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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내가 법당(당간지주+당간+상륜부+번)을 세운다면...^^1208 | 답사여행...
姜武材 2012.08.05 00:58
당간에 대해 많이 배웁니다.
특히 당간이 설치되었던 곳이 꼭 절의 경계만은 아닐 것이라는 지적은 많은 의문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네요.
경주 불국사의 경우 경내에 있어서 절의 행사를 알리기 위해 당을 내걸기 위한 당간의 위치로는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보았었고, 저도 그래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왜 두 짝이나 있는지, 향좌측 지주들은 생김새가 서로 다르던데 어디 다른 곳에서 이동해 온 것인지 하는 의문은 여전하네요...
인사가 너무 늦었지요? 시나브로님...()

솟대나 서낭의 전통문화가 불교문화와 접합되면서 "당간"이 정착되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외래문화로 유입된 상징물과 달리 당간은 시대의 변천에 쉽게 적응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랍니다.
처음엔 사찰 입구 어디쯤...
다음엔 도심 가람의 남문 혹은 중문 앞에 정착되면서 또 다른 상징이 되었고,
산지가람에 정착하면서는 사천왕문 앞 어디쯤... 등으로 말이죠.

그런면에서보면 경주 불국사는 평지가람과 산지가람의 중간형태로
신라의 학예불교가 정착된 다불전 시대를 여는 대표적인 가람이고,
그곳에서의 당간의 위치 또한 고심이 많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기 불국사 가람배치를 머리속으로 그려보면 ;
대웅전과 극락전 영역이 야단법석을 치루기에 충분치 못한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지금의 백운/청운교와 연화/칠보교 밑으로는 영지(연못)이 있었을 것이고,
그 공간은 훨씬 많은 대중들이 모일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초기 불국사가 만들어졌을 때는 지금처럼 당간지주가 있는 공간에 나무들이 없었겠지요?)

(그리고 익산 미륵사지의 당간지주 위치까지 고려해서...^^)
때문에 그곳에 자리잡은 당간지주는 그런 공간의 이정표가 되었을테니
현재의 위치는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라면 두 당간지주의 간격이 너무 좁다는 점이지요.

어쩌면 초기의 위치는 ;
하나는 안양문의 좌측에 또 한짝은 자하문 우측, 좌경루를 넘어가지 않은 곳에 있지 않았을까 그려봅니다.
그리고 두쌍의 좌우측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기억하는데(다음에 꼭 꼼꼼히 보려고 합니다^^)
서로 안팍의 비대칭 조화로 보면 어떨까 생각하구요.(물론 확인한 다음에 다시 짚어보겠지만...)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현재 불국사의 당간지주는 어디 멀리서 옮겨 온 것이 아니라
창건시(석가탑, 다보탑을 만든 때)부터 같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국데 믿고 있는
제 굳은 심증의 강변(!)때문임도 아울러 밝힙니다...ㅎㅎ

저는 여전히 삼랑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경덕왕대 만들어진 신라 최고 작품으로
불국사 당간지주를 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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