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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이홍장) (13)

리홍장과 이토 히로부미의 비교 | 역사인물 (이홍장)
중은우시 2008.12.05 11:59
  • bluedays
  • 2008.12.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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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장을 대신해 변론을 하고싶군요.

‘국가가 너무 커서, 인심을 하나로 할수 없다’고 한 것은,
중국의 지리적인 면적을 언급한 의미도 있지만, 더해서 관료의 중간조직과 민간의 하부조직이 받쳐주지 못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네요.

한 국가의 국민은 그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지도자를 가질수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말은 주목해볼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면, 일본은 지도가가 앞장서면 국민이 따라주는 분위기가 강하지요. 반대파가 있더라도 그 수뇌만 제거하면 집권자의 정책시행에 별다른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인과 비교하자면 당시의 중국인민은 다스리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요.
  • bluedays
  • 2008.12.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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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의식이 깨어있던지,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리더를 따를 수 있는 의지가 있든지 이 둘중의 하나만 갖추고 있었다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개혁이 가능한데

당시의 중국사회는 그 준비가 안돼있었던게 개혁실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싶네요.

이런 상황에서 이홍장이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손에 피를 묻혔어야 했다고 봅니다.

피바람을 일으켜야 했었고, 그러지 못한 것은 위의 글쓴이가 말한 ‘이홍장의 담략이 모자랐다’고 한 부분이 그 이유로 보입니다.
  • 솔이울
  • 2008.12.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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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에는 명치천황이라는 불세출의 지도자가 있었다...군임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지키는것이 천황이지만 그는 개혁이란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국민을 인도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고종 황제는 어떻 하였는가? 김옥균의 마지막 개혁 운동을 박살 낸것밖에 한것이 없다.위기를 맛고 있다느것 자체를   알지 못하는 우매한 군주였다.
당시 청국의 사정도 서태후같은 무지 몽매한 지도의 통치하에 있었으니 아홍장으로서도 할수 있는일은 없었다고본다.
자기민족의 우매함을 반성치 못하고 다른민족을 원망하는 미몽속엤는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상록수
  • 2008.12.0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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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울님의 의견에 100% 공감은 되지 않는군요
고종의 우매함으로 인한 김옥균의 개혁운동 저지..등등은 그 시대를 직접 지식인으로서
살아보지 않고서는 한마디로 그렇게 단정적으로 정의 할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아무튼 약소국으로서 핍박 받으며 결국 연명도 못했던 과거를 거울 삼아 국력을 키웁시다.
  • 솔이울
  • 2008.12.07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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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님...살아 보아야 알수 있는것이 라니요? 역사의 기록을보면 판단할수 있는것입니다...
김옥균과 그동지들에 관한 기록을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역사를 단정적으로 말할수 없다고 하시니까 할말이 없읍니다만 역사를 거울 삼자는 극히 보편 타당한 말씀에는 동의 하여야 겠지요...

그러나 나는 지금도 김옥균의 개혁이 마지막 기회였다고 믿습니다..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일제하에 가진 시련을 겪었지만 이씨 왕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지요...일제 36년 그 많은 이씨조선의 왕자들 가운데 단 한명도 망명치 않았든 사실을...

그래서 나의 아버님이 선영이 아닌 대전애국지사 묘역에 계신것입니다
  • 올가
  • 2010.04.0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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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님 살아보지 않아도 역사의 기록이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외로 망명간 김옥균을 10년간 암살자를 보내서 결국 죽이고 시신을 길거리에 구경시킨게 고종과 명성황후입니다. 김옥균이 제대로 살아서 개혁만 했으면 일본의 사카모토 료마가 부러웠겠습니까? 그저 궁궐에서 서양인들이 타주는 커피나 홀짝일줄 알았지... 아무것도 모르는 군주였지요.
  • 올가
  • 2010.04.0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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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왕이 되자마자 제일 처음 한 일이 어린 시절 군밤을 공짜로 주지 않은 군밤장수를 찾아내 처형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다행히 신하들이 말려서 군밤 장수는 처형되지 않았지만 그정도 그릇밖에 안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믿기 어려우면 찾아보세요.
  • 서산국민학교
  • 2010.09.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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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의 입장을 이해못하시는 것같아서.....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신민지인 나라입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자주 독립국이 되었고,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세로운 건국이 되어 고종이 고종황제로 ....힘없이 외세의 뜻에 따라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 나라가 과연 무슨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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