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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탑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한반도 최초 통합군주 문무왕...1504 | 탑여행-趣,美,香...
姜武材 2015.07.23 14:48
많은 독자들과 함께 읽는 글이네요. 축하드립니다!
'감은사지 서탑 사리장엄구'를 감상하니 좋습니다.
특히 사리기 기단부의 난간에서 선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편안해보입니다.
유리와 수정이 쓰였다니 흥미롭습니다.

언제 눈내리는 날,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황산벌>에서 김법민 역을 멋진 배우분이 맡아서 했네요.
ㅎㅎ
사진과 사진설명문은 참고로 첨부했던 글이고
(독자들이 아닌, 편집자가 감은사탑과 문무왕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보낸...^^)
실제 글은 검정색 부분인데, 그것도 길었답니다...ㅠㅠ
그래도 이번 기회에 탑과 인물과 역사를 짧게나마 함축해보려 했던 시도는 즐거웠다는...^^
사진도 한자리에 모아본 것도 나름 의미있었고...
(독자들보다, 제 정리에 더 몰두한 듯...ㅋㅋ)

눈내리는 날의 감은사지탑...
그렇게 보고 싶네요...^^*
문무왕   김법민...   한민족 4000 여년   역사상   절대용서할수 없는 불구대천의 살인마   김법민이라고 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후세들이야   문무대왕 3국통일의 주역.. 등등 온갖 미사여구 수식어를 갖다 붙이지만..     당대 7세기   백제와   고구려 사람들은   김범민을 아마 불구대천의 용렬한 인간 ..지금의   김일성 김정일 정도로 봤을겁니다..     자기 딸의 복수심 때문에 일으킨   전쟁.. 당나라 외세를   한반도에 끌어들여   일으킨 김춘추 김법민 부자의 역사적만행으로   당대   3국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당시 1000만에 육박하던 3국인구는   저들 두 인간들의   복수전쟁으로   절반이상 사라졌ㅅ습니다.     신라가 3국통일을 했다느니..하는것은   모두다 역사공작 입니다..   신라는 당시   3국을 통일한 국력도 없었고 역량도 의지도 없었습ㅂ니다..   다 후세 사가들의 역사공작이지요..       멸망직전의   당시 신라가   무슨 국력으로   3국을 통일할까요?           모두다 속고 있는거지요?  
음~~~
김법민에 대해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르신 거 같습니다.
게다가 3국통일이나 속고 있다는 말씀에는 전혀 동의되지 않습니다.

굳이 늘푸른님께 모두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지만,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백제와 전쟁을 일으킨 것은 분명 자기 딸에 대한 복수심이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김춘추는 백제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하고 볼모로 잡혀간 다음해,
개인적 원한을 풀었기 때문인지 사망하고, 아들 깁법민이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순전히 개인적 원한만으로 설명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계사적으로 국가관료제가 일찍부터 발달했던 중국이나 한국의 특성과
끊임없이 영토확장을 통해 성장해왔던 정복국가 신라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생존을 위해 백제와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국의 생존을 위해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투에 참여했을 뿐인 신라의 입장을 고려하면,
삼국통일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다음,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명분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보장왕은 고구려 멸망 후 요동의 안동도호부에 요동도독조선군왕으로 있다가, 공주로 강제 이송되는 등
신라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구려에 대한 입장정리도 필요했다고 보입니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확장된 영토와 백제 및 고구려 유민들에게 하나의 통합된 정체성을 부과해야만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게다가 백제와 고구려 멸망 이후 곧바로 시작된 것은 당나라와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군들을 암묵적으로 지원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삼국통일이나 삼국의 하나된 정체성 확보는 당나라와의 전투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삼국통일은 시작의 명분이 아니라,
당나라와의 전쟁에 신라가 중심이 되어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을 하나의 전선에 묶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명분이면서,
결과적인 대의명분으로 고착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복잡한 난관을 지혜롭게 풀어낸 문무왕 김법민은 탁월한 명군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통일신라나, 삼국통일 등은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축소 혹은 변형, 미화된 개념일 수 있고,
이미 발해의 건국을 중시한 남북조시대가 역사학계의 공식입장이 되었지만,
그런 이유로 문무왕 깁법민과 김유신 등의 업적까지 폄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제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을 충분히 알지 못한체, 공작에 희롱 당하며 속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김일성 등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 유아적인 발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춘추 김법민 이 두 전쟁광들이   당을 끌여 들여 일으킨   17년   전쟁으로   3국의 인구는 절반이하로 사라져 갔습니다..   기록만 전하지 않을뿐이지요.
특히 김법민 저인간은 역사의 단두대에 세워야 할 인간이지요.   660년 백제전쟁.   662년 제 2차 고당전쟁.   668년 제 3차 고당전쟁   수차례에 걸쳐 당군 100만 이상을   한반도로 끌어들 여 민족 절멸의 전쟁을 일으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인간이지요.   당군이 물러가는   676년 까지   그 길고긴 17년 전쟁 통에
   백제와 고구려는   거의 거덜이 나 버렸습니다..       그많던 7세기 3국의 인구는   1000만에 육박했으나     9세기 초 고려초에   220 여만이라 하더군요..
6세기말에 일본의 인구가 500만에서   불과   7세기 말에   700만으로 늘었다더군요..     백제와 고구려에서 그렇게 많은   백성들이   넘어 간겁니다.  
한반도 한민족에   운명과 추락의 역사는   저 두 인간들의 역사적 만행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상적 차원을 넘어   한번 정도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나가다   그적거련네요..           신라의 전쟁은   3국통일전쟁이 아니라...   자기 혈육의 대한 처절한 복수가 낳은 전쟁의 결과 입니다.
   3국통일?   ㅎㅎㅎㅎㅎ   그거 다   역사 공작입니다..
  
전쟁과 인구...
수나라 멸망과 함께 체계를 잡아가던 당나라의 639년 호구는 304만호였는데,
동북아 정세가 자리를 잡아간 732년엔 786만호 불어납니다.
그게 멸망한 고구려와 백제의 인구가 당나라에 잡혀갔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754년 당나라의 호구수는 907만호였는데,
안사의 난이 한창인 760년에는 193만호, 안사의 난이 끝난 7년 후인 770년에는 102만호 줄어듭니다.
대략 800만호(호당 인구를 5인만 계산해도 4천만명입니다)의 인구가 불과 20년만에 사라졌다면,
이는 안사의 난에 죽은 당나라 백성들의 수일까요?

인구가 국력이나 행복지수와 얼마나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백제, 고구려의 멸망이 왜 한민족의 추락의 역사로 이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김법민을 단두대에 올렸으면 삼국전쟁이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인구와 국력, 한민족의 역사를 늘푸른님은 너무나 철저히 감상적으로 접근하시는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고민하다가, 답글도 없으면 너무 무시한다고 생각하실까봐 저도 잘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 남겨놓습니다...ㅠㅠ
모양은 같다고 하나 사리장엄구의 모습이 다른점에 큰 가치를 두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석다탑과 다보탑은 탑의 형상부터 다른데 반해 감은사지 석탑은 사리장엄구의 형태를 달리해서 탑의 성격을 구분 했다는...
다보여래와 관련된 글을 읽다보니.
^^
사리장엄구는 물론 담겨 있는 사리의 갯수도 다르다고 합니다.
하나와 40여개로...
해서 하나는 문무왕, 또 하나는 진신사리... 이렇게 구별하기도 하고...

또 천인상과 사천왕상,
좌대도 사자가 있고 없음의 차이도 있지요.
다양한 차이와 다양한 해석에 대한 글들을 접하면서 여러생각을 하긴 했는데,
나중에 서탑사리기에도 천개가 있었다는 사진을 보고 또다시 생각하고...^^

그래서 끝임없이 재해석되고, 재발견되나 봅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해석처럼...
우리들의 해석이 덧칠해질수록 명품의 가치는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역사나 세월도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수록 빛날 수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겠지만...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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