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 여수가 좋다고 지난 겨울 헤어지며 몇 십 년만에 만난 우리 단발머리 친구들 다음 봄에는 여수에서 만나자 했다 저들은 서울에서 KTX 나는 부산에서 고속버스로 이른 아침 출발 10시 여수에 닿았다 버스 정류장 부근은 한적하다 하얀 수선화 같은 도시의 분위기 부산 바람보..
자목련 박경희 무슨 벼슬인 양 우듬지에 희끗불긋 꽃 피었다 우리아이 가방 메고 학교 갈 적 열세 송이 피워냈던 나무였다 피고지고피고지고 서른 번이나 봄을 안겨주던 지붕을 훌쩍 넘고 살집도 둥그렇게 꽃을 달았다 태풍인 듯 태풍 아닌 듯 태풍 같은 바람이 불어재낀다 저런 꽃잎 다 ..
타지마할 중심에 봉긋한 돔을 지키는 네 개의 첨탑 황금빛 애잔한 햇살을 받으며 아침을 연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아 부끄러운지 거울 같은 연못으로 숨어든다 머리칼 흘러내리는 불그레한 목덜미 물 속 훔쳐보는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다 저토록 아름다운 건물이 왕비의 무덤이었다니 긴..
댓 시간 달려 남대문 누각 서울이다 차창으로 분주이 오가는 이 구경한다 태극기 배낭에 꽂고 집회장에 가는 사람 태극기를 펼쳐 들고 걷는 사람 태극기를 파는 사람들 사는 사람 몸집만한 현판을 단 大漢門 젊은 시절 시청 지나 미도파 명동으로 걷던 지금은 없는 옛동무 생각 난다 강산..
일을 멈추고 태극기 부르는 광장으로 간다 나무 둘레 의자에 앉아있는 순례 언니 영선 언니도 곧 올 거라고 방사선으로 퍼져나간 태극기 물결 연사에게 보내는 긍정의 함성 후원모금상자를 든 사람들 등불처럼 군중 속을 누빈다 사람이 들끓는데 어찌 돈이 안들까 십시일반 태극기 값이..
엷어져가는 햇볕을 만나러 간다 오지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햇빛 들지않는 가게를 두더지처럼 종일 지켜야 한다는 거 형벌에 가깝다 두 시가 넘었을 뿐인데 햇살의 뼈가 말랑하다 팔팔하던 그 젊음은 어디로 사그라들었는가 붉은 잎새 아직 땅 위에 뒹굴고 마음을 떨구어낸 나무 색깔 있..
식사를 물리고 앉아 가져온 자작시 후식처럼 나누어들고 득덕을 할 듯 들여다보다 가만이 입속 낭독도 하다 저마다 언어의 각목 하나씩 빼들고 반듯한 시詩 짖기 위하여 몰두하는 나이 굵어보이는 사람들 점잖은 한 손님 일어나 나가며 참 좋아 보입니다 대학생입니까 아니요 시 동인 입..
봄가을 나들이 갈 적 따뜻한 씨락국으로 빈 속 달래던 눈에 정다운 보도 블럭 진주 문상 다녀오다 해의 붉은 눈시울 따라 달리다 카페 라떼에 졸음이 가시고 상주의 쓸쓸한 마음도 들여다볼 듯 이름도 생소한 팔 순 어머니의 루게릭 병간호에 바친 사 년 세월 사 백리 그 먼 길 눈 감고도 ..
고장난 줄도 모르고 바꿔야할 때 온지도 모르고 수없이 누르고 두드리고 커스 나올 때까지 블럭 잡힐 때까지 컴퓨터 기사가 말해줄 때까지 그리도 도탑게 쌓인 불만 말하지 그랬어 내 말 들어줄 때까지 봄날의 강아지풀 같이 부드러웠던 너 기다리며 얼마나 참았던지 병 날 뻔했다 일편..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듯 지병인 뻐근한 뒷목에 아로마 기름 발라 문지른다 지가 무슨 스님 반가부좌 틀어 눈 감는다 유래 없던 폭염 견디었으므로 시원한 공기 이리 반가운가 창문으로 들어서는 바람 어깨 위로 내려앉아 목을 감아 비비고 아린 세포들 뽁뽁이 터지듯 톡톡 싸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