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 風,造,關... (32)

공간 13> 고구려 사찰건축과 가람배치에 대하여(1)...110702 | 건축 - 風,造,關...
姜武材 2011.07.02 17:18
중화문명과 고구려의 관계를 지도를 통해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 지역사회가 국가를 세우고 전통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타문화의 흡수와 변용이라는 부분이
꼭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글에서 말씀하신 고구려의 군사전략이 수/당에 영향을 미쳤다니 놀랍네요.
중화문명의 풍부한 물산이 뒷받침 하는 거대 수당제국과 고구려가 실력을 겨룬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요.^^
지난 역사스페셜-제5의문명,요하를 가다-에서   중국 길림大 주홍 교수가 하가점하층문화(청동기문화)의 인골을 체질인류학으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하가점 하층문화의 인골을 분석해 볼 때,古동북형이 약 65%가까이 차지하고 古화북형이 나머지를 차지한다고 합니다.고동북형은 한반도 주민들과 유사하겠죠.
잘 읽었습니다.
좌도우사라고 했나요?
그렇게 읽고 그렇게 보는 게 재밌는데, 제가 원하는 텍스트는 별로 없고...
물론, 긴 역사의 짧은 시기, 특정 지역에 제가 원하는 부분만 찾아선지 모르겠지만,
역사를 조금 더 넓고 깊게, 혹은 연속성을 가지고 보려면,
아직은 상상력을 많이 동원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늘 결핍이 있어 흥미로운 게 역사인지도 모르겠구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자의식이 온실속에서 유전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이
어느 역사든 부단한 교류와 변화, 전승과 융화속에서 발전할 수밖에 없는데
아직 우리의 확고한 인식 또는 의지의 부족인지 모를 부분때문에 발생하는 편협함이 아닐까 싶어요.
뭐, 그런 것들을 극복해보자는 차원에서 써보는 글이지만...^^

만주지역은 지금도 세계 4대(2대에 가깝지요?) 곡창지역중 한 곳이지요.
언젠가 글에서도 밝혔지만, 660년대 요동성의 1년 군량미가 50만석인데,
1580년대 조선 전체의 1년 군량미 준비 목표가 10만석일 정도로(이이율곡의 10만 양병설 중)
당시 고구려의 1개성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게다가 백두산 화산폭발 이전 시기 우리에게 척박한 곳으로만 인식되는 국내성 일대와 개마고원 부지도,
실제는 많은 물산과 작물들이 생산되고 교류되는 곳이었을지도 모르구요.
(백두산은 화산폭발로 인해 1000미터가 더 높아졌다는 연구도 있지요?)

일본과 중국의 DNA 분석 결과...
중요한 것은 현대의 우리들의 올바르게 뿌리를 이해하고,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는가,
그리고 그 결실이 모두에게 행복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아닐런지...
중복과 비약이 난무하겠지만, 좋은 정보까지 남겨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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