창조의 연결고리로서의 이해와 가르침...
그렇다고 그렇게 인간과 신의 개념을 '나' 또는 '자아'로 묶을 수 있는건지...
'나' 또는 '자아'로 귀결된 존재로 본질과 개념을 서술할 수 있는건지...
오히려 '나'를 강조함으로써 도교가 해석한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귀결되는 건 아닌지...

^^
조금 어지럽게 묶어봤지만,
역사와 관계가 의도적으로 배제된 자유와 창조...
실체로서의 자아와 개념으로서의 나를 무리하게 섞은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답글이 늦었습니다.
가을입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존재적인 측면으로써 해석하기에는 조금 무리수가 있습니다.
존재를 내포하면서도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비존재적인 측면인
'더 사실적인 나'를 가리킵니다.

제 블로그에 저자 진경님의 책 내용들이 나와 있으니 참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자주 늦어집니다... 죄송...ㅠㅠ
책을 섭렵하고 답한다는 게...쩝...

좋은시간 보내시구요...
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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