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여행... (26)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구인사> 나는 무슨 힘으로 살아갈까? 111017 | 충청도 여행...
姜武材 2011.10.22 18:06
뭔지 모르지만 사진이 좀 달라진듯...! 나만의 느낌일까??? 가을이라서 그런가??? 글은 다음에 읽을께요..
필름을 바꿔서일까요?
요즘은 필름을 판매하는 곳이 없어서 인터넷에서 ISO100을 샀더니 훨씬 예민해진듯...ㅠㅠ
구인사는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했구요.

글도 약간 손보고, 사진 설명을 보완했습니다...
가을이네요...^^*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에 대한 글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올해 초 그곳을 찾을 계획을 세웠다가 날씨 때문에 취소했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보았습니다.

자그마한 마을 가운데 있는 석탑의 모습은 상상했던 그 이상입니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그 무엇은 부족하지만,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강무재님이 이 탑에서 위안을 찾지 못했던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 때문은 아니었든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이든 쉬운 것은 아니지만, 헝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방법은 그것을 하나씩 찬찬히 풀어나가거나, 아니면 아예 그것 자체를 놓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소박하지요?
단정하면서도 나름 멋도 부리고...^^

뭔가 모르게 아쉽지만,
그렇다고 하나를 바꾸면 지금의 맛이 모두 사라질테니,
그런면에서 보면 완결적인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제게는 2% 부족한듯...^^

무겁지요? ㅎㅎ
이런 글은 올리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의 제가 그렇습니다.
위안을 찾을 수 없다 생각했지만, 또 위안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무거운 건 숨기지를 않았네요.

이 고비를 넘어도 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한 결과...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부정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치달아야만 하는 상황...ㅎㅎ
풀 수도 놓을 수도 없는, 그렇지만 또 그렇게 걸어가야만 하는 상황이랍니다...ㅠㅠ
눈 뜨기가 싫답니다...ㅎㅎㅎ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저를 버티는 꺼리를 찾아 길을 찾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찾고 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사정도 모르면서 섣부른 격려의 말씀을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적한 마을 한귀퉁이에 놓여 있는 그저그런 탑이라고 생각했던 향산리석탑, 생경스럽게만 느껴진 구인사를 소재로도 충분한 이야기를 들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냥 일상인데, 감당해야할 시간까지 덧칠하다보니 그리 무겁게 됐습니다...ㅎㅎ

이젠 답사여행도 효율과 집중을 욕심내지 못하게 됐습니다.
하나씩 뚝 뚝 떨어진곳들 찾아다녀야 하고,
한꺼번에 몰지 못하고 가는 길에 짬을 내야하니까요...

그러다보니 깊이 들어가야 하고,
가볍게 움직여야 하고...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가가 아니라,
가는 길과 가는 시간에 스치는 것들이 이야기가 되네요...^^

구인사... 여전히 맘이 편하지 않는 곳...ㅎㅎㅎ
(마지막 내려오는 길, 버스만 태워줬어도 그러지 않을텐데...ㅋㅋ)
고찰에 가보면 기와의 무게때문에 덧 대어놓은 기둥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고대에 지었던 목조건축,황룡사나 다른 목층탑 양식은 어떻게 그렇게 높이 올라갈 수
있었을 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눈밭위의 금산사 다른 느낌입니다.
금산사 미륵전과 구인사 대조사전의 비교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얼마전 방송에서 한국문화재 제자리 찾기 모임의 혜문스님 인터뷰를 들었습니다.
구도자는 싸우는 사람이다.
다소 뜨아한 선문답 같은 말이었습니다.
물론 도를 깨닫기위해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는 뜻이었다고
헤아려봅니다.
아울러 투구를 절집과 비교하신 대목이 묘하게 와닿네요 ㅎ.

최기영 대목장의 월정교도 복원 중에 있겠죠...
얼마전 경주 사천왕사지에서 예전 돌다리의 석재 일부가 출토되어 눈길을 끕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단양 향산리 3층석탑.
경북 북부를 지나면 있는 단양.
부산 범어사의 3층 석탑처럼,문화재 보호를 위한 작은 울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한편의 지식채널e를 본 느낌이예요^^
보탑사에 가면 43m인가 높이의 삼층 목탑이 있지요.
전통 목조건축을 재현하려 했다니, 아마도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을런지...
후에 이런 기법이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성의 천수각을 올라가는 구조로 정착되었겠지요?^^

*

금산사와 대조사전의 비교...
오래전부터 생각했었지요.
물론 따로이 포스팅도 생각했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삼층전각이라는 게 이 두개와 경복궁내 민속박물관 뿐이어서...
그래도 두 사진을 같이 놓고 비교하니 확연해집니다.

인조시대에 만들 수 있었던 조선의 미감과
현대의 우리, 어쩌면 조선말 궁궐건축의 미감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관념화된 유교, 혹은 관념화될 수밖에 없었던 성리학적 풍토가 만드는 미감이 무엇이었을지...
저는 단적으로 <문약>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세상을 넓게 보지 않는,
자신만에 갇혀진 세계관이 만들어낸 관념과 독선과 폐쇄의 필연적 유혹...
자기완결성이 강하다고, 배타적 생명력이나 경쟁관계에서의 상대적 우위를 보장해주는 게 아닌데
완결적이지 못한 -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왜곡 - 자아의 소극성과 주도적이지 못한 모습...
늘 조선의 유학, 특히 임진왜란 이후의 성리학에 대해 갖는 저의 불만이지요...

그런 거까지 다뤄보려다 멈췄습니다만 여전히 머리속을 뱅글뱅글...
언젠가 글로 털어놓고보면 사라지겠지요? ㅎㅎ

*

울타리는 반대합니다.
ㅎㅎㅎ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 어떤 것들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기품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저 처럼 석탑에 손을 대고 돌에 흐르는 기운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거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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