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스크랩] 원전으로 읽는 금강경 / 이건준 | 금강경
후박나무 2008.01.29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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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와 반야바라밀은 다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대승의 정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봅니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뜻으로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깨달음
을 얻은 자를 정등각자 sammasambuddho라고 합니다. 반야반라밀은 다른 육바라밀과 함께 보살행을 완성하며         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붓다의 깨달음
입니다. 붓다말고 연각이나 다른 아라한의 깨달음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면 붓다이고 붓다는 자비를 갖추게 되지요. 그냥 지혜가 아니고 완전한 지혜
이니까요.
그래서 삼귀의 중에 귀의불양족존 이라는 게송이 있는데 양족이란 말은 지혜와 자비를 다 갖추었다헤서 양족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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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기 때문에 불교는 역사를 통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무상고무아를체득 한 [아라한]과 자신의 성불을 미루고 바라밀을 닦는 보살사상은 600-800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사상입니다. 아라한의 깨달음을 소승이라고 평가하고 다시 자리이타의 바라밀 수행을 내세우는 것은 그 시대를 반영한 발상입니다.
즉, 붓다시대에는 비구들이 깨달아 아라한이 되면 부처의 깨달음과 동등하게 취급 되다가 시간이 지만에 따라 붓다는 신과 같은 초월성과 완전성을 띄게 됩니다.
그리고 그 멀어진 사이를 보살이라는 사람들이 메우게 되지요.
이것은 그러므로 깨달음의 내용의 차이를 따지는 것보다는 이러한 사상이 생겨나게 되는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더 빠른 이해의 빠른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교를 배우는데 있어서, 이렇게 각기 다른 시대에 나타난 수 많은 용어들을 시대와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이해하고 대응 시킬 려는 시도가 불교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습니다. 한국에서 불교를 공부해도 말싸움으로 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용어를 시대별로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일단은 니까야와 아함경부터 읽어 나가면서 그 속에 사용되는 용어들을 잘 파악한 다음에 이 용어들이 시대를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이해해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空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도 니까야에 나타나는 空과 중론에 나타나는 空과 반야경에 나타나는 空 이 차이점과 공통점을 알고 써야 합니다. 이것을 글자가 같다고 획일적으로 이해하면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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