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초기불교 (118)

[스크랩] 무아와 윤회 | 초기불교
후박나무 2009.07.01 21:05
'우리는 사실 12연기의 윤회의 심적 구조를 좋아하며 오취온의 윤회의 자아를 선호하는 것이다. 윤회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윤회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 이 문장에 눈길이 머무네요.

아마도...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때로는 윤회를 머추고 싶지만 주되게 흐르고 있는 감정은 윤회를 열망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붓다와 나의 차이점이 가장크게 부각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왜 그리 집착과 사는것에 열망이 뿌리깊이 박혀서 내가 미처 느끼기도 전에 스스로 그 열망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체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열반보다는 윤회에 더 중점을 두는 삶을 사는 쪽으로 선택을 하게됩니다.우리가 사는 것이 어떠한 욕망이나 집착을 이끌어 내는 환경적인 조성이 풍부하기에 그렇다는 생각도 들지만...예나 지금이나 윤회하고자 하는 열망이니 환경이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인간의 구조가 바뀐 것이 없음으로...

단지 그저 윤회만 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존재의 가치를 회복하여 존재의 구성됨을 알며 존재의 역할의 중점을 더 두고 살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게요. ['우리는 사실 12연기의 윤회의 심적 구조를 좋아하며 오취온의 윤회의 자아를 선호하는 것이다. 윤회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윤회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긴 울림이 있습니다. 왜 괴로움(둑카)라는 정의로 부터 불교가 시작되어야 하는지....등등..........()
저는 예전부터 이 문장이 뜻하는 바에 대해서 많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정말 자신이 해탈을 원하는가..? 윤회를 원하는가..? 에 대해서...
그리고 생각의 결론은 삶이 힘들면 또는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솟구칠 때...저는 다시 태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아니 산다는 것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았다고 해야 더 맞겠지요.
때론 힘들때는 이 세상에 다시 오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 생각 자체마저도 살고 싶어하기에 나오는 절규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아..정말 열반은 무엇이고, 왜 나는 이렇게 삶을 갈망하고 있으며 왜 나는 내가 의도하는 것보다 더 뿌리깊이 삶을 갈망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참으로 망연자실 할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붓다가 고로 불교를 시작하였는지 해탈 열반에 대해 그토록 말씀 하셨는지에 대해서 이해할것 같으면서도 제 자신을 보면 그런 말씀들이 오히려 무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담아갑니다..._()_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불교를 접하게 되고 삶에서 고민과 갈등을 느끼면서 참나를 찾는 중
무아와 윤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으며 속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안옥선 교수님의 이글이 나에게는 내머리를 번개맞고 바이러스를 없애주고 리부팅한 느낌입니다.
49세의 피지도 못한 나이에 열반하셨다는 뉴스를 인터넷에서 이제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주 곳곳에 있으실
당신을 생각하며 다시는 윤회하지 마시길 기원하면서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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