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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눈으로 본 명나라 | 역사사건 (명)
중은우시 2009.03.20 11:49
우리의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비교하는 식과는 좀 다른 뉘앙스가 있네요..
각자 자기가 서 있는 높이와 입장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 달라지는 것은 중국만이 이니겠지요..

그런데 궁금한 것은 지금 현대 중국인은 명나라의 후예인가요 아니면 청나라의 후예인가요?

의식있는 역사학자라면 역사를 자기입맛대로 도려내고 싶은 허망에서는 벗어나야 되지 않을까요?
아직도 오랑캐라는 어휘를, 사뭇.. 비분강개의 투로 사용하는 다른 배후가 없다면 말이죠..
  • 쏘주
  • 2009.03.2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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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책에서도 특히 명나라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할때가 온것 같은데..
하지만 그 때문에 역으로 청나라가 근거없이 폄하되면 안 될 것입니다.
저도 아직 잘 모르지만 강건성세가 허구라면 통사에서
중국 최대의 전성기라고 하나같이 쓰기는 힘들지 않을가 싶습니다.
  • 해결자
  • 2009.03.2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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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배와 대포가 뛰어나더라는 기록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당대의 다른 기록들의 내용과도 다르고, 명나라 말기의 대포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므로 그 동안 대포 기술이 빠른 속도로 열화되었다고 가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찌기 사방의 오랑캐들에게서 예의의 나라, 신의의 나라로 칭송'받았다니, 대체 어느 '오랑캐'가 그런 칭송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만 해도 항상 명나라의 간섭에 시달리면서 군사적 공격을 대비해야 했는데요. 그런 분위기는 임진왜란 이후에 좀 달라지기도 했지만, 명나라를 전적으로 사모하게 된 것은 명나라가 망한 이후입니다. 실물을 보면서 칭송할 만한 나라는 아니었지요.
  • GUS
  • 2009.03.26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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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작은것이 큰것을 섬긴다.'라는 힘의 차이를 인식한 외교 즉 사대가 맹목적인 형태의 외교 즉 모화로 변질되는것은 임진왜란 이후 입니다.
'임진왜란때 입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라는 지극히 성리학적인 사고방식인 명분과 의리라는 측면때문에 그것이 변질된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조선과 명의 관계는 대립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조선 개국 초 정도전의 요동정벌론등에 의해 명나라가 자극을 받아 관계가 미묘하게 된적은 있었지만, 태종이후로는 명과 조선의 관계는 사대외교의 관계였습니다. 즉 지금의 미국과 한국의 관계와 비슷한 겁니다.
감사합니다 비공개로 가져가겠습니다.
흥미롭군요. 제가 이 글을 제가 운영하는 카페 두 곳에 가져가도 될까요? 글쓴이와 출처는 분명히 밝히고 나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약 이 댓글을 보았다면, 답글을 달아 주세요. "된다."고 하시면 카페들에 글을 소개하겠으며, 만약 "안 된다."고 하시면 카페에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방금 전에 중은우시 님의 답글을 확인했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님에게 "천(즈믄/1000/千) 번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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